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자면서 개꿈도 꾸이더니만
요즘은 개꿈도 잘 꾸이지 않는다.
꿈도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꾸이는 법이다.
어릴 때는 성장기에 해당되므로
맹수한테 쫓기는 장면이라든지 아니면 악마한테 쫓기다가
낭떨어지에서 "쿵!" 하고 떨어진다든지 하여 깜작 놀라 잠을 깨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꿈은 삶의 방향을 잡아주고 목적지가 되기도 한다.
민태원 선생은 청춘의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다고 했다.
거선(巨船)이라고 하면 요즈 말로는 VLCC (Very Large Crude Carrier:30만톤 이상의 유조선)에 해당된다.
예전에는 소재가 발달하지 않아 스팀터빈선이었으나 연소효율이 떨어져 근래에는 모두 디젤선으로 바뀌었다.
나는 26만톤짜리를 탔었는데(당시에는 스팀터빈선이었음) 고장이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면서 하루에 평균 4시간정도 잤다.
블랙아웃트(Black out:동력상실) 훈련을 매주일 마다 해야 하고 호주머니에 후라쉬는 항상 지니고 다녔으며 잘 때는 손만
뻗치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위치에 두고 잠을 잤다. 아마 쫓기는 빨치산의 토끼잠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대양의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나아가는 거선도
침로를 따라간다. 침로라 하면 목적항까지의 안전한 최단항로를 말한다.
때로는 파도와 해류 그리고 바람이 침로를 어지럽히지만 항해사는 타를 잘 움직여 침로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스티븐 코비박사가 지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보면
두번째 습관이 "Begin with the end in mind"이다.
'마음속에 끝을 가지고 시작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끝은 자신의 꿈을 의미한다.
꿈을 향해서 방향을 잡고 그러면서 에너지를 그곳에 집중하면,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꿈을 이룬 사람의 예를 든다면
'브리튼 갓 탈렌트' 프로에 49세 노처녀 시골뜨기로 출연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수잔 보일이라는 가수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국 노래자랑 프로와 마찬가지였는데
그 프로에 출연할 때만 하더라도 촌티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녀는 이전부터 가수가 되는 꿈을 꾸어 왔고 항상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리하여 그 프로에서 우승하게 되었고 그녀는 결국 꿈을 이루었다.
수잔 보일 이외에도 휴대폰 판매원으로 일하다 그 프로에 우승하여 가수가 되었고
부산에도 두 번이나 공연차 왔던 테드도 있다.
꿈도 세월따라 자란다고 한다.
내 어릴 때 꿈은 고기국에 허연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아니 고기국이라는 것 조차도 몰랐으니까 시커먼 보리밥 대신 허연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애써 일군 문전옥답이 열마지기나 됐지만
사업한다고 밑천 대라던 고모부 말씀에 아버지가 속아서 양식을 다 팔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셋째 동생을 낳고도 양식이 없어 보리딩겨로 죽을 쑤어 먹으면서 연명을 하셨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엔 꿈도 조금 자라서 국민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쯤 선생 코스인 진주사범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고선 내 꿈도 사라지고 말았다. 우선 먹고 사는게 급급했다.
그래서 배를 타게 되었고, 배를 타다 보니 아무래도 뭔가 꿈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되었다.
어찌 보면 당시의 꿈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 때의 꿈이고 지금은 또 다른 꿈이 있다.
이게 나의 마지막 꿈을 지도 모른다.
꿈이 없는 인생은 대양에서 침로를 잃은 배와 같다.
길지 않은 인생 우리는 목적항을 향해 부지런히 가야한다.
꿈너머 꿈을 향해서.
첫댓글 주인장의 글을 보면 느끼는 것이 많다. 우선 소재가 다양하고 글의 흐름이 시골촌놈의 그대로이다. 하나도 숨김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술술 나오니 얼마나 좋은 글인가? 수필의 자료들이 무궁무궁하구나. 어떨 때는 시적인 운이 흘러나오고 이제는 그 꿈이 침로를 헤치는 글이 아닌가 싶네. 배움이 있는 곳에 늘 관심이 있다. 좁은 골방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넓은 대양을 헤치면서 꾼 끔이 얼마나 크겠나? 고기를 가뜩 잡아들이는 어부로부터 대함의 육중한 배를 몰고 가는 의지가 부럽다. 좋은 글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 당초 카페를 시작할 때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 카페를 통해서 안부라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벌써 16년이 지났다. 그런데 몇몇 친구를 제외하면 찾아오는 친구가 없어 관 둘까도 생각해 봤다. 혼자서 넋두리 하는 모양새도 별로 좋지 않으니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내년이면 졸업50주년이 된다. 이 불경기에 천상 내년까지는 끌고 가야할텐데...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