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대법원은 피해자들 어서 죽기만 기다리나!
현재 대법원에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관련해,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2건(양금덕 채권), 피고 일본제철이 소유한 피엔알(PNR) 주식(이춘식 채권)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 사건이 각각 계류돼, 최종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해당 사건의 경우 이미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원고 승소 판결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부터 11년(양금덕 2012년 소 제기), 18년(이춘식 2005년 소 제기)에 이르도록 아직 최종 매듭을 못 짓고 있는 상태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 사건의 경우, 채무자가 고의로 법원의 배상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강제집행을 통해서라도 피해자의 채권을 확보하자는 것이 이 사건의 처음이자 끝이다. 즉, 법원으로부터 이미 확정된 채권을 사법권을 통해 실현시키기 위한 단순한 절차에 불과한 것으로서, 쟁점이 될 것조차 없는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정부 및 피고 일본 기업들의 파렴치한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법원의 배상 명령을 이행하기는커녕, 압류명령에 이어 특별현금화명령에 이르기까지 온갖 수단을 통해 불복 절차를 제기함으로써, 피해자들의 권리실현을 집요하게 방해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다. 판결을 지연시키는 것 뿐이다.
사실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은 피고 일본 기업이 자초한 일이다. 배상 명령 이행을 거부하는 것도 부족해, 대화 제안마저 거듭 뿌리친다면, 이런 상태에서 피해자들이 취할수 있는 방법이 강제집행이 아니면 무엇이 있는가?
채무자가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채무를 지불할 여력이 없다면 말을 하지 않겠다. 그런데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과연 지불 능력이 없어서 여태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와 반대로 오히려 충분한 지불 능력이 있으면서도, 피해자들의 절박한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의로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악덕 채무자로부터 선의의 피해를 방지하자는 것이 강제집행의 취지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런 파렴치한 일제전범기업의 행태를 우리 법이 언제까지 용인해 주어야 하는가? 이것을 방관한 채 과연 사법주권을 운운할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대법원이 15개월째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양금덕 사건(2022.5.6. 대법원 접수)에 대해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아울러 이러한 판결 지연 사태가 행여 윤석열 정권의 역사 퇴행과 맞물려 불의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심각히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대법원의 이례적인 태도는 이미 수차례 지적된 바 있다. 외교부는 지난해 7월 26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일본과 외교적으로 협의할 시간을 달라’며 사실상 판결을 보류해 달라는 취지였다.
강조하지만,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법부는 헌법이 부여한 사법부의 권한과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면 될 일이다. 즉 행정부의 요청을 들어줘야 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판단에 고려 요소가 된다면 그 자체가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법원은 정권이 눈치를 의식한 때문인지, 자신의 직무를 유기한 채 최종 판단을 여태 미뤄왔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은 지난 3월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책임을 피해국인 한국이 대신 뒤집어쓰는, 소위 ‘제3자 변제’ 방식의 굴욕적인 해법을 발표해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윤석열 정권이 꺼낸 해법이 반헌법적이든, 반인권적이든 당사자가 받아들인다면 유효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 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는 정부의 제3자 변제를 명백히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을 지체할 어떠한 명분이나 이유도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판결을 지연시킨다면 심각한 사법 불신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판결 지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7월 30일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김재림 할머니는 끝내 대법원 판결을 보지 못한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2018년 12월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한 뒤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을 기다린지 4년 7개월째였다.
현재 대법원에는 원고 김재림 할머니 사건을 포함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수년째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사건은 모두 9건으로, 최소 4년 1개월~4년 8개월째에 이르고 있다. 이 사건 역시 원고와 피고만 다를 뿐, 사건의 맥락과 구조는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다를 게 없다. 이미 동일한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건에 대한 확정판결까지 난 상황에서, 판결이 이렇게까지 지체되고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27조 ③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는 딴 나라 얘기가 되고 말았다. 힘겹게 1심, 2심까지 이겨 놓고도, 대법원이 제 역할을 방기하는 사이 많은 피해자들이 속수무책 세상과 등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대법원에 묻겠다. 판결을 않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강조하지만, 사법부는 사법적 판단을 하는 곳이지, 행정부의 눈치를 의식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 밖의 ‘외교’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는 곳이 아니다. 광복 78년을 기다려온 피해자들에게 언제까지 더 기다리라고 할 것인가?
구순을 넘어 100세 안팎에 있는 피해자들을 보고도 판결을 미루는 것은, 일제전범기업의 파렴치한 행태에 동조하는 것이자, 대법원만 바라보고 학수고대해온 피해자들에게 ‘차라리 어서 죽어라!’ 하는 것과 같다.
인권의 최후 보루도 대법원이며,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적, 반인권적, 반헌법적 역사 퇴행을 바로잡을 곳도, 대법원 뿐이다. 대법원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즉각 판결하라!
2023년 8월 29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지원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