풋볼프리스타일 챔피언 우희용씨와 17일 강남YMCA에서 홍보대사 위촉식을 가졌습니다. 우희용씨는 나이키의 '스틱맨', T-Mobile의 CF 등으로 알려졌으며 스틱맨 광고촬영시 호나우지뉴가 사인을 받은 사진으로 더욱 유명해진 세계최고의 아트사커의 달인입니다. 서울유나이티드 조점호 부대표님이 위촉장을 낭독하고 전달하였습니다. 또한 서울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서울유나이티드 팬들을 위해 아트사커의 진수를 보여주었고 SUTV를 통해 인터뷰를 남겼습니다. 우희용씨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활동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한국방문시 서울유나이티드 팬들을 위해 홈경기장에 꼭 자리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기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참조자료] '아트사커의 황제' 우희용, 전국체전 참가
‘아트사커의 황제’ 우희용(43)이 빛고을 광주에 떴다. 그는‘프리스타일(축구묘기)’의 창시자이자 챔피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3년 전 브라질의 ‘축구천재’ 호나우디뉴가 수줍게 축구공을 내밀며 사인을 부탁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황제’ 펠레도 ‘축구예술가’라고 극찬했던 우희용이 전국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11년만에 재 영국선수로 광주를 찾았다. 그는 92년 독일에서 아마추어 선수를 할 당시에는 재 독일선수로. 96년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당시에는 재 미국선수로 전국체전에 참여했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는 영국에서 축구묘기로 ‘공연’을 하며 프리스타일 챔피언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5시간6분30초’동안 헤딩만 한 뚝심의 사내
우희용은 이미 지난 8일 개막식때부터 화제인물이었다. 발로 ‘굴리고’ ‘튀기고’ ‘차라고’있는 축구공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기는 커녕 머리와 팔·다리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다루며 묘기를 부리니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우희용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최장시간 헤딩’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을 때부터다. 5시간6분30초. 자동차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리는 이 시간동안 그는 축구공으로 헤딩을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고의 ‘헤딩맨’이 됐다. 우희용은 “사실 그때가 가장 힘들 때였어요. 고등학교때까지 축구밖에 한 게 없는데 부상으로 4년간 (축구를) 못했거든요. 좀 회복된 후에 나 자신과 내기를 했죠 ‘세계신기록을 세우면 다시 축구를 하고 아니면 포기하자’고 말이죠”라며 화려한 경력을 갖게 된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호나우디뉴와는 CF동기
20대에는 무명선수였지만 불혹을 넘긴 지금은 그의 이름 앞에 항상 ‘최초’와 ‘최고’가 붙는다. 우희용은 “세계 프리스타일 협회 회장을 5년째 맡고 있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풀럼 홍보대사로 뛰고 있다”며 굵직한 직함을 연거푸 풀어놓는다. 거창한 타이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축구팬과 프리스타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스틱맨’으로 통한다. 2004년 호나우디뉴와 함께 모CF에서 축구묘기를 선보였던 우희용은 ‘검은 막대인형’으로 컴퓨터 그래픽 처리돼 방송을 탔다. 그때 붙은 애칭이다.
◇“물개드리블도 축구의 일부다”
공을 머리로 ‘통통’ 튀기며 수비수를 따돌리는 일명 ‘물개드리블’을 두고 그는 “축구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그는 “호나우디뉴도 실전에서 (물개드리블 같은) 프리스타일 기술을 많이 적용하는 편”이라며 “프리스타일은 세계적 흐름이고 축구 기술”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아직은 프리스타일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희용은 이번 전국체전 기간 동안 프리스타일 동작들을 더 많이 선보일 생각이다.
항상 새로운 기술개발에 여념이 없다는 그에게 “기네스북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냐”고 묻자 “또 할 필요 있나요?”라고 반문한다. 우문현답이다. 아직 그가 세운 신기록은 깨질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광주 | 강아름기자 arong@
첫댓글 프리스타일은 우리나라!
그 검은막대 인형이 우희용 이었구나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