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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86
난징 조약은 중국이 맺은 최초의 근대적인 조약이고,또 최초의 불평등 조약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난징조약 이전에 맺은 두 개 의 근대적인 조약이 이미 있습니다.
강희제 때 러시아와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과 옹정제 때 맺은 캬흐타 조약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유럽과 맺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것은 사실이며,난징 조약 으로 인해 중국이 지켜 오던 중화사상은 여지없이 깨졌고 미명에 잠겨있던 중국 사회는 커다란 충격으로 요동쳤습니다.
그 때 까지 서양 상인들의 활동은 광저 우에만 국한되어 있었는데, 이 조약으로 인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던 아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겁니다.
즉, 영국은 아편 판매를 그만 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지금의 영국은 모르겠으나 그 당시의 대영제국 의 철면피스러움은 지울 수 없는 흉터처럼 세계사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중국은 한중일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치욕스런 강제 개항을 당했습니다. 이 일은 중국 전역에 양무 운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나, 이미 침 흘리는 늑대가 된 강대국들 앞에 던 져진 빨간모자 꼴이 되었습니다. 영국은 이것도 모자라 다음 해 7월에 더욱 강화된 조약을 맺으니 5항 통상장 정, 10월에 호문채 추가 조약입니다. 이 조약이야말로 어이없는 불평등 조약 인데 영사의 재판권 인정, 수출입품의 세율 측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그 나라의 고유한 권한인 데, 영국은 남의 나라에서 그것을 행사하겠다는 겁니다. 문서로 표현만 안 했다 뿐이지 식민지가 된 것이나 다름 없는 조약입니다. 그외 개항장에서의 조계 설치와 최혜국 대우의 특권도 얻었 으니,중국은 영국인이 자기 땅에 들어와 서 살인 방화를 해도 손가락 하나 범인 의 몸에 댈 수가 없게 된 겁니다.
난징 조약이 중국에 미친 해악은 이것 뿐만이 아니고, 근대 중국의 국제 사회 에서의 모든 불평등 조약을 받아 들이는 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강대국들이 거침없이 자국의 모든 것을 옮겨 놓을 수 있는 단초가 된 것이지요. 거대한 중국 대륙에 이제 거침없이 유럽 열강들 이 앞다투어 침략하게 되었으니 이 시초 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봅니다.
1844년에 미국과 망하 조약을 맺는데, 마카오의 망하라는 곳에서 청나라와 미국이 맺은 최초의 조약입니다.
미국은 청나라와의 무역에 힘써 열심히 차를 수입했는데, 난징 조약 이후, 무력 을 앞세워 체결한 불평등 조약이지요.
같은 해에 프랑스와도 조약을 맺게 되는데 황포조약이라고 합니다. 중국 광주 에서 맺은 수호통상조약인데 난징 조약 못지 않은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영국, 미국에 버금가는 특혜를 가져감으 로 이제 중국은 서구 열강에 의해 갈기 갈기 찢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중국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을까요?
이제 제 2차 아편 전쟁이 터지기 일보직전입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의기 롭게 이 전쟁을 일으켰을까요?
아편전쟁이 중국과 서양의 전쟁으로 중국사에 지울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았는데 중국 또한 비슷한 짓거리들을 참 잘합니다. 스위스는 아주 작은 나라이지 만,전 세계 어느나라 사람도 스위스인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반면 중국은 거대 한 대륙이지만 그들의 흔적이 지나간 곳 은 욕설과 비방이 남아있기 일쑤입니다.
대륙이지만 결코 대국이 아니며, 대륙인이지만 그 속은 소수민족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일까요?
아편 전쟁이 일어난 그 당시 중국은 잠자는 거대한 곰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 전쟁이 벌어져서 자국에 불리한 조약을 몇 개씩이나 맺고, 그로 인한 불평등한 여러 일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미련한 곰탱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저기서 저항 운동이 일어나긴 했으나 중국은 깰 줄을 몰랐습니다. 몇 몇 항구에서 일어 난 일이었기에 중국 전역을 움직이기는 불가능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제 2차 아편 전쟁을 일으킨 것은 중국이 아니었습니다. 중국도 세계의 변화를 몰랐지만,서구 열강 역시 중국의 저력을 전혀 몰랐다고 할수 있었고 그 때문에 조약 이후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이 일어나고,영국 등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중국은 분명 불평등 조약을 맺고 강제 개항을 당했음에도 그것에 대해 둔감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은 중국 본래의 법대로 흘러 갔습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중국 개방 이후 많은 사람들 이 대륙으로 들어가서 낙후되고 어리숙 한 중국인들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 고 여기고 많은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그 결과 참담한 실패를 겪은 한국 사람 들, 사업가들, 무지 많습니다. 대륙의 사람들은 찐득한 황토처럼 알수없고 불 가사의한,수 천 년의 의식을 가진 사람 들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덤빈 결과는 과거나 현재나 똑 같습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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