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으며 – 권해조 논설위원
2023-08-03 hcnews 1384
백선엽 장군,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 동상건립
지난 7월 27일은 6.25 한국전쟁의 정전(停戰)협정채결 70주년 되는 날이다. 6.25전쟁의 종전(終戰)이 아니고 휴전협정(休戰協定)이 발효되어 포성은 잠시 멈추었지만 날이 갈수록 남북대결과 기(氣)싸움은 거세지고, 한반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서울공항에서 ‘국군 전사지 유해 봉환식’에 참석하고, 27일에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부산 유엔 기념공원을 찾아 유엔군 위령탑에 헌화하고, 유엔군 전사자를 추모했다. 그리고 세계 22개국 참전용사 62명을 초청하여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70주년 기념식을 갖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편 북한은 러시아 국방장관 일행과 중국대표를 초청하여 ‘무장장비전시회’와 야간에는 심야열병식을 개최하였다.
윤대통령은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정전 70주년기념식’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다. 한미동맹을 핵심 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뿐 아니라 세계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식장에 참석한 62명의 참전 용사들을 한 명씩 호명하면서 “여러분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라 칭송하고 “대한민국은 위대한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으며, 여러분의 고귀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 도널드 리드(91)옹과 18세 나이로 소총수로 참전했던 호주 (고)토머스 코논 파킨슨 옹에게는 정부 포상을 수여했다. 같은 시간에 미국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한미동맹은 전 세계 평화 안정과 번영의 핵심 축(linch pin)”이라고 했다. 특히 참전용사와 라포엠, 유엔 소년소녀 합창단 100여명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의 ‘어메이징 아리랑’을 불러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7월 27일 오전에 6.25 전쟁 중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면 가산면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는 이승만 전대통령동상과 해리 S. 트루만 전 미국대통령 동상제막식이 열렸다. 동상제막식에는 그동안 동상제작을 추진해온 이승만, 트루먼, 박정희 동상 건립추진 모임 관계자 등 500여명이 참석하였다. 동상은 4.2m의 높이로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한 김영원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 졌으며, 동상 뒷면에는 6.25 발발 당일 이승만 대통령이 존 무초 주한미국 대사에게 “우리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들 까지 나와서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입니다”라고 한 말과, 해리 트르만 미국 대통령이 같은 날 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당시 한말이 새겨져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5일 백선엽 장군 서거 3주기를 맞아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백선엽 장군 동상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330여명이 참석하였다. 백선엽장군은 그의 회고록에서 “자신이 이끈 한국군 부대가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한 것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표현하기도 했듯이, (고)백선엽장군은 6.25전쟁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 뒤 북한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한 다부동전투의 주역으로 대한민국을 사수하였고, 1사단장으로 평양탈환과, 1951년 중공군 춘계공세에서 동부전선 사수에 공을 세웠으며, 31세 나이로 한국 최고 4성 장군이 된 전쟁영웅이다.
그동안 이승만, 박정희, 트루먼 동상 건립 장소를 두고 오랫동안 난관이 많았다. 다행히도 2019년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협의하여, 1981년 건립된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면적 1만8744㎡, 기념관 1동, 구국관 1동, 전적비, 백선엽 장군 호국구민비(護國救民碑) 등이 있는 현충 시설이다. 경북도는 현재 다부동 전적기념관 추모시설에 놀이·체험시설을 추가해 나라 사랑 중요성을 일깨우는 차별된 보훈 공간 ‘호국 메모리얼 파크’로 만들 계획이다.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모임(대표 조갑제)이 지난 2017년 제작한 두 동상은 서울 전쟁기념관과 주한미군 영내에 설치하려 했으나 거부당하자, 경기 파주에 보관돼 있다가 지난 6월 16일 새벽 다부동 전적기념관으로 옮겼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날 열린 제막식에서 “동상을 만든 독지가가 3년을 헤매다가 저를 찾아왔다”며 “왜 이런 어른들이 갈 데가 없는 나라가 되었느냐. 아직도 자유대한민국이 옳게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막식으로 오늘 날 자유대한민국을 지킨 한국전의 최고 사령관 이였던 이승만, 트루먼 두 대통령이 69년 만에 다부동에서 동상으로 다시 만났다. 해리 S. 트루먼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를 결단하였고, 한민족을 해방 시켰다. 그 후 소련의 팽창에 대응한 ‘트루먼 독트린 선포’로 반공노선을 분명히 하였다. 4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에 유엔이 산파역할을 하도록 했으며, 50년 6.25 한국전이 발발하자 미군파병을 결단하였다. 그러나 트루먼이 맥아더의 원폭 요구 거절로 북진통일이 좌절되어 버림을 받아 동상도 임진각 평화공원에서 안내판도 없이 푸대접을 받았었다.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 뒤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북한군 제2군단의 파상 공세를 저지한 방어 전투로 유명하다. 그리고 다부동 전투는 한미군의 최초의 연합작전이었으며, 북한군의 주력을 저지하고 한반도의 교두보를 지킴으로서 인천 상륙작전과 북진의 시간을 번 결전이었고 한미동맹을 예약한 승리전이였다. 이러한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에 동상을 세우게 되어 큰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국민의 통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휴전 후 1954년 8월 5일 이승만 대통령은 미 공군기편으로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 도착하여 인디펜던스의 트루먼 자택을 방문하였다. 약 500여명의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참으로 반갑습니다, 나는 귀하가 미군을 파병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결단을 내리신 귀하에게 나와 한국국민은 변치 않는 감사를 드립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며, 69년 만에 다부동에서 재회하였다. 필자도 1984년 4월 한미연합사에 근무하면서 캔사스 시티에 있는 미 육군지휘참모대학과 근처 인디펜던스 트루먼 자택과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힘이 약한 민족과 나라는 패망한다는 진리와 정전협정이든 평화협정이든 강력한 힘의 뒷받침이 없으면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 전쟁당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지켜준 참전국과 유엔군참전용사, 국군참전용사, 그리고 그동안 대한민국 수호와 번영을 위해 희생과 헌신한 국군장병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온 국민은 6.25전쟁의 뼈아픈 참상과 교훈을 되새겨보며 다시는 이 땅에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