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먹는 것부터 절제를 해야 할 것이다’
말이야 정말 맞는 말이지 않은가?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성령의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기도하며 애 쓰는 사람들은 드물다.
마치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예배를 통하여 복을 얻기를 구하는 것처럼
은사에는 관심이 있는 데 정작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의 열매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은사사역자들이 강퍅하고 지배적이며 능력은 있으나 성령의 열매인 예수님의 향기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영성의 사람은 바른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다.
사실 성령의 은사보다 열매를 추구하는 것이
본질을 향하여 나아가는 바른 방향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은사는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찾고 두드리면 열리게 되고 주신다.
또한 제일 좋은 것을 주신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시고 난 다음 은사의 사용은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든지
아니면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다
나중에는 자기의 영광과 야망을 위해서 사용하던지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문제이다.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고
귀하고 거룩한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귀한 도구이지만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성령의 열매가 더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은사는 열매 맺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열매가 결국은 본질이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1장 3-6절을 보자.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에베소서 1장 6절 말씀대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 그것을 4절에서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예정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원하신다.
그 열매란 바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요.
성령의 열매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나무로 따진다면 관상용이 아니라 유실수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 등 열매가 있는 유실수로 비유하신다.
유실수를 심는 다는 것은 결국 열매를 얻기 위함이다.
나무가 자라고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가지가 뻗어서
열매가 달리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이다.
만약에 은사가 나타나는데
그 은사를 통한 이적과 기사에만 관심이 있고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은 그 사람은 이적과 기사를 본질적으로 알고 추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열매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성령의 향기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성령님은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셨다.
요한복음 14:26절 말씀에 주님은“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하셨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시며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란 바로 예수님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인격이 바로 성령의 열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야말로 본질인 것이다.
왜 열매가 본질인가?
그것은 여기서 은사를 사용하는 바른 동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능력 있는 사역자들이
처음에는 겸손히 주의 일을 행하다가
나중에 왜 넘어지는가?
그것은 은사는 받았으나
그 은사를 바르게 사용할
성령의 열매들이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육의 열매를 추구하게 되고
육의 열매들이 맺어지고,
육의 열매들로 방향이 바뀐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참된 영성은 그래서 능력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참된 영성은 성령의 열매를 추구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맺는 영적인 열매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그 마음이 우리 속에 녹아 날 때
성령의 은사들은 자연스럽게 임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신앙이 어릴 때의 나는
성령의 은사를 구하기 위해서
산에 혼자 가서 부르짖고
높은 바위위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낭떨어지를 뒤로 두고 소나무 붙잡고 기도하고,
아침 부터 저녁늦게 까지 한 자리에 앉아 오래기도하고
밤을 새우며 끈질기게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즐겼다.
그것은 능력을 받고 싶었고
실재로도 많은 능력이 나타났다.
초창기 때의 능력은 주로
신유와 환상과 영안이 열리는 것 정도 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초기의 사역에 나타는 능력들이었다.
그러나 그 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구하며
주님을 마음을 추구하며
성령님과 깊은 교제속으로 나아갈 때
여러 가지 다른 은사들이 구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임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론 전혀 기도를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옛날같이 그렇게 능력 달라고
때를 쓰며 기도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사역 중에
한 번도 능력을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았다.
주님은 단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달라고 기도하셨을 뿐이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에게 녹아들기를 기도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뜻이 주님과 하나 될 때
천사들이 나아와 수종 들고
성령의 강력한 임재하심이 함께 하셨다.
주님이 구한 것은 바로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란 결국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은
피땀 흘리는 겟세마네의 처절한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추구할 때
성령의 은사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나타난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온다.
그런 친밀함이 성령님의 모든 것을 오픈하게하고
성령님의 영향력 안에 내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그분의 것을
요청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령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밤을 세워 그분과 애기하며
때로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청하기도 하며
때로는 눈물로 감사와 찬양도 드리고
때로는 너무나 그의 사랑이 커서
춤추며 경배하기도 하고.....
바울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였다.
어떻게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할 수 있는가?
이는 성령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이다.
모든 삶에 성령님과의 친밀함으로 연결되어 기도하라는 것이다.
성령님과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를 맺은 사람이다.
성령의 열매를 추구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은 사람이야 말로
성령님이 함께하는 성령의 사람이요.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은사는 자연적으로 따라 온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코드가 제대로 맞춰졌기에
성령 안에서 선포하고 외치는
그의 말이 능력이 없을 수가 없으며
성령 안에서 행하는 그의 삶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이렇게 성령님과의 교제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흘러들어오고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내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의 뜻대로 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며
율법 교육을 받고 십계명의 두 돌 판을 받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 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은 두려웠고
모세는 그 영광이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임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수건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다.
모세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말씀을 듣고 교제할 때에 그 자신은 몰랐지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이 얼굴에 묻어난 것처럼
은사도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흘러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방향성 속에서
강력한 주의 통로가 되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고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한 지혜를 구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질이다.
그가 만약 부와 명예와 더 큰 권세를 구하였더라면
주님은 다른 모든 것을 함께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랑을 많이 한다.
특히 영적이라는 사람들의 경우 그런 현상이 심하다.
그것은 그의 가치가 신비로움을 추구하고,
뭔가 눈에 보이는 멋진 것,
위대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영성 있는 사람은
정말 그의 말과 그의 생각과 그의 삶에
그리스도의 진한 향기가 베어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를 통하여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과 말과 삶은
성령의 열매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 드러나고 희락이 드러나고 화평함이 드러나고......
제자들이 낮은 영성을 가지고 있을 때는
사역시에 능력이 나타나고
귀신이 좇겨가는 것으로 기뻐했다.
즉, 한 영혼이 구원을 받고 주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보이고 나타난 현상들에 흥분한 것이다.
마치 자기가 뭔가라도 된 것처럼 대단하게 떠벌린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에 일침을 가하신다.
“귀신을 좇아내고 병을 고친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성령으로 귀신을 좇아내고 병을 고친 것이면
너희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었으니 그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현상보다 그 뒤에 역사하는 주님을 생각하고,
현상보다 성령님을 생각하며
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며,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가치를 생각하며 사역하는 사역자...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가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의 생각과 맔과 모습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 것
그것이 주님과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의 원동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 보다
나타난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생각하라.
주를 생각하고
주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그 의를 구하라.
성령의 열매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중매하기 위한
더욱 더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