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편제록(p.79)
(1) 사월재상량문(沙月齋上樑文)
기술하건대 선령의 묘소 가까이에 재실을 결구(結搆)하니 실은 세일제(歲一祭)때 분향할 곳이 되고 옛터를 이용하여 액호(額號)를 각(刻)해서 거니 또한 백세의 뒤에까지 추모의 생각을 붙이네. 제조(制造)한 법도는 검박(儉朴)하지도 않고 사치스럽지도 않으며 땅의 형세(形勢)는 드러난 것도 같고 숨어있는 것도 같네. 공손히 생각하노니 사월재는 남녘 고을의 명승지요 위씨 선세의 제향소다. 탁월하도다.
우리 중조 합문지후공(閤門祗侯公)께서는 옛 나라(高麗)를 생각하여 이조에 불복했네. 슬프도다. 그 3세 뒤인 성균생원공께서는 차손 돈(頓)을 거느리고 관북(關北)에서 후세를 열었네. 배의인(配宜人)백씨(白氏)는 어려서부터 예의범절(禮儀凡節)이 문중(門中)과 마을에 현저(顯著)하였고 아들 은동재공(隱洞齋公)은 장남으로 덕행(德行)과 명망(名望)이 함께 고을과 무리들에 높았네.
감찰(監察)과 부사의 청백은 한 조각 울림(鬱林)의 석주(石舟)와 엇비슷하고 호조와 부정(副正)의 충훈(忠勳)은 천추에 분진운수(汾晋雲水)와 우열을 다투네. 그 밖에 남아있는 문무유품(文武遺品)은 많으므로 일일이 거명할 수 없고 유래한 시례가모(詩禮嘉謨)는 첫째로 당당하게 같이 이야기 할 수 있구나. 이미 동방구족(東邦舊族)의 서열(序列)에 올랐고 또한 남쪽 고을에 명문임을 잃지 않았네.
은동(隱洞)으로부터 사월(沙月)의 터전은 옛 나라에서 이어받음이요, 의인(宜人)을 이어서 남은동(南隱洞)에 무덤을 썼네. 진실로 한 실내에서 제향을 모시니 믿음이 있어 추모한 마음을 높이고 이에 여러 종족들이 모의하고 화협하니 가히 재론이 없어졌네. 종재가 부족함에 성재보(聖哉甫)가 곡창(穀倉)을 털어 보충하고 문의가 다시 짙어지니 방계 종원들도 각기 성금을 출연하여 찬조하였네.
사방의 이웃사람들이 역사에 달려오기를 즐거워하니 또한 전덕(前德)에 사람들이 깊이 감동함을 보겠고 여러 사람들이 다투어 칭찬하니 특히 후예들의 추모한 마음이 그 돈독함을 이었네. 천운이 적합하여 병오년(丙午) 중춘에 경영하기를 시작했고 지형이 균평하여 그 감(坎)․이방(離方)의 바른 위치에 점쳐 정했네. 이에 하루아침에 눈앞에 우뚝 솟은 경관임을 알고 실로 몇 세 동안이나 마음속에 경영할 방책을 연구해 왔을까?
한 고을이 맑고 한가로우니 또한 가히 숨어 살면서 성품을 수양하고 여덟 게 경치가 명랑하며 수려하니 족히 붙여서 기쁜 안색을 보겠네. 대청(大廳)과 방과 부엌이 방정하니 이에 재계하고 유숙하며 반갱(飯羹)을 올리는 예절을 극진히 할 수 있고 툇마루와 창문과 층계와 뜰이 질서가 정연하니 또한 절하고 꿇고 오르고 내리는 의절을 갖추겠네.
소나무가 무성하고 대포기가 수복하니 반드시 복지가 더욱 오래가고 더욱 빛날 것이요, 재실이 아름답고 훌륭하니 군자의 거처가 노고 커서 올라가 청사(聽事)함에 마땅하다. 가히 위형(衛荊)의 구미(苟美)하고 구완(苟完)함과 같다고 할 것이요, 대개 장로의 선송(善頌)하고 선도(善禱)함을 본받았다 할 것이네. 공손히 짧은 글을 인용하여 상량문을 닦아서 게재한다.
어기어차 들보를 동으로 던져라. 한 구역의 사월(沙月)이 우리 동쪽에 넓혀졌으니 강물에 잠긴 향기는 맑기를 허(許)급한 듯 하고 진을 친 바람이 시원스럽게 불어오네. 어기어차 들보를 서로 던져라. 만장지산(萬丈芝山)이 저 서쪽을 가리니 하늘 밖의 요기(妖氣)는 날아서 이르지 못하고 사문일맥(斯文一脈)은 이에 보존되네.
어기어차 들보를 남으로 던져라. 부흥봉(復興峯)이 남쪽으로 좋게 뻗으니 어른어른하게 서려있는 숙기(淑氣)가 이에 보내오고 대대로 문무(文武)의 장부(丈夫)가 모아서 생기네. 어기어차 들보를 북으로 던져라. 억불산(億佛山)이 머리 숙여 북쪽을 호위(護衛)하니 많이 번성한 자손들이 이에 와서 우러러 받들고 한 문중의 화기가 다함이 없이 환락(歡樂)하네. 어기어차 들보를 위로 던져라. 계산(桂山)의 아래요 용강(龍江)의 위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한 몸이 되어 제사모시기를 이에 함께하고 영령(英靈)앞에 묵념(黙念)하며 추모하니 오르고 내리기가 흔연(欣然)스럽네.
어기어차 들보를 아래로 던져라. 조상을 추모하며 또한 능히 그 자손에게 끼쳐주니 충효와 유풍(遺風)을 승계(承繼)하도록 인도하고 가히 오래까지 천복을 받도록 점쳐 정했네. 엎드려 원하건대 상량한 뒤에는 재각이 새로우니 선령은 이에 편안하소서. 비로소 조상의 음덕을 이어 기술하니 날이 갈수록 더욱 제향을 받드는 정성을 돈독(敦篤)히 하고 우리들은 우리 집을 사랑하여 영원토록 자손들이 모여든 아름다움을 이루게 하소서.
단기4299년 병오(丙午) 3월 보름에
지후공(祗侯公) 후손 대환(大煥) 찬(撰)
잘보고 공부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