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소 : 순천만 국가정원 박람회장
일 시 : 2023.04.20(목) 09:30
참 가 : 강공수 김상문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정원길 등 10명
불 참 : 김영부(집안 일) 장휘부(봄철 알러지) 등 2명
회 비 : 200,000원
식 대 : 120,000원(뷔페식 12,000원 * 10인분)
승용차 2대의 연료대 및 통행료 : 10만원+2만원= 합계 120,000원
총 비 용 : 240,000원
금일 잔액 : -40,000원
이월 잔액 : 501,000원
총 잔액 : 461,000원
승용차를 엘지 베스트샵 주차장에 두고 목요산우회 회원들이 오는 족족 승
용차에 태웠다. 강공수 차도 곧 도착하여 모두 10명(양수랑 박남용 나종만 김상문 김재일과 강공수 정원길 이용환 윤상윤 윤정남 등)이 승용차 2대에 모두 승차하였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순천만 정원 동문 주차장으로 설정하였다. 9시 40분쯤 출발하였고, 강공수의 차를 앞세우고 내 차는 그 뒤를 따라갔다. 미력에서 갓길로 빠져나가 목포에서 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보성에서 순천까지 길이가 각각 다른 터널 10개를 지나서 순천만으로 빠져나갔다. 청암대에서 우회전하여 직진하니까 순천만 정원 서문이 나왔다. 그런대 서문에 있는 2개의 주차장은 이미 만차(滿車)라고 표시가 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방문객들이 들어가는 정문(동문)의 3주차장에는 수많은 차(관광버스와 개인용 승용차와 기타 차)들이 모든 주차공간을 가득 메우고 관람객들까지 북적거려서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 승용차 2대는 안내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계속 동쪽으로 진입하였다. 다리를 건너니 4주차장(연향들 주차장)이 나왔다. 4주차장은 비교적 한산하고 주차공간도 충분하였다. 축구장 동쪽에 차를 안전하게 주차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시간은 11시 10분, 지금부터 점심시간까지 오전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면 동문 지역은 대충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동문으로 입장하였다. 그리고 오전에는 동문지역을 돌아보기로 회원들에게 주지하고 구경을 시작하였다. 중요한 사항은 개인행동을 하더라도 우리 일행에서 멀리 이탈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꿈틀 놀이터, 태국정원, 일본정원, 영국정원, 스페인정원, 생태체험 교육장, 메타세콰이어길, 네델란드정원, 미국정원, 멕시코정원, 독일정원을 지났다. 시원하게 물길을 가르고 지나는 관광보트를 보고, 호수정원에 있는 <오천(五阡)언덕>으로 갔다. 오천언덕은 ①<순천만언덕(순천만 상징> ②<봉화언덕(봉화산 상징)> ③<해룡언덕(해룡면 상징)> ④<앵무언덕(앵무산 상징> ⑤<인제언덕(인제동 상징)> 등인데, 가장 낮은 <순천만언덕>을 지나 가장 높아 보이는 <해룡언덕>으로 갔다. 해룡언덕 정상에서 바로 눈앞에 있는 달팽이 길의 <봉화언덕>과 왼쪽(서쪽)에 있는 <인제언덕>, 그리고 오른쪽(동남쪽)에 있는 <앵무언덕>을 보면서 360도 동영상을 찍었다. 오천언덕의 이름은, 이 순천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자연 경관들의 지명과 위치하는 방향에 맞추어 이름을 붙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해룡언덕에서 되돌아 내려와 봉화언덕으로 향하였다. 물 위에 데크로 된 다리를 지나 봉화언덕 아래에 이르렀다. 그런데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서 봉화언덕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에 3사람(김상문 윤상윤 이용환)이 벌써 봉화언덕으로 올라가버려서 우리는 그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려야 하였다. 데크길 다리를 지나 호수공원 북쪽에 있는 장미정원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렸다. 우리는 그들이 내려오자 주린 배를 채우려고 다시 동문(정문)으로 나오는데, 오후에 다시 들어오기 위해서 손등에 도장을 찍고 나왔다.
3주차장에 있는 <여미락>이라는 식당으로 갔다. 식당 안내양이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식당은 순천 농부들이 생산한 농산물로 운영하고 있는데, 1인당 식비가 12,000원이었다. 먼저 10명분의 식비 120,000원을 카드로 결제하였더니 번호표를 주었다. 식당 앞에 있는 식탁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식당 안에 식사 할 수 있는 빈자리가 생기면 번호를 불러, 빈자리의 수만큼 입장하여 뷔페음식을 담아다가 먹었다. 기다리면서 식당 이름인 <여미락>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 한자로 여민락(與民樂, 임금이 백성과 더불어 즐기다.)의 의미처럼, <여미락(與味樂, 더불어 맛을 즐기다.)>이라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안내양이 우리의 번호표 6번을 불러 몇 명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처음에는 6명, 다음에 2명, 또 2명을 불러서, 10명 모두 들어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오후 1시 반쯤 되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던가! 나물반찬과 두부부침, 돼지고기 볶음, 닭고기, 돈까스, 떡볶이, 팥죽, 된장국, 사과조각, 방울토마토 등을 만족스럽게 배부르게 먹었다. 다만 나의 개인적인 욕심을 부린다면 따끈한 국물이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와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정원길이 붕어빵(아이스크림, 개당 2000원)을 사왔다. 그것도 맛있게 먹었다. 아침에는 가나 초콜릿을 사다가 각자에게 나누어주더니 점심 후식으로 또 붕어빵을 사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김상문이 찬 것을 안 먹는다고 하여 1개가 남았다. 강공수가 그것을 어떤 노인 봉사자에게 주니까 매우 좋아하였다. 김상문은 오늘도 과자 보따리를 들고 다니면서 시시로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오후 2시가 넘어서 다시 오후 구경을 하러 국가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동천(東川) 위에 놓인 <꿈의 다리>를 건너서 서문 쪽으로 갔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른 쪽에 있는 <갯벌 공연장>에서 무슨 공연을 하고 있는지 스피커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근처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꿈의 다리에 있는 그림들 속에는 11년 전 정원을 개장할 때, 정원길의 손자가 유치원 다닐 때 그린 그림이 붙어 있다고 하여 찾아보았지만 너무 작은 그림들이어서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다리 건너에는 <스카이 큐브>가 출발하는 <정원>역이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순천만 습지센터>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 앞의 <물세놀이터>에서 홍학(紅鶴) 때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나서, 서쪽 맨 끝에 있는, 오후 구경의 목적지인 <한국정원>으로 갔다.
이제 피곤이 누적되어 발걸음도 느려질 때였다. 부용지(芙蓉池)라는 연못 오른쪽에는 부용정(芙蓉亭)이 있었는데, 창덕궁 후원에 있는 것을 2013년 순천만 정원박람회 당시에 이 한국정원에 지어 관람객에게 볼거리로 제공하였다 한다. 연못 안에는 커다란 비단잉어가 유영하고 있었다. 어수문(魚水門)을 지나 고풍스런 담장에 원형(圓形)으로 뚫린 중문을 지나니, <군자(君子)의 정원>이 나왔다. 거기에는 <서석지(瑞石池)와 경정(敬亭)>이 있었다. <서석지(瑞石池)>는 조선시대 정영방이라는 선비가 지었는데, 그 원형을 복사한 연못과 정자를 여기에 지어놓았다고 한다. 연못과 정자는 담양의 <소쇄원(瀟灑園)>과 완도의 <세연정(洗然亭)>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민간 연못으로 이름이 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광풍각(光風閣)>은 양산보(梁山甫)가 담양의 지곡리에 지은 소쇄원의 광풍각을 그대로 옮겨지어서 관람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한국 정원의 오른쪽 산등에 <철쭉정원>이 우리를 유혹하였지만 더 이상 욕심을 내면 참으로 몸에 무리가 올 것 같아서, 더 이상의 구경을 단념하고 한국 정원을 나왔다. 한국정원을 나오면서, 강공수가 자원봉사 여인을 위로한다면서 하모니카로 <과수원길>을 연주하였다. 우리들도 옆에 서서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함께 <과수원길>을 따라 불렀다.
다시 <꿈의 다리>를 건너서 동문 정문으로 나왔다. 시간은 오후 4시였다. 걸어서 4주차장으로 가서 승용차에 올랐다. 너무 목이 말라 정원길이 가져 온 보리차 물을 몇 모금 마셨다. 또 김재일이 끓여 온 수제 녹차를 두 잔이나 더 마시고, 4시 30분쯤 4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강공수의 차를 따라 달리는데, 왔던 길이 아닌 순천 시내로 잘 못 들어가서 곡성으로 빠지는 호남고속도로로 돌아오게 되었다.
<곡성휴게소>에서 용변을 보고나서,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쉬었다. 강공수가 마트에서 추억의 아이스크림 <바밤바>를 사가지고 나왔다. 그것을 빨아 먹으면서 늦은 봄의 더위로 뜨거워진 뱃속을 달래었다. 이어서 강공수가 순천의 지명과 여기에서 이름 높은 <팔마비(八馬碑)>에 대한 유래를 이야기 하였다.
팔마비는, 고려 말 승평부사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승평부(升平府, 지금의 순천)의 읍민들이 건립한 비석이다. 정유재란 때 훼손되었으나, 1617년 순천부사 이수광이 다시 건립하여 현재까지 전해진다. 팔마비는 순천지역을 대표하는 중요한 유물로서 2021년 국가지정 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역사 예술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1281년(충렬왕 7)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이 비서랑(秘書郞)으로 전직하자 마을 사람들은 예전의 관례에 따라 말 8필을 기증하였는데, 최부사는 상경 후 기증받은 말 8필과 최부사에게 온 암말 중에서 낳은 망아지 1마리를 보태어 9필을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 뒤부터 부사가 오고갈 때의 이런 관폐가 없어졌으며, 이에 주민들은 그의 청렴한 송덕을 기려 비를 세우고 이름을 팔마비(八馬碑)라 하였다는 것이다.
곡성휴게소에서 5시가 넘어서 출발하여 광주로 돌아왔다. 동광주에 들어왔더니 엄청 많은 퇴근 차들이 몰려들었다. 6시쯤 동광주로 들어왔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나니 엄청 긴 시간을 길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등 도서관> 앞에서 6시 20분쯤 회원들을 내려 주었다.
시내에 들어서니 오히려 신속하게 시내 거리를 빠르게 지나칠 수 있었다. 남광주 지하철 옆 근방에 마지막으로 이용환을 내려 주고, 집에 들어갔을 때는 6시 40분이었다. 긴 하루였지만 눈으로도 즐거웠고, 귀로 들리는 소리도 즐거웠고, 말하고 먹으면서 즐거웠던 모든 것이 참 즐거운 하루였다.
첫댓글 오매 ! 그렇게도 기억력이 좋단 가? 역시 총명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설명이 안돼 ! 정력이야! 아니야 !
젊음이야! 그 젊음이 오래 오래 갈 거야! 작가로서 충분히 성 장 가능 한 데도 隱者로 지낸다는 그 신념 때문에
그가 쓴 글을 난 열심히 읽고 있는 거다. 그게 그에 대한 보답이 되기 때문이다.
난 하루 동정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그가 쓴 일정을 기억하면서 그날의 흥분된 감정을 되살려 보았다.
아주 10명의 친구들이 사심 없이 즐거이 즐겼다는 점에서 만족하다. 그에게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80대의 노익장 들이 함께 모여 즐겁고 건강하게 하루를 잘 보냈던 참 좋은 날이었다. 기쁜 그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생생하게 여행 후기를 쓴 우리 회장에게 다시 수고에 감사한 마음이다, 각자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우리 목요산우회원들 모두 보람찬 노후를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우리 모두 건강 백세를 향해 화이팅
다함께 걸으며 구경을 하였는데 내가 미쳐 보지 못한 것들을 자세하게 알려주어 박람회장을 두 번 구경한 느낌입니다.
귀가하여 만보기 계기판을 보나 18,044걸음이었다. 내가 10년내 15,000보를 넘긴 산책은 처음인듯 생각이 된다.
친구들을 위해 운전대를 잡고 고생한 아석. 동명 두 친구 너무 고맙고 간식으로 우정을 표시해준 산해. 서정. 봉참문. 동명도 고마운 마음 본란을 토해 전합니다.
* 참고로 한 친구는 식당명에 대하여 한자로 여미락(旅味樂)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회장이 설파한대로 여러 친구들이 먹을것 가져와 즐거웠는데, 춘강 박남용은 빈손으로 간데다 회장 차의 앞자리 조수석에 앉아 편하게 가면서 비좁은뒷좌석앉은 나종만 김상문 김재일의 노고를 자꾸 자꾸생각했었다네. 말로만 생색내면 안되니 그댓가로 이다음 부곡정 점심이라도 사야곘네.모두 모두 참석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