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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12
씬1. 낙랑국, 청해헌 정문 앞 (밤)
모양혜와 부달, 탁치, 말에서 뛰어내린다.
부달 : 문 열어라!! 영호장원 마님께서 오셨다!! 냉큼 문 열어라!!
씬2. 낙랑국, 청해헌 왕자실의 침소 (밤)
왕자실과 치소, 대관식에 입을 라희의 옷감을 고르고 있다.
왕자실, 라희의 몸에 옷감을 대어보고.. 부산하다.
치소 : (다홍색을 대보이며) 와! 딱이에요~ 폐하 대관식 때, 공주마마만 눈에 확 띄겠어요~ (라희에게) 어떠세요?
라희 : 뭐, 그냥저냥.
왕자실 : (진파랑 천에, 황금색 비단실을 내놓는다) 이걸로 해.
치소 : 것두 예뻐요~ 쪽물 시원하게 잘 들어서. 성침방(誠針房) 것들에게 얼른 지으라겠어요.
왕자실 : 내 손으로 할께야. 시간이 얼마 없구나..
라희 : (밉게) 큰외삼촌 장례도 안 치렀는데, 대관식이 말이 되나요?
왕자실 : 죽은 사람 장례가, 비어있는 왕위보다 중하다던?
왕자실, 라희의 몸에 다시 옷감을 대어보는데 가슴이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치소 : 왕비마마..
왕자실 : 이젠.. 정말이지 다 끝났구나. (옷감을 다탁 위에 내려놓으며) 첩첩이·첩첩이.. 험한 산길 돌아왔다..
(고인 눈물을 손끝으로 찍어낸다)
문 열리고, 무르추(시비1 이름)와 웃달(시비2 이름), 뛰어 들어온다.
웃달 : 마마, 마마!!
치소 : 웃달이 네년은, 그리 요란스러 궁에 들어가겠니?
웃달 : 영호장원 마님께서 들이닥치셨어요!
왕자실 : !! (놀라고) 몇이나 몰려 왔더냐!!
무르추 : 잘은 모르겠구요. 시하인(侍下人) 어른 말로는 부달장수가 대문 앞서 고래고래 한다구..
왕자실 : ..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세워 다탁을 몇 번 두들기며 생각하다, 치소에게) 문 열지마라.
라희 : (OL) 외숙모님이 어머닐 보루 오셨는데, 그럼 되요~
왕자실 : (못마땅해서 흘깃 보고, 치소에게) 모양혜는 정신 나간 물건이다.
뭔 짓을 할지 모르니, 내 명 없인 결코 안에 들이면 안된다!
치소 : 예, 마마.
왕자실 : (무르추에게) 궁으로 가, 하호개 장군에게 군살 보내라 해!
무르추 : 알겠습니다, 마마!
왕자실 : 뒷문으로 나가거라!! (무르추를 보고) 뛰어라!! 어서!!
씬3. 낙랑국, 청해헌 정문 앞/정문 안 (밤)
모하소, 동고비를 데리고 서둘러 걸어온다.
대문 안쪽에 빗장을 단단히 걸고 지키는 청해헌 종복들.
부달, 화를 내고 있다. 모양혜, 살벌한 눈으로 보고 있고.
부달 :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문 열지 못해!!
모하소 : 태대부인 마님을 밖에 세워두고, 뭣들 하는 게냐!
치소 : 차후(次后)마마 허락 없인 열지 못합니다.
모하소 : 차후마마? (씁쓸하게 웃고, 표정 바뀌며) 열어라.
웃달 : .. (치소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동고비 : 치소 니가, 여관장 된다고 설치는건 안다만!
그래, 니 말대로 차후마마는 무섭고, 원후(元后)마마 되실 우리 대부인마님은 두렵지 않아?
치소 : (무시)
동고비 : (시하인에게) 열게.
시하인 : .. (바닥에 부복한다. 모하소를 보며)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버러지 같은 목숨입니다..
차라리 원후마마 손에 죽고 싶습니다.
모하소 : .. (기가 막혀 보는)
부달 : (발로 차며) 청해헌 것들아, 다 죽고프냐!! 얼른 열지 못할까!! (반응 없자) 이것들이!! (모양혜를 보고) 어쩔까요?
모양혜 : 빠수든. 태우든.
부달 : 홍송이라.. (단단한 문을 만져본다)
모양혜 : 내 손으루 하리!! (버럭 지르고) 흐응, 지깐 것들이 안 연다고 못 들어가!
동고비 : (시하인과 차소를 노려보고) 다 내쫓아버리십시오, 마님.
모하소 : 가여운 것들이다.. 선택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상전으로서 할 짓이 아니지.. (문으로 다가간다)
동고비 : (깜짝 놀라) 제가 하겠습니다.
모하소 : 너는 가 후원채 치우고, 손님 모실 채비부터 해라.
모하소, 빗장에 손을 대고 열려고 하는데.
부달,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발로 찬다. 문이 부서지는. (동고비, 문 부서지는 바람에 놀라, 후원채로 못 갔다)
웃달, 왕자실에게로 달려간다.
씬4. 낙랑국, 청해헌 왕자실의 침소 (밤)
왕자실, 웃달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왕자실 : 이 일을 어쩔꼬.. 집에 군사들을 어쩌자고 다 궁으로 보냈을까..
라희 : (놀리는) 어머니가 겁내는 사람도 있네요~
왕자실 : 라희 너 말고,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딨어!
라희 : 외숙모.
왕자실 : 똥이 무서워 피하던?
라희 : 외숙모가 똥인가요?
왕자실 : 살다보믄 사생결단, 정면으루 승부를 가려야 할 때가 있구, 피해야 될 때가 있고.
정신 나간 인간은 피해야지, 맞서선 안되는 게야. (웃달에게) 장신구 빼라.
웃달, 왕자실의 머리 뒤꽂이를 뺀다. 왕자실, 팔찌와 귀걸이 등을 빼는.
라희 : (문쪽으로)
왕자실 : 어딜 가!
라희 : 외숙모한테 인사드릴라구요~
왕자실 : 까불지 좀 마라! (라희의 어깨를 잡고) 밖에 나와선 안된다. 절대로!!
씬5. 낙랑국, 청해헌 정문 안 (밤)
모하소, 모양혜에게 읍한다.
모하소 : .. 오셨습니까?
모양혜, 모하소의 뺨을 철썩- 때린다.
동고비, 놀라서 “대부인 마님!!” 하며 다가가면, 모하소, 손 들어 말리고.
모하소 : .. 후원채로 가시지요. 먼 길 오시느라 시장하시겠습니다.
모양혜 : 네년도 자실이 년에게 붙었더냐! 최리를 왕 세우자고, 두 년이 쑥덕쑥덕 내 남편을 같이 죽였더냐!!
모하소 : ..
모양혜 : 흥!
모양혜, 손으로 코를 잡고, 바닥에 휑- 풀어 던진 뒤, 성큼성큼 왕자실의 후원 쪽으로 간다.
씬6. 낙랑국, 청해헌 후원 일각 (밤)
여기저기 등불이 밝혀져 있다.
모양혜, 부달·탁치와 함께 걸어온다. 청해헌의 가노들, 검과 몽둥이를 들고 막는다.
시하인, “차후마마, 분부시다!! 궁에서 군사들 올 때까지, 차후마마 처소로 못가게 해야 한다!!” 하며, 막는.
시하인 : 안됩니다!! 이곳은 칼을 지닌 채 들어올 수 없습니다!!
탁치 : 개소리!! (칼을 든 시하인을 베어 버린다)
모양혜 : 자실이 네 이년!! 당장 나오지 못할까!!
왕자실, 걸어온다. 뒤따라 나와, 전각 뒤에 숨어 빠끔히 보는 라희.
치소, 뛰어서 오고.
왕자실 : 언니 오셨어요?
모양혜 : 누가 네년 더러 언니라 부르라던!! (귀를 거칠게 부비며) 귀 가렵다!!
왕자실 : 언니도 참.. 오라버니 아낼 뭐라 부르나요? 스무해 넘게 언니~ 부르고 살았는데 이제 와 태대부인이라 부르는 건
우리 사이에 그렇잖아요.
모양혜 : 뭐라!
왕자실 : 오라버니 일은 참 안됐어요. 갑작스레 진심통(眞心痛)이라니.. 하늘도 무심치..
모양혜 : 진심토옹? 니년이 죽인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자실이 네년이 안다.
왕자실 : (무시하고) 안그래도, 대관식 올리고 빈청에 폐하와 조문 가려 했답니다.
모양혜 : !! (눈에 불이 난다)
왕자실 : 상주가 이리 오라버니 빈청을 비워두심 어쩝니까?
모양혜 : 그이가 내 가슴 안에 있는데. 빈청이 따로 있느냐!! 내가 가는 곳이 다 빈청이지!!
모양혜, 화살과 살대 사이에 기름먹인 베뭉치가 달린 화살을 꺼내 옆에 있는 등불에 불을 붙인다.
왕자실 : 뭐하는 거에요, 지금?
모양혜 : 네년이 내 남편을 얼음에 재워 보냈으니, 자실이 널 태워 죽이려는게다!!
모양혜, 화살을 왕자실을 향해 날린다.
동고비와 함께 들어오던 모하소,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모하소 : 아우님!!!
라희 : 어머니이!!! (전각 뒤에서 달려온다)
왕자실, 몸을 비키려 하는데 엄청난 힘이 실린 화살이 소매를 꿰어, 왕자실을 문에 박아버린다.
왕자실, “으악!!” 비명을 지르는데 옷에 불이 화르륵- 붙는다.
라희 : 어머니이!!!
불길에 휩싸이는 왕자실.
라희, 허리 안쪽에 찬 단도를 꺼내들고 달려간다.
모하소, “아우님!! 라희야!!” 하며 뛰어 올라간다.
라희, 왕자실의 옷자락을 잘라내기 시작한다.
라희, “엄마!! 엄마아!! 엄마아!!!” 눈물을 흘리며 옷을 자르는. (Dis)
씬7. 낙랑국, 왕검성 일대 (몽타주)
(소리) 위급을 알리는 긴 뿔소리와 북소리.
청해헌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이 왕검성 일대로 번져간다.
밤하늘을 밝히는 화재의 불길과 시커멓게 하늘로 타고 오르는 연기.
사람들, “불이야!! 불이야!!!” 소리치며 우왕좌왕한다.
왕검천에서 나무통에 물을 받는 군사들이 일렬로 서있다.
소와 말에 연결된 수레에 물이 담긴 통을 싣고.
군사들, 불길을 잡기 위해 물을 끼얹고, 모래를 끼얹고. 나뭇가지로 불길을 두드려 잡고.
화재에 다친 사람들을 꺼내 수레에 태우고.
모하소, 구휼소로 이송된 환자들을 동고비와 함께 치료하는 모습. (Dis)
씬8. 차차숭의 천막극장, 숙소 (다른날/낮)
일품, 식은땀을 흘리며 잠들어 있다.
미추, 짜증난 얼굴로 서서 보는.
자명, 일품의 땀을 옷소매로 닦아주다가.
자명 : (미추에게) 의원님한테 데려 갈꺼에요.
미추 : 먹구죽을래두 돈 읎다아.. 응!
자명 : 지난번 공연 때, 머리꽂이 받았잖아요!
미추 : 야, 이 기집애야!! 행카이한테 다 처들이믄. 다음 공연 때까지 다들 굶냐?
자명 : 우리 오빠 없음, 어차피 공연두 못하잖애요!
미추 : 녹림호걸 하구 9년, 왕망이 놈부터 치믄 17년이나 전쟁질 했어.
이런 판국에 기예 찾는 인간들이 흔해! 의원? 무슨 귀족집 아들·딸이야!
자명 : 그럴지두 모르지, 뭐~
미추 : 사람은 당장이 중요한 거야. 옛날 옛적에 금으루 만든 소를 타구 다녔어두, 지금 돼지우리서 살믄 돼진 거야.
자명 : 그러다 울 오빠 죽으믄요!
미추 : 죽구·사는게 대수야!! 저기 동구밖에만 나가봐! 전쟁통에 들썩은 시체 뼈다귀가 산이야, 산!!
자명 : (짜증이 나, 온몸을 흔들며) 아줌마아!!
미추 : (OL) 생떼 부리지 말구, 있다 죽이나 한 술 끓여 멕여.
미추, 문쪽으로 간다.
자명, 골이 나서 입을 빼물고 미추의 뒷모습을 째려본다.
씬9. 차차숭의 천막극장, 앞
차차숭, 아이들과 함께 해안에 연습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미추, 나온다.
차차숭 : 행카인?
미추 : 아, 몰라·몰라·몰라. 뿌쿠년이 어찌나 사람을 들뽂는지. 의원한테 안데려간다구.
차차숭 : 뼈대가 강골인데, 꼭 일년에 한번씩 이맘때믄 저러네.. 의원한테 함 보여보믄.. (눈치보는)
미추 : 죽구·사는건 지 운명이지!! 지금껏 산 것두 덤이라 치믄 많이 살었어! (애들한테) 가자!!
미추, 아이들을 끌고 간다. 차차숭, “에이.. 말은 엄청 살벌하게 해..” 하면서 예의 희희낙락 구호를 선창하며 간다.
씬10. 차차숭의 천막극장, 숙소
자명, 찬물이 담긴 나무함지에 수건을 담갔다 짜서 일품의 이마에 올린다.
자명 : (가볍게 흔들며) 오빠, 오빠아.. 정신 줌 차려봐아.. 죽이라두 먹어야 기운차리지.
일품 : ..
자명 : 후우.. 죽 먹구 뭔 힘이 나나.. (궁리하는)
씬11. 차차숭의 천막극장, 마당
새끼 돼지 한 마리가, 꿀꿀- 거리며 우리에서 뛰쳐나온다.
자명, 중국식 부엌칼을 들고 쫓아다닌다.
자명 : 거기 줌 서봐! 그냥 뒷다리살만 (손바닥을 오므려 내밀고) 쪼끔 주면 돼~ 진짜 쪼끔만 떼 갈께~
돼지, 잠시 멈춘다.
자명, 슬라이딩해서 돼지를 잡는다.
자명 : 잡았! (다..를 채 하기도 전에 도망가는 돼지) 야, 이 나쁜놈아!!
자명, 돼지가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자명 : 왜 도망가구 난리야.. 우리 오빤 어쩌라구우..
(하다가) !! (좋은 수가 생각났다. 칼을 집어 던지고, 차차숭의 방쪽으로 뛰어가는)
씬12. 차차숭의 천막극장, 차차숭의 방
자명, 방을 뒤집어엎고 뭔가를 찾고 있다.
자명 : (바구니를 엎고, 옷궤를 뒤집고 하면서 찾는) 아줌만, 어따 둔거야..
자명, 옷을 뒤지던 손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한다.
자명, 방바닥을 쿵쿵, 굴려본다. 귀엽게 미간 찌푸리고, 조금씩 옮겨가며 발을 굴려, 울림소리를 들어본다.
자명 : !!
자명, 엎드려서 바닥을 군밤 주듯 손으로 콩콩- 친 다음, 귀를 바닥에 대고 들어본다.
자명, 짚방석을 들어내고 손으로 나무바닥을 떼어내면, 나무로 짠 작은 궤가 들어 있다.
자명 : 흥~ 꽁꽁 숨겨 노면, 못찾을 줄 알구~
자명, 궤를 열어 바닥에 우르르- 쏟는다. 문득 아기옷(7부, 씬47의 옷)이 눈에 뜨인다.
차차숭이 태우려던 갓난 자명의 배내옷이다.
자명, ‘吉祥’이라는 글자가 수놓인 비단 배내옷을 들고 본다.
자명 : 웬 갓난쟁이 꺼? (글자를 이리 들고, 저리 들고 본다) 꾸불꾸불 뭐야, 이게....
(눈을 바짝 가져다 보다, 말라붙은 검은 피 얼룩을 보고) 뭐 묻었네? (만져본다) .. 피? 애기옷에 왜..??
씬13. 동모현, 바닷가
호곡,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낙랑이 있을 바다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차차숭/(소리) : 애 둘이 탄 삿갓배를 봤느냐?
호곡, 무심히 별 관심 없다는 듯 바다 저 멀리를 본다.
카메라, 호곡이 앉은 바위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소소와 묘리를 비롯한 아이들, 공중제비 돌며 반환점을 돌고 있고.
차차숭과 미추, 한 사내(동고비에게 고용된)와 바위 쪽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호곡, 앉은뱅이라 차차숭과 미추를 보지 못한다)
사내 : 사내애는 네 살. 갓난 여자아인 염통에 산호 뒤꽂이가 꽂혔고. 하늘색 배냇저고리에 길상,이란 자수가 있네.
호곡 : .. (귀를 기울인다)
차차숭 : 낙랑땅에서 물길 따라 일루 온게 확실해요?
호곡 : ! (눈이 빛난다)
사내 : 장담은 못하지. 물길이 여러 곳이니..
미추 : 찾아주믄 얼마나 줄껀데요?
사내 : 내 몫에 삼할.
미추 : (솔깃) 그 몫이 얼만지 알아야, 삼할이 얼만지 알지. (하는데)
차차숭 : (OL) 못봤어요.
사내 : (미심쩍은 듯, 미추를 본다)
미추 : 요새 부쩍 당신 같은 사람이 많아. 애들 데리구 연습 나오믄, 하루에 두·세 명은 꼭 물어보네. 귀찮애서 한 소리야.
사내 : 정말이오?
미추 : 뻘에 빠트린 콩알 하나 찾기가 쉽지. 일루 흘러왔는지·안왔는지 모를 애들을 어찌 찾아.
호곡 : .. (인상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한다)
씬14. 차차숭의 천막극장, 차차숭의 방
자명, 배내옷을 들고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인서트) 소소와 자명, 싸우고 있다.
소소, 자신을 할퀴려고 하는 자명을 확- 밀쳐 넘어트린다.
소소 : 야, 뿌쿠 너! 나한테 까불지 마!! 너랑 행카이랑 너덜너덜한 삿갓배 타구 떠내려 왔을 때, 내가 젤 먼저 찾아줬어!
너 가슴에 산호뒤꽂이 박혀서 피 막 흘리구 죽어갈 때, 내가 살려줬다구!
자명 : ... (배내옷을 본다) 뭐야.. 그럼 이게 내 꺼? (글자를 본다) 이게.. 내 이름이야?
(만져보다가, 손길 멈추고) 누가 모, 관심이나 있대!! 흥!! 흥흥!!!
자명, 일부러 센 척 하면서 배내옷을 던져 버린다. 다른 옷으로 돌돌 뭉쳐 놓은 것을 턴다.
옷이 풀리면서 비단주머니가 나온다. 비단주머니에서 왕자실의 뒤꽂이(4부 씬34의 산호뒤꽂이)를 찾았다.
자명 : (꺼내들고 뒤꽂이를 보다가) 으응..? 이거랑 쫌 달랐는데.. (갸웃갸웃)
(플래시) 12부, 씬28
왕자실, 머리에 꽂고 있던 뒤꽂이를 빼서 차차숭의 발치에 던진다.
자명 : .. (비단주머니에 손을 넣고, 공연 할 때 받았던 뒤꽂이를 꺼낸다)
자명, 자신의 심장에 박혔던 뒤꽂이를 들고 본다.
자명 : (가슴을 한 손으로 눌러 본다) 왜.. 여기가 갑자기 쿡쿡, 쑤시냐..
씬15. 동모현, 바닷가
차차숭과 미추, 멀어져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본다.
차차숭 : 내 잠잠하다가, 갑자기 왜들 이러지?
미추 : 그러게 이게 좋은일인지·나쁜일인지 도대체 감이 안오네..
호곡 : .. 산호 뒤꽂이에 염통 찔린 계집아이라.. 십이년 전.. (골똘히 생각하는)
(플래시) 삿갓배에 실려 가던 자명과 일품의 모습.
호곡 : ! (눈이 빛난다)
호곡, 자신이 앉은뱅이라는 것도 잊고 일어나려다가 바위에서 개펄로 내동댕이쳐진다.
차차숭과 미추, 호곡의 나무로 만든 보조의지대가 떨어지는 우당탕- 소리를 듣는다.
씬16. 동모현, 바닷가 호곡 있는 곳
차차숭과 미추, 달려와서 보면. 개펄에 곤두박질쳐진 호곡, 몸을 일으키고 있다.
차차숭 : 어, 대인!! (잡아주려)
호곡 : (거칠게 쳐내고 앉는다)
차차숭 : 불편하신 분이 여긴 어떻게..?
호곡 : 잊지 않기 위해서.
차차숭 : 예에?
호곡 : (쓸쓸한) 내가 떠나왔고.. 내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곳을 잊지 않으려고.
미추 : 아오·아오 어렵네요. 골 아프다.
차차숭 : 거기가 어딘데요?
호곡 : 저 바다 너머에, 내 주군이 묻히신 땅... (표정 변하고) 너희가.. 배를 (하다가, 멈춘다)
차차숭 : 배가 왜요?
호곡 : .. (말없이 나무의지대를 팔목에 끼고, 기기 시작한다)
씬17. 동모현, 바닷가 아이들 있는 곳
호곡, 기어가다 멈추고 아이들을 본다.
호곡 : 저것들 중에.. 최리에 딸년이 있다?
호곡, 누가 자명인지 알 수가 없다. 소소, 묘리의 얼굴을 차례로 훑어본다.
호곡, 자신의 앞에 마치 유헌이 나타나 생시처럼 서있는 환영이 보인다.
호곡 : 대왕!!
유헌 : .. (그저 미소만 짓는)
호곡 : 군자보수는 십년미만(君子報讐 十年不晩)이라 했습니다.. 이 몸 병신이 됐으니, 그보다 길었습니다만..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폐하..
유헌 : (고개를 끄덕인다)
호곡 : 끝이 보입니다, 폐하!! 하하하- 하하하하-
호곡과 유헌, 서로 마주보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차차숭과 미추, 멀리 떨어져서 호곡을 본다.
미추 : 맛 간 인간이지?
차차숭 : 글쎄, 내 눈엔 사연 많아 뵈는 인간인데..
미추 : 흥! 시절이 어수선한데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딨어? 뿌쿠·행카이, 찾는 사람들한테 알리구 돈 좀 챙기는게 낫잖애?
차차숭 : 먹을돈·못먹을돈 못가리고 아무거나 받아 처잡수믄, 똥구멍 막히는 수가 있다아.
미추 : 잘하믄 부모 찾아주는 거구.. (하다) 그래,그래,그래! 당분간 두구 보자. 못 먹을 돈인지, 먹어두 되는 돈인지!
나두 키운 정 있는데, 죽을 자리루 애들 밀어넣진 않어!
씬18. 동모현, 어느 길
자명, 아픈 일품을 나무로 만든 일종의 환자이송썰매에 눕혀 천으로 고정 시키고. 허리에 끈을 묶고 의원에게로 끌고 가고 있다.
일품 : 으음... (신음을 흘린다)
자명 : 쫌만 참아. 의원님한테 가구 있어.
일품 : (신음소리가 커져 간다)
자명, 썰매를 나무 아래 멈추고 일품에게 간다.
자명 : 오빠? 오빠아??
일품, 어지러운 꿈을 꾸고 있다.
(인서트) 4부,씬9/4부,씬47
일품: 엄마아~~ (해맑게 웃으며 달려가 달개비에게 안긴다)
달개비, 일품을 삿갓배에 안아 올린다.
달개비 : 그곳이 용궁이면 용궁으로 따라가고, 물결 따라 애기씨 가시는 길 어디든. 엄마 대신 네가 시중들어드려야 해...
일품 : 엄마아!!! (소리치며 잠에서 깨어난다)
자명 : 오빠?
일품 : (주위를 돌아본다, 썰매에 자신이 누워있다) ..
자명 : 의원님한테 데꾸 갈려구..
일품 : (일어나며) 괜찮아, 이제.
자명 : 돈 이써!!
일품 : 쓸데없는 소리. 무슨 돈이 있어, 니가? 있어두 이젠 괜찮아.
자명 : (보다가) 엄마, 꿈 꿨어?
일품 : 가끔씩 그래. 어떤 아줌말 봐. 꿈에선 분명히 누군지 알았는데.. 깨면 기억이 안나.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머릿속이 얼룩덜룩해.
자명 : 기억안해두 돼.
일품 : 그 아줌마, 아마 우리 엄말 꺼야...
자명 : 엄마 찾고 싶단 말 취소하께.
일품 : 오빠가 찾아줄꺼야. 약속했으니까 꼬옥 지켜.
자명 : 싫어!! 찾지마아!! 절대 싫어!! 우리 엄마·아버진 미친 사람들일 꺼야!! 안그럼.. 나랑 오빨 그렇게 할 리가 없잖아!!
(눈물이 쏟아진다)
일품 : (놀라는) 뿌쿠야. 무슨 일 있었어..?
자명 : 찾지마아. 찾지마아.. 찾지 않는다, 그래.. 이젠 왜 버렸나 물어보구 싶지 않애.. 싫어, 오빠..
일품 : ..
자명 : (눈물이 그렁해서) 오빠가, 뿌쿠한텐.. 엄마구 아버지잖아. 난.. 그걸루 됐어. 엄마 같은건.. 없어두 돼..
일품, 자명을 와락- 가슴에 당겨 끌어 안아준다.
씬19. 낙랑국, 왕검성 미앙전(未央殿) 라희의 침소 (밤)
(자막) 미앙전(未央殿), 라희의 처소
무르추와 웃달, 라희의 손을 치료하고 있다. 손등과 손가락에 약을 바르려는.
문 열리고, 모하소 들어온다. 굳은 고래기름이 담긴 작은 합 들고.
무르추와 웃달, 일어나 “원후마마..” 하며 읍하고.
라희, 모하소를 본다.
라희 : .. (냉냉한)
모하소 : .. (라희를 보다, 시비들에게) 내가 하마. 다들 나가 있으렴.
무르추/웃달 : 예, 마마.. (나가려면)
라희 : 됐어, 그냥 있어!
무르추/웃달 : .. (눈치보다) 밖에 있겠습니다.. 공주마마. (문쪽으로)
모하소 : (라희를 보고) 요즘은 왜 엄마한테 오지 않는 거냐..
라희 : (뾰쪽한) 바빴어요. 어머니 돌봐드리느라구.
모하소 : (침상에 걸터앉으며) 어디보자.. (라희의 손을 잡고) 물집이 가라앉아 다행이구나. 새살 돋을 때까지 얼마나 쓰라릴까..
(입가로 가져가 호호- 분다)
라희 : 가뜩이나 쓰라린데, 뭐하루 뜨건 입김을 불어요! (손을 뺀다)
모하소 : .. 엄마가 생각이 부족해서 (합을 열며) 고래기름이란다. 발라주마.
라희 : 됐어, 냄새 나.
모하소 : 새살 돋는데 좋아. (바르려는)
라희 : 엄마가 성시장(誠侍長)이에요? 좋은 약 있거든요, 성시원(誠侍院)서 가져온.
모하소 : .. (라희를 본다)
라희 : 피곤해요, 잘래요. (외면한다)
모하소 : 그래. 약 잘 바르고, 자렴. 잠결에 가렵다고 긁으면 안된다.. 흉져. (문쪽으로)
라희 : (보다) 다시 물어볼께!
모하소 : (돌아본다)
라희 : 엄마 딸 자명이하구, 나하구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꺼야?
모하소 : (한숨) ..
라희 : 자명이구나. 알았어! 빨리 나가요!
모하소 : 왜 자꾸 그런 걸 물어 니 스스로 상처를 내느냐. 마음은 의심하는 게 아니란다.
이 다음에.. 사랑을 하게 돼두, 그 사람 마음을 시험하면 안된다.
라희 : 나가요, 빨리. 졸려·졸려·졸려!!
모하소 : .. (안타깝게 본다)
씬20. 동, 미앙전(未央殿) 라희의 침소 마당 (밤)
모하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고비와 함께 걸어간다.
(라희의 소리) : 엄마아!! 엄마, 엄마!!!
모하소, 돌아보면 라희가 달려온다.
라희, 달려와 모하소 앞에 선다.
라희 : 엄마가 싫은게 아냐!! 싫어진게 아니란 말야!!
모하소 : (본다)
라희 : 넘 보고 싶어서, 매일·매일 영안전(永安殿)에 엄마 보루 갔었는데.. 자꾸만·자꾸만 엄마 말이 생각난단 말야.
(눈물이 고인다)
모하소 : ..
라희 : 자명일 건질꺼라구.. 나야 죽든 말든, 자명일 구한다는 엄마 말이.. 여기서, (자기 귀를 아프게 두드리며)
여기서 자꾸 들린단 말야!
모하소 : (키 높이로 앉아, 라희의 손을 잡는다) 고막 다친다.
라희 : (눈물이 난다) 엄마가 나쁘잖아, 엄마가 나뻤잖아.. 엄마가 나빠..
모하소 : 엄마한텐.. 자명인 자명이데루, 넌 너데루 소중한데.. 그걸론 안되겠니..
라희 : 안돼, 싫어. 엄만, 그냥 내 엄마야. 죽은 자명이 엄마가 아니라, 내 엄마라구.
모하소 : 아가..
라희 : 난 반수전 어머니 말구, 엄마부터 물에서 구해줄껀데.. 엄마가 나한테 이럼 안되잖아... 엄마가 나쁘잖아.. 엄마가..
라희, 모하소의 가슴을 주먹으로 콩콩- 때리며 운다.
모하소 : .. 엄마가 잘못했다.. 라희, 네가 이리 가슴 아파하면.. 엄마가 슬퍼서... 울지마라.. 아가...
모하소, 라희의 눈물을 닦아주다 꼭 끌어 안는다. (Dis)
씬21.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 침소 (다른날/낮)
숯불화로에 얹힌 약탕관이 끓고 있다.
다른 약탕관의 약을 베보로 짜는 시녀장. (아미·술이는 밖에 있다)
송매설수, 다탁에 앉아 있고. 시녀장, 약사발을 가져온다.
시녀장 : (망설이는)
송매설수 : 왜?
시녀장 : 지난번과는 약재가 다르옵니다. 애엽(艾葉), 황백(黃栢), 지모(知母), 조금(條芩)은, 독하긴 해도 견딜만 하셨지만..
이번 약은 아교주(阿膠珠)와 향부자(香附子)입니다.
송매설수 : 어쩌겠느냐. 그 약으로 월경이 끊어지질 않았으니.
시녀장 : 독성이 강해, 오장육부를 전부 훑어 내릴 꺼라 했습니다.
송매설수 : 그래 봤자, 죽기 밖에 더하리.
시녀장 : 마마..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송매설수 : 이리다오.
시녀장 : .. (차마 못주는)
송매설수 : (일어나서, 소반의 약사발을 들고, 마시는데) 웈!! (그대로 약이 입에서 흘러내리며 토하고 만다)
시녀장 : 마마!!!
송매설수 : 다시 짜오너라.
시녀장 : (명주 손수건으로 입가와 약에 젖은 옷을 닦아주며) 안됩니다.
송매설수 : 양덕아.
시녀장 : 이 년, 차마.. 마마께 죽을 약을 드릴 수 없습니다.
송매설수 : 호동이 최리에 딸과 혼인해 아들을 낳으면, 어차피 나는 죽는다. 더 잃을게 없는데, 내 무엇이 두렵겠니? 가져오너라..
씬22. 고구려, 국내성 수양전 호동의 침소
여랑, 호동에게 옷을 맞춰주려고 옷감을 고르고 있다.
우나루, 차 마시면서 보고 있고.
솔비, 소리없이 움직이며 옷감 흐트러진 것 챙기고, 차 따르고..
여랑 : (우나루에게) 이게 어때요?
우나루 : 내가 보면 뭐 아오? 음.. 공주가 해 입으면 이쁘겠구만.
여랑 : 당신두~ (곱게 흘기고, 호동에게) 어떠니? 맘에 들어?
호동 : 관심 없어요.
여랑 : 낙랑국 공주한테 청혼하루 가는데, 한껏 근사하게 빼 입어야지~
호동 : 전 진짜 라희 그 기집애가 싫습니다.
여랑 : 최리 딸, 이름이 라희냐?
호동 : (고개 끄덕인다)
여랑 : 이름 이쁘구나~ 라희.
우나루 : 당신 이름만 영 못하오. 여랑이 훨씬 이쁘오~
여랑 : 쯧.. (짐짓 흘기고)
호동 : 이름값 못하는 계집아이예요. 뚱뚱하고, 못났어요.
여랑 : 여잔 팔색조 같은 거야. 지 에미가 그리 예쁘다던데, 설마 그대로 크겠니? 살두 빼구 예뻐지겠지.
호동 : 성질두 진짜 더러워요. 독한데다, 칼 휘두르는 꼴 보면 정나미가 뚝, 떨어져요.
여랑 : 오호~ 대신 강단은 있겠구나. 한 나라에 공주구, 고구려 왕자비가 될라믄 여자라도 뚝심이 있어야지.
우나루 : 이보게, 호동왕자. 불 끄구, 침상에 누우면 여잔 다 거기서 거기야.
호동 : 스승님까지..
우나루 : 한 나라에 왕자·공주가 눈 맞아 혼인하나? 나라에 이익을 위해서, 살신성인하는 맘으로다 하는 거지.
성질 더러움 어떻고, 못생겼음 어떤가?
호동 : 알고 있습니다. 제 처지가, 찬밥·더운밥 가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거.
여랑 : 만에 하나, 최리 딸이 네 청혼을 거절하면 어쩌니? 지난번 네가 걔 뺨을 때렸다면서?
호동 : (여랑을 보며) 말씀 드렸지요? 나 호동, 아바마마 뒤를 이어 고구려왕이 되겠다고.
솔비 : .. (손은 손대로 놀리면서, 눈빛을 빛낸다)
호동 : 그 계집아이가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라 해도, 난 그렇게 할껍니다.
반드시 최리에 딸과 혼인해, 낙랑국을 고구려에 복속시킬 껍니다.
호동, 다부진 눈빛으로 여랑과 우나루를 본다.
여랑, 미소 짓고. 우나루,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씬23.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 침소
시녀장, 다시 약을 짜고 있다.
송매설수, 솔비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송매설수 : 최리 딸 가랑이 사이라도 기겠다?
솔비 : 이 년 왕자마마 말씀 그대로 전해 올렸사옵니다.
송매설수 : .. (고개 끄덕이고) 수양전으로 그만 가봐라.
솔비 : .. (읍하고, 문쪽으로)
송매설수 : (시녀장에게) 아직 멀었느냐?
시녀장 : (약을 가져왔으나 또 망설여진다) 마마..
송매설수 : 듣지 않았느냐? 호동이도 살아보겠다, 저토록 필사적인데.. 내가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되겠느냐?
시녀장, 약을 가져온다.
송매설수, 사발을 들어 단숨에 마신다. 구역질이 치밀자, 두 손바닥으로 입을 눌러 막는다.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시녀장 : (손바닥으로 송매설수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이..년이 대신 할 수 있다면...
송매설수 : .. 으음.. (신음을 참는)
시녀장 : 우리 마마께.. 하늘은 왜 이리도 모지신건지...
송매설수 : (손을 떼고, 길게 숨을 내쉰다) 이제 됐다.
시녀장 : (얼른 다탁 위에 놓인 접시에서 생강편을 집어 송매설수의 입에 물린다) 장하십니다, 마마.
문 열리고, 아미와 술이 들어온다.
아미 : 마마. 편수전서 부르시옵니다~
송매설수 : (본다)
술이 : 왕자마마 혼인 의논 하신다, 대왕마마께오서 찾으신답니다.
씬24. 고구려, 국내성 한 방
송옥구, 우나루와 을두지, 추발소, 호동, 청혼 예물을 논의하고 있다.
추발소, 두루마리에 적힌 예물 품목을 읽고 있다.
추발소 : 호피 석장, 백호모구(白狐毛?) 세 벌, 황옥, 백옥, 남옥 각 반 되.
을두지 : 호랑이 가죽 한 장은, 욍굉의 조문품으로. 한 장은 최리 대관 축하품으로. 다른 한 장은 라희공주에게 전해집니다.
송옥구 : 흰 여우 털옷은 여인네 옷인데 조문품으로 어울리는가?
을두지 : 한 벌은 최리의 첫부인에게, 두 벌은 각각 라희공주와 생모에게 각각 예물로 보내는 겁니다.
송옥구 : 아직도 더 있는가?
우나루 : (흘깃-보고) 반도 안 읽었는데요.
추발소 : 금괴 30짝. 불함송(不咸松) 세 아름드리 200주(株).
송옥구 : (소나무라는 얘기가 뜬금없다) 불함 소나무?
우나루 : 나무하면 역시, 우리 고구려에서두 마자수 찬바람 맞고 땡땡하게 큰 비류나부 불함송이 최고 아닙니까?
송옥구 : 그래서?
우나루 : 장가를 들면 고구려 전통에 따라 아들 낳아, 그 아들 장성할 때까진 처가살이를 해야지만서두..
송옥구 : (우나루를 본다)
우나루 : 하나 밖에 없는 왕자를 늙을 때가지 낙랑에 둘 순 없겠고.. 첫아이 낳을 때까지만 낙랑서 살아야죠~
그러자면 불함송으로 튼튼하게 신혼 전각 지어야하고~ 호동왕자님 좋겠다~ 흐흐~
추발소 : 비단 삼백 필, 베 사백 필 (하는데)
송옥구 : 하하- 하하하- (웃는다)
사람들 : (보면)
송옥구 : 비류나부 창고를 다 털라하는군. 청혼예물을 이리 내라 하니, 정작 혼인이라도 하면, 비류나부 뿌리를 뽑지 않겠는가.
을두지 : 왕자마마 대사에 외조부님이 이 정도는 내어주셔야죠. (미소)
송옥구 : 외할애비가 이 정도면, 폐하께서는 얼마나 내놓으시려고?
추발소 : 국고가 넉넉지 않습니다.
송옥구 : 왕굉에게 그리 퍼부으시더니, 쓸데없는데 헛돈 쓰셨군. (일어난다)
우나루 : (물품목록을 보며) 아직 다 안 읽었는데요..
송옥구 : 왕자에 혼인은 좀 더 기다려 봐야하네.
씬25. 고구려, 국내성 일각
송매설수, 시녀장과 아미·술이를 데리고 편수전으로 가고 있다.
송옥구, 걸어오다 송매설수를 본다.
송옥구 : (읍하고) 편수전으로 가십니까?
송매설수 : 아바님도?
송옥구 : 예. (시비들을 보다, 조금 떨어진 곳으로 송매설수를 데리고 간다) 호동과 최리에 결탁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송매설수 : 그이에 뜻이.. 확고합니다.
송옥구 : 호동이 놈 유일한 약점이, 받쳐 줄 외가가 없다는 것인데.. 최리가 뒷배가 돼준다면..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다.
송매설수 : 오나부를 움직여 보십시오.
송옥구 : 다들 이 혼사를 반길지도 모르지, 내심. 호동이, 우리 고구려가 현도·요동까지 가 애걸복걸 하지 않아도.
쌀과 보리, 고래기름과 소금을 가져올 길을 튼다면 누가 싫어하겠느냐.. (고개 젓는다)
송매설수 : 고구려에 왕비는 오직 비류나부에서 낼 수 있습니다.
송옥구 : 그런 작은 명분은 보다 큰 이익 앞에서 언제나 깨지는 법.
송매설수 : ..
송옥구 : (송매설수를 보다가) 매설수야.. 너, 안색이.. 아픈 게냐?
송매설수 : (아버지에게 위로받고 싶은) 예.. 몸이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송옥구 : (꾸짖는) 자기 몸은 스스로 돌봐야지.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외줄 타는 판국에, 아플 여유도 있느냐?
송매설수 : .. (섭섭한)
씬26. 고구려, 국내성 편수전
대무신왕과 호동, 여랑, 수지련, 차를 마시며, 청혼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여랑 : 난, 화장품하고 장신구를 내지요.
호동 : 고맙습니다, 고모님.
여랑 : 우리 호동이가 장가를 든다는데 뭔들 못하겠니. (손등 두드려주고, 수지련에게) 뭘 내시겠수?
수지련 : 축하하는 마음을 내지요.
여랑 : 뭐라구요!
수지련 : 궁에 들어온지 얼마 되질 않아서.. 가진 것이 있어야지요~ 어차피 오선전 마마하고, 큰아바님께서 준비하실 터이고..
(대무신왕을 보며) 제가 내어봐야 다 폐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요~ (방그레)
대무신왕 : 하하- 하하하- (웃는다)
호동 : .. (불안한 듯, 수지련과 대무신왕을 본다)
(내시장의 소리) : 오선전 마마께서 드시옵니다.
문 열리고, 송매설수와 송옥구 들어온다.
뒤따라 들어오는 내시장.
호동, 일어나 “오셨습니까?” 인사하며 송매설수에게 읍한다.
대무신왕 : 장인두 오셨군.
송옥구 : 이 늙은이도 명색이 할애비오니, 왕자마마 혼사에 간섭이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웃는)
송옥구, 대무신왕과 여랑, 수지련에게 각각 읍하고.
여랑과 수지련, 앉은 채 답례하고.
대무신왕 : 왕비 앉으시오. 장인도.
송매설수 : (앉고) 폐하 웃음소리에 편수전이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수지련 : (놀리는) 마마는 기쁘지 않으세요? 며느릴 보게 됐는데~
송매설수 : 당연히 기쁘지. 기쁘고말고. (호동에게) 흐뭇하구나. 네 벌써 장성해 혼인을 하다니.
호동 : 다 어마마마께서 정성껏 길러주신 은덕이옵니다. (일어나 가볍게 읍한다)
송매설수 : ..
내시장, 소리없이 송매설수와 송옥구에게 차를 따르고, 이야기 이어진다.
송옥구 : 청혼은 신중히 생각하셔야지 않겠습니까?
여랑 : 왜요? 성혼이 이른 나이 아닙니다. 호동 나이가 몇인데요.
송옥구 : (여랑에게 미소 지어주고, 대무신왕에게) 낙랑국 이번 대 화재로, 왕검성이 이틀이나 불타고, 민심이 흉흉합니다.
대무신왕 : 장인은 모르는게 없군.
송옥구 : (미소) 왕굉에 부인이 죽음을 맞게 되면, 왕굉의 부하들과 최리 간에 내분이 일어날 수 있지요.
대무신왕 : (듣는) 최리가 질꺼라 보오?
송매설수 : (진통이 온다. 진땀을 흘리며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송옥구 : 결과야 오직 하늘만이 알 일이나.. 가뜩이나 딱한 왕자마마 처지가 자칫 더 곤란해지면 어쩌나, 그저 걱정스럽습니다.
송매설수 : .. (진통이 점점 심해진다)
호동 : 최리는 지지 않습니다.
대무신왕 : 어째서?
호동 : 영호장원이 비옥한 남부칠현을 쥐고 있다하나.. 낙랑 십팔 현 중, 열한개 현이 최리 수중입니다.
더구나 왕굉이라는 수장을 잃은 남부칠현이, 무슨 수로 최리를 부수겠습니까?
송옥구 : 오호~ 그 말씀이 맞다 치고. 최리가 호동왕자를 사위로 받지 않겠다면요?
호동 : 최리는.. 반드시 고구려와 친선하려 합니다.
수지련 : 그 딸이 너를 원치 않을 수도 있잖니?
호동 : 저를.. 싫어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어마마마..
대무신왕 : 호동이에 청혼 사절로 장인이 낙랑에 다녀와야겠소.
송옥구 : 이 늙은이에게 그런 중책을요..?
대무신왕 : 왕실에 가장 큰 어른이고.. 무엇보다 장인도 나도, 우리 고구려에 절실한 것이 무언지를 잘 알고 있지 않소?
반드시 청혼 승낙을 받아와야 할 것이오.
송옥구 : ..
대무신왕 : 만약 최리에게 답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장인에게 그 책임을 묻겠소.
송옥구 : .. (웃는다)
수지련 : (송매설수를 본다) 아까부터 무슨 인상을 그리 쓰세요? 이 혼인이 마음에 안드십니까?
송매설수 : .. 그럴 리가.. (아프다)
여랑 : 진땀을 다 흘리네. 언니, 왜 그래요?
대무신왕 : 아픈 겐가..? 오선전으로 가 쉬게.
송매설수 : 송구하옵니다, 폐하.. 이만 물러가야겠습니다.
송옥구, 못마땅한 시선으로 송매설수를 보고.
송매설수, 대무신왕에게 읍하는데 그만 졸도하고 만다. 쓰러지는 송매설수.
대무신왕 : 왕비!! (자신도 모르게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여랑 : 어머나... 무슨 일이야..
송매설수 : .. (의식이 없고)
내시장 : 마마! 왕비마마!
대무신왕 : (내시장에게) 시의원(侍醫院) 대원감(大院監)을 어서 불러오라!
대무신왕, 쓰러져 있는 송매설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망설여진다. 손을 뻗어 송매설수의 머리를 안아주려다가 멈추고.
대무신왕 : (수지련에게) 뭘 그리 앉아있나! 어서 왕비를 안지 않고!
수지련 : 예, 폐하.. (일어나 다가간다)
송옥구와 호동, 서로 다른 심정으로 그 모습을 본다. (Dis)
씬27. 낙랑국, 왕검성 정소옥(淨所獄) 앞
(자막) 낙랑국 왕검성 정소옥(淨所獄), 귀족들을 가두는 감옥.
모하소, 동고비를 데리고 걸어온다. 동고비,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이고 있다.
군사들의 삼엄한 경계. 지휘관으로 마조가 있는.
마조 : (모하소를 보고, 읍하고) 원후마마께서 정소옥엔 어찌..?
모하소 : 영호장원 마님을 뵈러 왔네.
씬28. 동, 정소옥 모양혜 갇힌 곳
모양혜, 독방에 갇혀 있다. 귀족이 갇히는 곳이라, 제법 꾸며져 있다.
침상, 밥을 먹을 수 있는 다탁, 요강이 놓여 있다.
모양혜, 두 팔목에 쇠로 된 요(?,쇠뭉치는 달지 말고 쇠고리만)를 달고 있다.
옥문이 열리고, 모하소와 동고비, 마조 들어온다.
모하소, 모양혜의 팔에 달린 요를 보고 깜짝 놀라는.
모하소 : (파르르-) 이 무슨!!
마조 : 모씨부인은 대죄인입니다.
모하소 : 죄인이기 전에, 영호장원에 태대부인이시네! 죽일지언정 치욕을 주지 말아야하는 건, 여인들도 마찬가지네!
당장 풀어드리게!!
마조 : 요를 풀어드리면, 자결 하실 수도 있습니다.
모양혜 : 죽겠다 마음먹으면 방법은 많아. 혀를 깨물어도 되고. 저 벽에 대가리를 처박아도 되고.
동고비 : 태대부인 마님.. 그리 끔찍한 말씀을..
모양혜 : (기막혀하는, 마조를 보며) 이놈아! 영웅호걸인척은, 니들 사내들만 할 수 있는 줄 아느냐!
모하소 : (마조에게) 어서 풀게.
모양혜 : 그래, 빨리 풀어라! 내, 이 길로 뛰쳐나가 자실이년한테 갈테니!
불에 끄슬려 깔딱깔딱 한단 말은 들었는데, 숨은 끊어졌느냐!
씬29. 낙랑국, 왕검성 반수전(反修殿) 복도
왕자실/(소리) : 아아!! 아아아!!! (고통에 찬 고함소리)
라희, 손과 팔에 면 붕대를 얇게 감고 걸어온다.
왕자실/(소리) : 다, 나가거라!! 나가지 못할까!!
문 열리고, 의원들, 성시원(誠侍院)궁녀들, 쫓겨나온다. 치소, 함께 나오는.
라희, 문 앞에 서있다.
의원들과 궁녀들, 라희에게 읍하고.
라희 : 아직도?
치소 : (고개를 끄덕이고) 어찌나 아파하시는지.. 차마 이 년 두 눈 뜨고는..
의원 : 한시가 급하옵니다. 상처가 오그라 붙기 전에, 그나마 진물이 줄줄 흐르는 지금, 치료를 하셔야합니다.
라희 : (치소에게) 헌데, 왜!
치소 : 지난날 왕비마마, 낙랑 최고미녀라 불리셨잖아요. 지금 그 몸, 누구에게 보이고 싶으시겠어요?
라희 : 나한테 가르쳐 줘. 화상치룔 어떻게 하는 건지.
씬30. 동, 왕자실의 침소
왕자실, 침상에 누워있다.
왕자실, 타버린 머리를 숭덩숭덩 끊어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다.
무르추, 얼음 덩어리에 바늘을 대고, 망치로 쳐서 깬다. 웃달, 놋쇠 숟가락으로 박을 긁는다.
치소, 명주 붕대를 대야에 넣고 참기름과 콩기름을 한 병씩 붓는다.
라희, 미리 만들어 놓은 박속 으깬 것에 얼음 곱게 갈아 섞은 것을 가져와 침상에 걸터앉는다.
라희 : 지난해 늦봄에 따서, 얼음창고에 얼려둔 박이래요.
왕자실 : 필요 없다.
라희 : 덜 여문 박 속이랑 얼음가루랑, 황백피 달인물이랑 섞어 상처에 얹으믄 화끈화끈한 거. 열감이 가라앉는데요.
(목과 팔에 박? 으깬 것을 바르려 하면)
왕자실 : 치워라!!
왕자실, 손으로 쳐서, 박 담긴 그릇을 쳐낸다. 그릇이 깨진다.
놀라는 치소와 무르추, 웃달.
라희 : (치소에게) 명주붕대 가져와.
치소 : (명주붕대가 담긴 작은 대야를 가져온다)
라희 : (붕대를 꺼낸다) 콩 눌러서 짠 기름하구, 참깨 눌러 짠 기름에 적신 거에요. 감아줄께요.
왕자실 : 필요없다질 않아! (대야를 엎어 버린다)
라희 : 왜 이래요? 어머니 안죽었잖아요? 그럼 됐잖아요! 아픈거 하나 못참아요?
왕자실 : 몸이 죽어야만 죽는 건 줄 아니? 마음이 죽으면 사람은 죽는 거다. 난.. 이제 여자도 아니다..
라희 : 그렇게 낙랑 최고미녀 소리 듣고 파요? 그 나이에두?
치소 : 공주마마!
라희 : (치소에게) 쟤들 다 내보내!
치소, “나가 있어.” 하면, 무르추와 웃달, “예..” 하며 나간다.
왕자실 : (라희를 노려본다) 버릇없는 년.
라희 : 내가 버릇없는 년이면, 어머닌 철이 없잖아요. 어머니 그 몸, 아버지 말군 보여줄 사람 없잖아요?
어차피 아버진, 모하소 엄마한테 밖에 안가잖아요!
왕자실 : 그만하지 못하니!
라희 : 외숙모만 나쁜거 아니에요. 어머니가 시작했어요.
치소 : 공주마마!!
라희 : 오늘 공부시간에 스승님한테 배웠어요.
역지사지(易地思之), 백성들을 다스릴라면, 군왕은 백성에 마음이 될 줄 알아야 된다구.
왕자실 : 입 닥치라니!
라희 : 외숙모 맘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원인도 어머니한테 있으니까, 결과두 어머니가 책임져야죠.
왕자실 : 호호호- 호호호호- (웃는다)
라희와 치소, 뜨악해서 왕자실을 본다.
왕자실 : 그래, 세상사 모든 일, 자기 책임 아닌 게 없지. 오라버닌, 우리 모둘 죽이려다 그리 됐으니 그 또한 자승자박.
모양혜도 이제 댓가를 치러야지..
라희 : 어머니..
왕자실 : (치소를 보고) 으깬 박인지, 으깬 황백핀지 다시 가져 오너라.
씬31. 낙랑국, 왕검성 정소옥 모양혜 갇힌 곳
동고비, 다탁에 싸온 음식을 차리고 있다.
모양혜,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하소 : 밥은 편히 드셔야질 않는가?
마조 : .. (요를 풀어준다)
모하소 : 입맛이 없으시겠지만 끼니를, 잘 챙기셔야 합니다.
모양혜 : 뻐근하군. (손목이 저린다, 주무르고) 나중에 술이나 보내주게, 독한 걸로.
모하소 : .. 불편하실 테니, 시비를 넣어 드리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다, 윗옷을 벗어 요강을 덮고, 동고비에게)
병풍을 가져다 가려 드려라. 측소(厠所)가 따로이 없는데, 어찌 사람들 눈앞에서 드러내놓고 일을 보시겠느냐.
동고비 : 알겠습니다.
모양혜 : (피식- 웃고) 최리가 마누라 복이 있군. 자실이 년 덕에, 왕위를 꿰차고. 그대 같은 부인도 있고.
도형수(刀刑殊) 손에 목 떨어질 때 까진 자네 신세 좀 지세. 하하- (웃는다)
모하소 : .. 어찌 그런 말씀을.. (안타까운)
씬32. 낙랑국, 왕검성 대위전(大爲殿)
최리, 왕좌에 앉아 신하들과 모양혜 처리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최리와 신하들, 대위식 전이라 평상복을 입고 있다)
최리 : 태대부인을 어쩌자는 거냐?
하호개 : 당연히 요참(腰斬) 하셔야지요!
최리 : 하호개, 네 놈이 미쳤느냐!!
류지 : 이번 화재로 백성들 집이 예순일곱 채, 점포·여각이 서른한 채 불탔습니다.
목숨을 잃은 폐하에 백성만 해도 서른이 넘습니다.
최리 : (본다)
류지 : 모씨부인을 처벌치 않으시면, 백성들이 가만있겠습니까?
최리 : 안된다!
류지 : 허리를 베는 벌이, 너무 과하다면... 기시(棄市)를 하소서.
최리 : (OL) 내 어찌, 태대부인의 목을 자르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이러려고 왕이 되는 게 아니다! 다시 논하라!
최리, 왕좌에서 내려와 문쪽으로 간다.
류지와 하호개를 비롯한 청해헌의 가신들, 일제히 부복한다. “기시에 처하소서!! 기시에 처하소서!!” 소리친다.
최리, 밖으로 나가 버린다.
류지, 그 모습 보고 일어난다.
씬33. 열구현, 영호장원 빈청
옥관 얼음 속에 왕굉의 시신이 놓여 있다.
상주 왕홀과, 도찰 등의 가신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왕홀 : (옥관을 잡고, 왕굉의 시신을 보며) 형수님은.. 이제 어찌 되나요? 설마, 누나가 죽이진 않겠죠?
도찰 : 자실마님이라면.. 능히 그러실 수 있겠지요.
왕홀 : 누님을 만나 사정해 볼께요. (일어나는)
도찰 : .. 소용없습니다.
왕홀 : 그럼 어떡해요.. 형수님을 살릴 방법은 정말 없어요..?
도찰 : .. (답답한)
씬34. 낙랑국, 왕검성 진양궁 후원
최리, 홀로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씬35. 낙랑국, 왕검성 반수전 왕자실의 침소
왕자실, 발을 친 침상에 앉아 다탁에 앉은 류지와 이야기 나누는.
왕자실 : 한심도 하지. 한 달이 넘도록 결론을 못낸단 말이오?
류지 : 너무 완강하십니다.
왕자실 : 이번 기회 아니면 없네. 모양혜를 살려두면, 언젠가 낙랑국은 두 개로 쪼개지네.
류지 : 차후마마께서 폐하에 뜻을 돌려주십시오. 지금으로선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왕자실 : .. (고민한다)
씬36. 낙랑국, 왕검성 대위전 (밤)
(소리) 긴 뿔소리.
낙랑국의 타경관들, 작은 징을 치며 시간을 알리고 있다.
타경관 : 건시요!! 건십니다- 건시요!!
태감(太監/내시)들과 시녀들, 소반에 접시와 차를 놓고 걸어온다. 접시에는 만두가 놓여 있다.
씬37. 낙랑국, 왕검성 대위전 (밤)
최리와 가신들, 여전히 모양혜 처리 문제로 회의를 하고 있다.
태감들과 시녀들, 소리 없이 움직이며 최리의 상 위와, 가신들이 서서 먹을 수 있도록,
한쪽에 마련된 다탁(의자는 없다)에 차와 만두를 놓는다.
태감장 : (조용히, 최리에게) 돼지고기와 배추로 속을 채워 찐, 빵이옵니다. (김에 찐 빵이라는 뜻, 띄워서 발음하세요)
최리 : 치우라.
태감장 : 폐하.. 종일 끼니를 거르셨습니다.
최리 : ..
태감장과 시녀들, 소리 없이 물러난다.
최리 : 이제 결론을 내자.
하호개 : 부달, 탁치는 죄를 물어 요참하고, 영호장원 가신들도 그 죄를 함께 물어 태형(笞刑)에 처한 다음 노비로 삼고,
모씨부인은 목을 베소서!
최리 : 이 노옴, 하호개!!
최리, 만두접시를 날려 하호개의 이마를 때린다. 하호개의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
류지 : 옛 조선에는 팔조금법(八條禁法)이 있었고, 신생 낙랑국에는 열세 조항에 십삼금법(十三禁法)이 있습니다.
최리 : 모씨부인은 살아생전 왕장군이 가장 사랑하던 이다!! 아직 그 시신, 무덤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류지 : 국왕이 법을 어기면,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최리 : 내, 모씨부인 손에 얻어먹은 밥이 백 그릇이 넘어!
왕자실, 치소를 데리고 들어온다. 왕자실, 두건을 쓰고 있다.
최리와 신하들, 놀라서 본다. 신하들, “차후마마..” 읍하고.
최리 : 여긴 어쩐 일인가?
왕자실 : 병문안을 아니 오시니, 신첩이 올 밖에요.
최리 : 대위전은 정사를 논하는 곳이오. 부인이 있을 자리가 아니오.
왕자실 : 폐하께서는 영호장원 태대부인 처지만 안타깝고, 신첩은 생각지 않으십니까?
최리 : ..
왕자실 : 모양혜는 나를 시해하려 하였으니, 대역죄요. 백성들을 죽였으니 살인죄요. 신생 낙랑국을 어지럽혔으니 모반죄입니다.
최리 : 그만 가서 쉬시오.
왕자실 : 모양혜를 국법으로 기시한다 명할 때까지 신첩, 예서 한 발짝도 뗄 수 없습니다.
최리 : 내 결심은 변하지 않소. (치소에게) 어서 반수전으로 모셔라.
왕자실 : 그러면 나를 이리 만든 모양혜를 그냥 둔단 말씀입니까!!
왕자실, 두건을 확- 벗는다. 숭덩숭덩 탄 머리가 드러난다.
최리 : !
왕자실, 가슴 끈을 풀어 덧옷을 벗어 버린다.
통풍이 되라고 속옷을 입지 않고, 위쪽은 명주붕대로 감고 있다. (속바지 긴 것 입고 있다)
목부터 배꼽 아래까지 감겨 있는 명주붕대.
왕자실, 천천히 돌아선다. 붕대가 감기지 않은 등과 팔이 온통 불로 지져져 붉은 뱀이 꿈틀 거리는 듯하다.
최리 : !! (심한 충격)
신하들 : (모두 부복해 눈을 바닥으로 향한다) 차후마마!! 노여움을 거두소소..
왕자실 : 눈이 있으면 보십시오!! 나는 이제 여자도 아니고, 암컷도 아닙니다! 이 몸을 폐하께서 품어 주시겠습니까?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닙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최리 : 그만하오. 신하들 앞에서 이 무슨!! 가리지 못하오!
왕자실 : 신첩 여자도 아니니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 내가 이제 못보일게 뭐 있겠습니까!
왕자실, 돌아선 자리에서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신하들, 전부 부복한 자세로 눈물을 흘린다.
류지 : 차마 참담하여 비직들이 어찌 감히 마마에 옥체를 보오리까.
하호개 : 차후마마를 저리 만든 모씨부인을 죽이소소!! (이마를 쿵쿵- 바닥에 찧는)
신하들, 일제히 소리친다. “모양혜를 죽이소서!!/반수전 마마에 원통함을 풀어주소서!!”
치소, 왕자실에게 옷을 입힌다.
최리 : .. (암담해서, 시선을 멀리 둔다)
왕자실, 매듭을 묶으며 그런 최리를 바라본다. 얼굴에 끝냈다는, 표정의 미소가 떠오른다. (Dis)
씬38. 차차숭의 천막극장, 마당/차차숭의 방 (다른 날/낮)
자명, 차차숭과 미추에게 야단을 맞고 있다.
미추, 회초리로 자명의 종아리를 때린다.
일품, 잠긴 차차숭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다.
일품 : 열어주세요!! 단장님!! 아줌마!!
차차숭/(소리) : 시끄러워!
차차숭 : 행카이 너, 그러면 그럴수록 뿌쿠가 더 혼날 줄 알아!!
소소와 묘리, 아이들, 그 앞에서 보고 있는.
묘리 : (일품을 잡으며) 행카이. 그러지 마. 단장님, 화나심 진짜 무서워.
일품 : 우리 뿌쿠가 뭘 잘못했는데?
소소 : 맞을 짓 했잖어. 기집애 간두 크지, 어서 아줌마 물건을 훔치냐.
일품 : 내 동생은 도둑이 아냐.
소소 : 도둑이 왜 아냐? 몰래 들어가 물건 훔치믄 도둑년이지.
일품 : 우리 뿌쿤 도둑이 아니라니까아!! (소소의 멱살을 잡는다)
씬39. 차차숭의 천막극장, 차차숭의 방
짚방석 치워져 있고, 비밀 나무바닥이 열려 있다. 나무궤짝 꺼내서 쏟아놓은.
미추 : 요, 빌어먹을 기집애! 안 열어 봤음 깜쪽같이 몰랐을 꺼 아냐!
자명 : 아파요. 그만 때려요..
미추 : 손모가지를 똥깡- 뿌러뜨리든가 해야지. 어서, 못된 짓을 배워!
차차숭 : 잘못했다고, 다신 안그러겠다고 해!
자명 : 싫어요.
차차숭 : 어디서 고집을 빠락빠락 부려!
자명 : 잘못 안했어요..
미추 : 이래서 뱀을 구하면 구하지, 머리 검은 것들은 구해주지 말란 거야.
그러니 니 에미·애비가 버리는 거야! 이 못되 처먹은 도둑년아! 얼른 안내놔!
자명 : !! 내꺼.. 내가 갖는게 왜 도둑이에요.. (눈물이 흐른다)
미추 : 뭐? 뭐가 어째? 차차숭, 이게 지금 뭐랬어?
차차숭 : 뿌쿠, 너 다시 말해봐.
자명 : (품에서 산호뒤꽂이를 꺼내 바닥에 던진다) 이거 내꺼잖애!! 내 가슴에 꽂혔던 거잖애!!
차차숭/미추 : !! 누가... 그러더냐...?
자명 : 소소언니가요!! (품에서 피 묻은 배내옷을 꺼내 던진다) 더러운 걸 왜 갖구 있어요!! 버리지!! 버려야죠!!!
자명, 문 열고 뛰쳐나간다.
씬40. 차차숭의 천막극장, 마당
자명, 뛰쳐나와 달려간다.
일품 : 뿌쿠야!! (쫓아간다)
차차숭과 미추, 나와서 기막힌 표정으로 본다.
미추 : 아우.. 기막혀. 어떡해? 이제?
차차숭 : 그러게 진작.. 버리자니까..
씬41. 동모현, 바닷가 (석양)
자명,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일품, 다가와 옆에 앉는다.
일품 : 다리 걷어봐. 약 발라주께.
자명 : 오빠, 내 이름이 뭐야?
일품 : 뿌쿠.
자명 : 어떻게 써? 그때 단장님이 글자 아는 사람한테 써와서 보여줬잖아. 쓸 줄 알어?
일품 : 응. 내 이름은 쓰는 거 까먹었는데, 우리 뿌쿠 이름은 안까먹었어.
자명 : (나뭇가지를 준다) 써봐.
일품, 개펄에 크게 ‘不哭’라고 쓰는게 아니라, 힘들여 그린다.
자명 : 이게.. 진짜 내 이름이야?
일품 : 응. 울지 말고 씩씩하게 커라, 뿌쿠..
자명 : (고개 젓는다) 이거.. 아냐. 내 이름.
일품 : ??
자명 : 내 진짜 이름은 이거다.
자명, “어떻게 쓰더라..” 중얼중얼 거리면서 나뭇가지로 개펄에 커다랗게 ‘吉祥’이라는 글자를 그리기 시작한다.
제대로 못 그리고, 부수와 획이 틀리고. 글자도 삐뚤삐뚤 엉망이다.
일품 : 이게... 이 글자가 뿌쿠라구?
자명 : 건.. 나두 몰라.
일품 : 어떻게 알았어?
자명 : 내.. 애기 때 옷에 쓰여 있었어..
(호곡의 소리) : 그 글자가 니 이름이라고?
자명과 일품, 본다. 호곡이 기어온다.
자명 : 아.. 안녕하세요? 접때 공연 때 내빈관에서 봤는데.. (웃는)
호곡 : 그래. 아주 안녕하다.
일품 : 대인어른. (공손히 서서 인사한다)
자명 : 아저씨, 글자 알아요?
호곡 : 조금 안다. (이마의 자자를 보여준다)
자명 : 뭐라구 쓴 거에요?
호곡 : 저묘.. 돼지새끼란 뜻이지...
자명 : 하하하- 아구 웃겨~
일품 : (꾸짖는) 뿌쿠야.
자명 : 웃기잖애~ 뭔 이름이 그래~ 뿌쿠보다 더 웃긴다.
호곡 : 원래는.. 내 이름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됐지.
자명 : 저두요, 원랜 뿌쿠가 아니에요. (바닥에 그린 자기 이름을 보여주며) 이게 내 이름인데요. 읽을 줄 몰라요..
호곡 : 길상..
자명 : 길상?
일품 : 그게 뭔 뜻인가요?
호곡 : 길하고 좋은 일이 많이 생겨라,라는 뜻이다.
일품 : 와아~
자명 : 와아~ 좋다!! 뿌쿠 보다 훨 낫다~
호곡 : 이름이 아주 끝내주는구나~ 길상!! 뉘집 딸인지, 아주 이름이 좋아!! 으하하하- 하하하-
씬42. 낙랑국, 왕검성 반수전 왕자실의 침소 (밤)
류지, 왕자실에게 보고를 하고 있다.
왕자실 : 형 집행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류지 : 최대한 당기고 있습니다.
왕자실 : 영호장원을 주시하시게. 집행 당일, 모양혜를 구한다고 남부칠현 군사를 죄 끌고 올 수 있으니. (매서운 눈빛이다)
씬43. 낙랑국, 왕검성 정소옥 모양혜 갇힌 곳
모하소, 모양혜에게 술을 가져왔다. 요강은 병풍으로 가려져 있다.
모양혜 : 그리 빨리 죽여 준다니. 고맙지 않은가~
모하소 : 죄송합니다.. 대부인 마님.
모양혜 : 바라던 일이야. 하루라도 빨리 우리 장군을 보고 싶으니..
모하소 : .. (술을 따라준다)
모양혜 : (한잔 쭈욱- 마시고 잔 내려놓고) 부탁이 하나 있어.
모하소 : 무엇이든 말씀 하세요.
모양혜 : 솜씨 좋은 도형수를 구해주게. 낙양에 왕실붙이나, 귀족들 목만 베는 일급 도형수가 있다니, 불러주면 덜 아플 것 같군.
목 떨어진게 너무 지저분하면, 지하에서 왕장군 만나 부끄러울 것 같아. 하하- 하하- (쓸쓸히 웃는)
모하소 : .. (모양혜의 손을 잡아준다)
씬44.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의 침소 (밤)
송매설수, 창백한 안색으로 예의 약을 먹고 있다.
시녀장, 입에 대추를 물려준다. (아미·술이 없고)
시녀장 : 마마..
송매설수 : 이젠 견딜만 해, 익숙해져서.
대무신왕, 들어온다.
시녀장, “폐하!”하며 읍하고, 송매설수 일어나려 한다.
대무신왕 : 앉아있게.
송매설수 : .. 폐하께서 오선전에 드시는 날도 아닌데, 어찌?
대무신왕 : 왕비가 아프니 올 수밖에. 강단 있는 여장부가 느닷없이 왜 이러는가?
송매설수 : 늙느라 그렇습니다.
대무신왕 : (피식- 웃으며) 늙어가긴 아직 이르네.
송매설수 : (대무신왕을 보다가) 신첩... 신첩..
대무신왕 : (본다) 말하게.
송매설수 : .. (망설이는)
대무신왕 : 무슨 말이든 좋아, 해보게.
송매설수 : 오래전 폐하께오서.. 신첩에게 한 가지 약조를 하셨습니다.
대무신왕 : 으응?
송매설수 : 신첩.. 월경이 끊어졌사옵니다..
대무신왕 : ! (놀라서 송매설수를 본다)
씬50. 낙랑국, 왕검성 반수전 왕자실의 침소 (밤)
왕자실, 라희와 무르추, 웃달의 도움을 받아 약 바르고 있다.
치소, “마마!! 마마!!” 하며 들어온다.
라희 : 치소 넌, 어딜 갔다 와? 약 발라드릴 시간에.
치소 : .. 공주마마 잠시 자리를 비켜주세요. (무르추와 웃달에게) 니들도.
씬51. 동, 반수전 앞 마당 (밤)
라희, 걸어 나온다.
씬52. 동, 왕자실의 침소 (밤)
왕자실, 치소에게 이야기를 듣고 자지러진다.
왕자실 : !! 뭐라!!
치소 : 목지둔서 떡집 하는 할망구한테 들었답니다. 분명히 삿갓배가 글루 떠내려 왔대요. 할망구가 해초 주우러 갔다 봤대요.
왕자실 : ..
치소 : 자명애기씰.. 찾은 것 같아요.
왕자실 : 어디서! 지금 어디에 있단 거냐!! 누가 자명일 거둬갔단 게야!!
치소 : 그때 내빈관서 공연했던.. 희희낙락인지 뭔지, 기예단으로 흘러들어간 것 같습니다.
왕자실 : !! (벌떡 일어난다)
왕자실, 서성거리며 초조하게 생각한다.
치소 : 마마. 이제 어째야 할까요?
왕자실 : 자명인.. 이미 열수에서 죽었어야 할 목숨. 늦었다만, 이제라도 그 목숨을 거둬야겠지.
치소, “마마!!!” 놀라서 보고.
왕자실, 차가운 눈으로 자명이 옆에 있는 것처럼 시선을 던진다.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