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가 현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그는 집도 절도 없이 나무 통에서 기거하는 초라한 늙은이였다. 나무통이나 종이 상자에서 기거한다고 다 현자일 리는 없다. 알렉산더는 그를 시험해 보고자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일면으론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신은 몹시 궁핍해 보이는군요.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겠소?
대단히 죄송하지만 햇빛이 가리니 조금 옆으로 비켜 서 주실 수 있겠소? 당신이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요.
알렉산더는 순간 당황하였다. 대왕은 그를 궁중으로 데려가 잘 씻기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거처를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거리의 현자로부터 몇 가지 세상
의 지혜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순간 부아가 치밀어 칼자루로 손이 가는 걸 억제하고 애써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그대는 내가 누구란 걸 모르오? 내가 누구란 걸 떠나서 사람의 호의를 무시하고 무례하게 굴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법이오.
디오게네스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그대가 나를 알고 있듯이 나도 이미 그대를 잘 알고 있소. 그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했듯이 나 역시 그대에게 지혜를 베풀고 싶었소. 그러나 지혜라는 건 동등한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이오. 예속돼 있거나 굴복한 상태에서는 진정한 지혜의 전수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대의 그늘 아래에 있는 한 내 지혜는 쓸모없는 것이오.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나를 보시오. 나의 지혜란 우리 모두 같은 햇빛을 받는 동등한 존재라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