塞翁之馬와 轉禍爲福
황원갑 <소설가 / 역사연구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으로서 <논어(論語)>에 나온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지난 것을 충분히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알면 그로써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知新 可以爲師矣)’라고 했으니, 오늘을 알기 위해서는 옛일을 알아야 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또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하겠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이다. 이것은 비단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해당하는 공통적 숙명이다. 흔히 운명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개척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미 정해진 숙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고, 별별 일을 다 당하게 된다. 슬프고 괴로운 일을 당하는가 하면, 즐겁고 기쁜 일도 생긴다. 또한 궂은 일이 바뀌어 복을 가져오기도 하고, 좋은 일이 나쁜 일로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이처럼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무상하게 뒤바뀌는 것을 가리키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는 고사성어로 천변만화하는 인생살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길흉화복 인간만사는 새옹지마
새옹지마란 고사성어의 출전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에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지은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편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 대체로 화복(禍福)이 서로 나타남은 그 변화를 예측하지 못 한다. 국경 가까이에 사는 사람으로서 복술(卜術)에 능한 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말이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 땅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와서 위로하니 그가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복이 되지 않겠소?”라고 했다. 그 뒤 몇 달이 지나자 그 말이 오랑캐 땅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찾아가 축하하니 그가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화가 되지 않겠소?”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집에는 좋은 말이 많고, 그의 아들이 말 타기를 좋아하여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가서 위로하니 그가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복이 되지 않겠소?”라고 했다. 그 뒤 1년 만에 오랑캐가 대대적으로 변경을 침범했다. 그래서 장정들은 활을 들고 싸웠고, 변방 사람들로 죽은 자가 열에 아홉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부자가 모두 무사했다.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데, 그 변화가 이를 데 없고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
<회남자>의 저자로 알려진 유안은 서기전 179년부터 서기전 122년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막내아들인 유장(劉長)의 장남이었다. 그에게는 많은 문객이 있었는데, 유안이 도가 ․ 유가 ․ 묵가 ․ 법가 ․ 병가 등 잡가(雜家)에 관심이 많기에 이들을 시켜 <회남자>를 저술토록 했다고 한다. <회남자> 21편의 본래 이름은 <유씨지서(劉氏之書)>로서 중국 한나라 초기의 사상을 두루 담은 대표적 철학서로 평가받고 있다.
어쨌든, 새옹지마의 고사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교훈은 한 마디로 말해서 세상만사에 초연하라는 것이다. 오늘 즐거우면 내일 괴로울 수도 있고, 오늘 기쁜 일이 있으면 내일 슬픈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앞날을 그 누가 예측하랴. 인간의 미래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은 초로(草露), 곧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이 덧없는 존재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고 입이 찢어지라 좋아할 것은 아니다. 그 돈이 돌고 돌아 언제 어떻게 자신의 목을 조를 밧줄이 될지 모르는 노릇이다. 지위가 높아졌다고 하여 어려웠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기고만장할 일도 아니다. 그 자리에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낙마하여 패가망신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대부분이 사기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번 것이 들통이 나서 쇠고랑을 차는 경우가 흔하다. 또 검은 돈을 받아 챙긴 것이 탄로 나서 철창 속으로 들어간 정치인도 많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막말을 하다가 국민의 지탄을 받고 벼슬자리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부터 깨끗이 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겠노라 나서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또한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란 고사성어도 있으니 입은 재앙의 문이란 뜻이다. 공인이건 일반인이건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
어쨌든 새옹지마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매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거나 경거망동하지 말 것이며, 교만하지도 말고, 조심 또 조심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변화무상한 것이니, 언제나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며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위복과 합종연횡의 유래
전화위복(轉禍爲福)도 새옹지마와 비슷한 교훈을 준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 일시적으로 화가 닥쳐도 절망하지 말라는 인생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전화위복이란 고사성어는 그 출전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것으로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한 말이라는 설이고, 또 하나는 사마천(史馬遷)의 <사기(史記)> ‘열전’ 가운데 소진전(蘇秦傳)과 장의전(張儀傳)에 나온다. 그런데 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사기>의 기록이 앞서고, 또 신빙성도 높다고 보고 있기에 필자도 이에 따라 <사기>설을 좇는다.
소진은 장의와 더불어 고대 중국 춘추시대에 이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세객(說客)으로서 이른바 합종연횡설(合從連衡設)로 잘 알려져 있다. 전화위복이란 고사성어는 이 합종연횡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합종연횡설의 유래부터 설명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소진과 장의는 본래 귀곡선생(鬼谷先生) 밑에서 함께 배운 동창생이었다. 귀곡선생은 낙양성 동남쪽의 귀곡이란 계곡에 살면서 제자들에게 난세의 외교술과 지략 등을 가르쳤는데, 그의 성명이 무엇인지, 출생지는 어디인지 하는 점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비에 쌓인 인물이다. 귀곡선생으로부터 “이제는 더 이상 가르쳐줄 것이 없으니 하산하여도 되느니라!”하는 말을 듣고 두 제자는 귀곡을 떠나 천하를 주유하며 유세에 나섰다. 그런데 먼저 출세한 사람은 소진이었다.
때는 기원전 360년께. 당시 중국은 주(周) 왕실의 힘이 약해진 반면 여러 개로 갈라진 제후국이 각자 패권을 잡으려고 서로 다투던 전국시대였는데, 특히 이 가운데 진(秦) ․ 제(齊) ․ 초(楚) ․ 위(魏) ․ 연(燕) ․ 한(韓) ․ 조(趙) 등 일곱 나라가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여 이른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나라가 뒷날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여 중국 최초의 제국을 세운 진나라였다.
소진은 처음에 진나라를 찾아가 혜문왕에게 연횡책을 제시했으나 그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등용되지 못 했다. 소진은 이에 다음으로는 연나라로 찾아가 이번에는 합종책을 제시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얻게 된다. 합종책은 6개 나라가 세로, 즉 남북으로 동맹관계를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정책이요, 연횡책은 6개 나라가 가로로, 즉 동서로 진나라와 우호적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정책이었다. 연횡이란 연형이라고도 하는데, 횡=형(衡)은 저울을 가리키고, 연횡(연형)은 ‘저울을 잇는다’는 뜻으로서 진나라와 나머지 여섯 나라가 저울대처럼 평평하게 동맹을 맺는다는 말이다.
연나라의 적극적 지지를 얻은 소진은 이번에는 조나라를 거쳐 한나라로 갔다. 거기에서 소진은 이런 유명한 말로 한나라 선혜왕을 설득했다.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시오.” 선혜왕은 이 말에 솔깃하여, “내 앞으로 다시는 진나라를 섬기지 않겠소이다!”라고 했다. 소진은 이어서 나머지 4개 나라마저 능란한 언변으로 설득하여 마침내 합종책을 통한 6개국의 동맹을 성공시켰다. 이것이 기원전 334년의 일이었다.
한편 그동안 장의는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유세했으나 아무도 호응하지 않자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가 소진이 합종책으로 성공하여 출세하고 부귀공명을 얻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장의는 조나라로 소진을 찾아갔는데 뜻밖에도 옛 동창생 소진에게 수모와 냉대만 당한 채 분노를 삼키며 그 나라를 떠나야만 했다. 절치부심한 장의는 한 상인의 도움으로 진나라에 갈 수 있었다. 진나라에 도착한 다음에야 상인은 이 모든 일이 소진의 계책에 따른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장의는 진나라 혜문왕에게 연횡책을 건의하였다. 전에 소진이 연횡책을 유세했을 때는 심드렁하게 대하던 혜문왕이 이번에는 생각이 바뀌었음인지 장의의 계책을 받아들이고 그의 능력과 재주를 인정하여 객경(客卿)으로 발탁했다. 이것이 기원전 328년이었다. 귀곡선생 문하에서 소진과 쌍벽을 이루었던 강력한 라이벌 장의도 마침내 출세를 했던 것이다. 장의의 연횡책이 받아들여지고, 6국간의 분쟁이 잇달아 일어남으로써 동맹관계는 깨어지고 소진의 합종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난세일수록 자중자애하라
그러면 전화위복이란 고사성어는 어떻게 나왔을까. 이는 장의가 한나라로 찾아가 양왕에게 소진의 합종책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한나라의 강토를 살펴보면 대체로 산이 많은 편입니다. 이것은 나라에서 나는 산물이 적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오랜 전쟁에 대비하여 많은 군량을 준비하기 힘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인구가 적은 탓에 군사의 수도 적으니 진나라에 비하면 약소국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진나라에 대적하기보다는 차라리 섬기는 쪽이 훨씬 이로울 것입니다. 나라의 산물이 적고 인구도 적으니, 이야말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방도가 아니겠습니까? 이야말로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나라는 전에 소진의 합종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던 나라였으나 선혜왕이 죽고 그의 아들 양왕이 즉위한 뒤 진나라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자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소진의 유창한 언변에 이끌린 양왕은 마침내 진나라에 땅을 떼어 바치고 나라를 보전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전화위복이란 화가 바뀌어 복이 될 수도 있다는 말로서 한 번의 실패에 절망하여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뜻으로 쓰이는 고사성어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하지 말고 보다 값지게 보내라는 말이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바람처럼 물결처럼 어느새 흘러가버린다. 최근 카드 빚 때문에 귀중한 목숨을 버리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 참으로 가슴 아프다. 그렇게 값어치 없고 허망하게 죽으라고 하늘이 부모를 통해 생명을 준 것은 아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다시 벌떡 일어나 힘차게 살 궁리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분수에 맞게 생활하며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또 흥청망청 노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인생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훌륭한 고전을 많이 읽기 바란다.
<경제풍월>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