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言>
11장은 '두 증인'에 대한 계시입니다.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3일 반 동안이나 장사되지 못한 채 모욕을 당했습니다 (3-10절).
그런데 '두 증인'이 3일 반 후에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두 증인' 은 교회와 성도의 상징이고, '짐승'은 적기독 국가와 적기독 왕(적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단7:17).
두 증인의 부활은 하나님의 교회에 큰 소망이 되게 하는 장면입니다.
<本論>
1. 두 증인이 3일 반 후에 부활하게 됩니다.
'두 증인'이 3일 반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아 부활하게 됩니다.
두 증인이 1260일 동안 예언 사역을 했습니다.
그 기간은 대환난 중 전반기 3년 반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두 증인이 사명을 마치자 짐승에게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해서 3일 반 동안 모욕을 당했는데 그 때는 후반기 3년 반(42달)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은 성전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기간이며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얻은 기간입니다 (11:2, 13:5).
두 증인이 후반기 환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아 살아나게 되고 (11절),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12절).
이를 흔히 휴거(携擧)라고 합니다.
이는 에스겔 37장의 반영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일제히 살아난 것 처럼 종말의 교회가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환난의 기간이 끝나면 예수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가운데 재림하게 되는데, 그 때에 모든 죽은 자가 부활하여 들림받게 됩니다.
물론 살아 있는 자도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들림 받아 예수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살전 4: 14-18).
고전 15: 51-52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엔 들림받는 자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자도 있을 것입니다.
마 24: 40-41에"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교회가 죽어 있는 상태 그대로 버려 두지 않습니다.
교회는 환난과 고난을 당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반드시 살리십니다.
종말의 교회가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정한 기간이 지나면 부활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역사의 한 부분에 있는 교회도 환난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의 역사로 다시 일어나곤 합니다.
개인도 때로는 죽은 것처럼 무력해 있는 기간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연단을 목적으로 허락한 환난 기간이 끝나면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2. 두 증인의 부활로 사람들이 두려워 합니다.
두 증인이 부활하고 휴거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구경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원수들도 보게 됩니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 하게 됩니다 (11下,12下).
전에는 두 증인의 죽음을 축하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런데 두 증인이 다시 살아나는 광경과 하늘로 올라가는 광경을 보고 그들이 참 선지자인 것을 알고 두려워 합니다.
종말에 교회가 부활하고 휴거하는 모습은 교회를 모욕하거나 핍박했던 자들도 교회가 갖는 권위를 인정하게 됩니다.
두 증인의 휴거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증거가 됩니다.
마태복음 27: 52-54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힐 때 해가 어두워지고 지진이 나고 예루살렘 근처의 무덤이 열리고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보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백부장과 예수님 무덤을 지키던 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 되어진 일들을 보고 두려워 하면서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어느 때에나 교회가 신앙이 죽은 것 같다가도 말씀을 순종하여 다시 회복되면 교회를 멸시하고 조롱하던 자들도 교회를 두려워 하고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게 됩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가질 때 교회의 무력한 모습을 보면서 예수를 믿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근거로 여겼던 자들도 교회가 가진 복음과 교회가 높이는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것은 생명력을 상실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존재가 되려면 생명력을 가져야 합니다.
죄에 대해 두려워 하고 말씀을 철저히 지키고 복음 전하는 사명을 생명 내놓고 감당해야 합니다.
3. 두 증인의 부활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도 있습니다.
두 증인이 부활할 때 큰 지진이 있어 성 십분의 일이 파괴되고 7000명이 죽게 됩니다.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13절).
7000명은 많은 수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일부를 표현한 것입니다.
두 증인이 부활할 때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됩니다.
원수들은 그 광경을 보고 큰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숨는 자들도 생기게 됩니다.
누가복음 23: 30에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 광경들을 보는 사람 가운데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도 생기게 됩니다.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표현은 두려워 하여 피상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일 수도 있으나, 네번째 대접 재앙이 내릴 때 사람들이 두려워 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보아 진정한 회개인 것 같습니다 (Ladd, Johnson, Morris, Mounce).
16: 8-9에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교회의 부활은 그 광경을 보는 자들로 하여금 후회하고 회개하며 돌이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할 것입니다.
역사 속의 교회도 생명력을 가질 때에 믿지 않는 자가 회개 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사실 복음의 권위는 외부적 선교와 전도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내적 확신과 부흥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신앙 생활을 힘있게 할 때에 사람들이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結言>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려 두지 않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사단의 역사와 그에게 이용되는 환경은 우리로 더욱 좌절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지라도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 땐 모든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에라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지고 영적 생명력을 유지해 가야 합니다.
사단과 세상이 두려워 하는 존재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