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 우리 아빠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용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름부음'입니다.
소위 영성운동권 교회에서 열리는 집회를 보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표방하고 '성회'를 여는데, 이게 마술쇼인지 초능력 시범쇼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금가루가 내리고 금니가 생기고, 과연 그것이 기름부음의 본질입니까?
기름부음(Anointing)은 기름(oil)이 아닙니다. 기름은 주유소에 가면 실컷 얻을 수 있으나, 기름부음은 성령의 은혜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위적인 황홀경 조작으로 기름부음이 흘러넘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름부음에 대한 몇가지 오해와 사실을 짚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기름부음은 오직 예수께 받는 것입니다.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름부음의 전이(impartation)'을 한답시고 안수를 남발합니다. 그를 통해 누군가에게 있는 기름부음이 전이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기름부음'을 '기름'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기름'부음'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안수는 다만 하늘로부터 이어지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누군가로부터 기름부음이 빠져나온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래서 특정인을 우상화하는 풍조가 교회 안에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없이 누가 신령할 수 있습니까? 예수 없이 누가 그렇게 위대할 수 있습니까? 높임 받으실 분은 오직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물론 안수를 통해 기름부음이 '임한다'는 말 자체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 안수는 '누가 해도 좋은'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바른 안수는 누군가에게 줄 서서 이기적으로 밀치는 게 아니라 '서로' 해주는 것입니다.
안수는 엄밀히 말해서 서로 사랑함의 통로입니다. 기름부음이 성령의 교통하심을 뜻하는 말이라면, 안수는 서로 만져줌으로서 서로 사랑하여 성령께서 마음껏 교통하시게 하는 귀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현대교회에서는 이 안수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안수를 받으려고 줄 서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겪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안수를 받기 위해 줄 서는 게 얼마나 서로간에 더럽고 치사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기름부음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행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십니다. 우리는 그 분께 스스로 직접 안수를 받으면 됩니다. 누군가의 안수에 의존한다면 두 가지 주님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됩니다.
한편 이렇게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신앙생활 가운데서 '서로 사랑해주는' 서로서로 안수가 바른 형태의 안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해서 지혜와 총명이 충만했던 결과가 모든 성도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라면 모세와 같은 안수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예수의 은혜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모든 믿는 자에겐 기름부음이 있으며, 이것은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습니다. 기름부음은 특정인에게 넘쳐흘러서 남들에게 나눠주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름부음은 기름이 아닙니다.
기름부음은 기본적으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충만한 영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 우리 아빠의 상한 심령이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들을 때 아빠의 마음을 느끼고, 아빠의 지극히 큰 사랑을 가슴에 담았다면 성령께서 그 마음에 이미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또 기름부음을 충만히 받은 것입니다.
이 기름부음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계시는 '은혜'로 인해 우리 안에 일방적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에 따라 닳거나 줄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랑이 무한하시듯이 성령의 기름부음도 무한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은 동시에 천국의 영역에서 기름부음을 늘 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기도도 적게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예,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쉼없이 중보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의(義)가 아닙니다. 댓가지불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해결하시고 성령께서 이뤄가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찬양 뿐입니다. 찬양 중에 기름부음이 역사(work)합니다.
우리 안에 늘 기름부음이 있다면 언제나 찬양함으로 기름부음이 역사하도록 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이 역사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성령충만은 곧 찬양으로 하나님의 상한 심령이 온몸에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포근하고 감미로운 분이 아니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성령은 하나님의 질투로 충만한 영이십니다.
같은 맥락으로 성령 충만도 질투 충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복음을 듣지 않고 참된 아빠이신 하나님을 모르고 헤매는 것에 대한 질투입니다. 세상에 대한 불같은 질투입니다. 그래서 진짜 성령 충만은 복음전도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쓰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방언의 은사가 터지고 영안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고꾸라지고 뒹굴고 웃고 희한한 소리를 내며 요란 떠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어떻게 성령 충만입니까!
과연 현대교회의 열광적인 영성집회 가운데 하나님의 아픔이 있습니까? 세상을 향해 태초부터 품어오신 하나님의 불같은 질투가 있습니까? 그것이 없다면 모든 영성집회는 무가치하다고 일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초능력 쇼입니다.
기름부음은 특정인을 높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그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예수의 이름이 들어있다면 성령의 기름부음도 그 이름 중심으로 가득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끝날까지, 온 민족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돌아와 회개하기까지, 예수 중심으로 온 세상이 연합을 이루기까지 없어지지 않고 닳지 않는 기름부음인 것입니다.
셋째, 아빠께서 우리에게 진실로 행하기 원하시는 기름부음은 세상 지식입니다. 아빠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며 세상 가운데 예수의 이름을 전파하기 원하십니다. 그에 필요한 결정적인 요소는 '세상 지식'입니다.
세상은 부와 명예, 권력이 있는 자를 잠시 알아주긴 해도 친밀해주진 않습니다. 오히려 돈이 있고, 인기가 있고, 지위가 있기 때문에 세상과 멀어지고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역사의 패턴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진짜 반겨주는 사람은 말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즉 지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테스트를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지식이 아니라, 세상만사를 조리있게 해결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가운데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현대교회가 믿거나 말거나, 성령의 기름부음은 결정적으로 이런 실력을 우리에게 부어줍니다. 기름부음은 초능력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예언하고, 기적과 이사와 표적을 행하는 것은 기름부음의 부차적인 열매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전도입니다! 기적만 행하고 기적을 행한 사람이 높임을 받는다면 얼마나 아빠께 큰 배신입니까? 복음전도가 없다면 병고침도 무익하고, 축귀도 무익하고, 예언도, 기적도 전부 다 쓸모없습니다.
우리는 아빠의 질투심이 세상에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아빠께서 세상을 향해 얼마나 애타게 부르짖으시며, 세상이 돌아와서 함께 사랑하기 원하시는지, 그 속사정을 세상 가운데 담대하게 전파하기 원합니다. 그 수단이 바로 예수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지식은 예수의 복음을 뒷받침합니다. 아빠께서는 이러한 세상 지식을 성령으로 부어주기 원하십니다. '믿음'은 '지식'의 모든 바탕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세상의 그 어떤 박사들보다 똑똑한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믿음 뒤에 실제적인 지식은 기름부음을 통해 임하게 됩니다. 요한 사도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말그대로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 기름부음입니다! 특히 지금은 각 영역별로 사람이 왕래하는 문명사회입니다. 우리는 '모든 영역'의 '모든 것'을 성령 한 분에 의해 통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름부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통달했다는 믿음으로 복음의 가르침을 모든 영역에 확장해 나가면 됩니다. 실제로 예수의 진리는 모든 영역에 걸쳐집니다. 이 진리를 믿는 자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할 일은, 모든 영역에 이 진리를 적용해나가며 예수께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사업전략, 예수의 복음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학문제 풀이, 예수의 복음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재테크방법, 예수의 복음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안에 숨어있는 기름부음을 100% 끄집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학계, 정치계, 문화계 등에 대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권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권운동'이라든지 '성시화'라든지 기독교적으로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통해 각 영역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기름부음을 표방한 현대교회의 수많은 광란성 집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집회들엔 깨달음도, 전략도 없습니다. 기름부음이라는 말만 남발되지만, 아빠의 진정한 마음이 선포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종합하자면, 기름부음은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태초부터 불타오신 아빠의 질투입니다. 이것이 곧 진정한 '성령의 불'인 것입니다.
기름부음은 정상인을 미치광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똑똑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은혜로 신령하게 합니다. 여러가지 은사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방언과 예언이 터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아빠의 마음을 위로해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종국적으로 아빠의 마음이 식혀지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온 민족을 지으신 아빠의 아픔입니다!
우리는 이 관점에서 계속해서 기름부음을 사모하고, 찬양하며 전진할 것입니다. 오늘도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시고 아빠께서 기뻐하시도록 자녀된 자로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여러분께 복을 내리시고 늘 함께해주십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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