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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남기 시 14; 삼하 11:1-15; 엡 3:14-21; 요 6:1-21
지난주일 서일웅 목사님을 뵙고 왔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으로 조심스레 병원을 찾았지만, 반복되는 복희생님의 흥겨운 말에 감격과 박수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목사님의 쾌유를 모두 같은 마음으로 두 손 모으리라 생각합니다. 십수 년 전 찜닭집을 하면서 전도사로 서 목사님을 배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교회가 있었구나!” 목사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놓칠 수 없는 주옥이었습니다. 갑자기 청빙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혹시나 교회에 방해가 될까 염려했습니다. 그때 마가라는 이름에 사로잡혔습니다. ‘마음을 항상 가난하게’, 혼자 어느 곳에서든 제2의 마가 교회를 꿈꿨습니다. 내가 가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마가 교회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느닷없는 청빙의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큰 충격 가운데 하나입니다. 10여 년이 지나면서 그때의 벅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불안과 초조와 좌절감들이 스멀스멀 자리하는 것 같습니다. 좀 어설프게 엮는 것 같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음을 느낍니다. 급격한 인구감소로 대한민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 작금의 위기입니다. 같은 맥으로 교회의 위기를 위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실천하고 살아가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오늘의 시대입니다. 반면 급속도로 퍼져가는 이슬람화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폭발적 인구증가인 것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시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가 아니라 ‘살아남기’ 의 시대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사무엘 하 본문의 다윗의 행동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줍니다. 다윗의 성공신화는 하나님을 높이는 1등 공신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빠질 수 없는 단연 으뜸의 이야기입니다. 들에서 양이나 돌보던 듣보잡을 이스라엘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만 경외하면 누구든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시골 변방의 신에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글로벌 신이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좋은 이야기로 포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은 다윗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신랄하게 보도합니다.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 중에 있는데,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는 순간 이성이 마비되어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알고 보니 전장에 있는 군인의 아내입니다. 정신이 돌아왔는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남편을 불러 아내와 동침하게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전쟁 중이라며 사양합니다. 깜짝 놀라 정신이 들었으면 좋았겠는데, 이번에는 술을 먹여서라도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합니다. 이번에도 군인은 올곧은 군인정신을 발휘합니다. 악마의 유혹은 더욱 강력합니다. 아예 전장에 보내어 죽게 합니다. 그것도 가장 치열한 전투의 선봉에 서게 하고 혼자 죽도록 내버려 두게 합니다. 의도적 살인입니다.
다윗의 시작은 순수한 소년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은 시작이 있을까요? 갓 태어난 아기, 생명의 신비 앞에 불행을 점치지는 않습니다. 무한한 가능성, 세계를 이어나갈 존재입니다. 생명의 경외감이 없는 시기라 할지라도 생명 탄생은 신비와 기대와 감격 외에 다름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도 다윗의 존재는 더욱 부각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다윗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인간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마의 유혹이 언제나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쪽에는 하나님, 한쪽에는 악마, 혹자는 선의 결핍이 악이라고 합니다. 선과 악의 동시성이라고 할까요? 동전의 양면처럼 선과 악, 하나님과 악마를 그릴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에게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한 몸에 받았던 사람, 온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혼자 독점한 듯한 사람, 그 순간 하나님의 부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악을 더 큰 악으로 덮고 막으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하나님의 부재와 악의 드러남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전지전능, 눈동자처럼, 머리털 하나까지 그 하나님의 부재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다윗의 부정, 다윗의 악, 그 가운데 하나님의 침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실까요?
사무엘 하 본문과 달리 복음서 본문은 전혀 다른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이야기입니다. 전지전능, 무소불위, 무에서 유의 창조 등, 어떤 수식어를 갖다 대어도 부족함 없는 하나님입니다. 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다”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체험한 하나님입니다.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이런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믿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공정하고 불의가 없을 것입니다. 악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악의 활동은 멈출 것입니다. 악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완벽합니다. 좋은 일만 가득할 것입니다. 매 순간은 기적의 연속입니다. 더 이상 굶주릴 일도 없습니다. 가난한 이도 없습니다. 약자도 없습니다. 서로의 혐오도 없습니다. 편견도 없습니다. 속임과 사기도 없습니다. 다만 손에 손잡고, 더불어, 서로 위하는 일 뿐입니다. 이런 세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천국입니다. 낙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남기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살아가기입니다. 그럼에도 살아남기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것은 오늘의 시대, 오늘의 상황, 작금의 현실, 현주소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애써야 한다는 방증을 품고 있습니다.
매순간 위기 아닌 순간이 있었을까요? 매순간 기회 아닌 순간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같은 뜻일 수 있습니다. 매순간이 위기이며, 매순간이 기회입니다. 매순간이 은혜이며, 매순간이 긴장입니다. 선과 악, 하나님과 악마,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가운데, 우리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느냐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현상, 똑같은 일상을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남기 어느 쪽이 맞을까요? 어느 쪽이 어울릴까요?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악은 멈추지 않고, 악마의 유혹은 과감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을까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요? 오늘의 시대, 오늘의 세상에 하나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의 나, 오늘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으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침묵!
240728 시 14; 삼하 11:1-15; 엡 3:14-21; 요 6:1-21
시 14
1 1)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모두가 하나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2 주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3 모두들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주를 부르지 않는구나.
5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행악자가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한다.
6 행악자는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늘 좌절시키지만,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신다.
7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삼하 11:1-15
1 그 다음 해 봄에, 왕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맡겨서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4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5 얼마 뒤에 그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6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는, 요압에게 전갈을 보내서, 헷 사람 우리아를 왕궁으로 보내게 하였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 보내니,
7 우리아가 다윗에게로 왔다. 다윗은 요압의 안부와 군인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물었다.
8 그런 다음에, 다윗은 우리아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 우리아가 어전에서 물러가니, 왕은 먹을 것을 함께 딸려서 보냈다.
9 그러나 우리아는 자기 상전의 종들과 함께 대궐 문간에 누워서 자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0 다윗은, 우리아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원정 길에서 돌아왔는데, 왜 집으로 내려가지 않는지를, 우리아에게 물었다.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여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겠다." 그리하여 우리아는 그 날 밤을 예루살렘에서 묵었다. 그 다음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다가,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였다. 그러나 저녁때에 그는 여전히 왕의 신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편에 보냈다.
15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아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엡 3:14-21
14 그러므로 나는 무릎을 꿇고 3)아버지께 빕니다.
15 아버지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십니다.
16 그분의 풍성한 영광으로, 그분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고,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요 6:1-21
1 그 뒤에 예수께서 1)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니,
2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가 병자들을 고치신 2)표적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서,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다.
4 마침 유대 사람의 명절인 3)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5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7 빌립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4)데나리온 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8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5)동생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9 "여기 한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예수께서 "사람들을 앉혀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잔디가 많았다. 사람들이 앉았는데,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으고, 조금도 버리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보리빵 다섯 개에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신 2)표적을 보고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16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의 제자들은 바다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갔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께서는 아직,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시지 않았다.
18 그런데 큰 바람이 불고, 물결이 사나워졌다.
19 제자들이 배를 저어서, 6)십여 리쯤 갔을 때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였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시니,
21 그들은 기뻐서 예수를 배 안으로 모셔 들였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