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주 – 20240608
예술가가 서명한 소변기나 벽에 테이프로 고정한 바나나가 예술로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을 보면 “예술이란 무엇일까?” 질문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시인 윤동주의 삶을 다룬 책 “시인 동주”를 읽으면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윤동주가 뛰어난 시인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 동주”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의 생각을 소리로 나타낸 것을 말이라 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태어나서부터 일본의 국기를 보며 자랐고 죽을 때까지 일제의 간섭과 수탈에서 자유로운 조선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았고 주변의 문인들이 일제에 동조할 때 독립을 품은 시를 썼다. 결국 그는 독립을 논하다 체포된다. “시인 동주” 체포되어 감옥에 있을 때 그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하루 종일 하는 말이라고는 점호할 때 번호를 대거나, 간수의 물음에 짧게 대답하는 것뿐이었다. 이제 동주에게 언어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생각을 이어가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저 지시와 통제에 반응하는, 그것도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된 짧은 부호에 불과했다.”
윤동주를 통해 예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생각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 억압받는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때 윤동주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시를 썼다. 하지만 이들의 상당수는 일제에 동조하는 시를 썼다. 그들에게 시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도구였다. 그렇기에 이들의 시는 예술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AI도 여러 가지 창작물을 만드는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