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교익 "장어 보양식, 일본 풍습 영향이다?
황교익은 "장어는 보양식이 아니었다?"라는 질문에 "옛날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어를 안먹었다.
뱀장어로 이름이 붙은 이유도, 생긴 걸 보니 뱀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팩트
'동국세시기''열왕세시기''경도잡지' 등 세시기에도 여름철 보신음식으로 오늘날 삼계탕과 같은 초계탕이나 육개장 팥죽 등이 개장국과 함께 등장하며 양반들은 임자수탕이나 깨국을 즐겨 먹으면서 피서를 즐겼다.
일반 백성들은 여름 보신음식으로 잡아 올린 장어를 이용한 장어국이나 장어백숙을 많이 먹었는데
남도 일부 지방에서는 여름철 보신탕으로 장어와 함께 열무 우거지와 마늘,향신채인 방아잎을 뜸뿍 넣어 고춧가루를 넣고 얼큰하게 장어국을 끓여 먹었다.
'식료찬요'라는 고서에 의하면 연산군이 장어요리를 즐겨먹었고. 고종황제는 장어백숙을 드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2.. 황교익 "한정식"의 상차림은 일제강점기 기생집 상차림이다?
팩트
기생집과 일반 음식점의 차이가 있음에도 한정식이 기생집에서 나왔다라는건 무지의 소견
조선시대 왕가나 양반 일반 백성까지 알수 있는 한식 상차림을 써놓거나 그림으로 그려낸 책들은 없는가?..
경국대전,조선왕조실록,각종 진연의궤, 진작의궤, 궁중음식발기 등등에 그릇, 조리기구, 상차림 구성법,
음식이름과 음식의 재료 등을 통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조선시대 왕가의 일상식을 유일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있습니다
반상식도’라는 제목으로 9첩반상·7첩 반상·5첩 반상·곁상·술상·신선로 상의 상차림 그림이 나온다.
반상식도란 ‘상에 음식 차리는 법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현대 한정식처럼 시간순으로 배열을 하는가?
진어찬안 이라는 상차림에는 83개의 음식이 상위에 올려집니다 그 요리의 순서 또한 존재 합니다
찬품 단자란 잔치음식들을 음식발기라 하는 것에 모두 기록하여 올리는것으로, 10가지의 상을 차례로
올리게되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진어찬안-> 진어미수(進御味數)-> 진소선(進小膳)-> 진대선(進大膳)-> 진어염수(進御鹽水)-> 진탕(進湯)-> 진만두(進饅頭)-> 진다(進茶)-> 진어별찬안(進御別饌案)-> 진과합(進果驛)
궁중요리 또한 시간순으로 배열해서 음식이 나옵니다
3..황교익“불고기, 스키야키, 야키니쿠 등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음식"
불고기란 단어 자체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결국 불고기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라기보다 일본과 공동으로
발전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팩트
과거 일본은 1872년까지 육류 섭취를 금지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 들어온 서양인이 자국민들보다 체격이 월등히 크자 일본 왕실은 육류 섭취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 전격적으로 육식 해금령을 내렸다.
일본의 요리나 음식관련 고서나 고대 기록물에 전혀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대한 기록인 전무한 상태다
조선시대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에서는 ‘소고기를 저며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한 뒤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 기름과 소금을 발라 충분히 스며들면 숯불에 구우면 연하고 맛이 좋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며
“이 음식은 설야멱적으로 불렸는데 설야적, 설리적 등으로 칭하다가 너비아니구이로 발전했으며 오늘날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고서에 전해지는 불고기의 기록
김홍도의 <설후야연> (雪後夜宴)에서는 양반가 집안에서 불고기를 먹는 모습이 나온다
4세기 진대(晉代)의 수신기(搜神記). 최남선‘조선상식문답’, 음식디미방’기록‘설야멱(불고기)’, 필원잡기 (筆苑雜記)(1487년),
산림경제 (山林經濟)(1715년)는 설야멱 , 시의전서(是議全書), 추재집 (秋齋集)(1839년) 소고기를 먹는 법과 조리법 ,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 (1842년), 해동죽지 (海東竹枝)(1925년)에는 설야적,
조선요리제법(1939년)에서는 우육구이(너비아니) 만드는 법에 대하여 ,
고사통 (故事通)(1943년) 맥적(불고기)의 기록
4.. 황교익 조선시대에는 멸치 육수를 쓰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전해진 것이다?
조선에서는 멸치 이런 해산물을 말려서 국물을 내는 조리법이 없었다"라며 "멸치어업과 멸치 조리법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해방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간 멸치를 이용해 멸치 육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팩트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의 멸치 항목을 살펴보면 이 물고기로는 국도 만들고(或羹), 젓갈도 만들고, 포도 만들고
살피건대 요즘 멸치는 젖갈도 담고, 말리기도 해서 각종 음식으로 충당하는데 식품으로는 천한 물고기이다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에서는 멸치에 대해 모래사장에서 말려 육지에 파는데 값이 한 웅큼에 1전이며,
비가 내려 부패할 때에는 비료로 쓰며 나라 안에 흘러 넘쳐 시골 사람도 먹는 식품이 된다고 기록했다
(멸치가 너무 많아서 비료로도 쓰고도 버릴정도)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멸치의 유통이 북어가 전국에 두루 넘치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전했다.
일단 이것만 봐도 황씨가 얼마나 무지한지 알수있습니다 조금만 조사해도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걸 왜곡해서 일본에서 기원한다? 왜 친일파의 일뽕들이 하는짓을 공중파에 나와서 하는지 의심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