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曙海) 최학송(崔鶴松,1901.1.21~1932-7.9)
소설가. 함북 성진(城津) 출생. 호는 서해(曙海), 아명은 저곡(苧谷).
성진보통학교(城津普通學校) 중퇴. 1917년 간도(間島)로 이주,
나무바리장수 · 두부장수 · 노동판의 십장 등을 지내며 유랑,
한때는 절망한 나머지 아편중독에 걸린 일도 있다.
1923년 귀국, 이듬해 홍수로 가산마저 잃게 되자 가족을 해산, 상경(上京)했다.
15세 때 《학지광(學之光)》에 투고한 산문시가 게재되고,
1923년 서해(曙海)라는 이름으로 《북선일일신문(北鮮日日新聞)》에
시 〈자신〉을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하였다.
1924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단편 〈고국(故國)〉이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장하였다.
이해 이광수(李光洙)의 주선으로 양주(楊州) 봉선사(奉先寺)에 들어가
3개월간 승려생활을 하고, 1925년 조선문단사에 입사, 〈십삼원(拾參圓)〉(1925),
〈탈출기(脫出記)〉(1925), 〈박돌(朴乭)의 죽음〉(1925), 〈기아(饑餓)와 살육(殺戮)〉(1925)
등의 작품을 발표함으로서, 일약 신경향파(新傾向派)의 유행작가로 각광을 받았다.
이들 일련의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른바 체험문학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장은 직설적이고 간결하며 박진력을 가지고 있다.
8년이라는 짧은 창작기간을 통해 발표한 30여 편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가 몸소 체험한 것으로 일관되며 특히 〈탈출기(脫出記)〉는
자전적 요소를 강하게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거의가 '갖지 않은 자'들이며, '가진 자'들에게 도전하는
반항이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25년 7월에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의 발기인은 아니었으며,
스스로 프로문학을 한다고 자처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그의 반항의 문학은
그의 생리였으며 체험에서 나온 자연발생의 독자적 특질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단 진출은 이광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후 3년간의 생활은
《조선문단》 최초의 발행인인 방인근(方仁根)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방인근의 집이자 잡지사인 조선문단사에서 방을 한 칸 얻어
사원이자 작가가 된 그는, 그곳에서 김동인(金東仁) 등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과 접촉, 문단생활로의 발판을 굳혔다.
《조선문단》이 경영난으로 휴간된 이후로는 여러 잡지사와
신문사를 전전,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방탕한 생활에 기울어
재차 발병, 약물중독에 이르렀다. 1932년 3월 위문협착증으로 수술,
출혈이 심하여 7월 6일 관훈동 삼호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밖의 주요작품으로 〈큰물 진 뒤〉(1925), 〈폭군(暴君)〉(1926),
〈의사(醫師)〉(1926), 〈소살(笑殺)〉(1926), 〈홍염(紅焰)〉(1927),
〈낙백불우(落魂不遇)〉(1927) 등이 있고, 창작집 《혈흔(血痕)》(26)에
단편 11편, 《홍염(紅焰)》(32)에 단편 3편이 수록되어 있다.
故 신상옥 감독/최은희 배우 탄생 100주년 기념영화 <탈출기> 상영회
탈출기(脫出記)
단편소설. 1925년 3월, 《조선문단》에 발표. 작자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출세작으로,
내가 가정을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김군에게 편지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고국을 등지고 간도 땅으로 살길을 찾아 나섰던 빈농이
차디찬 현실에 꿈이 좌절당하는 과정, 1920년대를 전후한 수난사의 한 단면을
박진력이 있는 필치로 그려, 이 소설로 그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신경향파의 각광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5년 전 나는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기름진 땅이 흔하다는 간도 땅으로 갔다.
농사를 지어 배불리 먹고 무지한 농민들을 가르쳐
이상촌(理想村)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빈 땅은 없었고 중국인에게 소작인 노릇을 하려 해도
빚 갚을 길이 막연한 현실이었다.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구들을 고치고 삯김도 매고
꼴도 베어 파는 일을 했으나 이틀 사흘 굶기가 일쑤였다.
이틀을 굶은 어느 날 임신한 아내가 거리에서 주운 귤껍질을
먹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더욱 열심히 살 것을 결심한다.
가을이 되어 생선장사도 하였고 두부장사도 했다.
그러나 두부는 걸핏하면 쉬기가 일쑤였고 그러면 그 쉰 두붓물로 연명했다.
갓난아이는 젖 달라 울고 겨울이 닥쳐왔다.
그나마 두부 장사를 하려면 땔 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나무를 하다가는
경찰서에 잡혀가 매 맞기가 다반사였다.
나는 세상이나 어머니나 아내에 대하여 충실하게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충실한 우리를 모욕하고 멸시하고 학대하였다고
생각한 나는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들, 험악한 공기의 원류를 바로잡기 위해,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을 희생하면서 어떤 집단에 가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학송 [崔鶴松]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첫댓글 우포 선생님과 유천 선생님 두분
늘 좋은 일 많이하시네요.
참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