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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날짜: 1976. 06. 27(일)
장소: 미국
오늘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수많은 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신을 중심삼고 하나의 뜻의 세계를 바라며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존재요, 주인이요, 인간의 아버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이냐? 오늘날 신학자들은 그것을 지극히 간단한 문제이면서 지극히 어려운 문제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요, 모든 피조세계를 지으신 주인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우리 인간의 아버지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대답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존재요, 피조세계의 주인이요, 우리 인간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존재의 세계가 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중심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집안을 중심삼고 보면, 그 집안의 가정집물(家庭什物)이 색다르게 여러 가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그 집에 그 물건의 주인이 있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주인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그러한 모든 것들을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은 살림하고 살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사는 데는 어떻게 사느냐? 하나님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자녀와 더불어 사랑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러한 보금자리를 꿈꿔 가지고 가정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있으면 아들을 위한 것이요, 아내가 있으면 아내가 좋아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거나 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물건을 사는 데는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물건을 살 때도 어머니가 좋아하고 아들딸이 좋아하는 것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식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짓게 될 때, 당신이 보고 좋아하기 위해서 짓는 것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는 것을 짓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재미가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짓는 것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림을 그리더라도 누구에게 보여 주어서 그 사람이 좋아한다면 더 열심히 정성껏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결과는 반드시 원인을 닮기 때문에 결과가 그렇다는 것은 곧 원인이 그렇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실 때 누구를 위해서 지었을까요? 하나님 자신보다도 자녀들을 위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신보다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대상들이 만물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음을 우리는 여기서 추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하는 대상이 사람이라고 할 때 만물은 하나님을 위해서 지은 것도 되지만 결국은 사람을 위해서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요, 만물의 주인이요, 우리 인간의 아버지라는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모든 하늘땅의 전부가 “나를 위한 것이다. 내 것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87-316)
우주는 하나님이 정성을 다해 지으신 신비의 세계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주를 지을 때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아! 만물아, 생겨나라!” 해서 그냥 다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지극히 어렵게 짓고 정성껏 지으면 지을수록 그 사람의 심정적인 깊이와 유대가 더 두텁게 맺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두뇌가 좋고,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세계를 소화하고 남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물건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모래 한 알이라도 그것을 대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깊은 내용을 설명하는 데까지 미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요? 모래알을 연구하는 박사가 몇 백만 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깊은 내용을 전부 다 찾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식물이나 동물을 보더라도 전부 다 신비의 집결체요, 신비의 집합체라는 것입니다. 요전에 한국에서 온 손님 한 명이 우리도 앞으로 보석상을 하면 좋겠다고 얘기하면서 보석의 빛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보면 볼수록 미칠 듯이 휘황찬란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을 보게 되면, 한 주에서도 동서남북의 지방색이 다르고 산이 있는 곳과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양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후와 풍토에 따라서 사람들의 성격도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보석의 빛깔들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입니다. 거기에 흰 빛도 있어야 되고, 누런빛도 있어야 되고, 검은 빛도 있어야 되고, 빨간 빛도 있어야 되고 다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볼수록 휘황찬란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가 얼마나 신비로운 세계입니까! 하나님이 장난거리가 아니라 정성을 들여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지었는데 얼마나 아름답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는 그런 극히 고마운 마음으로 동산을 거닐고, 초목을 바라보고, 꽃을 바라보고, 새를 바라보고, 새소리를 듣고,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볼 때 그 얼마나 굉장하고 멋지냐는 것입니다.
지금 저기 문전에 값없이 서 있는 나무 하나를 보게 되더라도 화가가 그린 어떤 그림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폭을 바라보아도 거기에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또, 그림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씨를 심으면 더 좋은 나무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자연의 어떤 하나라도 영원을 기약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나는 인류와 더불어 살아 남아야 된다.” 하는 기약 밑에서 꾸준히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풀 한 포기를 붙들고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지었느냐, 지을 때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해 봐야 됩니다. 그렇게 해봤어요? 풀 한 포기가 세계의 어떤 명화보다도 위대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보고 만지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87-319)
혼자가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이 존재의 원칙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야, 너 나무야! 네 역사는 언제부터냐?” 하고 물어 봤어요? 역사를 말한다면 얼마나 잘 알겠어요! “우리 종족은 세계 어느 곳이나 없는 곳이 없고, 천하에 없는 곳이 없다.” 하고 자랑할 것입니다. 또, 토양을 보면 별의별 모양이 다 있습니다. 나무를 보면 “지금은 바람이 안 불어서 가만히 있지만, 나는 언제나 춤을 추고 있다. 지금 나는 조금 쉬고 있지만, 지금 온 세계의 우리 친구들은 다 춤을 추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누가 봐 주느냐? 날아가는 새가 보고, 지나가던 동물이 보고, 기어다니는 개미가 보고, 그 주위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보라고 서로서로 그렇게 춤추기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땅에 기어다니는 조그만 벌레들도 나무가 춤추는 것을 안 보고 춤추는 소리를 안 듣겠어요? 그 조그만 것들도 여러분처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 날아가는 새들도 봐 주고, 곤충들도 봐 주고, 전부가 봐 줍니다. 그래서 나무는 춤추기를 잘한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왜 부느냐? 나무를 춤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무들이 춤추고 자연이 전부 다 춤추니까 그렇게 춤추는 세계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춤을 추면서 구경해야 됩니다. 한국에는 할미새라는 것이 있습니다. 슈욱 했다가 또 슈욱 떨어지고, 슈욱 했다가 또 슈욱 떨어지면서 꽁지를 헤치고 “짹짹” 하고 소리를 내면서 난다는 것입니다. 아주 감상적인 그런 새입니다. 그렇게 멋집니다.
여러분은 벌을 좋아해요, 나비를 좋아해요? 나비를 좋아합니다. 왜 나비를 좋아해요? 나비는 춤을 추며 난다는 것입니다. 모든 나는 것들은 전부 다 박자에 맞추어서 날아다닙니다. 빨리 나는 놈도 박자에 맞추어서 납니다. 이렇게 나는 놈, 요렇게 나는 놈들도 전부 다 박자에 맞춰서 난다는 것입니다. 산에서 사슴이 뛰고 토끼가 노는 것도 전부 다 음악적입니다. 무엇을 먹기 위해서 찾아다니기도 하고 깡충깡충 뛰기도 하는 하나의 리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사람도 무엇을 먹을 때 “냠냠, 쩝쩝” 하는 게 얼마나 음악적이에요! 그게 다 음악의 상징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이 우주를 영원히 나를 위해서 만들고 나를 위해서 장치하신 그분에 대해서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데는 혼자서 노래하고 춤추어요, 둘이서 노래하고 춤춰요? 그리고 여러분의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여자는 남자에 대한 노래를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에 대한 노래를 좋아합니다.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한테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남자는 남자에 대한 노래를 좋아해요? “여자 필요 없어. 내가 이만하고 이런 남자인데, 어디에 가든지 부족한 게 없고 머리 좋고 실력 있는데 여자가 있어서 뭘 해? 나 혼자 노래하고 살지!” 그래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래와 춤이라는 것은 상대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도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새들이 짹짹짹 합니다. 친구를 찾든가, 함께 살 대상을 찾든가, 밥을 먹으러 가자든가, 날이 밝았다든가 하면서 전부 다 여러 가지 자기의 사연들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참새들도 한 마리가 뜰에서 짹짹짹 하면 자꾸 날아옵니다.
여러분! 눈이 보기를 좋아하고, 귀가 듣기를 좋아하고, 코가 냄새를 맡기를 좋아하고, 손이 만지기를 좋아하는데 여자가 여자를 만지는 것이 좋아요, 여자가 남자를 만지는 것이 좋아요? 여자들이 아이섀도를 바르고 루즈를 바르는 것이 전부 다 자기가 보기 좋으라고 그래요? 아닙니다.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꽃이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가진 것은 자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부르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살기 때문에 혼자서는 못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를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산도 높고 낮은 산이 좋아요, 평평한 산이 좋아요? 높고 낮은 산이 좋습니다. 춤추려고 하는 모양을 갖기 때문입니다. 산의 모양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렇게 되면 춤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 가운데는 멋진 춤들이 많습니다. 멋진 음악이 많습니다. 멋진 예술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아무리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오케스트라보다는 못합니다. 가을이 되어 참으로 맑은 날에 해가 잘 드는 숲 속에 가서 가만히 들어보면 벌레 소리들이 그야말로 합주곡입니다. 또 바람이 쑤욱 불어오고, 햇빛이 나고, 나비가 날고,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그러한 자연의 소리를 오케스트라에서는 들어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전부 다 음악적으로 되어 있고 예술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87-321)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해야 할 인간
하나님이 그러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서 지었는데 인간이 그 모든 존재들 앞에 얼마나 폭행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물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입장에 있어야 할 텐데 도리어 무식하고 무감각한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래서 위대한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위대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의 깊은 곳에 들어가서 도취되고 강한 자극을 받아야 한다고 선생님은 늘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책상다리를 보게 되면 닭 다리나 개 다리와 마찬가지로 생겼습니다. 전부 다 유선형입니다. 비행기도 전부 다 물결처럼 흘러 갈 수 있는 유선형입니다. 자연의 모습에서 배운 것입니다. 돌도 보게 되면 유선형으로 돼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그런 자연의 박물관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더 사랑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무엇을 하나 만들었어요? 어때요? 춤추는 남자가 되고 춤추는 여자가 되어서 자연에 대해서 부끄럼 없이 하늘땅 앞에 도수를 맞춰 가지고 춘하추동을 전부 다 음미할 뿐만 아니라 나날을 행복하게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야 할 인간들인데, 여러분이 다 그렇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만물을 지을 때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지었어요,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 지었어요? 아들딸을 위해 지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 대해서 결국은 무엇을 요구할 것이냐? 인간은 사랑하는 아들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이니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이 우주의 주인이라면 너는 나와 같이 이 세계의 주인이라도 돼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나는 그 사랑을 중심삼고 동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박사학위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라고 할 때 그 부인은 초등학교도 안 나왔더라도 대통령과 동등한 자리에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대통령과 동등한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래요? 그 대통령의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동참하게 되면 평등의 자리에 대번에 올라갑니다. 대번에 비약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고 우리 인간은 낮은데,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고 하면 어떻게 돼요?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고 할 때는 하나님의 꼭대기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의 어깨 위에 올라탄다고 해서 그것을 누가 보고 “저 미친 것…!” 해요? 그 남편의 머리에 올라앉으면 어떨까요? 아내를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자랑하는 남편이라면 뭐라고 하겠어요? 그렇게 사랑을 해 주는 남편을 얻어 갈래요, “저리 가!” 하고 발길로 차면서 옆에도 못 오게 하는 남편을 얻어 갈래요? 물어 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다면 지옥의 맨밑창에서라도 대번에 하늘의 보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어깨에 올라앉아서 점심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사랑만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무슨 수가 난다는 것입니다. (87-324)
하나님의 뜻은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내 인격이 문제됩니다. 우리 인간이 영원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인간이 문제입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여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창조가 없으면 뜻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창조이상이 무엇이냐? 사위기대의 완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가지고 완전한 아들딸을 키워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 교회 목사들한테 물으면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있지!”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남자는 남자로서 완성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자는 여자로서 하나님 앞에 본래의 원리적인 입장에서 완성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축복을 받아서 둘이 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딸로서 사랑하노라!” 하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는 지상에 있는 내 집이다.” 하실 수 있어야 됩니다. “내 가정이다.” 하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려면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했는가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 아들딸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여러분의 사랑, 여러분과 아들딸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져 가지고 영계와 육계가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동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지상천국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시던 심정을 여러분의 아들딸을 사랑함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어디에 있든지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살고 싶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부모들도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가 참된 부모입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그런 부모가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모두 다 고아처럼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나와 같이 사지(死地)에라도 같이 가는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요, “너는 죽을 데 가고, 나는 살 데로 가겠다.” 하는 부모가 좋아요? 어떤 부모를 원해요? 아들딸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필요하고,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아들딸이 필요한 그것이 인간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대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중심존재요, 주인이요, 사랑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그 하나님이 영계에 가면 여러분에게 무엇을 물어보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이 넓은 우주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가정에 가게 되면 아버지 어머니가 중심입니다.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되었느냐? 네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하고 하나되었어?”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 물음에 “예!”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됩니다. 부모하고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외부로 전개시키면 “네가 회사에 가게 되면 회사의 중심과 하나되고, 학교에 가게 되면 선생을 중심삼고 하나되고, 그 다음에는 나라의 주권자를 중심삼고 하나되어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육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법은 거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의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공식을 무시하는 것은 악마의 짓입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아, 어머니 아버지는 필요 없다. 선생도 필요 없다. 나라도 필요 없다.” 하는데, 그것은 사탄 마귀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인류를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시키기 위한 사탄 마귀의 비법인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풍조는 없애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에 가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 가지고 살아 생전에 정성들이던 이상의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효자요, 선생님의 무덤을 찾아가 가지고 살아 생전에 받았던 정 이상의 정을 퍼붓는 사람이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 주권자의 무덤을 찾아가서 살아 생전에 정성들이던 이상의 정성을 들이는 것이 충신의 도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아니고는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센터로 모실 수 없고, 주인으로 모실 수 없고, 아버지로 모실 수 없습니다. (87-330)
고생시키는 것은 천국의 상속권을 주기 위한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내 자신이 센터가 되고, 내 자신이 주인이 되고, 내 자신이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은 만물을 대할 때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미국에 올 때 미국 땅에 들어서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미국 천지가 50개 주요, 2억의 인구가 살지만 내가 미국을 사랑하듯이 미국 사람이 미국을 그렇게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자마자 43일 만에 전국에 성지를 택정했습니다. 그런 미국 사람이 있어요? 미국 대통령이 그랬어요?
그 다음에는 “미국의 사람들을 내가 교육해야 되겠다. 주인으로서 책임할 수 있게 올바로 가르쳐 줘야 되겠다. 주인으로서 책임할 수 있게 해야 되겠다.” 하고 생각했다구요. 그 다음에는 아들딸과 같이 사랑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원칙적인 원리의 법도를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레버런 문을 만난 다음에 “레버런 문이 부모보다 더 사랑이 많고, 선생보다 더 훌륭하고, 어떤 중심보다도 중심이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젊은 미국 애들이 전부 다 선생님의 명령이라면 죽기를 각오하고 움직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레버런 문은 욕망도 없고 조작도 없습니다. 순수한 것입니다. 내가 높고 여러분은 낮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을 못살게 고생시키는 것은 더 사랑하기 위해서이고 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부모 입장에 섰으니까, 스승의 입장에 섰으니까, 사랑하는 주인의 입장에 섰으니까 누구보다도 위해주고,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만들어 주고, 또 전부 다 상속해 주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의 상속권을 주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속받고 싶어요? 우리는 억만장자가 부러운 게 아닙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문제예요? 세상의 무슨 영광이 문제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머니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는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내가 널 사랑한다. 그 사랑을 보여 주마!” 그래요? 고생 가운데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오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에서 내쫓아도 “엄마!” 하면서 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여러분도 통일교회에서 나가 보세요! 그렇게 나갔다가 다시 다 기어 들어옵니다. 그런 곳이 또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창조이상의 완성입니다. 그것은 사위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뤄서 뭘 한다구요?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센터가 되고, 내가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럴 자신이 있어요? 자신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에 가까워질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디에 가든지 따라가고 싶고 식구들이 좋아져서 혼자 있으면 식구를 찾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왜 그런지 그래야 좋고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자연적이지 강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만 자연적인 이상과 원만한 이상이 찾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어떻게 되었어요? 창조이상이 깨졌지요? 창조이상이 깨어진 인간들은 살아가면 갈수록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비참해요, 행복해요? 통일교회에 안 들어왔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여러분이 여기에 들어온 후 얼마만큼 혁명이 벌어졌어요? 여러분 자신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것을 알아요? 그런데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는 달라졌어요, 안 달라졌어요? 사회가 달라졌어요, 안 달라졌어요? 여러분은 달라졌지만, 그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은 옛날의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수준이 이전보다 떨어졌다고 봐요, 올라갔다고 봐요? (87-333)
만물과 인간을 하나님 대신 사랑해야
여러분에게는 높은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내일에 가능한 희망과 자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가 여러분의 주먹 안에 들어왔습니다. 세계를 내가 주물럭주물럭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어땠어요? “절망이야, 이놈의 세계가! 어머니 아버지가 다 필요 없구나!” 하면서 그저 땅만 내려다보고 다녔다구요.
옛날의 그 상태가 지옥과 같았다면 지금은 천국에 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천국에 와 있는 사람들을 지옥에 잡아 가 가지고 좋아한다면 이전부터 지옥에 있던 것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디프로그래밍(deprogramming;역세뇌)하는 놈들이 잡아가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반대하는 것들은 쓰레기들입니다. 테드 패트릭이 문 선생을 잡아다가 통일교회의 선생이 되지 말라고 교육할 수 있어요? 절대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잡아가 가지고 하나님이 되지 말고, 중심이 되지 말고, 주인이 되지 말고, 아버지가 되지 말라고 교육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뭐냐? “나는 완성된 우주의 중심이야. 나는 모든 만물의 주인이기 때문에 너희들을 가르쳐 주고 같이 사는 거야.” 하면서 아침에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참새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야, 참새야! 일어나라! 짹짹하자!” 할 수 있는 주인이 되라는 말입니다. 또, 저녁에는 “새들이 다 들어가 자게끔 해 놓고 내가 잔다.” 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사람을 대해서는 세계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신으로 사랑하기에 바빠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못 만나지만 내 집에 있는 아내가 모든 여자들의 대표요, 아들딸이 모든 남자와 여자들의 대표이니까 세계를 축소시킨 이 가정을 내가 사랑한다!” 해야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는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 이상 가는 아내다. 아들딸은 왕자와 공주 이상 가는 아들딸이야.” 하면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면 나쁘겠어요?
여자의 소원이 뭐예요? 왕후가 되거나 대통령의 부인이 되는 것이 소원이 아니에요?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남편이 싫어요? 또, 남자들은 남편을 우주의 왕 중의 왕이라고 생각하고, 주인 중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남자 중의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위해주는 여자가 싫어요? 아들딸이 우리 아버지는 세계의 왕 중의 왕이고, 나는 세계의 왕자와 공주라고 하면 나빠요? 지금까지 살다 간 수많은 왕국의 어떤 가정보다도 우리가 낫지 못한 게 어디에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요? (87-335)
하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권위를 갖기 위해 노력하라
하나님한테 “레버런 문의 얘기가 틀렸소. 당신이 레버런 문한테 벌줘야 되겠소. 흑인과 백인들을 섞어 놓고 하나님의 왕자와 왕녀라고 가르친 것은 틀렸소!” 한다면, 하나님이 기분 좋아하시겠어요? 여러분이 하늘나라의 왕자가 되고 왕녀가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야, 레버런 문이 잘한다. 내 아들이 잘한다.” 하시지, “이 녀석아, 내가 망하겠다.” 하시겠느냐 말입니다.
영계에 간 영인들은 어떻겠어요? 레버런 문의 말이 틀렸다고 하겠어요? 레버런 문을 잘 한다고 합니다. 지금 그들도 “나도 땅 위에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내가 한번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요 꼴이 되었구나! 이게 뭐냐?”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모든 피조 만물과 우주는 어때요? 하나님의 아들딸 같은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는 게 좋아요, 똥개 같은 것을 주인으로 모시는 게 좋아요? 어떤 게 좋아요. 새들이나 흙덩이 같은 자연도 레버런 문이 말하는 그런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어하지 그 외의 사람들은 싫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면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그들이 이러한 내용을 몰라서 그렇지 알면 어떻게 하겠어요? 잘한다고 하겠어요, 못한다고 하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멋진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미친 사람들은 멋지지 않아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멋지니까 그 뜻을 따르는 사람들도 멋져야 되겠습니다. 그 뜻을 이루려면 먼저 하나님의 왕자와 왕녀가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디에 가서도 모범이 되고 권위가 있어야 됩니다. 쌍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거리의 여인과 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막되어 버린 자식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에 가게 되면 사탄세계가 전부 다 머리를 숙일 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지금 날마다 레버런 문에 대해서 전세계가 야단입니다. 논란의 대상으로 삼아서 뭐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 야단들입니다. 세계가 그래도 난 초연합니다. 그런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천지가 아무리 요동하더라도 중심성을 빼앗아 갈 수 없고, 주인을 개조할 수 없고, 아버지를 갈아치울 수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중심과 주인 그리고 아버지를 변경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체인지(change;교체) 할 수 없습니다. 모두 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워싱턴D.C.를 향해서 전진할지어다! (87-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