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A1lT9k-fEk?si=ZbZoHAbvptHE0vFa
The Best of Fritz Kreisler
크라이슬러 [Kreisler, Fritz, 1875.2.2~1962.1.29]
오스트리아 빈 출생. 빈음악원에서 L.아우어, 헤르메스베르거의 지도를 받고 파리음악원에서는 J.마사르에게 바이올린을, L.들리브에게 작곡이론을 사사, 12세 때 로마대상을 받았다. 1888∼1889년 미국 연주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빈에 돌아와서는 한때 의학과 미술을 공부하고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하여 장교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바이올린독주가로서 데뷔한 것은 1899년 베를린에서였으며,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1915∼1924년에 뉴욕을 중심으로 주로 미국 각지에서 연주를 하고 이어 세계 각지에서도 연주를 하여 빈의 분위기를 가장 짙게 풍기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가 남긴 작품에는 《빈카프리치오 Caprice viennois》 《아름다운 로즈마린 Sch n Rosmarin》등이 있다.
1923년 김영환(金永煥)의 주선으로 내한하여 독주회를 가졌으며, 1943년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고,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어릴 때 바이올린 신동으로 그 재능을 인정받아 7세 때 빈 시립음악원 사상 최연소의 나이로 입학하여 3년간 헬메스베르거에게 바이올린을, 브루크너에게 작곡을 배웠다. 이후 파리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1887년 졸업, 12세에 음악 교육을 끝내는 조숙함을 보였으나, 1889~90년 미국을 여행하고 빈으로 돌아와 고등학교, 의학부 예과, 병역복무를 하는 등 거의 음악과 멀리하던 시기도 있었다.
1898년 빈 필하모니에 입단, 이듬해 A.니키슈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와 협연함으로써 본격적인 연주활동을 시작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때에는 육군 장교로 종군하여 부상을 당하고 퇴역하였으며, 전후 곧 음악계에 복귀하여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나치스에 의한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나치스를 피하여 1938년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1939년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1943년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1941년 교통사고로 시청력에 이상이 있었음에 불구하고 1947년 카네기홀에서의 마지막 공연까지 연주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바이올린 주법상의 거의 모든 장점을 겸비한 유례가 없던 존재로서, 풍부한 정서와 따뜻한 표정으로 청중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연주함으로써 한 세대를 풍미한 연주자였다. 작곡가로서는 《빈 카프리치오》와 같이 빈의 깊은 정서가 담긴 악곡을 비롯, 18세기 음악적 감성을 주는 바이올린 소품들을 작곡하여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HMTF2FBXY7Y?si=qaLnV1JUSczb8Yqf
Guido Sant’Anna e Silva - Fritz Kreisler Violin Compet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