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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청풍문화재단지(2) ▲▼ 망월성산 등산로 ▲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보물 546호) 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 (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 충주댐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 관수정(觀水亭) 동헌을 지나면 '관수정'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하나있고 망월산성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힘들게 오른 망월산성 정상부에서는 청풍호, 청풍대교와 조화를 이룬 문화재단지가 그림엽서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중간 중간에 재미난 이야기를 품은 나무들이 여행객들을 맞이하면서 산성 탐방의 수고를 덜어준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소망탑', ‘심장 품은 소나무’, ‘인고세월 노간주나무’, ‘변함없는 사랑나무’ ‘연리지’, ‘S라인 벚나무’, ‘하늘을 향한 소나무’ 등이 그것이다. ▲▼ 연리지(連理枝)와 연리목(連理木)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라고 한다. 두몸이 한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쉽게 '사랑나무' 라고도 부른다. 나무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가끔 볼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 닿을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전설상의 새와 나무인 비익조와 연리목에서 유래된 비익이라는 새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나란히 한몸이 되어서 난다하며, 연리라는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서로연결되어 나무결이 상통한다는데서 남녀간의 깊은 정분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나라 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그린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비익조)가되고 땅에서는연리지(연리지)가 되도다>라고 읊었다. ▲▼ 망월산성(望月山城,지방 기념물 제 93호) 청풍대교 남쪽 망월산 (해발 373m)의 정상부와 지맥을 둘러 쌓은 495m의 작은성이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고 적혀 있어 통일신라 이전인 삼국시대에 축성 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풍은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 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쟁탈지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다. ▲▼ 망월루(望月樓) ▲▼ 망월산성(望月山城,지방 기념물 제 93호)에서 당겨본 청풍호와 청풍대교(淸風大橋) ▲▼ 금남루(錦南樓) 충북유형문화재 제 20호인 이곳은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순조25년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고종7년에 부사 이직현이, 동37년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다목적댐의 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위에 세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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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구경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