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골 자치구에 있다는 이른바 "고구려 성터" 문제
내몽고 지역에서 고구려 성터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정확하게 말해 "내몽고에 사는 현지 몽골인들이 그곳에 남아있는 일부 성들을 고구려성이라고 불렀다"는 것 외엔 확인된 게 없습니다.
내 몽고라고해서 매우 먼 곳처럼 느껴지지만 이른바 "고구려성"으로 알려진 유적들은 행정구역상 중국 내몽고 자치구 흥안맹(興安盟) 일대에 주로 분포하고 있어서 생각만큼 먼 곳은 아닙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구려 전성기 때의 서쪽 국경보다는 몇 백 킬로미터 더 서쪽에 위치하는 곳입니다.
지도에서 녹색이 내몽고 자치구 지역이고 위쪽 붉은색 원이 이른바 고구려성이 존재하는 흥안맹 일대입니다. 특히 우란호터(烏蘭浩特) 주변에 이른바 고구려성으로 불리는 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래쪽 붉은색 원으로 표시된 지역에서서도 고구려성이라 불리는 성들이 있습니다. 지도에서 붉은 선으로 표시된 지점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구려의 서쪽 국경입니다.
이 지역 고구려성에 관한 기록들은 1930년대를 전후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0년대를 전후해서 러시아 고고학자나 일부 중국 지방지에서 이 지역의 성들에 대해 현지 몽골인들이 "고려성"(고구려성을 의미)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글로 된 자료만 봐서 당시 몽골인들이 정확하게 "솔롱고스"의 성터라고 불렀다는 것인지 "고올리" 성터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식으로 "까오리" 성터라고 불렀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만주국시대의 지도에 고려성(高麗城)이라고 표기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 지역의 고구려성에 대해서 우리나라 일부 고구려사 연구자들이 답사 방문한 것이 전부일 뿐 정식 발굴조사는커녕 지표조사조차 실시한 적이 없습니다. 답사를 통해 고구려에 관련된 전승이 전해온다는 것 외엔 아직 추가로 확인된 것은 없고, 반대로 일부 고구려성은 고구려와 관련이 없는 후대의 성 같다는 간략한 감상을 담은 현지 여행기만 발표됐습니다.
과연 이 지역에 위치하는 고구려성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사실 지도에서 고구려성이 존재한다고 알려진 지점은 고구려와 전혀 무관한 곳은 아닙니다. 지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흥안맹 일대는 한때 지두우가 위치했던 곳과 멀지 않은 곳이고, 아래쪽 붉은색 원도 거란 거주지역입니다.
고구려 전성기에 고구려가 유연과 모의, 지두우를 분할점령하려 했다는 기록 (위서 거란전 太和三年高句麗竊與謀...欲取地豆于以分之)이나 거란부족 일부를 고구려가 지배했다는 기록을 감안한다면 이곳도 넓은 의미의 고구려 세력권에 해당하는 곳이죠.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 일대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는 통상관계를 통한 경제적 수탈과 군사자원의 대중국 견제 활용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뿐 직접적인 영토지배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만약 이 일대의 소위 고구려성들이 정식 고고학 조사에 의해 진짜 고구려성으로 밝혀진다면 이 지역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강도가 단순히 간접적인 영향력 행사 수준을 넘어서는 직접 지배라고 해석할 근거가 생기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간 아직 정식 고고학 조사가 실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이 일대의 이른바 고구려성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사실 이른바 고구려성들이 내몽골 동부지역에서만 발견된다면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광개토왕-장수왕을 거쳐 5세기 후반 경 고구려의 전성기 시절 한때나마 고구려의 세력이 미쳤던 흔적이라고 해석한다면 기존 사학계의 연구 흐름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지두우 분할 시도 관련 기록 등을 근거로 이 지역에서 고구려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깊숙히 파고 들었다는 견해는 이미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에 대한 간접적 지배라는 기존 학설에 더해 일부 요충지에 군사적 거점을 설치한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라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진짜 문제는 이른바 고구려 관련 유적이 내몽골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외몽골의 다리강에 일대(위 지도 위 붉은색 원의 왼쪽 몽골 영토 동쪽 지역)에서도 이른바 "고구려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되는 수많은 전설이나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솔롱고스도 아니고 고올링올스, 고올리 성터....고올리 무덤...."몽골과 고올리와 원래 동족인데 동쪽으로 갔다"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전설들이 있죠.
외몽골 지역까지 고려할 경우 고구려의 영토 확대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문제가 아니고 몽골 코리족의 "코리", 중국 문헌 논형에 나오는 동명의 탄생지인 북이 "고리국"같은 고구려의 기원 문제, 혹은 고구려 멸망후 일부 유민집단의 이동 같은 보다 복잡한 문제까지 논쟁이 연결됩니다.
이 문제를 확실히 결론 내리려면 이 지역에 있는 이른바 고올리 무덤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져야하는데 역사고고학 전공자도 아닌 구석기를 주로 연구하는 선사고고학자 손보기 박사가 1995년 몽골측과 공동 발굴(?)한후 "연대 추정을 할만한 유물이 없었다"는 소리를 한 것 외엔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보면 내외몽골에 걸친 이른바 고구려 관련 유적에 대해 학자들이 아직까지 뭐라고 확실한 이야기를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확실한 해석을 할 수 있을만한 근거가 부족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