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18. 성공회 대전교구 교육원 졸업식 축사. 유낙준주교.
4-2. (성공회 대전교구 교육원 졸업식 축사) 총괄자 하느님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두 사람이 예수사건을 이야기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루가 24:15).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루가 24:16).”
자신이 따르던 지도자가 죽으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 지도자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은 지도자의 뜻을 깊이 새겨 그의 뜻을 지속할 길을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자와 멀리 있던 사람은 자신의 방식대로 길을 찾아 갈 것입니다. 예수라는 지도자가 십자가형을 받아 돌아가셨기에 그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제자 중에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서쪽 지중해 쪽으로 삼십리 떨어져 있는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지도자가 죽었기에 애도 속에서 자신의 지도자가 죽게 된 경위를 다시 생각하며 정리를 하면서 걸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지?’ 라며 복기하는 두 제자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의 반대 방향인 여리고는 익숙한 곳인데 ‘여리고로 향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때문이었을까?’하는 질문이 듭니다. 익숙한 여리고에 가면 예수의 무리들을 잡으려는 감시자들의 눈에 띄일까봐 그 반대방향인 엠마오로 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예수와 함께 지냈던 지난 일들에 집중하느라 두 제자는 정작 예수님이 눈앞에 오셨는데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두 제자를 먼저 알아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 앞에 오직 두 제자만 있는 것으로 그들만이 있는 것처럼 집중해서 보시는 모습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난 날에서 찾았지만 그래서 현재의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예수의 이름조차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우리에게 거듭 다가오셔서 우리가 걷는 길을 집중해서 보시고 동시에 우리 속을 다 헤아리시면서 우리의 대화 속에 들어오셔서 동행하셨습니다. 예수가 우리에게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일들에 참여하십니다. 좌절로 인해 기운이 소진된 지친 몸에 먹을 빵까지 주셔서 희망의 기운을 주시는 예수이십니다.
서강대학교의 정문에서 왼쪽위로 오르면 엠마우스관이 나옵니다. 엠마우스관을 향해 오를 때마다 예수의 두 제자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이상일신부가 장학금을 줘서 예수회에서 공부했던 생각이 나고, 물리학을 공부하신 후 신학공부를 하고 예수회 교수신부로 영성신학을 가르치시던 심종혁신부(현 서강대학교 총장신부)와 토착화신학을 가르치신 심상태신부가 떠오릅니다. 예수회신부들은 불같은 열정의 소유자들로 화곡동의 본원에서 독주에 불을 붙이면서 밤늦도록 선교열정을 나눴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예수회신부들은 저를 알았는데 저는 예수회신부들을 잘 몰랐었던 때입니다. 예수님이 지니신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불같은 열정을 예수회 신부들의 삶에서 본 것이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엠마우스관으로 오르는 예수가 함께 걸으시고 빵까지 주시니 두 발에 힘을 차오릅니다.
서강대학교 영문학과의 장영희교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신 분이십니다. 장영희교수(1952-2009)는 소아마비로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라 모든 대학에서 입학시험조차 허락을 해 주지 않았는데 오직 서강대학교만 입학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장애인이라 하여 대학교에서 입학시험조차 보지 못하게 하는 시대에 장애인에게 입학시험을 치르게 해 준 서강대학교가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 하느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다. *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버리는 자살행위와 같기 때문이다(장영희박사의 글).” 그리고 92세에 박사학위를 공부하게 한 성공회대학교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성공회 대전교구 교육원 출신이 세상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그 무엇인가를 수용하는 사람이 된다는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삶의 지평을 새롭게 열는 교육원 졸업생들이 될 것입니다. 인류의 불평등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성공회 교육원 출신들의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9개월 먼저 대전교구장 주교직을 내려놓게 된 것은 하느님의 인도하심이라 믿습니다. 거룩한 일이 이어지도록 하는 주교직은 중요합니다. 그 중요한 일인 주교선출이 우리에게는 선교적이고 싶은 것이 주교직을 내려놓게 된 첫째 이유입니다. 선교는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주교선거로 인해 선교가 멈춰져서는 안 될 것이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는 선교로 사제들과 신도들에게 상처가 많이 남는 그전의 주교선출로 기억이 됩니다. 주교임기 한해를 남겨두고서 선교가 많이 중단된 그간의 경험으로 짧은 기간에 주교를 선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멈춤을 단축하여 선교지속을 세워 나가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제 모습이 선교비젼형 주교이었기에 비젼제시에 힘을 모아 선교에 집중하고자 하였는데 그런 비젼형 리더쉽의 영향력이 다 소진되었다는 점입니다. 평신도역량을 높여 강력한 선교 성공회를 세우고자 종신부제직을 선교의 기반으로 제안하였는데 이를 동의 받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이제는 비젼형주교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주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선한 영적인 지도력이 추락했는데 주교직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2년전에 개척교회를 하려고 땅을 알아보았는데, 유성교회를 개척할 때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기뻤던 선교가 저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상하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람베스 주교회의 차 런던을 방문 중(2022.8.13.)에 런던의 마크사제와 채순주교가 제와 런던한인선교에 대해 논의를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전주교좌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한 후에 유치원에서 뒷풀이 사회를 본 후배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염쟁이 유씨”라는 책을 쓴 김인경입니다. 서울서 활동했다면 국민의 연극인이 되었을 김인경입니다. “염쟁이 유씨” 라는 제목이 죽음을 마주하는 사제라는 생각이 겹쳐집니다. 사제는 죽음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사목이기 때문입니다. 염사제도는 신학교 졸업 한참 후에 생겼습니다. 염사제도가 없을 경우에는 사제가 염을 했습니다. 차신부님의 사목강의로 “오늘은 나, 내일은 너. Hodie mihi, Cras tibi.”라는 주검에 대한 염을 배웠습니다. 신학교 졸업식을 하기 바로 직전에 김책공업대학 출신의 최인정할아버지의 시신을 염하게 되었습니다. 염하고 나서 일주일간 그의 시신이 눈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기 전에 주검을 마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죽음의 자리에 늘 있어야 진짜 사제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연극 “염쟁이 유씨”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 내가 괜한 소리 하는 것 같지만 죽는 것도 사는 것처럼 계획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거여. 한 사람의 음식 솜씨는 상차림에서 보여지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는 설거지에서 나타나는 법이거든. 뒷모습이 깔끔해야 지켜보는 사람한테 뭐라도 하나 남겨지는 게 있는 거여. * 죽는다는 것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지 인연이 끊어지는 게 아녀. *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어. 근디 땅에만 묻혀버리고 살아남은 사람 가슴에 묻히지 못하면, 그게 진짜 죽는 게여.”
만나면 떠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나게 되기도 합니다. 만나면 떠나기도 합니다. 이곳에 남기고 가는 게 무엇이고 이곳에서 가지고 가는 것이 무엇일까? 그간 주지 못한 사랑을 주고 떠나는 것일까? 상처를 주고 떠나지 않고자 하고 슬픔을 남기지 않고 떠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움을 남길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쩌면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고 정작 어려운 것은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만나고 떠나갔고 떠나 보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부모님을 만났기 때문에 고생하는 흑수저가 아니라 금수저 인생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찍부터 고생을 해서 믿는 것에 대해 일찍 터득하게 되었고 믿음으로 인한 즐거운 인생을 살았기에 금수저 인생이라고 자신을 표현 하는 이를 만났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일에 전념하고 삶을 즐기고 사람을 사랑하면 금수저 인생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통하여 살아나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볼 것입니다.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우리 삶은 끝이 있다. 그러니 인생을 낭비는 하지 말자. 여러분의 마음과 직감을 따를 용기를 가지라.”는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앙심을 굳건하게 지녀야 할 것입니다.
존엄성과 개인성 privacy을 보장하고(하느님의 모상), 자신 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control 수 있고(총괄자 시각), 어디서 마칠 것인가를 정하고(예전), 영적이고 정서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 그것에 접근할 수 있고(예수와 동행), 옆에 누가 있어야 하고 마지막을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를 정하고(성사),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성시간)을 가져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 인간이 바칠 최고의 예절인 감사성찬례를 제대로 바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총괄자이신 하느님께 인간의 최고예절인 감사성찬례를 바치는 존재입니다. 이를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