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사찰, 분황사.
웅장한 사찰, 황룡사지.
월성중학교 3학년 3반 김민욱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잔뜩 내려 시험을 치러 가는데 진땀을 뺐다. 나뿐만 아니라 상당수 학생이 눈 때문에 오기가 힘들어 시험이 지연되기도 했다. 2시쯤 시험이 끝나고 나오니 벌써 눈이 다 녹아 있었다. 집에 가려다가 근처에 분황사와 황룡사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발걸음을 옮긴다.
(아침에 눈이 내려 눈이 쌓인 학교 내 이름 모를 석탑.)
(시험 후 다 녹아버린 눈.)
눈이 내릴 때 속으로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을 때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내심 기대했지만, 몇몇 그늘진 곳을 빼고는 말끔하게 녹아버렸다. 얼마 걸어가니 저번 7월 답사 때 보았던 남 효자비가 서 있다. 이 효자비는 조선 태종이 남득온이 어머니 묘 앞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한 것을 가상하게 여겨 세운 것이다. (알려주신 김환대 선생님,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효자비를 지나 길을 따라 분황사를 향해 계속 걷는다.
(남 효자비.)
드디어 멀리 분황사가 보인다. 옆에 녹지 않은 눈이 좀 있어 기대하고 들어갔지만, 뒤에 그늘진 곳 빼고는 너무나 말끔하게 눈이 녹아버렸다. 그래도 옆에 모아둔 석조 유구에는 눈이 녹지 않아 제법 쌓여있다. 분황사 모전석탑과 석조 유구를 본 후 뒤로 이동한다.
(분황사 입구.)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조 유구.)
뒤에는 원효대사 비가 있던 비 받침과 석정, 보광전 등이 있다. 사실 분황사 내 건물이라고는 범종각, 보광전, 요사채, 말고는 화장실, 상점 정도밖에 없는 아담한 사찰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조선시대 이후 모습이다. 원래는 구층정도 되는 모전석탑을 중심으로 거대한 규모의 금당 세 개가 있는 삼금당 일탑 형식을 취한 대규모 사찰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절이 허물어지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작은 보광전을 짓고 무너진 모전석탑은 삼층으로 축소해 복원하면서 이렇게 변했다. 항상 황룡사지 복원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분황사도 같이 복원한다면 얼마나 좋으려나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또 생각해보면 복원하려면 저 조선시대 보광전을 어디로 옮겨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복원도 좋지만, 지금의 쓸쓸하면서도 그윽한 느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황사 석정. 원성왕과 용에 관련된 전설이 있는 우물이다.)
(분황사 보광전. 조선시대 건물이다.)
(보광전 옆면.)
(눈이 조금 남아있는 분황사 모전석탑.)
보광전 뒤에는 작은 요사채가 있고 그 옆에는 얼굴이 많이 훼손된 불상과 한 보살님의 사리탑이 있다. 눈이 가는 건 불상인데 앞에 뭔가를 올려놓을 용도로 마련한 돌과 밑부분이 조금 묻힌 불상이 있다. 얼굴이 훼손된 게 조금 아쉽지만, 광배도 그렇고 나름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된다면 밑부분도 꺼내서 놔뒀으면.
(대원심 보살님 사리탑.)
(뒤쪽에서 바라본 분황사 일대.)
분황사를 나와 황룡사지로 향한다. 황룡사지 가는 길에 당간지주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당간지주 사이에 거북이가 놓여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분황사 밖에 있지만,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 것을 추정된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코스모스 필 때 오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푸른 하늘, 코스모스 사이로 서 있은 저 당간지주를 보면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내년에도 꼭 다시 찾아야겠다.
(구황동 당간지주.)
(가는 길에 본 분황사.)
황룡사지 가는 길에 텅 빈 하늘과 황룡사지가 펼쳐진다. 언제봐도 광활한 느낌을 준다. 왼쪽에는 야트막한 낭산이 보이고 정면에는 태양이 있어 눈이 부시지만, 아름다운 남산 능선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선도산과 옥녀봉이 나온다. 경주 사방을 훤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여기 황룡사지 말고 또 있으랴. 황룡사지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거대한 우물이 나온다. 아마 황룡사지에서 가장 먼저 복원된 시설일 것이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혹시 이게 기록에 나오는 '용궁'을 의미하지 않나 싶다.
(황룡사지 우물.)
녹색 잔디가 수천, 수만 평을 차지하고 있는 광활한 절터, 황룡사지. 으레 절터 하면 폐사된 절인 만큼 주춧돌 몇 개와 부러진 몇몇 석조 유구만 보이는 쓸쓸한 분위기를 연상하게 한다. 여기 역시 사실 주춧돌과 심초석 등 몇몇 석조 유구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절터다. 하지만 쓸쓸한 분위기를 사라지게 하는 그 광활한 크기는 아마 누구나도 인정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복원소식을 들을 때마다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이 광활한 대지가 사라진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황룡사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곳은 금당 터와 목탑 터다. 그중 중금당 터에 가보면 옛 장육존상이 있었던 받침이 남아있다. 수많은 기둥 사이로 황금빛 자태를 자랑했던 장육존상. 황룡사지를 복원한다면 제발 목탑만 복원하지 말고 절 전체를 될 수 있으면 복원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분황사 모전석탑도..)
(황룡사지 금당 터.)
(목탑 터에서 바라본 황룡사지 금당 터.)
금당 터 바로 앞에는 경주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구층목탑 터가 남아있다. 바둑판에 돌이 놓인 듯한 목탑 터를 보면 옛 거대한 구층목탑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목탑을 보면서 항상 생각하는 건데 과연 목탑을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한 구조였을까 아니면 그냥 뻥 뚫린 구조였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 쌍봉사 대웅전(불타고 다시 복원했지만)모두 전체가 뚫려있는 구조이고 일본의 대부분 목탑 역시 이와 같은 구조이다. 다만, 중국의 응현목탑은 올라갈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예전 뉴스를 보니 일단 층을 나눠 올라갈 수 있도록 한 것 같은데 과연 신라 때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목탑 터를 보고 내려오는데 우연히 특이한 곳을 발견한다. 널찍한 판석이 풀에 살짝 묻힌 채 있는데 아마 석등 자리인 것 같다. 자리가 이 정도인데 석등 크기는 어느 정도이길래... 그런데 석등 자리가 아니면 여긴 무슨 용도로 만들어진 곳일까?
(황룡사지 목탑 터. 주춧돌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목탑 터 심초석.)
(목탑 터 앞 석등 자리로 추측되는 곳.)
목탑 터에서 다시 길을 따라 다른 곳으로 나간다. 나가는 길에 오른쪽에 발굴 때 나왔던 각종 석조 유구를 모아둔 곳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철조망을 없애고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놔뒀으면 한다. 석조 유구를 지나 금이 관이가 지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면 현재 짓고있는 황룡사 연구센터 자리와 황룡사지 서편사지가 나타난다. 잠깐 눈사람을 만들며 놀다가 절터로 가는데 수렁을 넘다가 발을 헛디뎌 오른쪽 신발이 완전히 물에 젖었다. 앞에 있는 석조물에 앉아 신발을 말리는데 날이 추워서 신발이 얼어붙을 것만 같다. 왜 이런 꼴을 당하는지.
황룡사지 서편사지에는 한쪽이 없어진 채 살짝 기울어진 당간지주와 쌍탑형식으로 놓여있는 탑신석 하나, 지붕돌 하나가 놓여있다. 이름도 없는 이 절터는 항상 의문을 남기게 하는데 아마 모양은 감은사지와 비슷했지 않나 싶다. 오른쪽에는 사방에 석상이 새겨진 탑신석이 있고 왼쪽에는 지붕돌만 남아있다. 예전에 구황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처럼 아홉 개의 '황'자가 들어간 사찰 중 하나인 것 같다.
(황룡사지 서편사지. 중간에 당간지주가 보이고 뒤로 황룡사 연구센터 건립현장이 보인다.)
(황룡사지 서편사지 석탑재.)
절터 옆에는 신라 때 도로 유구가 남아있지만, 오늘은 넘어가기로 한다. 황룡사지 옆에는 나무로 된 멋진 인도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얼마나 좋은 길인지 모른다. 왼쪽에는 추수가 끝난 논과 선덕여중,고, 선도산 등이 펼쳐진다. 보통 때 같으면 길을 걸으며 바람을 느끼겠지만, 그날따라 날씨가 보통이 아니고 게다가 젖은 신발 때문에 발까지 시려 오돌오돌 떨며 걷는다. 길 끝 건너편에 있는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를 먹은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에 올 때는 옷 좀 단단히 입고 와야겠다.
(황룡사지 옆 좋은 인도.)
(팔팔 칼국수 집 칼국수.)
날씨도 춥고 눈사람 만드느라 신발 젖느라 손발이 얼어붙은 기분이다. 역시 여기는 가을에 와야 좋은 답사처다. 내년 가을에 다시 찾아갈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집으로 돌아와 그저 시험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내일 어디를 갈지 정한다. 오늘도 그렇게 지나간다.
(그나저나 만든 눈사람하고 눈탑은 아직 살아있으려나?)
-여정- (2013. 12. 20.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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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