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특집 │ 차옥혜
쿼바디스 도미네 외 2편
차옥혜
세상은 거대한 눈꽃입니다
길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푸른 보리밭과 생수가 솟구치는 울창한 삼나무숲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장발장은 배고픈 조카들 때문에 또다시 빵조각을 훔쳐
교도소에 재수감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은 빵을 찾아 죽음일지도 모르는
눈 산을 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폭설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쳤지만
얼어 죽었습니다
가엾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눈꽃 속을 헤매다
죽어야 합니까
천년입니까 만년입니까
봄은 정녕 꿈꿀 수 없는 것입니까
햇살이 새싹의 볼을 어루만지는 벌판을
배고픈 이들을 위한 무료 빵가게를
언제쯤 볼 수 있습니까
생명이고 사랑이고 평화고 희망이고 영원인 당신이시여
세상을 덮어버린 눈꽃에 길을 내시며 오소서
눈꽃을 헤쳐 언 손들을 잡아끌어 언 몸을 품어주소서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불쌍한 것들
태어 난지 육 개월밖에 안된 어린 고양이가
옥향나무 밑에 엎드려 있다가
콩깍지 더미에서 콩을 찾던 산비둘기를
순식간에 내달려 머리를 덥석 물고
창 앞 소나무 밑으로 와 앉아 오 분쯤 꼼짝 않는다
기절한 새는 날개를 편 채 조용하다
보이지 않던 어미 고양이와
두 마리 형제 고양이들이 이내 달려와
가까이서 지켜본다
새의 심장이 멎자
드디어 어린 고양이는 깃털만 남기고
혼자 새를 깨끗이 먹어치운다
깨물리고 찢기고 씹혀 고양이 배 속에 갇힌 산비둘기!
뜯긴 산비둘기 깃털이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펄럭이다가 마른 풀 속에 가라앉는다
겨울 빛은 시리고 고요하며 사방은 적막하다
다 보고 있던 하늘, 땅, 나무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조용하다
둥근 세계도 흔들림 없이 여전히 제 속도로 굴러간다
또다시 고양이들은 나무 밑에 잠복하여
콩깍지 더미를 뒤지는 새들을 엿본다
레미제라블!
진눈깨비 내리는 사월
삼월도 아니고 사월인데
휘몰아치는 진눈깨비
봄은 그냥 오지 않나 봐
몰려온 폭군 진눈깨비 견디며
안간힘 다해 봄을 끌고 있는
들녘 연약한 목숨들의 몸부림 좀 봐
진눈깨비 내리는 사월에도
오월은 새벽처럼 오지
영혼을 흔드는 문학의 빛과 향기와 아름다움
새해 벽두에 개봉 하자마자 관객을 끌어 모으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러갔다. 원작은 프랑스 대 문호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발표한 대하소설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본다는 세계적인 고전이다.
나는 초등학고 저학년 때 교회 유년주일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장발장 이야기를 들었다. ‘장발장’은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이름이다. 아버지 없는 7명의 조카들이 추위에 떨며 굶주리자 돈이 없는 장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치고 체포되어 19년의 감옥살이를 한다. 출옥하여 재기해보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냉대를 당하고 고립된다. 굶주린 그를 주교 미리엘 신부가 먹여주고 재워준다.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혀 미리엘 신부 앞으로 끌려온다. 그런데 미리엘 신부는 자신이 장발장에게 준 거라고 말하며 나머지 은촛대까지 내어주며 “왜 이건 가져가지 않았소?”라고 말한다. 장발장은 이에 감명 받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사랑을 구현하는 인도주의자, 성자가 된다.
나는 지금도 몇십 년이 지났지만 장발장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장발장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만으로 그 선생님은 내 1호 스승이 되었다. 그 뒤 고등학교 때 대하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줄인 『장발장』이라는 소설책을 읽었다. 모든 이야기 줄거리는 세월 따라 가물가물한데 미리엘 신부가 은촛대를 훔쳐간 장발장을 감싸주고 마저 남은 은촛대까지 내어주는 장면은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훔친 것은 범죄다. 그런데 내가 돈이 한 푼도 없고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면 나는 어찌 했을까?” 자문하면서 최소한 사람에겐 밥을 먹을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리엘 신부에게서 법보다 위에 있는 사랑과 용서인 종교의 힘을, 인간의 가치와 숭고한 정신을 본다. 이것을 담아낸 문학 작품의 영원한 빛과 향기와 아름다움이 나를 시인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런 원작의 힘 때문에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나와 관객들을 울리고 또 울렸다. 영화가 끝나자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사이에서 박수소리가 터졌다. 나도 힘껏 박수를 쳤다.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고 박수소리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극장을 나오자 거리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빅토르 위고가 소설 『레미제라블』을 쓴지 200년이 지나고 과학과 현대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빵 한 조각을 훔쳐 감옥에 가야하는 비참한 사람들은 여전하다. 나는 저절로 폴란드의 작가 헨릭 시엔키에비치가 190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 「쿼바디스」에서 베드로가 외치던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되뇌었다. 2000년 전 로마 황제 네로는 로마 빈민촌의 시궁창 냄새가 싫어 로마를 새롭게 재건하려고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에게 누명을 씌워 그들을 박해하고 잡아 죽였다. 그들의 지도자 베드로가 피신하는 길에 예수가 나타나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는다. 예수는 “네가 내 어린 양들을 버렸으니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간다”고 대답한다. 베드로는 그 길로 다시 로마로 돌아가 교인들과 함께 순교한다.
내 시골 글방에 고양이가 산다. 고양이가 여름에 새끼 세 마리를 낳았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새끼가 순식간에 내가 추수하고 버려둔 콩깍지 더미에서 콩알을 찾던 산비둘기를 잡아먹었다. 생명들의 숙명적인 먹이 사슬! 어린 것이 벌써 본능적으로 체득한 사냥! 살생한 고양이도 잡혀 죽은 산비둘기도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나와 모든 것들이 불쌍하고 가엾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봄 사월에 산수유, 매화, 산당화가 피고 여기저기 상사화와 보리의 새싹이 돋고 마늘도 움텄는데 뜻밖에 진눈깨비가 내렸다. 봄의 전령들은 잘 견뎠다. 오늘 음울한 세상에도 오월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차옥혜 /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외 7권이 있고 서사시 『바람 바람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