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대왕문화관> 한글 관련 기록 정확히 해야
여주시가 진정한 한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한글 관련 기록을 정확히 해야 한다. 지난 9일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영릉의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둘러봤다. 한글 관련 기록에는 아쉽게도 오류와 오기가 적지 않았다. 전시관에서 <쉬운 문자로 백성과 소통하다>라는 제목의 설명 안내문(아래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한글 창제 날짜는 1443년 12월인데, 10월로 잘못 기록해 놓았다. 창제 시기는 세종실록에 정확히 나와 있다. 1443년 12월 30일자(음력)에 기록되어 있지만, 달별 기사로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上親制諺文二十八字)”라고 되어 있으므로,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달은 분명하니 12월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의 출처는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서>가 아니라 세종실록으로 고쳐야 한다. 정인지 서문에 1443년 12월 사건이 언급되어 있어 집필자가 착각한 듯하다. ‘정인지서’에서는 “계해년 겨울(1443년 12월)에 우리 임금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여, 간략하게 설명한 ‘예의’를 들어 보여 주시며 그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책은 없다. 흔히 해례본이라고 부르는 책 제목은 ≪훈민정음≫이며 문자 이름과 책 이름이 같다 보니 훈민정음 제자 원리를 자세히 설명해 놓은 ‘해례’를 따서 해례본이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따라서 표기할 때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해야 한다.
“창제 3년 후인 1446년 마침내 훈민정음 반포”라는 표현은, 창제한 연도와 달(1443.12)과 반포한 연도와 달(1446.9)이 분명하므로 ‘창제한 지 3년 후’라고 하면 안 되고 ‘2년 9개월 뒤’라고 해야 한다.
“중국의 여러 책을 번역하고 농서나 의서 등 실생활에 필요한 책들을 다수 한글 책으로 편찬하였다.”라는 표현도 올바르지 않다. 세종은 훈민정음 반포 후 4년간 공문서에 한글을 적용하고 불경언해서를 펴내고 동국정운 등 중요 한글 관련 책을 펴내지만, 의서 언해서는 세종 이후에 나오는 것이고 농서 언해는 조선시대 내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집현전 관련 기록도 <쉬운 문자로 백성과 소통하다>라는 항목의 하위 내용이므로 집현전이 훈민정음 반포 과정에서 어떤 구실을 했는가가 집중 서술되어야 한다. 따라서 집현전 대표 학자로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현로”라고 언급된 것도 수정되어야 한다. 이들은 집현전 대표 학자라기보다 해례본 편찬을 도운 학자들인데, 이현로는 해례본에 ‘이선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현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해례본에 분명히 ‘이선로(李善老)’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주시가 ‘한글도시’라고 하면서 한글 관련 기록에 오류가 있다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연재를 통해 밝히겠지만 여주시 곳곳의 한글 관련 기록 오류가 많다. 여주시는 여주시 한글 관련 모든 기록에 대한 전문가 재검토와 검증을 서둘러야 하고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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