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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거창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에스프레소는 현대 커피의 상징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특히 1958년 페마(Faema)의 E61 머신 이후로 커피산업 부흥의 기폭제가 됐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시작된 이태리는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으로서, 일리(Illy)와 라바짜(Lavazza) 등과 세계적인 커피회사들과 유수의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사들을 자랑한다. 최근 아메리카노와 같은 미국식 커피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오리지널 에스프레소라는 자존심은 여전히 특별한 가치로 남아 있다.
에스프레소는 그동안 없던 새로운 형태의 커피였다. 앞서 살펴봤던 핸드드립이나 이브릭, 사이폰처럼 뜨거운 물에 담거나(Brewing), 끓이는(Boiling) 형태와는 다르게 압력을 이용해 추출한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이 차이가 좀 더 명확해 ‘Extraction'으로, 고온고압을 이용해 커피 성분을 ’뽑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향미 역시 기존 커피와는 차이가 있다. ‘빠르다’라는 뜻의 그 이름처럼 20-30초 만에 소량을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는 일반 커피보다 훨씬 강렬한 향미를 갖고 있다. 커피가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이 접했을 때 ‘원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커피의 여러 가지 향미가 응축돼 있고, 또 사용하는 커피 역시 보통 강하게 로스팅 하기 때문에 쌉싸름한 맛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태리에서는 에스프레소에 보통 설탕을 한-두 스푼 넣어 마시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에스프레소 자체를 즐기기 보단 이를 베이스로 한 음료들을 선호한다. 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인 ‘아메리카노’는 이러한 에스프레소에 일정량의 물을 넣어 만든 음료이며, 우유와 시럽 등을 섞어 만든 라떼류 역시 손꼽히는 인기 메뉴 중 하나다. 각종 시럽 등을 섞어 만든 베리에이션 메뉴들도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메뉴는 원두커피 대중화의 선봉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점차 발달하면서 고온고압 구현방법 역시 정교해졌다. 기존 수동레버 방식이 아닌 모터펌프를 새롭게 사용하면서 가압의 한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초기 1~3Bar 정도의 약한 압력에서 9Bar 이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소득을 얻게 됐다. 바로 크레마(Crema)다.
크레마는 에스프레소 추출 시 생기는 황금색이나 갈색의 크림으로, 곱게 갈은 커피가루에서 나오는 아교질과 섬세한 커피오일의 결합체다. 젤라틴(Gelatin)과 같은 고운 입자들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커피 위에 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크레마는 층을 형성해 커피가 빨리 식는 것을 막고, 커피의 향을 함유하고 있는 지방 성분을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풍부하고 강한 커피향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또 그 자체가 부드럽고 상쾌한 맛과 단맛을 지니고 있어 에스프레소의 백미로 통하고 있다.
이러한 크레마의 상태에 따라서 커피의 품질을 예상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크레마가 풍부할수록 신선한 커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커피의 숙성, 신선도, 커피의 양, 분쇄 정도, 탬핑, 물의 양, 온도, 추출시간, 추출압력, 블렌딩, 로스팅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크레마가 거의 없는 경우 오래된 원두일 가능성이 높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아무래도 이전에 소개했던 어떤 기구보다 고가의 제품으로, 초보자들이 선뜻 구매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신선한 원두로부터 추출되는 황금빛 크레마와 진득한 향기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즐거움이다.
가정용 머신의 경우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나와 있다. 보통 20-30만 원 대의 제품은 원가 절감을 위해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져 있으며, 압력이나 스팀 능력은 한 번에 1~2잔 정도를 추출하고 만들 수 있는 정도다.
최근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자들이 누적되면서 가정용 머신 임에도 상업용에 준하는 기능을 갖춘 제품들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고온고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추출에 필요한 각종 변수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것이다. 가격은 보통 1~300만 원 대로 상당히 비싼 편이며, 주로 마니아들에게 각광 받고 있다.
상업용에 준하는 머신일수록 가격대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크기나 무게뿐만 아니라 소비전력까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특히 PID(온도제어 장치)나 고급 로터리 펌프, 독립보일러 등이 장착된 고가제품의 경우 많은 양을 연속해서 추출할 필요가 없는 가정에서는 의미 없는 기능일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의 수준과 예산, 커피음용습관 등을 고려해 단계별로 사양을 높여가는 것을 권한다.
원두를 구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보다 맛 좋은 커피를 원한다면 아무래도 가까운 로스터리 카페를 찾는 것이 유리하다. 보통 에스프레소용 원두는 여러 가지 산지의 원두를 섞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정한 향미를 강조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면서 각 카페들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평소 아메리카노 등을 맛보면서 자신의 취향과 맞는 카페를 찾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선한 원두’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사실 많은 로스터들은 갓 볶은 커피보다 어느 정도 숙성된 커피를 선호한다. 숙성을 거치면서 원두의 향미가 더욱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터들은 여러 테스트를 거쳐 향미가 가장 좋은 기간을 확인 후 판매한다. 원두구매 시 로스팅 일자와 함께 상미기간을 확인한다면 좀 더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이렇게 구입한 원두는 그라인더가 있다면 추출 직전 분쇄하는 것이 유리하며, 만약 없다면 원두 구입할 때 분쇄를 부탁하면 된다. 그러나 분쇄된 원두는 표면적이 극대화돼 향이 쉽게 휘발되므로 가급적 빨리 소비하는 것이 좋다.
○ 포타필터(Porta Filter)는 커피가루를 담은 바스켓(Basket)을 머신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커피가루를 담는 바스켓은 용량별로 두 가지가 있다. 1잔 분량(7~9g)과 2잔 분량(14~16g)으로 필요한 양에 맞춰 사용하면 된다. 고급 제품은 상업용과 같은 재질과 크기로 출시되고 있다.
○ 커피가루를 담은 뒤에는 탬퍼(Tamper)를 이용해 바스켓의 커피가루를 정돈하는데, 이때는 수평을 맞춰 적당량의 힘으로 다져야 한다. 만약 너무 많은 양을 담거나, 너무 세게 누른다면 커피층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물이 제대로 통과하지 않게 된다. 수평을 맞추지 않았을 때도 쏠림현상으로 인해 균일한 추출이 어려워진다. 또한 추출시간이 길어질수록 좋지 않은 향미가 함께 나오기 때문에, 추출시간과 상태를 살피면서 그라인딩 굵기와 커피가루의 양, 탬핑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 탬핑을 하게 되면 보통 탬퍼와 바스켓의 크기 차이만큼 유격이 발생해, 그 사이로 커피가루가 삐져나온다. 이 상태로 포타필터를 장착하면 샤워스크린 주변에 커피가루가 다량 묻어나게 된다. 이때 탬퍼의 손잡이를 이용해 포타필터의 바깥 면을 가볍게 두드리면 커피가루가 떨어지는데, 이를 태핑(Tapping)이라고 한다. 과도한 태핑은 잘 다져놓은 커피가루를 흩어놓을 수 있으므로,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태핑 후 다시 한 번 수평을 맞춰 탬핑 해 정리한다.
○ 포타필터를 머신에 장착할 때도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자칫 거칠게 장착하다 보면 애써 정리해놓은 커피가루가 깨지거나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온고압을 만들어내는 에스프레소 머신에는 대부분 스팀노즐이 부착돼 있다. 스팀을 이용해 우유를 데우거나 거품을 만드는데, 에스프레소와 섞으면 카페라떼를 비롯한 각종 베리에이션 메뉴를 만들어 즐길 수 있다. 제품에 따라 성능차이가 클 수 있지만, 무엇보다 숙련도에 따라 우유거품의 품질차이가 나기 때문에, 꾸준히 연습한다면 가정에서도 일정 수준의 메뉴를 즐길 수 있다.
○ 우유를 담는 그릇은 전용제품인 스팀피처가 좋지만, 가정용 머신은 스팀노즐의 길이가 상업용에 비해 짧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 상황에 따라 적당한 크기의 컵을 이용한다. 스팀피처는 300ml, 600ml, 900ml 등이 있다.
○ 우유의 양이 너무 적거나 많으면 거품을 제대로 낼 수 없고 자칫 우유를 낭비할 수 있으니 적당량을 담는 것이 좋다. 보통 300ml 피처에는 120ml 정도가 적당하며, 1잔 분량의 우유거품이 만들어진다. (600ml 2잔, 900ml 3잔)
스팀노즐과 우유 표면의 각도가 직각이 되도록 한다.
○ 우유거품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스팀노즐과 우유 표면의 각도가 중요하다. 스팀노즐과 피처가 수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각도를 조절한다. 스팀이 전체적으로 고르게 퍼지게 하기 위한 작업이다.
처음에는 주입하는 공기의 양을 쉽게 조절할 수 있도록 스팀노즐을 깊숙이 담는다. 처음부터 낮게 담그면 강한 스팀에 의해 순간적으로 공기가 많이 주입돼 고운거품 내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처음에는 깊이 담갔다가 서서히 높이를 조절한다.
○ 노즐을 깊이 담근 상태에서 스팀을 작동시킨다. 스팀피처를 아래로 내려 스팀노즐의 끝이 우유 표면에 드러나고 마찰에 의해 1차 우유거품이 만들어진다. 마찰에 의한 미세거품이 최대한 생길 수 있도록 스팀피처를 움직일 때는 천천히 움직인다.
○ 내렸던 스팀피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품을 섞는데, 이 때 마찰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스팀노즐의 끝부분만 담근다. 큰 회전을 통해 전체를 빠르고 고르게 섞기 위함이다. 이 때 스팀노즐이 깊숙이 위치하거나 각도가 틀어지면 회전이 작거나 일정치 않아 거품이 제대로 섞이지 않으니, 스팀노즐의 위치를 주의한다. 완전히 섞이게 되면 스팀피처의 80~90%까지 우유가 차오른다.
완성된 우유거품
○ 스티밍이 끝난 이후 남아있는 미세거품이 남아 있는 경우 스팀피처를 바닥에 2~3회 두드리고 1~2회 크게 회전시키면 고운거품을 얻을 수 있다.
○ 사용이 끝난 스팀노즐은 1~2초 정도 분사시킨 후 깨끗한 행주를 이용해 닦는다. 노즐 안쪽에 우유찌꺼기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커피시장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홈 카페 역시 마찬가지로, 연재가 시작되던 초반과 지금의 상황은 또 다르다. 특히 원두 구매에 있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판매방식들이 생겨났다. 잡지를 구독하듯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매달 원두를 보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가 그것이다. 시즌별로 테마를 지정하거나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원두를 선정해 보내주기 때문에 일종의 편집샵으로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안방에서도 손쉽게 다양한 원두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커피관련 온라인 모임에서는 유명 로스터리 카페나 로스팅 공장들과 공동구매를 기획해 많은 홈 카페 유저들이 다양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골든커피어워드와 같은 전국단위의 로스팅 대회도 몇 개씩 생겨나 매년 실력 있는 로스터들이 발굴되고, 또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되면서 원두공급 채널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들은 로스터리 카페를 비롯한 원두공급처들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면서 활로를 찾기 위해 생겨난 자구책으로 보아야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점차 많아지고 있으니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홈 카페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는 이유다.
'나'를 위한 커피를 만드는 홈 카페는 아무래도 부담이 적다. 맛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취향에 따라 즐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맛있는 커피에 대한 기대감까지 버릴 필욘 없다. 비록 기구에서만큼은 상업용과 차이가 날 순 있겠지만, 추출과정의 숙련도와 원두의 품질에 따라 일반 카페 이상의 훌륭한 커피를 즐기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커피 값이 아까워서, 동네 카페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저 따분한 하루에 즐거움을 갖고 싶어서… 어떠한 이유도 좋다. 홈 카페를 통해 일상을 향긋하게 채워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