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은 다윗이 나이가 들어서 그의 후계자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열왕기상 3장 이후에서 겸손하였던 솔로몬이 교만하여지고, 그 이유로 인하여 서서히 기울어지는, 즉 솔로몬이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열왕기상 11:11절을 보면 솔로몬 이후에 통일왕국이 왜 분열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서서히 타락하여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솔로몬 사후에 북쪽에 이스라엘 10지파가 여로보함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을 세웁니다. 남쪽에는 두 지파를 중심으로 남유다를 세웁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총 20명, 남 유다 총 20명의 왕에 대해서 묘사합니다. 남유다 왕 중에, 다들 악하였지만, 특별히 아사왕이나 여호사밧 왕 같은 경우는 다윗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좋은 정직한 왕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에 북이스라엘 왕에게서는 그 어떤 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남왕국 유다의 왕들과 달리 왕의 재임 기간이 아주 짧습니다. 엘라왕 2년, 시므리왕 7일 등입니다.
오늘 본문에 아합왕과 그의 부인 이방인 시돈 여인 이세벨이 등장합니다. 아합왕의 아버지는 오므리입니다. 오므리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시므리왕을 죽이고 왕으로 옹집하여 왕이 됩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사마리아로 천도합니다. 열왕기상 16:25절을 보면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오므리왕을 이어서 그의 아들 아합이 왕이 됩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22년을 통치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통틀어 가장 사악한 왕으로 성경에서 소개합니다(열왕기상 16:30). 열왕기상 16:34절을 보면 여리고 성을 재건합니다. 여호수아를 보면 여리고 성의 파괴는 가나안을 정복했다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여호수아 6:26~27절을 보면 파괴된 여리고 성을 재건하려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즉 성의 기초를 쌓을 때는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는 계자, 즉 전처나 후처의 소생 자녀를 잃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족의 씨를 잃겠다는 저주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를 보냅니다. 바로 엘리야를 보냅니다. 3년 동안 가뭄이 들겠다고 선포합니다. 엘리야는 3년 동안 까마귀가 날라주는 양식과 사르밧 과부의 도움을 얻어 끼니를 해결합니다.
아합왕은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자 폭풍의 신인 바알과 대지의 신인 아세라 여신에게 기우제를 지냅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사마리아에 있는 갈멜산에 엘리야를 보냅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1명과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이 누가 섬기는 신이 참 신인지 대결하자고 합니다. 방법은 갈멜산에 제단을 쌓은 후 제단 위에 송아지 고기를 얹고 각각의 신에게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불을 내려 고기를 태우는 신이 참 신인 것으로 판정 하자입니다.
결국 이방 선지자 850명의 기도는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가 되어 아무 반응이 없는 반면에, 엘리야는 야곱 아들의 수대로 12돌을 취하여 쌓은 제단 위에 송아지 고기를 놓고 기도했을 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태워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그 결과로 엘리야의 칼날에 850명의 이방 선지자가 목숨을 잃고, 3년 가뭄이 종식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들은 엘리야는 도망합니다. 4절을 보면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고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돌보게 하십니다.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 사십 주 사십 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
호렙산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호렙산은 선지자의 직분이 처음 주어진 곳입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모세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입니다. 두 번째로 호렙산, 즉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왜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도착한 것일까요? 단지 이세벨이 두려워서 멀리 달아나다 보니 그곳에 이른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요?
본문 9절을 보면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질문하신 이유는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셔서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와 소통하기 위해서 물으십니다.
10절을 보면 엘리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오직 나만 남았습니다”우리는 여기서 엘리야 선지자가 왜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키 위한 도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만 남았습니다. 자신마저 죽으면 다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모세에게 주었던 큰 것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대단하고 기특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만 남았고, 그래서 필사적으로 이곳까지 살아서 왔고, 자기에게 더 큰 것을 허락해 주어서 무너진 것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11~12절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에게 밖에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1~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람, 지진, 불은 고대 근동에서 신이 나타날 때의 현상, 즉 신현 현상입니다. 아마도 엘리야 선지자는 이런 현상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일어났을 때 엄청나게 고무되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되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단지 세미한 소리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a low whispr”(낮은 속삭임, ESV), “a gentle whisper”(온유한 속삭임, NIV)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갈멜산에서 이곳까지 도망 온 엘리야 선지자를 책망하기보다는, 도리어 자기만이 남았고, 모세에게 주었던 그 능력을 주심으로, 자기가 해낼 수 있다는 헛된 자신감에 똘똘 뭉쳤던 그에게 “세미한 소리”로 격려와 위로를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절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는 답답하게 여겨진 듯 똑같은 기도를 합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15~16절을 보면 하나님의 응답이 옵니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자신만 남았는데, 하나님이 갈멜산에서 주었던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주었던 그 큰 것을 주면 자신이 무너진 모든 것을 회복하고 싶었는데, 정작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세움을 통하여 그 일을 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18절을 보면 칠천 명을 남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칠천 명을 숨겨놓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여기까지이고, 그를 통해서 다음 사람들을 세우면, 그들을 통해서 칠천 명을 세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이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비록 자신만 남았지만, 하나님이 큰 것을 주시면, 자신이 완성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갈멜산에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찾아서 호렙산에 와 있습니다. 또한, 불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바람, 지진, 불에 집중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세우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눈에 당장 보이는 바람, 지진, 불이 없어도 사람을 세우면, 제대로 길러내면 그 사람을 통해서 칠천 명을 남기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그 어떤 조직이나 행사나 결과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 교회에 같이 있어 주어야 할 사람, 같이 웃고 울어야 할 사람이 있기에 사명자로 세운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2절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