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협 '신앙의 해 제주ㆍ추자 도보성지순례' 동행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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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희송 신부를 비롯한 서울평협 순례자들이 정난주(마리아) 묘소에서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
"사람의 마음속에 많은 계획이 들어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뿐이다"(잠언, 19,21).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최홍준)가 16~18일 개최한 '신앙의 해 제주ㆍ
추자 도보성지순례'에 참가한 80여 명의 순례자들은 순례를 마치며 이 구절을 떠올렸다.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의 부인 정난주(마리아, 1773~1838)와 아들 황경한의 삶과
영성을 따르는 이번 순례는 배가 뜨지 못하는 바람에 추자도 방문을 다음 기회로 남겨둬야
했다.
서울평협은 2011년부터 '하느님의 종'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동료 순교자 123위, 그
리고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토마스) 신부 시복시성을 위해 해마다 전국 성지순례를
펼쳐왔다. 정난주와 황경한은 125위에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삶과 영성은 이들과 다를 바
없다.
교구 사목국장 손희송(서울평협 담당) 신부와 최홍준(파비아노) 회장 등 일행은 이번 순
례를 통해 주님 뜻을 따르고, 자신의 자리에서 이웃에게 주님 사랑을 전하는 사도로서 살아
갈 것을 다짐했다.
제주=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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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ㆍ추자 순례자들이 대정성지 정난주(마리아) 묘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부푼 꿈을 안고 16일 오전 김포공항에 모인 순례단 80여 명은 비행기 두 대에 나눠 탔다. 추자도 순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였을까. 맑던 하늘은 제주공항에 도착했을 무렵 잔뜩 찌푸려 있었
다. 제주교구 서문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일행이 순례한 첫 성지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이 있는 용수성지.
용수성지는 상하이 진자샹(金家港)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
부가 1845년 9월 28일 라파엘호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김대건 신
부 제주 표착기념박물관 오른편에 전시된 라파엘호에 올라가 보니, 김대건 신부가 평신도
11명과 함께 이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왔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고 초라했
다.
성지담당 허승조 신부는 "김 신부님 일행은 태풍으로 난장판이 된 작은 배 안에서 멀미와
굶주림을 견뎌가며 끊임없이 '예수, 마리아'를 외쳤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태풍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 목숨을 바쳐가며 하느님께 기도했던 신앙 선조의 삶을 본
받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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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들이 대정성지를 향해 도보순례를 하다 손을 흔들며 반기고 있다. |
#정난주 묘소를 향해
점심을 먹은 순례단은 대정성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정성지는 이번 순례 여정의 핵심
순례지 중 하나인 정난주(마리아) 묘소가 있는 곳이다. 무릉생태학교를 출발한 순례단은
대정성지까지 울퉁불퉁한 현무암 투성이 숲길 8.5㎞를 걸었다. 자벌레가 옷에 매달리는
등 가는 곳마다 걸림돌이 많았지만, 정난주가 두 살배기 경한을 데리고 유배를 떠날 때가
떠올라 분위기는 경건해졌다. 한여름에 버금갈 정도로 더운 날씨 때문에 비 오듯 땀이 났
음에도 순례자들은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다.
최연소 순례자 최서윤(엘리사벳, 6)양과 최예서(안토니오, 8)군은 엄마 박희정(마리아
마자렐로, 40, 신당동본당)씨와 함께 제일 마지막으로 대정성지에 도착했다. 막판에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외려 1.5㎞를 덜 걸었지만, 어린 남매가 7㎞에 이르는 바윗길을 무
사히 걸어온 것이 무척 대견했다. 대정성지를 마지막으로 첫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
아온 일행은 추자도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시 한 번 두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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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신자가 대정성지를 향해 도보순례를 하던 중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
#황사영 일가의 삶
황사영(알렉시오) 일가의 삶은 인간적 관점으로만 보면 예수ㆍ마리아ㆍ요셉의 성가정
처럼 안쓰럽기 짝이 없다. 황사영은 16세 때 진사시에 급제, 화려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하고서부터는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박해 일대기를 담은 「백서」가 발각돼 1801년 능지처참형을 당한다.
그의 재산은 몰수되고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에, 부인 정난주는 제주도, 아들 황경한
은 나이가 어려(2살) 추자도에 정배를 당한다. 관비(官婢)가 된 정난주가 제주에 오는 동
안 사공들에게 "경한이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조정에 보고해 달라"고 애원한 것에서 어떻
게든 아들을 살리려는 뜨거운 모정을 엿볼 수 있다. 정난주와 황경한은 그 뒤 살아서는
재회하지 못한다.
추자도 한 바위 위에 버려진 경한은 뱃사공 오씨에게 발견돼 그의 집안에서 자라게 된
다. 장성한 황경한은 추자도에서 혼인해 두 아들을 낳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살던 집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볼 수 없다. 1965년 화재로 모두 불탔기 때문이다. 그가 입
던 배냇저고리와 물건들도 모두 소실됐다. 황경한 후손 일부는 여전히 추자도에서 살고
있다.
#하느님의 뜻은
서울평협이 추자도에 가려는 목적은 황경한 묘소와 추자공소를 순례하며 황사영 가족
의 삶과 영성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유배지에서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평생 예수님을 따른 정난주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평협 권길중(바오로) 부회장은 "요즘 엄마들, 특히 신자 엄마들만이라도 정난주의
삶과 영성을 본받아 자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녀를 대신 키운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몫을 기쁘게 찾도록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자도에 가려던 17일, 날씨는 화창하고 맑았지만 바람이 매우 거셌다. 이날 새벽 4시
30분께 제주해역 일대 내려졌던 파랑주의보가 잠시 해제돼 추자도 순례가 성사되는가
싶었지만, 오전 6시에 다시 주의보가 발령돼 모든 뱃길이 끊겼다.
순례단은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잠잠해지며 고요해
졌다"(루카 8,24)는 성경구절이 실현되기를 바랐지만, 주님께서는 추자도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네 번째 추자도 도전이라는 서울평협 복음화위원회 김대우(비오) 위원은 "추자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하느님 뜻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며 "하느님은 당신
자녀가 언제나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추자도에 가지 못한 일행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 제주도 현지에 예약한 숙소가
없어 서둘러 일정을 바꿨다. 다행스럽게도 첫날 묵었던 리조트의 사장이 천주교 신자여
서, 그가 새로 문을 열려고 준비 중인 또 다른 리조트를 급히 내어줬다. 하느님 도우심
으로 노숙은 면한 것이다.
제주교구 중앙주교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와 만난 순
례단은 17~18일 추자도 대신 황사평성지와 김기량(펠릭스) 묘소, 절물휴양림, 우도공
소 등을 방문하고 순례일정을 마쳤다.
최홍준(파비아노) 회장은 "인생은 순례 여정이고, 순례는 하느님께로 가는 인생 축소
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기본 권리와 종교 권리를 박탈당한 신앙선조 아픔에 깊
이 동참하면서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는 지향을 배웠다. 우리도 언제나
순례 여정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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