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기간 재가불자 ‘정진’
‘나는 누구인가’ ‘이뭣고’ 참구
번뇌에 결코 항복하지 않고
부단히 수행하는 자세 ‘중요’
동안거 결제 3일째를 맞은 지난 20일 부산 혜원정사에서 대중들이 참선수행 정진에 몰입하고 있다. 혜원정사는 365일 불자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도량으로 동안거 결제를 맞아 매일 20~30명의 불자들이 가부좌를 튼다. |
동안거 결제 3일째를 맞은 지난 20일 부산 혜원정사(주지 원허스님). 예년보다 일주일 앞서 첫눈이 내리고, 추위가 성큼 다가와 시위를 벌인지 며칠 경과한 뒤였다. 부산에는 ‘눈 손님’이 오지는 않았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에 “이젠 정말 겨울이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혜원정사 대웅전 앞마당 좌우에는 작은 석주(石柱)가 서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뭣고’라는 글이 적혀 있다. 바깥 출입을 삼가고 오직 수행 정진에 몰두하는 결제 기간인지라 더욱 마음에 새겨지는 가르침이다. 일상을 바쁘게 보내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얼마나 깊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했다.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또 다른 석주에 쓰여 있는 ‘이 뭣고’라는 근원적인 물음도 마찬가지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재가불자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며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과연 나는 ‘이 뭣고’라는 의심을 품고 삶의 본질을 구명(究明)하려는 물음표를 마음 깊이 각인하면서 살고 있는지….
이날은 음력 18일 지장재일이었다. 겨울의 초입(初入)이지만 재일을 맞아 혜원정사를 찾아온 신도들이 대웅전을 가득 메웠다. 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올리기 위해 들어선 대웅전에는 지장경 독송을 하는 신도들의 목소리가 동장군(冬將軍)의 위세를 꺾고 있었다.
지장경 독송과 축원이 끝난 후 주지 원허스님이 법문을 했다. 스님은 지장보살의 효심
(孝心)과 중생구제의 원력을 예로 들며 신도들에게 ‘대원(大願)’을 세우고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지옥의 중생을 모두 구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잊지 말고, 우리 역시 그 같은 큰 원력을 세우고 정진해야합니다.”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또 다시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원정사는 365일 불자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도량이다. 수행하고 정진하고 공부하는데 어찌 ‘때(時)’가 따로 있겠는가. 정기법회와 기도 외에도 혜원정사는 매일 20~30명의 재가불자들이 참선수행을 한다.
특히 동안거와 하안거 등 결제기간에는 더욱 집중해서 수행한다. 이번 동안거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 오전9시부터 오후4시까지 명심전(明心殿)에 마련된 선방에서 화두를 참구한다. 지난 20일 지장재일에는 대웅전에서 열린 법회에 참석한 후 점심공양을 마치고 ‘오후 정진’에 들어갔다.
수행복을 갖춰 입은 20여명의 재가불자들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조용한 가운데 화두를 들었다. 선방은 적요(寂寥)했다. 방안에는 달마대사 진영을 비롯해 일인장락(一忍長樂), 해인삼매(海印三昧) 등이 적힌 액자와 용상방이 재가불자의 정진을 응원하고 있었다.
‘한번 참으면 오래도록 즐겁다’는 ‘일인장락’은 공부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잘 표현한 글이다. 참선 수행하는데 어찌 단박에 모든 장애를 혁파할 수 있겠는가. 오랜 기간 정진한 수행자들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앉아 있다’고 의심이 풀리고 난제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정진하면 그 경계는 조금씩 허물어질 것이다. 찰나마다 번갈아 찾아오는 번뇌에 항복하지 않고 대분심을 일으켜 정진하는 것이 ‘공부하는 이’의 자세이다. 부처님 역시 마찬가지 였다. 온갖 번뇌 망상과 마구니들의 유혹과 겁박을 이겨내고 성불(成佛)을 성취했다.
명심전 선방에 머물면서 이날 지장재일 기도에서 원허스님이 설명한 결제의 의미를 복기했다. “자기 마음을 잘 단속하고, 내면을 살피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로 결제입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자기 마음을 잘 단속해 내면의 움직임을 살피고 자기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이날 원허스님은 <선문정로(禪門正路)>에 나오는 한 구절을 예로 들어 ‘공부하는 방법’을 전해 주었다. “외식제연(外息諸緣)하고 내심무천(內心無喘)하라. 심여장벽(心如障壁)이라야 가이입도(可以入道)라.” “밖으로 물질에 끌리지 말고 안으로 갈등하지 말라. 오직 화두(의심)가 눈앞에 뚜렷하면 길(道)이 열리게 된다.” 정진하겠다는 원력을 세우면 되도록 반연(攀緣)을 맺지 말고, 수행에 몰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결제 기간을 맞아 방부를 들인 혜원정사의 재가불자들도 이 같은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참선 수행에 집중했다. 명심전 선방에는 계속 침묵만 흘렀다.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삶을 반조(返照)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명(無明)으로 고통을 받는다. 집착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으로 인해 광명(光明)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생(衆生)이라고 했던가. 삼독에서 벗어나는 길을 부처님이 제시했지만, 중생심에서는 그 길을 뒤따라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보살과 역대 조사들이 앞서 걸어간 ‘깨달음의 길’을 아 가겠다는 원력을 끝내 놓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혜원정사 재가불자들의 수행공간이 자리한 전각의 이름이 명심전(明心殿)인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밝은 마음의 공간’ ‘마음을 밝히는 건물’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명심전의 정진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불가에는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란 말이 전해온다. “이 문 안에 들어온 후에는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의미다. 불법(佛法)을 알고자 하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뜻이리라. 동안거 결제기간을 맞아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처럼 수행하겠다는 원력을 낸 재가불자들도 마음에 깊이 새겨야할 지침이다. 명심전 선방을 나올 시간이 되자, 이 가르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이 뭣고’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의문에 답하기 위해 부단히 정진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지남(指南)으로 삼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중생심에 사로잡혀 세상 모든 일을 분별(分別)하려는 ‘나의 마음’에 던져진 경책이었다.
매일 오전9시부터 오후4시까지 명심전에서 정진하는 재가불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오면서 “과연 나는 불자답게 살고 있고, 정진하고 있는가?”라고 자책했다. “자기 마음을 잘 단속하고 내면을 참구하는 것이 결제의 의미”라는 주지 원허스님의 법문을 마음에 담고 혜원정사 산문을 나섰다. 그 때 또 다시 눈에 들어온 석주(石柱)의 글귀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누구인가’ ‘이 뭣고’. 스님이 던진 화두는 동안거 정진 내내 가르침으로 남아있다.부산=이성수 기자
원허스님이 전하는 ‘마음공부’
“내면의 움직임 관찰하며
대원력 세우고 공부해야”
혜원정사 주지 원허스님.
“밖의 일이 많으면 삼매에 들기 쉽지 않고, 화두 들기도 어렵습니다. 집중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부산 혜원정사 주지 원허스님은 수행하기 위해선 ‘밖의 일’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부하는 기간에는 되도록 반연을 끊거나 줄이고 수행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주변이 어수선 하면 산만해지고 집중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원허스님은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보통 사람들은 탐진치 삼독에 빠지기 쉬워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밖으로 달려 나가려는 마음을 안으로 단속하고, 스스로 내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행하고 정진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대원(大願)’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상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바람을 만납니다. 그 바람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 공부가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큰 원력(願力)을 세우고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분별심에 대한 경계도 지적했다. 아미타부처님이 성불하기 전 법장비구(法藏比丘) 시절에 세운 48대원을 예로 든 원허스님은 “분별심을 내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정진해야 한다”면서 “부처님의 마음으로 보면 분별과 미혹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원허스님은 “밖을 향하는 마음을 자기 내면을 비추어보는 시간이 많을수록 심지가 구분해 지고, 결국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경계’에 굴하지 않고 자기의 내면세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신문2965호/2013년11월27일자]
첫댓글 모든 분들이 성불하시기를....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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