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고 시를 만났다
국어 시간에 시 쓰기
최인영
출간 2024년 11월 11일│판형 133*200│제본 무선│224쪽│17,000원
분야 [국내도서>사회과학>교육학>교육 일반 / 국내도서>청소년>청소년 글쓰기]
│ISBN 978-89-6372-441-6
시 쓰는 국어 시간을 위한 딱 부러지는 안내서
시 있는 삶과 시 없는 삶은 다르다.
시는 우리를 배부르게는 못 해도 우리 삶이 메마르지 않게 깊고 풍요롭게 일으켜 세운다.
우리가 시와 만나는 처음은 대개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이다. 그런데, 어디 첫 만남이 쉽겠는가. ‘시’는 나와 상관없는 저기 다른 세상의 언어 같은 걸. 더더구나 시를 쓰라니! 선생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시 쓰기를 가르치는 일은 국어 교사에게도 두렵고도 먼 일이다.
생물을 좋아한 저자는 ‘어쩌다’ 국어 교사가 되었다. 문학 시간은 괴로웠고, 현대시 강의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아이들을 만났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내가 잘하는 건 뭘까?’ 고민하면서 교과서를 분석하고 재구성했다.
주제를 정하기 전에 작품 감상으로 아름다움은 대상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태도에 있음을 발견하게 하고, 글감 찾기를 어려워 하는 아이들한테 거창한 사랑이나 감사 말고 기억 저편에 있는 단팥빵 하나를 찾게 했다. 부끄러움과 상처는 송곳 같아서 숨길수록 자기를 파고들지만, 그걸 시에 꺼내 놓으면 다른 사람 감정을 쿡 찌르는 감동이 되기도 한다고 속삭인다. 그리고 시는 마른 미역 같아서 맛과 향과 영양을 고스란히 전하려면 절제하고 생략하고 압축해야 한다며 시의 길을 설명했다.
2023년도 한 학년 100명이 모두 시를 썼고, 그걸로 시집을 냈다. 1년 동안 어떻게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시를 쓰게 했는지, 수업 과정 전체를 이 책에 담아냈다.
책에 담긴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시를 만나고 시와 노는, 꽤 벅찬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로 여기에 내 곁에 있으니까. 그리고 혹시 아는가. 내 삶이 시가 되는 시작일런지.
▒저자 소개
최인영
어려서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그게 국어는 아니었다. 생물을 좋아했는데 색각 이상으로 이과에 갈 수 없었고, 어쩌다 보니 1994년부터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과 성향이라 시와 소설은 늘 어려웠다.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는 없겠다 싶어 용기를 내서 맞섰고 올해로 31년째 씨름하고 있다. 그런 몸부림이 쌓여 소설 쓰기 책도 내고, 방통고 어르신들과 시집도 엮고, 이렇게 시 쓰기 책도 내놓게 되었다.
이 책은 이과 성향 국어 교사의 발버둥이자, 나처럼 감수성 메마른 교사도 할 수 있으니 한번 덤벼 보시라는 응원이다.
아이들은 깡마른 외모를 보고 모기라는 별명을 붙였지만 모기가 아니라 멸치이고 싶다. 음식의 주인공이 아니라 가루나 국물이 되어 다른 음식을 맛나게 하는 멸치.
그리고 아이들이 주인공이면 좋겠다. 교실에서, 수업에서, 자기 삶에서.
▒목차
책장을 펼치며
어떤 주제로 시를 쓰지? -주제 정하기
경험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시 –글감 찾기
가슴에 품은 송곳 하나 -내면의 상처를 응시하는 용기
반어냐? 역설이냐? -시의 표현
시도 다이어트가 필요해! -고치고 다듬기
시를 읽고 쓰는 즐거움 -시 쓰는 어려움을 이겨 내는 힘
시가 건네는 작은 위안 -왜 시를 읽고 쓰나?
책장을 덮으며
▒책 속으로
이 책은 2023학년도 서울사대부설여중 학년 학생 100명이 국어 시간에 했던 시 쓰기 수업을 정리한 보고서다.
여기에 시를 실은 50명 가운데 한 명은 도움반(특수학급) 학생이다. 그런데 시만 봐서는 누군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만 시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두렵다고 피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12〜13쪽
시 쓰기를 지도하는 교사는 세 가지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먼저, 주제를 자유롭게 풀어 주면 정말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오해다. 그렇지 않다. ‘무얼 쓰지?’를 고민하느라 학생들은 시를 쓰기 전부터 지친다. 시든 소설이든, 창작을 지도해 본 경험이 있다면 알게 된다. 적당한 제약이 있어야 충실한 결과물이 나온다. 주제도 마찬가지다.
-42쪽
아름다움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라고 했죠?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멋진 경험을 했다고 멋진 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사소한 경험이라도 여러분이 그걸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 태도에 따라 여러분은 멋진 시를 쓸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거창하고 멋진 경험은 버리세요. 부담스러워서 좋은 시를 쓰기 어렵습니다.
-48쪽
시를 쓰는 학생들에게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건 교사도 마찬가지다. 시 쓰기를 가르치려는 교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두려움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교사에게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용기’다.
-109쪽
마른미역은 거리가 멀어도,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전달할 수 있어요. 마른미역을 물에 불리면 원래의 맛, 향, 색, 영양이 고스란히 다시 살아나죠.
…시도 마찬가지다.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그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절제, 생략, 압축해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달할 수 있다.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 미역이 퉁퉁 불었다.
-145〜146쪽
다비 김다혜
다비는 유기견
지금은 우리와 살고 있다
깡촌 산에 버려진 유기견 다비
보슬보슬 차가운 비를 맞으면
주인이 떠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염없이 비 맞으며
젖어 들고
기다리는 불안감에
젖어 들고
비가 오면 넌 항상 슬픈 미소에
젖어 들지
비가 오면
너의 맘속도
다 ‘비’지
…한 대상을 일주일 동안 관찰하고 마음에 품어 보는 시간이 좋았어요. 동물도 사람과 똑같이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니 비로소 다비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비와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156쪽
감수성과 공감 능력은 후천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아이들과 문학을 얘기하고 시를 공부하면서 나는 그걸 조금씩 배웠다. 조금은 더 부드러워졌다. 아이들이 나를 속상하게 해도 ‘오죽하면 저럴까?’를 먼저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문학이 없었다면,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고 쓰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30년 동안 나는 나를 가르치며 살아왔다.
-218〜219쪽
▒출판사 서평
시 쓰는 국어 시간, 어떻게 시작할까?
이 책을 쓴 국어 선생은 생물을 좋아하고 도표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이과 성향이다. 문학과 ‘시’가 두려웠던 저자는 두려움으로 피하기보다는 용기를 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교과서를 재구성하고 수업 설계를 치밀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실패하면서 쌓아 온 그만의 방법으로 2023년도에는 국어 시간에 만난 아이들 100명이 모두 시를 쓰게 되었고, 이 책은 그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주제를 정하고, 글감을 고르는 일부터 시를 다듬는 일까지 시를 쓰는 차례에 따라 일곱 부로 구성하고 부마다 아이들 시를 일곱 편 싣고 그 시마다 설명을 덧붙여 놓아서 시가 나오게 된 과정과 수업 안내의 핵심을 만날 수 있다.
교사도 학생들도 ‘무엇을’ 쓸까 하는 첫 문턱부터 막막해하다 걸려 넘어진다. 저자는 뜻밖에 교과서에서 힌트를 얻는다. 2018년 문학 수업 시간에 “문학의 목적은 아름다움이다”는 문장을 만난다. ‘아름다움’이란 뭘까, 하는 질문을 품고 아이들을 만난다. 저마다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다를 테니, 그것과 만나 보자고 제안한다. 부모님의 사랑, 친구의 우정 같은 거창한 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파란 우산이나 단팥빵 같은 작은 것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찾아내라는 교사의 제안으로 시의 씨앗을 품게 된다.
해가 쨍쨍한 날이었다/ 점심부터 연습했는데 도통 들어가질 않았다/ 튕겨 나가면 다시 주워 오고/ 튕겨 나가면 다시 주워 오고// 농구공에게 막 욕을 했다/ 멀리 날아간 공을/ 외롭기라도 하라는 듯/ 느릿하게 주우러 갔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던졌을 때/ 농구공이/ 촥―/ 하고 들어갔다// 그 순간 먼지 묻고 더러운 농구공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농구 잘되는 날’에서
저자는 “시는 하늘에서 우연히 툭 떨어지는 게 아니다. 수하가 농구공을 던지면서도 ‘뭘 쓸까?’라며 시에 마음을 쏟았기에 이런 시를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농구를 잘하기 위해 공 던지는 연습을 하듯, 시를 쓰기 위해 마음을 기울이는 일, 시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교사가 건넨 씨앗이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마음에 품고 주의를 기울이면서 싹이 트고 시로 피어났다. 하나둘 학생들이 시를 쓰기 시작했고, 친구의 시가 마중물이 되어 1년 내내 아이들은 시를 썼다.
시가 주는 선물, 위로와 연결
어떻게 100명 아이들이 모두 시를 쓰게 되었을까? 교사가 매 순간 학생 모두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다. 아이 곁에는 아이들이, 친구가 있다. 모둠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친구와 하하 호호 수다 떠는 시간을 알맞게 버무려야 한다고 말한다.
“시를 쓸 때 글감을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친구들과 부담 없이 편하게 얘기하면서 소재를 많이 떠올려 볼 수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시로 쓰게 되었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번뇌하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과 함께 생각나는 것을 막 뱉어 보고 주위에 있는 걸 떠올려 보고 적어 보면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학생의 이야기다. 그리고 모둠의 친구들은 독자가 되어 시를 쓰고 다듬는 순간까지도 훌륭한 역할을 해낸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시를 끝까지 쓰지 못했을 거라고도 고백한다. 친구와 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아이들은 시를 쓰면서 친구와 깊이 연결되는 순간을 맛본다. 그리고 연결은 교실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추억을 쓰면서 엄마와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고, 친구와 싸우고 난 뒤 힘들었던 마음을 솔직하게 쓰면서 스스로 힘을 내 보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를 쓰면서 애도의 시간을 갖고, 버려진 강아지를 데려온 이야기를 쓰면서 버려졌을 때 개의 마음을 깊이 알게 되고… 시가 준 선물이다.
왜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했나? 시를 쓰는 시간에 아이들이 저마다의 ‘고요’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위안받고 새로운 힘을 얻으면 좋겠다고 바랐기 때문이다.
문학이, 시가 두려웠던 저자는 교과서와 학생들의 삶에서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들이 시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꼼꼼하게 수업 차시를 구성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 자신도 시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은 이과 성향 국어 교사의 발버둥이자, 나처럼 감수성 메마른 교사도 할 수 있으니 한번 덤벼 보시라는 응원”이라고 말한다. ‘시를 가르친다’는 두려움에서 한 발짝 벗어나 보자고 이 책을 건넨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뜻밖에 시가 아주 가까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