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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2강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행2:1-47
요절/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에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오늘 2장 말씀은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바로 그 성령세례, 성령이 임하시는 일의 성취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너무나 강력해서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받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초기 교회 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신학자 리차드 개핀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절정에 도달한 그의 구원 사역이 미완성되고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지만 사람들의 구원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강림이 수반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살펴보면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성령의 임재가 주어진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성령의 오심을 통해 어떤 일들이 나타났습니까? 또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1절을 보십시오. 오순절은 ‘50번째 날’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유월절로부터 50일이 지난 때입니다. 예수님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로부터 50여 일이 지났습니다. 또 유월절 이후, 안식일이 7번 지나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밀을 수확한 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라서 ‘맥추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날을 성령이 강림하신 날, 즉 ‘성령강림절’로 기념합니다. 처음 교회가 형성되어서 ‘교회의 생일’로도 불립니다. 이날에 사도들과 여자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을 포함해 120명의 무리가 한곳에 모였습니다.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갑자기 하늘에서 강력한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합니다. 토네이도 같은 강력한 바람은 거대한 나무도 뿌리채 뽑아버리고 건물도 통으로 날려버립니다. 오순절 성령은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걱정과 두려움의 미세먼지를 날려버릴 뿐만 아니라 시기심, 미움, 불신 등의 근원을 뿌리채 날려버리게 됩니다. 또 3절을 보십시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모습이 그들에게 나타납니다. 성령은 불의 혀처럼 그들에게 강력하게 역사했습니다. 이들이 선포하는 말씀은 불화살처럼 강력하게 역사할 것입니다. 그 불이 각 사람 위에 인격적으로 앉습니다. 성령이 이렇게 오심은 제자들이 시청각적으로 성령이 실제 오셨음을 깨닫고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이 임한 그들이 어떻게 됩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은 단지 택함 받은 사도들에게만 임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에게만 임하지도 않습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라는 말은 ‘과거에는 성령이 조금밖에 없었는데 지금 많아졌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은 스마트폰의 배터리처럼 줄었다 늘었다 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라는 말은 성령이 예수님의 약속대로 마침내 그들에게 오셨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또 성령의 역동적인 일하심의 표현입니다. 랍비 전승에 의하면,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한 소리를 통해 주어졌는데 그 소리가 일곱 목소리로 나눠졌고 다시 70개의 방언으로 나눠져 모든 사람이 율법을 자신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후기 유대교에서는 오순절을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 여겼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지금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려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오심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 성령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예수님의 시대가 열린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성령이 모든 구원 사역의 주체가 되십니다. 한 사람을 말씀으로 깨우쳐 예수님을 믿도록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연약한 사람을 권능의 사람이 되게 하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합니다.
둘째, 성령의 오심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반복할 수 없는 독특한 사건입니다. 누구든지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으려면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오심은 반복되는 일은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을 때 성령을 받고, 또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 때 또 성령을 받는 이런 반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이 우리 심령 안에 내주하십니다. 성령은 영원토록 나와 함께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이 오시자,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은 그들에게 다른 언어로 말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외국어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존에 익혔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것이 아닙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연습한 적이 없는 말을 초자연적으로 한 것입니다. 성령이 이런 능력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땅끝까지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여해주시는 능력은 우리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증인의 역할을 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40년 전, 한국 UBF에서 캐나다에 자매 선교사님들을 30여 명 파송했습니다. 그들은 다 재봉공 선교사로 파송되었고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분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초등학교 졸업 출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부터 암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능력을 덧입혀주셔서 마치 불의 혀처럼 달달달 영어를 외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현지인 캐나다 대학생들에게 영어로 말씀을 가르치는 빼어난 성경 선생들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권능을 받게 되니까, 무식하고 가난했던 한국 선교사들을 통해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도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누가 예루살렘에 머무르고 있었습니까?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천하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어디서 왔습니까? 바대와 메대와 엘람과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에서 왔습니다.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 그리고 로마와 그레데, 아라비아에서 왔습니다. 아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왔습니다. 평소 예루살렘에는 8만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순절 등 주요 절기 때는 200만 명 정도까지 모인다고 합니다. 성령은 이때를 이용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초월적인 외국어의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요즘은 국제수양회에 가면 자막이나 동시통역기를 써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기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급하게 제자들에게 여러 나라 외국어의 은사를 허락하셔서 언어의 능력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자기네 말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 신기하게 여기며 말합니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이 어찌된 일이냐?”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바벨탑을 쌓던 사람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천하 각국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사역을 통해 흩어졌던 열방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을 듣습니다. 성령의 오심은 흩어졌던 열방을 모으고 모두가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사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이 언어의 장벽과 민족과 나라의 경계를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조롱했습니다. “그들이 새 술에 취했다.” ‘새 술’은 최상급의 포도주를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니 비싼 술 처마시고 근들근들 혀 꼬부라진 소리 한다고 조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고 성령에 취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의 각 나라 언어로 유창하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조롱하는 그들에게 베드로가 반박합니다. “유대 사람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주민 여러분! 이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제 삼시, 즉 오전 9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사람들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어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가 시작됩니다. 설교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성령이 오셔서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한 것은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성취한 것입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과거 성령의 임하심은 특별한 몇 사람들에게 한시적으로 그리고 이스라엘 중심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사사 시대의 사사들에게, 사무엘, 다윗, 그리고 이외에 하나님이 부르신 선지자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십니다. 자녀들은 예언합니다. 젊은이들은 환상을 봅니다. 늙은이들은 꿈을 꿉니다. 남녀 종들도 예언합니다. ‘예언한다’라는 말은 ‘미래를 본다’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증언한다’라는 의미입니다. ‘환상을 본다’, ‘꿈을 꾼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비전을 본다’라는 의미입니다. 요엘에게 하셨던 그 말씀이 오늘 본문의 제자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모든 신약의 성도들은 다 성령의 임하심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기사와 징조를 베푸십니다. 최후 심판이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는 등의 천체의 변동이 일어납니다. 이런 현상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우리 주님의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이 때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됩니까? 21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는 구원의 문이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그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받습니다.
또 베드로 설교 핵심의 두번째는,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나사렛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셨던 역사적인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기적과 놀라운 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람에게 증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을 법 없는 사람들, 즉 이방인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이 다윗을 통해 이미 예언된 것임을 증언합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다윗은 죽어 묻혔고 그 무덤이 오늘까지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다윗은 선지자로 자기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그리스도가 부활해 왕위에 오를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말했습니다.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32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 일에 다윗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증인입니다.
베드로는 계속해 예수님의 승천과 그들이 받은 성령에 대해 증언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않았으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나님 오른편에 앉는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왕으로서 다스리심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오심은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하셨음을 알려주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우리의 왕이요 구원자가 되십니다. 로마서 10장 9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파해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베드로 설교의 핵심 중 세번째는,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들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을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마주한 그들은 자기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깨닫고 심한 양심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 3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들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깊이 인정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는다’라는 말은 ‘물로 머리를 적신다’, ‘물에 몸을 담근다’라는 의미입니다. 회개의 표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해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인 회개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공적인 세례를 통해 회개와 믿음을 공식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받습니까?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이 말은 일차적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또 ‘성령이 가져오는 선물’, ‘성령이 주시는 선물’을 받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러한 성령의 약속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먼 데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차별 없이 주어집니다. 인종과 혈통을 가리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뛰어넘어 땅끝까지 이릅니다. 그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초기 교회 공동체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예루살렘 초기 교회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첫째, 배우는 교회입니다. 4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교회의 구성원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배우고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새 신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는 자랄 수 없습니다. 배우지 않고는 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특히 증인의 삶은 배움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둘째,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그들은 교제에 힘썼습니다. 교제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기본적으로 ‘나눔’이라는 의미입니다. 시간과 물질, 대화 등을 공유해 삶을 함께 공유하며 나누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교제는 빵을 떼는 일로 이어집니다. ‘빵을 떼는 일’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음식을 먹는 것과 성찬입니다. 당시 성찬은 정규적인 식사를 하는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각 가정에 모여 식사할 때마다 성찬을 했습니다. 그들은 동역자들과 교제하면서 예수님과 교제했습니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합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줍니다. 코이노니아가 ‘디아코니아’ 즉 ‘봉사’, ‘구제’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사유 재산의 포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물질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과 함께 물질을 나눈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 초기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중심, 봉사와 구제 중심이었습니다.
셋째, 예배하는 교회입니다. 46,47절을 보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해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공적으로, 그리고 가정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예배했습니다.
넷째, 기도와 전도의 공동체입니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기도에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120명의 제자를 본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선한 열매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받았습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주님이 이루어나가십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제 역할을 다할 때 하나님은 그 교회를 통해 새로운 영혼들이 거듭나게 하십니다.
여러분! 성령이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언어의 권능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가 탄생했고 교회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능력 없음을 잘 아시는 주님이 우리를 ‘내 증인’, 즉 ‘예수님의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심령에 내주해 계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도우심과 권능을 덧입어 복음 역사를 섬기도록 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은 지금도 예수님 믿는 각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의 은혜와 권능을 의지하여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 되시는 예수님을 힘써 증언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심령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배우며 사랑하며 기도하고 전도하므로 내외적으로 성장하는 교회 공동체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