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중앙 연구원에 기록된 2008년 8월 31일 이전
성씨의 역사
선산김씨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이며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이며, 초명(初名)은 김선(金宣)이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상해를 입힌 자의 목을 베고 처벌을 자청하여 투옥되었으나 조정에서 효자라고 석방되어 표창까지 받았다.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일선(一善, 선산 옛 지명)에 이르러 모병할 때 종군할 것을 희망하자 왕건이 기뻐하며 친히 활을 하사하고 선궁(宣弓)이라 사명(賜名)하였다. 그 후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정난보국공신(靖難輔國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으며, 선주백(善州伯, 善山)에 봉해졌다.
〈순충공신도비명(順忠公神道碑銘)〉에는 그는 처음으로 일선군에 적을 두어 일선김씨(一善金氏)의 시조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숭선부사(崇善府使)가 되어 명문이 높았다고 한다.
그는 김봉문(金奉文), 김봉술(金奉述) 두 아들을 두었는데, 김봉문은 삼사우윤(三司右尹)과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냈으며, 김봉술은 아버지에 문하시중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6대까지 실전이 되어 알 수 없지만 그 후손 중 한 부류는 중앙관직으로 다른 한 부류는 지방 사족으로 나뉘어졌다.
이 후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삼고 시조 발상지인 일선(一善)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일선이 조선 태종(太宗) 때 선산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본관도 선산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 후 선산김씨는 김봉문 후손에서 5개파, 김봉술 후손에서 12개파로 나뉘어졌다.
분적 및 파종
선산김씨는 두 개의 본관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김선궁(金宣弓)의 일선김씨이고, 다른 하나는 김추(金錘)계의 선산김씨로 확실한 구분이 필요하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백암파(白巖派), 농암파(籠巖派), 병암파(屛庵派), 간의공파(諫議公派), 화의군파(和義君派), 낭장공파(郞將公派), 취수공파(醉睡公派), 송천공파(松川公派), 성암파(省庵派), 소암파(素庵派), 곤육재파(困六齋派), 대장군파(大將軍派), 우윤공파(右尹公派), 양양공파(良襄公派), 정조공파(正朝公派), 강호파(江湖派), 과당공파(苽堂公派), 점필재파(佔畢齋派)로 나뉘어졌다.
첫댓글 선궁계 선김의 경우 그에 합당한 답은 선김(선궁계)대종회에 한번 문의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선궁계 선김의 원로분에게 부탁하여 책을 받아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제 책자를 잠시 빌려드릴 수도 잇습니다. 보시고 돌려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