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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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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돌 묘역으로 가는 길목의 덕포진 전경 |
김포 덕포진(사적 2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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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포진 전시관 |
▲ 전시관 내부 안내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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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 내부 안내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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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 내부 안내판과 전시물 |
덕포진은 조선시대 진영으로,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바닷길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대였던 곳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현종 7년(1666)에 강화에 포함되었다. |
덕포진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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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돌 묘는 안내도의 맨 우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높직한 평지에 세운 포대인 돈대와 대포를 쏘는 포대, 그리고 포를 쏠 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는 파수청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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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포진 전시관을 나와서 덕포진 포대 방향으로 걸어 가면서 바라 본 주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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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포진 포대 모습 |
돈대는 중요한 전략지에 있어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싸웠다. 1980년에 행한 발굴조사 결과 7개의 포탄과 2개의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고 주춧돌과 화덕자리를 발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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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대를 지나면 파수청이 보이고 저 멀리 보이는 봉분이 손돌 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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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청 내외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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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청을 지나면 언덕 위에 손돌 묘가 보입니다. |
▲ 손돌 묘에서 내려다 본 파수청 방향 모습 |
손돌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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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돌 묘역 전경. 손돌공 제사는 조선조 말까지 계속되어 오다가 일제 강점 후에 중단되었다고... |
北 신문이 소개한 '손돌추위' 유래
데일리NK 2005.12.01 “바닷사람들은 음력 10월말에 오는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한다.” 1일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주간 통일신보 최근호(11.26)는 “‘동국세시기’에는 해마다 음력 10월20일 큰 바람과 추위가 일게 되는데 이날의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한다고 씌어 있다”며 그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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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하단에서 바라 본 모습 |
’손돌’은 고려시대 뱃사공으로 통진과 강화 사이 나룻가에서 원통하게 죽은 전설 속 인물이다. 그가 죽었다는 날이 바로 음력 10월20일로, 이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추위는 손돌의 넋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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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돌 묘역. 1970년 이후 다시 제사를 지내오고 있으며, 1977년 묘역을 단장하고 묘비를 세웠다고... |
손돌은 어쩔 수 없이 배를 곧바로 몰아 노를 저었지만 아니나다를까, 곧 폭풍이 몰려오고 물길도 몹시 사나워졌다. 그는 진땀을 흘리며 배를 몰아 위험한 물목을 빠져나온 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으며, 이때 폭풍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가 몹시 흔들리는 바람에 왕의 옷이 흠뻑 젖고 상처도 여러 군데 입게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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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과 후면에서 바라 본 모습 |
손돌추위에 얽힌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 고려 21대 희종이 몽골의 침입을 피해 자연도(紫燕島.지금의 용유도)로 뱃길을 재촉할 때 사공 손돌이 왕의 뱃길 행차를 맡았다는 것이다. 희종 일행이 음력 10월20일 강화도 용두돈대 아래에 다다르자 손돌은 물살이 거칠고 막다른 곳으로 배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
손돌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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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의 봉분이 손돌 묘역입니다. 소재지 :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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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 상단의 화살표 부분에 손돌 묘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초지대교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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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혀 알지 못하던 역사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