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0...부활 제6주일 가해
주제...내게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
세상의 삶은 여러 가지의 처지와 차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여길 것은 사람의 노력과 협조라고 말하기가 쉽지만, 사람의 힘을 넘는 것을 생각한다면서 하느님의 도움과 사랑 그리고 역할을 말하는 일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개인의 생각을 묻는다면, 어떤 행동을 하든지 사람은 자기의 삶에 드러나는 이익을 크게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기를 권하는 것이 있다면,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행동의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떠한 모양으로 남겠느냐고 묻고 대답하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만, 자기의 삶에 이익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실현될 이익을 생각할까요? 어쩌면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의 모습은 이상하게 바뀌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세상에 알리신 방법으로 선택하신 예수님의 부활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일이었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순서에 따라 일어난 일이었으니, 그 일을 만나는 세상의 사람들이 그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을 일이기도 했을 겁니다. 사람의 삶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아오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부활을 거부하는 것이 당연했을 일입니다. 세상의 삶에서 그렇게 놀라운 일을 만난다면 나는 세상을 향하여 내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는 사람이겠습니까?
세상에 예수님의 부활을 이루신 하느님께서는 그 세상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드러내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그러하다고 우리가 이해한다고 해도 우리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그 놀라운 일을 드러낼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바람을 잘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가 놀라운 행동을 하기 위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바람은 세상에 당신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고,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에 함께 하신다는 보장을 주시려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바람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람이 온전하게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힘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삶에서 만큼은 인간이 드러내는 의지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말하라면 그 첫째는 사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중요하고도 귀중한 것만큼 사람들마다 해석하는 모양이 다르고 실천하는 모양이 다릅니다. 그러니 사랑이라고 똑같은 글자를 쓰면서도 그 글자에 담는 의미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많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듣는 사랑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에게 보이시려고 했던 사랑과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다고 믿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일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그 사랑을 따르고 실천해야 하는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나의 삶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찾아온다고 느낄 때이라야만 내가 온전하게 하느님께 돌아서겠습니까?
아직은 성령강림의 축제일을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적절한 준비를 할 때라야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2026-05-14...마티아
주제... 내가 드러낼 사랑
오늘은 마티아 사도의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뽑으신 12명의 사도에서 유다가 자기의 생각대로 길을 간 다음, 제자공동체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찌기 알려주신 뜻을 선포하고 실천할 사람으로 선택한 사람이 마티아사도였습니다. 한 자리에 사도로 들기 위하여 마티아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오늘 읽은 사도행전의 독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애썼을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도 공동체와 함께 지내려고 애썼을 거라는 정도만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행동에 따라 유다의 자리를 채운 사도가 마티아였습니다.
마티아가 남았던 빈 자리를 채운 일을 기억하는 날, 우리는 어떻게 살면 자리를 올바로 채우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지 살아있기만 하면 자리를 채울 수는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야 할 것은 옳고 바르게 사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사랑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일이 얼마나 쉽고 편한 일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제자들이 머물기를 간절하게 바라셨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 초대의 삶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겠습니까?
나를 초대하는 소리에 내가 머무르려고 한다면 어떤 모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만큼 행동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만큼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만나고 겪은 사람들에게 좋은 행동을 남기는 방법으로 내가 살아야만 내가 만드는 그 삶의 결과는 분명히 좋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내가 베푸는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해서 우리는 관심을 가질까요? 아니면 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을 담은 것이기를 바라겠습니까?
오늘이 기억하는 사도 마티아는 에티오피아에서 삶을 마쳤다고도 전합니다. 정확한 사실은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세상의 삶에서 드러내는 삶의 결실은 나에게도 좋을 것이고 나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것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청할 시간입니다.
2026-05-17...예수님의 승천대축일
주제.. 예수님이 남기신 약속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파견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일을 기억하는 승천대축일입니다. 세상에 살거나 살았던 존재가 하늘의 삶과 연결되려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 죽음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은 승천입니다. 오늘 대축일에 우리가 예수님의 승천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만, 실제로 우리의 삶에 이 승천의 기쁨이 아직 실현된 것은 아니라서, 우리가 승천의 의미를 정확하게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33년을 사셨고,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고통과 수난의 시간을 겪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50일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이면서 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신 기간 동안 드러내신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한다고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로 떠나시는 승천을 생각하면서 과연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오셨는지 우리가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제대로 대답한다면, 우리도 현실에서 그 목적을 위하여 충실하게 살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삶에서 실현하고 싶었던 목적을 우리는 무엇이라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쉽사리 생각할 내용은 아니겠지만, 인류의 구원을 위한 복음의 선포였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으며,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더 널리 펼쳐지도록 애쓰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마나는 모든 일이 완성되기 전 삶의 결과를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만, 이제는 세상에 남은 제자들이 그 일을 충실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남기고, 하늘로 오르시겠다고 결정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그렇게 받은 사도라면 그리고 우리라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모습이 옳다고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과 분리를 목적으로 하는 무조건의 이별이었을까요? 승천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승천을 이별이라는 소리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만, 오늘 사도행전이 전하는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승천이 드러내는 표현은 이별이 분명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승천을 당신의 행동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양의 만남인 성령의 강림을 약속하시기에 우리가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승천은 이별으로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강림에 목적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그렇게 놀라운 일을 이루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도들에게 남기신 사명을 우리는 과연 내가 실천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까요? 어떤 일이든지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사람의 삶에는 보상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보상을 좋은 것이라 여긴다면 우리는 축복이라 말하겠지만, 나쁜 것을 생각한다면 내가 잘못한 행동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내 삶에 생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룰 수도 있습니다.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을 구별해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우리의 삶에 생기는 삶의 현실이나 모양은 달라질 것입니다.
나의 삶에 생기는 결실에 내가 만족하고, 그 결실이 하느님의 뜻을 내가 실천한 행동이라는 판단을 듣기 원한다면, 그 판단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받게 하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기가 쉽지만 하느님의 도움과 자비를 기대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