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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동명천제단입니다.
대한제국 애국가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사
성수무강하사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
오천만세에 복록이 일신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지난 2월 13일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팔전(八殿) 중 첫 번째 신전인 숭령전(崇靈殿)에 대해 본 카페(cafe)에서 언급을 하였고, 금일은 두 번째 신전인 숭인전(崇仁殿)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숭령전과 숭인전 모두 북한 평양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우리 남한인 대한민국 공화국의 국민에게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자세히 연구한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아서 숭인전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지식밖에 우리는 가지지 못하는 실정에 있습니다.
하지만, 숭인전을 왜 우리 조상님들께서 민족의 숭고한 팔전 중 하나로 남기셨고, 무엇보다 또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신전 중 가장 그리고 매우 숭상하며 존봉하는데 성심성의를 아낌없이 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더욱 의문점을 더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숭인전은 팔전에 모셔진 우리의 각 왕조의 시조들 중 유일하게 중국(中國) 계통으로 알려진 기자(箕子)를 모시고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점은 우리 조상이 왜 중국인 조상을 시조로 모시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대부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은 과연 맞는 질문일까?
우선, 기자가 등장하게 되는 배경에 대해 먼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은 크게 보면 단군조선(檀君朝鮮), 기자조선(箕子朝鮮), 그리고 위만조선(衛滿朝鮮)이라는 삼시대(三時代), 또는 삼조선(三朝鮮) 시대로 대부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더 자세하게 언급한다면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사이에 164년간의 공위시대(空位)가 있었고, 또한 이후 위만조선이 한나라(漢朝)에게 멸망한 후 52년간의 한사군(漢四郡)이 존재하여 총 오시대(五時代)로 더 세분화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사군을 고조선의 시대였다고 언급하기 힘들 수 있겠습니다만, 신라(新羅)가 기원전 57년에 건국되기 전까지는 52년간 고조선을 점령한 한나라의 한사군이라는 정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과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고조선의 연장선(延長線) 즉, 투쟁시기(鬪爭時機)로 언급한 것입니다.
단군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께서 건국하신 이후 무려 1048년간 존속되었습니다만, 기원전 1286년에 현재의 불법과 폭력으로 개판된 대종교 종단처럼 스스로 내분(內紛)에 의해 문을 닫게 됩니다. 보통 단군의 아들로 흔히 부루(夫婁)가 있었던 것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사실 부루 이외에도 세 아드님이 더 계셨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일은 숭인전에 대해 언급하는 관계로 공위시대의 배경까지 언급하기에는 다소 내용이 길어지기 때문에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164년간의 공위시대, 즉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에 비로소 등장하게 되는 것이 바로 기자조선으로서, 기자조선의 등장은 바로 세상의 중심인 동이족(東夷族)이 중국내 최초의 국가인 상나라(商朝) 건국 이후, 중국 한족(漢族)의 국가인 주나라(周朝)에 의해 중국내 본격적인 통치의 주도권이 상실되면서 중국 대륙내 대부분의 동이족이 대거 동이족의 또 다른 근거지인 요동(遼東)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는 근본 이유가 되었고, 고조선으로 들어와 새롭게 나라를 건국하는 배경이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러한 경향은 후대에도 똑같이 마찬가지 방식으로 위만조선이 다시 새롭게 기자조선을 계승해서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기존 문헌 등을 보면, 동이족은 흔히 산동성(山東省), 하북성(河北省), 강소성(江蘇省) 일대에 거주했던 종족으로 한정지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경칭은 주나라 이후 한족이 중국 대륙 정치의 주류로 등장하며 마치 1636년 청나라(大淸國)를 세웠던 우리의 동류(同類)인 만주족(滿洲族)들이 1912년 청나라 멸망 이후 중국 대륙에서 완전히 사라지듯, 동일한 방식으로 주나라 이후 동이족들이 모두 멸족되면서, 그래도 당시 중국 대륙에서 일부에 남아 있던 동이족들을 경칭하던 지역을 한정해서 래이(萊夷), 회이(淮夷) 등으로 일컫던 명칭이 바로 동이족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만, 엄밀하게 본다면 이것은 주나라 이후의 동이족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 최초의 역사 기록물 등에 의하면, 주나라 이전 당시에 동이족은 전통적으로 모두 구족(九族)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각각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으로 경칭되고 있었는데, 구(九)라는 숫자 이름 자체가 매우 많음을 상징한다고 할 때, 구족의 이름으로 알려진 동이족은 당시 중국 대륙에서 매우 광범위한 지역에 대규모로 훨씬 많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동이족들을 대표하는 일괄 경칭으로 대동이(大東夷)가 일컬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매우 자랑스러운 역사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지금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로 알려져 있는 은허(殷墟)보다 단군조선의 요동은 지역적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 같은 종족이 아닐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내용을 잘 모르거나 고의적 왜곡(歪曲)의 내용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중국을 비롯한 한국의 학계는 동이족을 주나라, 그리고 한나라 이후로 지금의 만주 대륙(滿洲大陸)과 한반도(韓半島), 그리고 일본 열도(日本列島)를 지칭하는 종족의 이름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우리 동이족이 모두 남북통일(南北統一)과 일본과 한국 주도하의 한일합방(韓日合邦) 그리고 만주까지 모두 통일되는 대망(大望)의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크게 떨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우리 재건회(再建會)는 학수고대(鶴首苦待)하며, 대한제국이 가지는 큰 뜻과 이상이 결코 작거나 왜곡될 수 없음을 우리 재건회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우리 국민 모두 인지하였으면 합니다.
비록, 아쉽고 안타까운 후술(後述)입니다만, 지금 국내에도 대표적 단군교도(檀君敎徒)로 잘 알려져 있는 계연수(桂延壽), 이유립(李裕岦) 선생의 대표적 저작(著作)이신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보면, 중국의 시각에서 본 사이(四夷)로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의 종족을 모두 우리 같은 민족이며 종족으로 보는 단군교(檀君敎)의 큰 역사관을 가지고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자가 중국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중국인인 기자를 시조(始祖) 및 조상(祖上)으로 모시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왜곡된 시각인지 알려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 바로 평양(平壤)의 숭인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고려왕조(高麗王朝)와 조선왕조(朝鮮王朝)에서 국가가 특별히 숭인전을 건축하고 제사(祭祀)를 드렸던 근본 이유는 바로 우리의 전통적 뿌리는 바로 동이족임을 잊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기자에 의해 세워지는 기자조선은 훗날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조선 영토에 들어와 결국 위만조선을 세우는 위만(衛滿)처럼, 당시 164년간의 왕위 계승(王位繼承) 내분으로 전국시대와 같은 당시의 공위시대를 정리하면서 새롭게 단군조선을 전통 계승하는 기자조선으로 건국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기자조선의 건국자가 바로 우리 같은 동이족의 본류(本類)라고 할 수 있는 기자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자는 이후 조선시대에 소중화(小中華) 사상의 근본적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즉, 중국과 한국이 하나의 정치 사상적 일체가 되는 계기가 된 것이며 이후, 기자조선은 총 41대 임금이 존재했던 것으로 문헌에는 기록이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기자를 봉한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언제 봉했느냐 하는 시기의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기자를 먼저 무왕이 조선왕으로 봉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당시, 주나라가 건국되는 시점의 중국 대륙은 이미 상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주도권(主導權)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상나라를 복원하려는 복권(復權) 운동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혼란한 시기였기 때문에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하느냐의 문제는 지극히 편협하고 왜곡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 무왕은 즉위 3년만에 사망하기까지 하는데,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기자를 무왕 재위(在位)기에 조선의 왕으로 봉했다고 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성급하고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기자가 기자조선을 세운 이후에 주나라 두 번째 임금인 성왕(成王)때 형식적이지만, 조선의 왕으로 봉했다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빨리 남북은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재건되어 다시 평양의 숭령전과 숭인전의 제사를 재개(再開)해야 합니다. 우리 동이족이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고, 지금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만,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는 논리에 대해 일견 타당하고 어쩔 수 없었다는 의견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반만년이라는 우리의 오랜 단일 역사가 자본주의(capitalism)와 공산주의(communism)라는 이데올로기(ldeologie)라는 이름으로 부정되고 이것이 분단의 명분이 되며, 외세에 의존하여 각각 단독정부 구성의 원리가 되었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결코 합리화될 수도 없고 정당화될 수도 없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당시 김구(金九) 선생과 달리 미소공동위원회(US-Soviet Joint Commission)를 비롯하여 이승만(李承晩) 역시 당시 북한과 어떤 방식으로 통일할 것인가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인 노력과 협력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매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남북간 분단 및 재통일에 대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 종전과 함께 소련(the Soviet Union)과의 냉전(the Cold War)을 독일(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과 싸우는 유럽 전선(the European front)에서 선제적(先制的)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같은 연장선에서 한반도에서의 북위 38도선(the 38th Parallel North)을 경계로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한 남북 분단, 그리고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은 처음부터 예견된 사안이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보다 더 합리적이고 통일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선행(先行)되고, 서로 약간의 양보와 타협이 있었다면 전혀 통일이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은 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후, 1950년에 벌어지는 참담하고 잔인한 6.25 전쟁(the Korean War)에 대해서는 과연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남북 그리고 미국과 소련이 모두 동일하게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북한에 정보의 유입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며, 아울러 북한 정부와 대화를 하려는 노력 또한 멈춰서는 안될 것입니다. 북한에 세계의 정보가 들어가면 갈수록 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개선될 것이며, 북한에서 계속적으로 통일을 부정하며 전쟁을 가정한 위협적인 언사로 북한 주민들과 남한 국민을 위협하는 행동을 계속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북한 내부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으며 사정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배와 통치를 받고 있는 남북 양쪽의 국민이라고 할 것입니다. 기득권과 권력 유지를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좌우 양 공화국 정부들로 인해 많은 고통과 참담함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이 언제까지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공화주의(republicanism) 통치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우리 선진적 국민에 의해 개선 타파될 것이며,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재건의 건국이 이루어질 것임을 우리 재건회는 잊지 않을 것이며 고대(苦待)할 것입니다.
부디, 의식있고 애국적이며 역사를 복원하려는 분들의 많은 동참과 협력 부탁드립니다.
우리 민족은 결코 한반도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태평양(太平洋)과 만주 대륙으로 가야 할 당위성과 명분은 매우 충분히 있습니다. 대동이의 정신으로 동이족을 세계에서 가장 신성하고 위대한 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우리 후손들과 애국적인 국민에 의해 영원불멸(永遠不滅)의 대망이 이루어지도록 많은 협력 부탁드립니다.
대한제국 만세! 존왕양이 만세!
감사합니다.
대한제국 재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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