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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일마다 민숙이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민수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 모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먼저 지난주에 나눈 말씀을 복습해 봅시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시대에는 광야 공동체를 만드셨고, 여호수아 시대에는 가나안 정복을 위한 영적 군대인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공동체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각 시대마다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본문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2세들을 위해 공동체를 만드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모세와 여호수아가 서로 협력하게 했습니다. 그 협력을 통해 두 세대 간의 바통 터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호수아와 엘르 아살 두 사람도 협력하게 했습니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그 시대가 감당해야 할 과제를 수행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주에 살펴본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살펴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지금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민 1세대가 주도하던 교회에서 이민 2세대가 주도하는 교회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시대에 모세의 시대에서 여호수아의 시대로 넘어갈 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신 것처럼 우리 시대에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공동체는 어떤 성격의 공동체여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 문제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출애굽 2세대 새로운 공동체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셨는지 그것을 보면서 우리 시대 한인 교회는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 그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설교 본문으로 민수기 28장 1절과 2절을 읽었습니다만, 설교에서는 28장 1절부터 15절까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같이 보겠습니다. 우선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부터 살펴보도록 합시다. 민수기 26장부터는 출애굽 2세대 공동체에 대한 말씀입니다. 출애굽 2세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그 수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27장에서는 그 새로운 공동체를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를 세웁니다. 그리고 28장과 29장에서는 예배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 왜 새로운 공동체를 이야기하면서 예배에 대해 말씀하는 것일까요?
여호수아가 이끌어갈 새로운 공동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는 왜 예배 공동체여야 합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의 사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면서 너희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성막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합니다.
그처럼 제사장 나라로 부름받은 이 이스라엘 공동체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대가 바뀌었지만 이 사명은 바뀌지 않았다. 새로운 공동체 사람들도 예배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목표로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소와 양과 같은 그런 짐승을 원하기 때문에 예배하라고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배는 우선 하늘의 하나님과 땅에 사는 사람이 화목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예배 때마다 화목 제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그 나라를 세상에 증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목표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따르면 사람은 흙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물로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넣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함께 살아가는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람은 생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존재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범죄합니다.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에서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생각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찾아와 예배를 가르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에덴 동산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했던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을 떠난 사람들에게 예배를 가르쳤고,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지내는 법을 말씀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사람이 범죄한 후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사람은 흙이 되고 맙니다. 사람은 원래 흙 플러스 하나님의 영인데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버리면 흙만 남습니다. 그래서 흙에 속한 존재, 흙의 흙으로 이루어진 이 땅의 나라만을 바라보면서 살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사는 것, 생물로서 번영을 누리는 것, 그것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세운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후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를 전하도록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인간 제사장은 이 일을 온전하게 행하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 제사장은 하나님을 간접적으로만 경험했습니다. 어떤 예배 의식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참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증언하는 내용이 이겁니다. 참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걸 말합니다.
신약의 말씀 몇 군데를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의 말씀인데요.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와 이 땅에 있는 인간의 나라를 통일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늘나라와 이 땅의 나라를 통일시킵니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았을 때입니다. 그때 어떤 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을 보면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에 하늘이 열렸다. 하늘이 열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늘이 열렸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매일 쳐다보는 저 하늘이 갑자기 갈라졌다는 뜻입니까?
대기권이 쪼개져가지고 우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은 물리적인 하늘에 대한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땅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자마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숨겨져 있던 하나님 나라, 사람들이 볼 수 없던 하나님 나라 그 나라가 드디어 커튼을 열고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을 통해 하늘과 땅이 연결이 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저기 있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은 지성서와 성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서와 성서 중간에는 휘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성소가 어떤 곳입니까?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공간입니다. 성경의 표현으로 말하면 하늘입니다. 지성소는 하늘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가면 죽습니다.
반면 성소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소는 어떤 곳입니까?
성소에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금촛대와 진설병 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빛이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영생의 양식이시다. 성소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는 곳입니다. 간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성서를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하는 가운데 그 성서에 들어가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경험합니다. 예배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공간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그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합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든 그 휘장이 찢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 겁니다. 지금까지는 하늘과 땅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통일되었다는 말입니다. 막힌 담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런 하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제사장 나라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공동체, 그 공동체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그들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예배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사랑의 나라, 생명의 나라, 구원의 나라 그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그것을 결단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새로운 공동체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그것을 말하면서 예배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라는 겁니다. 진리의 빛이고 생명의 양식이신 그분을 드러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예배했다면 그 예수님을 가지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라는 겁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배하라고 오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까?
창세기 1장 14절을 보면 창조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시간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계절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수기 28장 1절에서 15절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분해 주신 그 시간을 시작할 때마다 예배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8절 매 일을 시작할 때 예배하라고 합니다. 9절과 10절 한 주일을 시작할 때 예배하라고 합니다. 또 11절에서 15절 한 달을 시작하는 매월 초하루에 예배하라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루 한 주, 그리고 한 달을 시작하는 첫 시간에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겁니까?
이 말은 우리가 사는 시간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라는 뜻입니다. 민수기를 시작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성막을 중심으로 해서 동서남북 사방의 진을 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민수기 28장에서는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그 시간을 시작할 때마다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시간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라는 뜻입니다.
민수기 1장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공간적으로 가르친 것이라면 민수기 28장은 시간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 현실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민자로 살면서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처음에 독일에 오신 분들은 독일어를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어 학원을 다니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언어는 쉽게 늘지 않고 그러다 보면 몇 달이 금방금방 지나갈 겁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아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요즘은 정규직도 있지만은 비정규직 계약직 직장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돌보는 분들도 암토에 가서 해야 될 일들, 자녀 양육을 위해서 해야 될 일들, 병원에 가야 될 일들, 일상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 이런 일들을 하다 보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바빠서 예배하기 어렵습니다. 실제가 그렇습니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는 것도 쉽지 않은 그런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가짐이 점점 변합니다. 나도 모르게 시간 나면 예배할 수 있는 거고 바쁘면 건너뛸 수 있는 거다 그런 생각이 자리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상황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나라를 주목하며 살고 있는 겁니까?
땅에 속한 나라입니까? 하늘에 속한 나라입니까?
땅의 일에 너무 바빠서 하늘을 잃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을 보십시오. 가인은 하나님께 예배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예배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받지 않았습니까?
그의 예배가 형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늘나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땅에 있었습니다. 그가 예배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 하나님 때문에 복받고 사는 것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속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예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가인이 예배에 실패하자 그는 유리방황하는 삶을 삽니다.
유리 방황했다는 이 말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방황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가인은 어느 지역에서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이 땅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한 도시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는 이 땅의 성공을 위해서 살았고, 그렇게 사는 가운데 실제적으로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허한 사람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가인의 자녀들은 이 가인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인의 자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 땅에서 다 영웅이었습니다. 야발 목축하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발 음악하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고, 두 발 가인 기계를 다루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자기 분야에서 산업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딸은 이름이 나마였다 이름만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나마 매력적인 아름다운 그런 뜻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가인의 딸은 오늘날로 말하면 뷰티 산업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연예인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했습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성공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족보는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배에 실패한 결과 가인의 가족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루가 모여서 일주일이 되고 그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됩니다. 그리고 한 달이 모여 1년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간 속에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땅도 중요하지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가 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공동체가 이런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말합니까?
3절에서 8절을 보면요. 매일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번제는 모든 재물을 다 태우는 겁니다.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매일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것을 목표로 삼고 사는 영적 제사장으로 살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헌신하라는 겁니다. 매일 아침 예배하며 그렇게 헌신하라는 겁니다.
우리도 아침 예배 혹은 개인 큐티를 매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시지요. 이때 여러분이 하셔야 될 것은
나는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 붙들고 그 말씀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그것을 결단하고 헌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땅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이 땅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의 것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를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잃어버렸던 그 하나님 나라, 그 하나님 나라를 보며 그 나라를 향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주목할 구절이 있습니다. 4절입니다. 수량 한 마리는 아침에 받치고 다른 한 마리는 저녁에 받쳐라.
무슨 말입니까?
저녁에도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하라고 할까요?
아침에 하나님 나라 사람으로 살겠다. 헌신하고 출근해서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세상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침에는 하나님 나라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그 결단을 하지만 정작 세상으로 들어가면 그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녁에 자기의 삶을 다시 돌아보라는 겁니다. 오늘 하루의 삶이 어디를 향했는지 그것을 보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침에 큐티했다면 그 말씀을 저녁에 자기 전에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삶이 진짜 하나님 나라를 향해 살아가도록 신앙의 진보가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9절과 10절을 보면요. 안식일 예배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일 예배이겠죠.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될 부분은 10절입니다. 10절을 보면 안식일에는 평상시보다 두 배의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일은 평일보다 갑절로 하나님에게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일주일을 단위로 신앙합니다. 한 주일이 시작하는 첫째 날 이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나의 삶을 결단하는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 일하시듯이 나도 일주일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내가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서 일을 하지만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것을 결단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주일 예배가 중요합니다. 주일 예배가 실패하면 우리의 삶은 열심히 일하지만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드리며 내 삶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겠다. 그것을 점검하고 또 체크하면서 시작해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는 주일 예배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교인 수가 줄었느냐 그렇지는 않다고 그래요. 교적부에 등록되어 있는 교인 수는 그대로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에 나오지 않는 교인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예배하면서 이것으로 조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평일보다 갑절로 헌신하라.
성도 여러분 주일 예배를 등한시하지 않습니까?
어떤 태민 때문에 빠지고 또 다른 일 때문에 이것은 건너뛰고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태도는 아닙니다. 11절에서 15절을 보면 매월 초하루에 드리는 예배에 대해 말합니다.
이 예배의 특징은 15절에 나오는데요. 번제를 드릴 뿐만 아니라 속죄 제물도 드리라고 합니다. 한 달을 살아오며 실수한 것, 나태했던 부분, 내게 있어서 부족했던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우리 교회에서는 매월 첫 주일에 성찬식을 합니다. 이 성찬식을 형식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한 달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로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덮어버리고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난달보다는 이번 달이 더 하나님 나라에 가까워지는 그런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설교를 정리하겠습니다. 독일에 있는 우리 한인 교회들은 세대가 전환되는 그런 변화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세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역사를 이어갈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공동체의 성격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을 정관에 밝히고 있습니다. 정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것 그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구현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시대에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그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확인하고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결단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예배는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의 예배, 매주일의 예배, 한 달을 시작하는 예배 그런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바쁜 시대, 그래서 너무 쉽게 예배를 건너뛰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쉽게 건너뛰어도 되는 그런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예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라고 합니다. 시간의 마디마디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라고 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아벨이 되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자로 사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