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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 ‹알› (2005)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89.5×130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지극한 사랑에 대한 그림
2025년 을사(乙巳)년 새해를 맞이해 뱀이나 세시(歲時)와 관련된 미술관 소장품이 있는지 살펴보던 중, 강요배(姜堯培, 1952년생)의 작품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강요배’ 하면 바로 떠오르는 ‘쉭쉭하고 소리’ 나는 듯한 빠르고 거친 획 대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붓질과 평온한 느낌을 주는 베이지톤, 추상에 가까운 단순한 구성의 화면, 낮은 언덕처럼 부드러운 곡선과 그 위에 걸쳐있는 흰 달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달이라 하기엔 타원에 가까운 모습이 ‘왠지 알처럼 생겼네’ 생각하며 제목을 보니, 놀랍게도 ‹알›이었다. 이 대충 둥그런 것이 무언가의 ‘알’일 것이라고 생각한 데는, 작가가 ‘제주의 화가, 강요배’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사실 그림을 생각하고 있다. 그림이란 무엇일까?
그림을 ‘회화’라고 하면 너무 기능적인 면만 부각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림을 단순히 미술의 한 방식으로서 ‘평면작업’이라 해도
물질주의적 미술 이론의 그물에 걸려 질식당할 것만 같다.
이 말에는 또한 서구의 문화전통이 강력하게 개입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 민족에게 그림이란 ‘그리다’,‘그리움’의 의미와 결부된
더 넓고 깊은 의미의 폭을 지닌 것이 아닐까?”
_ 강요배, 『풍경의 깊이』(2020)
작가의 고향이자 그가 1992년 귀향한 이래 현재까지 머물며 작업 중인 제주는, 민속문화 특히 섬 특유의 이질적인 기층문화와 민간신앙이 잘 어우러진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중 뱀 설화를 살펴보면, 위기에서 구해준 뱀을 집안의 신 또는 당신(堂神)으로 모시거나, 인간과 뱀이 대결하거나, 인간이 뱀으로 환생하는 등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뱀은 제주의 민간 전설에서 인간에게 경외와 숭배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많은 알을 낳는 뱀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무한의 가능성을 품은 뱀의 알. 새해를 맞이하는 모든 이들의 소망이 눈에 보이는 현실을 훌쩍 뛰어넘기를 바라며 강요배의 ‹알›(2005)을 여러분께 올해 첫 작품으로 선물하고 싶다. 그러니 부디 해석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나무라지 마시길.
강요배의 작품이 가진 힘은 신화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데 머물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 역사를 되돌아보도록 이끄는 데 있다. 제주로 간 강요배는 제주의 거친 풍광(風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오롯이 화폭에 옮겼다. 강요배가 그린 바다와 바람, 산과 들, 나무와 꽃 등 제주의 풍경은 지금 여기 인간의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어루만지는 자연이면서 동시에 역사의 흔적이 층층이 각인된 장소이자 시간이다. 응축된 인간의 역사를 내포하고 작가의 오랜 사유의 향이 짙게 배어있는 풍경.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들꽃, 매서운 삭풍을 견뎌낸 팽나무, 한바탕 폭풍이 몰아칠 듯 거친 숨을 내뱉는 파도, 먹구름이 밀려오는 노을 아래 잎사귀를 퍼덕이는 수수 등 그가 그려낸 제주의 자연은 이국적 풍경을 즐기려는 관광객의 눈으로는 담을 수 없는 깊이를 지닌다.
강요배, ‹산꽃› (1993) 캔버스에 유화 물감, 72.7×116.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강요배,
‹황파(荒波) II› (2002)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12.1×324.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강요배에게 미술은 “이 땅과 오늘의 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현실의 삶에 관계되는 일”이다. 강요배는 미술대학 재학 시절부터 역사를 진중하게 고찰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미술을 통한 현실 개혁을 꿈꿨다. 졸업 후 민중미술의 서막이라 간주되는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꽃과 무기›(1977)는 그가 대학 시절 제작한 작품으로, 잿빛 바탕 위에 배경과 구분 없이 검은색 직선으로만 그려진 기하학적 추상 형태가 화면의 중심을 장악하고, 그 위로 붉은 꽃과 흰 꽃, 노란 꽃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강요배, ‹꽃과 무기› (1977)
종이에 수채 물감, 색연필, 118×7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강요배, ‹태극도›(1981)
종이에 포스터 물감, 파스텔, 연필, 104×225.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우주 전체를 고민했던 청년 시절의 예술관을 담다
붉은 태극이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그 주위를 구 형태의 붉은 덩어리들이 감싼 형국인데, 이 덩어리들은 마치 태극에서 배태된 생명체처럼 보인다. 인간이 생기기 전 천지창조의 순간처럼 붉은 산천(山川)이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다. 원초적 신비성이 화면을 가득 메운 이 작품은 당대의 민족적, 민중적 현실을 넘어선다. 여기에 ‘우주 전체’, ‘어둠과 빛’, ‘선과 악’ 등 철학적 주제와 상징에 대해 고민한 청년 시절 작가의 예술관을 담고 있다. 이러한 예술관, 즉 주체와 객체가 대립할지언정 결국 상통함에 대한 믿음과 이를 실천하는 예술적 지향은 이후 그의 삶과 예술의 근간이 된다.
작가는 1980년대 말부터 제주 4.3. 사건을 다룬 그림을 그려, 1992년 «동백꽃 지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희생된 일이 발단이 되었다.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가 촉발하고, 제주 전역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개시해 무차별적인 진압 작전을 펼쳤다. 이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됐다. 1954년 9월,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지만 이 사건은 오랫동안 국가에 의해 은폐·왜곡되었고, 희생자와 그 가족은 오랫동안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살아야만 했다.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은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반세기가 지난 1999년에서야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강요배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회적 금기를 깼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민간인 학살 현장과 제주 민중들의 투쟁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놓았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된 그의 역사화에서 풍경은, 단순히 사건의 배경이 아니다. “삶의 풍파에 시달린 자의 마음을 푸는 길은 오로지 자연에 다가가는 것뿐”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제주의 자연은 상처를 지녔지만 동시에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양분을 축적했고,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점차 인물이나 사건이 사라지고 풍경만 남는다. ‹불인(不仁)›은 제주 4.3. 사건 연작의 최종 작품으로,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조천 북촌을 그린 것이다.
강요배, ‹불인(不仁)›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333.5x197x(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강요배, ‹홍매› (2005)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61.5x132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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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 ‹허공과 나무› (2005)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16.5x91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나의 자아는 두 가닥의 회로를 따라 교차하면서 자라난 듯하다.
자연과 우주, 사회와 역사로 향하는 두 가닥의 회로.
그 둘이 바람 속에 얽혀 있듯이,
그것들을 그림 속에 녹이고 싶다.
그것들은 자아와 사물의 끊임없는 대화요,
세계 속에서 중심을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는
한 존재의 마음 궤적일 뿐이었다.”
_ 강요배, 『풍경의 깊이』(2020)
최근 들어 강요배의 작품이 계속해서 마음에 떠올랐다. 어느 평론가가 말하길, 강요배의 회화는 “억압되고 잊혀져 가던 역사적 무의식을 환기시키며, 그것을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끌어 올린다” 했다. 실제로 제주 4.3. 사건은 그저 지나간 지역 분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공기처럼 당연하게 누려온 민주주의와 일상의 평화가 예기치 못하게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겪은 터라, 놀란 마음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마주할 용기’와 ‘연약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연민을 구했나 보다.
5월 광주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가 한강의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 겹쳐지면서, 많은 이가 그녀의 소설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생명에 이르는 힘을 발견했다.
그 힘이 강요배의 그림에도 꿈틀거린다. 제주 4.3. 사건을 모티프로 한 본인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두고 한강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빌었듯, 강요배의 그림도 결국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한강과 강요배처럼 시적인 문장과 조형언어로 역사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진 예술가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어 깊은 위안을 느끼는 요즘이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