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금만 일찍 태어났으면 엄마랑 결혼하는 건데...'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작은 녀석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 중 하나다.
틀어박혀 지내는 요즘 가뭄에 콩나듯 하는 내 외출에도 매우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은 내 눈길이 언제나 저와 함께 하기를 바라며 내게 아주 민감한 녀석이다.
며칠전 병원다녀오시는 엄마 점심 사드리고 서점 들러 오느라 녀석 귀가 시간을 살짝
놓치는 바람에 저 혼자 태권도장 다녀온 녀석에게 잔소리를 톡톡히 들었는데, 어제는
병문안 일찍 다녀와 녀석의 귀가 시간을 딱~ 지키고 있었더니 나름 흐뭇한 표정으로
'태권도 잘 다녀올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요' 하듯이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에서 엄마랑
결혼생활을 하는 듯한 녀석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또 이녀석의 날 바라보는 시각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님이 분명하다.
내가 하는 잔소리를 듣지 않고 저 할대로 돌아댕기다가 큰 코를 다치는 날에는
영락없는 엄마, 또는 하나님의 자리에 나는 올라가 앉는다.
지난주 자전거가 생긴 다음부터 미친놈처럼 돌아댕기더니만, 결국 뒷꿈치에 이어
무릎팍까지 까지고 멍들여 온 날 저녁 식사 기도를 이렇게 하는 것으로 보아서...
'하나님, 엄마 말 안 듣고 자전거 타다가 다쳤어요. 엄마 말 잘 들을게요. 이 밥
맛있게 먹고 빨리 낫게 해 주세요'
그런 녀석이 어제는 오자마자 밥을 찾는데 마침 반찬도 떨어지고 귀찮아서 계란 후라이를
해주고 책읽기에 몰두한 나를 귀신같이 알고는 밥통 밥 푸고 김통 꺼내 나 몰래 후다닥
해치우고는 저 볼일 보러 나간 것이다. 바깥 재미 다 보곤 다시 들어와 컴퓨터 게임에
몰두, 다시 텔레비전에 몰입하더니만 오늘 아침까지 만화보느라 정신없다.
혹시 싶어 가방 뒤져보니 챙겼다는 큰소리완 달리 며칠 전 안내장까지 주루룩~이다.
시간표 확인해서 싸주고 내보내며 너 밉다고, 거짓말하는 거 정말 싫다고 했더니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울 엄마가 정말 화 나셨나~~?'
내 마음을 전부 알고 싶어하는 듯한 그 눈빛과 마주침이 싫지 않아, 아니 실은 그 눈빛과
맞닿음을 오래 누리고 싶어 나는 화를 풀어주지 않고 녀석을 내보낸다.
책 읽다 말고 가만히 생각하니,,,
녀석이 다른 일에 몰두한 때가 바로 내가 다른 일에 몰두할 때였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친다. 그래 맞다, 내가 너를 놓고 있었구나. 내가 내 하고싶은 일 하느라
네 밥 차려줄 생각 않고 대충 넘어간 걸 네가 어느새 알고 있구나. 느끼고 있구나.
네가 나였구나. 바로...
정신없이 밥 안치고, 김치썰어 참치두부찌개 끓이고, 스팸 꺼내놓고, 김 새로 꺼내놓고,
시계를 보니 이런, 저녁이 아닌 점심이잖아!
표시 안나게 떠 먹고 기다려야겠다.ㅎㅎ
다시 왕세자비의 어록을 찾아들고 읽는다.
< 당신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당신을 사랑함이 곧 나를 사랑함입니다 >
첫댓글 그날 점심 푸짐했네. 아이는 우리가 눈맞추는 만큼 안정감을 갖지만 가끔은 또 모른척하는 시간도 필요해요. 너무 숨막혀하지 않을 만큼씩 모른척해주는 그런 시간도....
흐흐, 드디어 알았다~! 쪼이기! 녀석을 자빠뜨리는 기술이 바로 숨막히게 쪼이기였구나~! 힌트 감사감사!ㅋ 헌데 쪼일래두 벌써 없다니깐요. 조무래기들 몰려온 틈에 함께 사라졌으니... 낼 시험두 찍기루다 한 10점이나 맞을라나...
아주아주 애키우는 재미가 솔솔 보이네요. ㅋㅋㅋ쪼이기 기술이 있군요. 지는 저의 작은녀석과 여전히 회유, 조건걸기, 흥정하기, 그러다 협박까지 하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