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속에서 부활이 차지하는 자리는 매우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성탄절은 일찍부터 설레며 준비하는 교회의 큰 명절입니다. 몇 주 전부터 다양한 성탄 행사를 준비하고, 성탄 전야에는 늦은 시간까지 모여 놀기도 하고 발표회도 합니다. 그러다 새벽에는 온 동네를 누비며 새벽송을 하고, 성탄 예배 후에는 새벽송에서 모은 과자를 온 교인이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성탄 트리도 한 달여 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성탄절의 여운은 길게 남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부활절은 성탄절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고난주간 한 주간을 특별새벽기도로 보내고, 부활절 새벽에는 많은 사람이 흰옷을 입고 새벽기도에 참여합니다. 부활절 헌금을 챙기고, 평소보다는 조금은 들뜬 분위기로 부활절 찬송을 부르고 부활절 달걀을 나눈 기억 외에는 남아 있는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부활절 찬송도 그 한 주간 부른 것 외에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삶 속에서 교회의 삶 속에서 딱히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어색한 손님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신약교회가 말하는 부활은 십자가만큼이나 아니 어떤 면에서는 십자가보다 더 중요한 복음의 주제였습니다.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부활은 복음을 복음으로, 교회를 교회로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였습니다. 베드로의 복음에도 바울의 복음에도 핵심은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깨달음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라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부활과 더불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새롭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시작하는 새로운 역사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시며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능력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부활절 추억을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과 함께 영혼 구원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목사 이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