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김일중)
그땐 여름만 되면
어머니께서는
시원한 '사카린' 물에
국수를 말아 주셨다
약수나 다름없던
뒷마당 시원한 우물물을 떠와서
수정 같은 '사카린'
몇 알갱이를 넣으면
마술처럼 물이 달디 달아진다
이때 미리 삶아
바구니에 담아 놓은
먹음직스럽고 오동통한 국수 가락을
한 움큼 넣어 주신다
그것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마지막 남은 국물을
단숨에 들이 마시며
카아 하면
그 단순하고 짜릿한
식사의 대미가
장식 된다
그 후 '사카린' 다음으로
'뉴슈가'가 등장하면서
사정없이 달던 '사카린'은
버림받기 시작했다.
'뉴슈가' 물에 국수 말아 먹어 보니
단 맛의 차원이 달라졌다
'뉴슈가'의 전성시대는
한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가
국수를 먹게 되었다
그 때 그 국수가
기막히게 맛있었다
가히 환상적 이었다
그 단물은 '뉴슈가'하고는
또 달랐고
새롭고 은은하고 고급스러웠다
그게 바로
귀하디 귀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설탕이었다
지천명이 되도록 살면서
온 갖 맛있는 음식을 먹어 봤지만
어린 시절 그 여름 날
시원한 설탕물에 말아 먹던
국수 맛처럼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오늘
사랑하는 아내를 졸라
얼음 설탕물에
국수 말아 먹었다
타락한 입맛이
어린 시절 같지는 않지만
추억과 함께 먹으니
아주아주 맛있었다.
이래서
금년 나의 여름은
시원하고 달콤하게
그리고 매끄럽게
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카페 게시글
詩人│ 김일중
국수
김일중
추천 0
조회 4
24.09.29 17:28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