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장,
가방만 들고 나가면 된다.
자식들과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들고 나가기 쉽게 문 앞에 놓고 내려간다.
차와 과일들이 차려지고 둘러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둘째아들인 성환이 일어서면서 아버지께 자리를 권한다.
김형우는 말없이 내어주는 자리에 앉는다.
“저녁들은 맛있게 먹었냐?”
“네!”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거든 해 보거라!”
김형우는 자식들을 둘러본다.
막내인 성태가 먼저 입을 연다.
“아버지! 이제는 저희들에게 모든 것을 상속해 주십시오.“
”상속해 달라?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
김형우는 담담한 어조로 막내아들을 본다.
“이제 연로하신 아버지 정신이 가끔 깜빡거리시는 것이 아무래도 치매증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언제까지 모든 재산을 아버지 수중에 가지고 계실 것입니까?“
”치매? 내가 치매증상이라도 있다는 것이냐?“
”아버님! 그러시지 않으시고서야 매달 입금을 해 주시는 것을 잊으셨을 리가 없지요.“
유혜영의 말이다.
“내가 깜빡해서 입금을 시키지 않았다고 하던?”
“그러지 않으시고서야 아버님처럼 빈틈이 없으신 분이 입금을 시키지 않으셨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유혜령의 당당한 말투다.
“내가 너희들에게 매달 임대료를 주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니? 또한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그리도 당당하게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지 알고 싶구나!“
김형우는 끌어 오르는 화를 삭이면서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한다.
“아버님! 그 모든 것들은 어차피 자식인 저희들의 상속분이 아닌가요? 당연한 것을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또 다시 유혜영의 말이다.
“당연한 것이다? 내 어머니의 유산을 너희들이 물려받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그리도 당당하게 받아야 할 자손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는지 묻고 싶구나!“
아무도 입을 여는 자식들이 없다.
“제사도 차례도 모두 나 몰라라 하는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 너희들의 의무를 다 하고 나서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제는 멀쩡한 아버지를 치매로 몰고 간다? 허어 참!“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이 없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다.
“너희들이 이제는 내게 상속권마저 빼앗으려고 하는 것 같다.”
“아버지! 오해이십니다. 절대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둘째아들 성환이의 황급한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멀쩡한 애비를 치매로 몰아가다니? 내가 설사 치매가 있다고 한다면 먼저 애비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게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니? 치매니까 상속을 해 달라고 떼를 써?“
김형우의 얼굴에는 노기가 잔뜩 서린다.
그러나 잠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평온한 모습을 되찾는다.
“잘 들어라! 너희들에게 임대료 수익을 줄 수 없다는 내 결론이다. 죽은 조상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이 애비조차 생각은커녕 아랑곳하지 않는 너희들에게 더 이상 내 어머니의 유산을 한 푼도 줄 수가 없다. 명절도 없이 늙은 애비 혼자 절에 가든 집에 들어오든 먹든 굶든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 너희들에게 나누어 줄 재산은 없다.“
김형우의 차가운 어조다.
“아버지가 그렇게 지내고 계신 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저희들의 불찰입니다.“
성환이는 죄인의 심정이 되어간다.
형님 댁에서 형수님이 잘 모시고 살아가시는 것으로 알고 있던 성환이다.
“아버님! 지금까지 아무런 불평 없이 지내고 계셨으면서 이제 새삼스럽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아버님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유혜영의 도전적인 언사다.
“불평 없이 지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니? 내가 아무런 말없이 지내는 것이 너를 위해서 좋은 일이겠지? 허지만 큰애야! 짐승도 집에서 나가 보이지 않으면 찾는 법이다. 너는 내가 언제 집을 나갔는지 알고나 있니?“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께서 집을 나가시다니요? 늘 새벽이면 나가시고 한 밤중이나 되어야 귀가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니? 그럼 도우미 아주머니께 내 방의 상태를 물어 본 적이 있니? 사람이 들어왔다 나간 흔적이 언제였는지 알아볼 생각이나 해 본 적이 있니?“
”........................“
“성일아!”
큰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아까부터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는 큰아들이다.
“네, 아버지!”
“너희들에게 묻겠다. 이 애비가 너희들과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물어보고 싶다.“
“.........................”
성일은 아버지의 물음에 대꾸할 말이 없다.
“잘들 듣거라! 이제 이 애비도 살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애비가 재혼을 한다.“
“네? 재혼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유혜영은 자신의 귀가 의심스럽다는 듯 묻는다.
“그래! 아니, 이미 재혼을 했다. 다만 결혼식이 아직 남아 있지만 애비는 이미 재혼을 했다.“
모두 놀라는 얼굴이 되어 서로 바라보기만 한다.
“애비가 무엇을 하는지 집에 들어오는지 먹는지 굶는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너희들과 가족이라는 유대감이 없이 홀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리고 이제는 남은여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너희들처럼 행복 하고 싶다.“
”아버님! 절대로 재혼은 안 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혜영은 다소 높은 음성으로 반대를 하고 나선다.
“재혼은 안 된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니?”
“네! 지금 아버님의 연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낼 모래면 일흔이십니다. 과연 얼마나 더 오래 사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또한 자식들의 체면을 생각해 주셔야 할 것이 아닌가요?“
”마치 내가 내일이라도 죽을 것처럼 기다리고 있구나? 그리고 내가 재혼을 하는데 있어서 너희들의 체면에 손상이 가는 일이 있더냐? 너희들 체면을 생각하느라 이 애비는 어서 죽었으면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것이 과연 자식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버님! 너무 그렇게 억지를 쓰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동안 홀로 고고하게 학처럼 살아오시는 모습을 존경했습니다. 그런 아버님의 모습이 흩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네게 존경을 받았다? 참으로 네 편리한 방식이구나? 네가 단 한 번이라도 시 애비를 존경하고 대우를 한 적이 있었냐? 이 시애비가 필요할 때라고는 돈을 얻어 내는 것뿐이 아니었냐? 그리고 너희들의 찬성을 바란 적도 없고 양해를 구한 적도 없다. 너희들 말대로 내 인생 내가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야!“
다시 성환이를 보며 부른다.
“네, 아버지!”
“다음 네 비행일지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다오. 네가 시간이 나는 날 장소와 시간을 정해서 통보를 하겠다. 너희들과는 상관없이 내 인생이고 내 아내다.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는 것이 도리이고 순리라고 생각하고 통보를 할 것이다. 다만 불참하고 싶은 사람은 불참을 해도 좋다. 그것으로 나와의 인연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형우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더 이상 다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김형우는 이층으로 올라가 준비해 두었던 가방을 가지고 내려온다.
잠시 자식들을 둘러보고 난 다음에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간다.
아무도 그 어떤 말도 묻지 못하고 아버지가 나가시는 모습을 바라만 본다.
한참만에야 성철이 입을 연다.
“대체 큰형님과 형수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들입니까? 아버지를 어떻게 모셨으면 아버지가 집을 나가신 것도 모르고 계셨느냐고요?”
“그러는 서방님들과 동서들은 자식이 아닌가요? 왜 큰아들이 그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하죠?”
“나 이것 참! 형수님! 형수님께서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기만 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오늘만 해도 형수님은 일하는 것만 싫어하고 짜증을 내시며 이 모든 음식들을 주문하고 함께 돈을 내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왜 그래야 하는지 말을 해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죠? 서방님들 동서들은 가만히 앉아서 감나무 밑에 떨어지는 감만 골라 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몰라요? 그리고 아버님 재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형수님! 아버지가 재혼을 하시는 것을 왜 그리도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십니까?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닌가요?“
성환이 말을 한다.
“잘 된 일이라니요? 큰 서방님은 아버님의 수중에 있는 모든 재산이 엉뚱한 곳으로 가도 상관이 없다는 말은 아닐 테지요?”
“형수님! 말끝마다 재산, 재산 하시는데 참으로 듣기 거북합니다. 아버지가 부모라기보다는 재산으로만 보이십니까?“
”네! 솔직한 심정입니다. 부모라고 해도 재산이 없다면 누가 좋다고 할 사람이 있어요? 나만 특별히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유혜영은 아주 당당하다.
“당신 그만 입을 다물고 있어! 이 모든 것이 당신이 화근이라는 것을 몰라? 아버지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으시다는 것을 아직도 몰라?“
성일이 크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낸다.
참으로 아버지에게 무관심했고 조상님들께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다.
“뭐가 나 때문이야? 그럼 가만히들 앉아서 엉뚱한 곳으로 모든 것이 빼돌려진다고 해도 구경들만 하겠네! 그러나 절대로 난 앉아서 당하지 않을 테니 그때 가서는 내게 사정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니 두고 봐!“
유혜영은 모두들에게 엄포를 놓는다.
“우린 그만 갑시다.”
성환이 아내에게 재촉을 한다.
더 이상 말을 나누어 있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서방님! 아까 말씀대로 음식 값을 분배해야 하지 않아요?“
성민주는 핸드백을 열고 지갑을 꺼낸다.
그때 막내인 성철이 나선다.
“작은 형수님! 지갑을 넣으십시오. 우리가 형님 댁에 와서 밥 한 끼도 먹지 못하고 간대서야 어찌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
성철은 성민주의 지갑을 빼앗아 다시 핸드백 속에 넣어준다.
“어서 그만 돌아가십시오. 돈은 무슨 돈을 내십니까?“
성일이 또한 만류를 한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되지 않겠다. 어서들 돌아가고 다시 시간을 내어 만나서 이야기들을 하자.“
성일은 동생들을 돌려보낸다.
그 모습을 아무런 말도 없이 보던 유혜영은 모두들 돌아가고 나자 매서운 눈길로 남편인 성일을 무섭게 쏘아본다.
글: 일향 이봉우 |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보았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