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
마가복음 9 : 43 – 50 23, 294, 326, 522
서대문 형무소는 역사박물관으로 누구든지 견학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독립군들을 잡아다 가둔 형무소 입니다. 유관순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잡혀 옥고를 치르고 사형당한 뼈아픈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해방 후에는 간첩이나 사상범과 정치범을 가두고 사형시켰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당했으며, 김영삼 대통령이나 문익한 목사도 수감 되었던 곳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를 책을 읽고 어느 정도는 알았지만, 실제로 견학하므로 수감된 죄수들이 당한 고통은 다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이 갇혔던 방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죄수를 앉을 수 없도록 하루 종일 서있어야만 하는 독관방과,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 간방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는 사형수를 목매달아 사형시켰던 사형장의 밧줄과 의자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니다.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견학하고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알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죄를 무섭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예 지옥이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은 사람을 보고 좋은 곳에 갔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이 가는 나쁜 곳(지옥)에 가지 않도록 빌고 제사도 지내고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지옥은 모르면서 그들이 죽어 나쁜 곳에 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 어느 종교도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불경이나 다른 종교의 법전에도 지옥이 어떤 곳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똑똑하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지옥을 잘 아십니다. 제자들에게 지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43)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모든 쓰레기를 성밖으로 날마다 던져 태우는 힌놈의 골짜기를 ‘스올’(히) 또는 ‘하데스’, ‘겐나’(헬)라고 하며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했습니다.
힌놈의 골짜기에 던져진 스레기는 날마다 던져 태우므로 불은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옥을 영원히 불꽃 가운데서 고통받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6:24)
지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성경에는 지옥을 ‘불 못’(계20:14,15), ‘영원한 불’(마24:41), ‘유황불’(계19:20) 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불은 태우고 소멸하지만, 지옥의 불은 태우고 소멸하는 불이 아닙니다. 뜨거운 불로서 죄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불입니다.
‘거기에는(지옥)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48) 구더기는 꺼풀이 얇아서 내장이 다 보이는 아주 연약하기 때문에 작은 불이라도 쉽게 타 죽습니다. 그러나 지옥에는 죽음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구더기도 죽지 않습니다.
지옥 불속에서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타 죽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겠지만, 지옥은 죽음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을 당하며 괴로워해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옥 불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마다’란 지옥 불속으로 던져진 모든 사람입니다. 누구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 불로서 소금 치듯 하는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갓난아이가 죽었기 때문에 고통이 면제되거나 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는 죄가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지옥에 던져진 모든 사람이 소금 치듯 하는 고통을 받습니다.
‘소금 치듯 함’이란 뜨거운 불꽃으로 견딜 수 없는 따가운 고통을 의미합니다.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눅16:23) ‘고통 중에’란 잠깐이라도 쉼이 없는, 계속 영원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지옥에는 물이 없습니다. 부자가 뜨거운 불꽃 가운데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든지 낙원에 있는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지옥 불에 혀가 타는 고통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물 한 방울도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곳입니다.
지옥은 빛이 없는 흑암입니다. 불꽃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빛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옥 불은 빛이 없는 뜨거운 불입니다. 그런데 건너편에 낙원은 어둠이 없는 밝은 곳입니다.
음부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받는 부자가 낙원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는 말씀은, 음부의 암흑에서 밝은 빛이 있는 낙원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낙원에 밝은 빛이 음부에도 어느 정도 비추어져서 빛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 한 밤중에 기도하고 찬미하므로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그때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친 것으로 알고 칼로 자결하려고 하는 것을 바울이 보고,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간수가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는 말씀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깊은 지하 감옥 안에는 빛이 전혀 없어도 빛이 있는 감옥 밖은 보였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는 곳에서는 빛이 없는 감옥 안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칼로 자결하려고 하는 간수에게 ‘우리가 도망하지 않고 여기 있노라’고 말했을 때 간수가 등불을 들고 들어가서 바울과 실라를 보았습니다.(행16:29)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 아홉 번째 재앙이 흑암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흑암으로 서로 볼 수 없어서 더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는 곳에는 빛이 있었습니다.(출10:23)
흑암으로 더듬어야 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바로 왕도 사흘 만에 항복했습니다. 암흑은 장자 죽음 재앙 다음으로 무서운 고통을 주는 재앙이었습니다. 지옥의 암흑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영원히 캄캄한 곳에서 고통을 당해야 하는 곳입니다.
정전이 되어 캄캄해도 건너편에 불빛으로 어느 정도는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밝은 빛이 하나님께서 내린 흑암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듬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여 홍해 가까이 왔을 때 뒤에 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모두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애굽의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구름과 흑암으로 막았습니다. 그때 애굽 사람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를 무사히 건넜습니다.(출14:20)
지옥의 불꽃은 빛이 없는 흑암이기 때문에 서로 더듬어야 하지만, 낙원은 어둠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음부의 부자는 낙원에 있는 나사로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흑암 속에서 낙원에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받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흑암속에서 나사로를 보고 부자가 살았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이를 갈며 더욱 괴로워하는 고통을 가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용서를 빌며 이를 갈고 회개해도 소용없습니다. 지금도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그들 모두는 천국의 빛 가운데서 즐겁게 안식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이 살았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을 이를 갈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지옥이 어떤 곳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옥에 던져지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까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43)
지옥에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 곳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에는 ‘범죄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범죄하게 하거든’이란 말씀을 계속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43, 45, 47)
범죄하는 손이나 발을 찍어 버리고, 눈을 빼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범죄하는 손과 발을 찍고, 눈을 뺀 장애자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손’, ‘발’, ‘눈’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체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는 데 제일 많이 사용되는 지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손이나 발, 눈으로 범한 죄로 지옥 불 속에서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장애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제로 손과 발을 ‘찍어 버리고, 눈을 빼어 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그 어떤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을 예를 들어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그만큼 지옥은 절대로 가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이 이렇게 무서운 곳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 용서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자력으로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지옥 불 속에서 고통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해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십자가 달려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면 지옥에 던져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인 죄인을 구원하시는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하심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기 때문에 지옥불 속에 던져지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죄가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고백을 진심으로 하고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무서운 지옥 불속에서 던져지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영생하게 됩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구원받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대속하심을 진심으로 믿고 고백합시다. 무서운 지옥 불 속에 던져지지 않도록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립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