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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결혼식
1월28일. 구정 일주일전.
새벽 일찍 미리 예약한 뷰티샾에서 신부화장을 마친 삼숙은 친구의 집으로 돌아와서 계속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긴장되니?”
보다 못한 친구가 커피한잔을 타오며 물었다. 삼숙은 친구를 쳐다보며 대답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그래도 넌 화장발은 잘 받데? 우리 언니는 시집가기 며칠 전부터 잠을 설쳐 화장이 떡이 되더라 얘.”
삼숙은 친구와 눈을 마주치며 뜨거운 커피를 소리 없이 한 모금 마신 후 또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오전 6시51분.
친구가 삼숙에게 거울을 가져와서 보여 줬다.
“긴장하는 네 얼굴 좀 봐라. 그러다 화장 다 떨어지겠다.”
“아니야 긴장하는 게 아니야.”
“떨고 있으면서?”
“미용실에서 오는데 바람이 제법 불더라. 혹시 아버지 못 나오시면 어떻게 해?”
“으음. 그게 걱정이었구나? 그러게 내가 뭐랬니? 어제 아버지 어머니 함께 오셔서 좁지만 여기서 자자고 했잖아? 내가 한번 나갔다 올까? 차 왔나 볼 겸.”
친구가 밖으로 나갔다.
그때 문자가 왔다.
-삼숙아 신랑한테서 연락 왔는데 차는 7시까지 도착한단다. 그리고 식장은 어제 밤 꼬빡 새워 이제 완공했다는 구나. 내가 고생했다고 했다. 차가 도착하면 천천히 출발해라. 예식장처럼 서둘지 않아도 된대. 그럼 이따 보자. 사랑하는 오빠가.
삼숙의 얼굴이 굳어졌다. 잠시 생각하더니 삼숙이 문자를 보냈다.
-저 삼숙이에요. 그런데 왜? 저한테 직접 문자 보내지 않고 매번 오빠를 통하는 거죠? 결혼해서도 오빠를 통하실 거에요?
곧바로 답장이 왔다.
-죄송합니다 삼숙씨. 오빠가 모든 연락은 자기한테 해야 한다고 해서요. 저도 삼숙씨와 직접 연락하고 싶은데 오빠가 삼숙씨에게 사정이 있다고 꼭 그렇게 하라는데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보고 싶습니다.
삼숙은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결혼 전 한두 번은 연락할 줄 알았다. 오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운했다. 맞선도 아니고 연애도 아니고 정체불명의 비밀교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연락한번 주지 않는 남자가 서운했다. 허지만 삼숙은 또 다른 면에서 남자를 과묵하다고 평가했고 신뢰하는 면도 있었다. 나불대는 사촌오빠와 비교하면 남자의 과묵함에 더 신뢰가 가는 것은 분명했다. 비교도 되지 않았다.
클랙슨소리가 길게 두 번 들렸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친구에게 말했다.
“차 도착했어?”
“응. 아버지는?”
“아직.”
그때 삼숙의 스마트폰이 쓰르르 울었다. 어머니였다. 방금 소형선박계류장에 도착했다는 전화였다.
친구가 삼숙의 늘어진 웨딩자락을 잡았고 삼숙이 먼저 차에 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착한 계류장까지는 10분 거리였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삼숙은 서둘렀다.
설밑 추위는 돼지도 얼어 죽게 한다는 한파가 며칠째 계속됐다. 3일째 감기를 앓는 어머니가 걱정돼서 마음이 급했다.
삼숙이 먼저 클라이슬러 밴에 올랐다. 클라이스 밴의 발판이 높아 웨딩자락이 거추장스럽게 질질 끌렸다. 친구가 얼른 삼숙의 드레스자락을 받쳐 들었다. 하이힐은 몇 번 신어봤지만 처음 착용해보는 킬힐로 차에 오르려니 무척 낯설고 어색했다. 남은 한발을 차 발판에 올리려다 삐꺼덕했다. 삼숙이 비틀거렸다. 친구가 얼른 삼숙을 부축하지 않았으면 넘어질 뻔했다. 그러나 그 순간 삼숙의 드레스 앞가슴이 자동차 문에 걸려 웨딩드레스의 이미지레이션illustration image이 찢겼다. 하얀 인조진주들이 빗방울 튀듯 맨바닥에 떨어져 튀어 올랐다.
친구는 어머! 어머! 어떡해! 라고 소리치며 떨어져 구르는 진주들을 황급히 주워 담았다. 친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삼숙은 멀거니 콘크리트바닥에 뒹구는 진주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운전기사까지 가세해 진주알들을 주워 담았으나 사태를 되돌릴 순 없었다.
친구가 삼숙을 미안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떡하니?”
“진주 없으면 어때? 그냥가자 어머니 춥겠다.”
친구는 삼숙을 그대로 둘 수 없어 가까운 편의점에서 옷핀을 사왔다. 옷핀으로 흐트러진 웨딩드레스를 대충 손질하며 계류장에 도착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웨딩드레스를 손질하는 동안 친구는 불길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삼숙의 결혼을 말리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할 말이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두 시간을 달린 차가 남자의 집이 있는 마을로 접어들었다. 마을입구의 정자나무와 가로등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겨울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사랑합니다 삼숙씨
현수막을 보고 삼숙이 웃었다. 허지만 씁쓰레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으미, 조거이 뭐다야? 기분이 묘한디?”
바람에 나부끼는 플래카드를 보고 아버지는 혼자서 들떴다. 아버지가 어머니 말에 이어서 말했다.
“너그 신랑이 우리 삼숙이 좋아허긴 하는 모양이여. 너거 사촌오빠 공 잊지마라. 애썼다. 친형제라도 그렇게 못할꺼인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친구를 돌아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아하면 모하요? 시상에 웃기재? 사돈 얼굴도 안보고 결혼하는 벱이 어디있다야? 안그러냐?”
“갸가 사정이 있다잖았는가?”
“아무리 사정이 있다혀도 그러는거이 아니어라. 인륜지대사에 다 절차가 있는 법인디, 내는 징혀서 복장터질라카요.”
아버지가 와락 했다.
“가서 잘살면되는거이지 형식이 뭔소용있댜? 형식땜시 망하는 인간들이 웸많아야? 긍께 그런 소리는 인자 거두소.”
보다 못한 친구가 끼어들었다.
“걱정마세요 어머니. 삼숙이 잘 살거에요.”
“그 보랑께 젊은 애기들도 내말에 공감하는디 워째 그리 감정이 많소? 오늘은 우리 삼숙이 시집가는 중대한 날잉께, 작금부터 일체의 감정은 다 푸싱, 알았소?”
친구의 말에 힘을 실은 아버지가 단호하게 어머니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다. 사실 어머니도 삼숙이 잘산다면 체면치례나 형식 같은 것에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똑 같은 심정이었다.
40년 전, 열일곱 살에 속아서 섬에 시집 온 이후 지긋지긋한 섬 생활에 신물이 난 어머니는 삼숙이만은 섬놈한테 시집 안 보낸다고 항상 가슴에 구들장으로 누르고 살았다. 어머니는 시집와서 보름 만에 도망가려고 한밤중 난생처음 노를 저었다. 밤새도록 죽을힘을 다해 저었다. 새벽이 되어 자욱한 물안개 속에 육지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몸을 낮추고 살금살금 육지에 상륙했다. 안개가 걷히지 않은 새벽.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지만 해방감에 지친 줄 모르고 한참 내달렸다. 달리면서 주위를 살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손바닥이 까져 피가 철철 흐르도록 밤새 노를 저어 도망쳤는데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시댁으로 올라가는 비탈 앞이었다.
그 후 다시는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큰 섬에서 삼숙에게 중매가 들어 왔지만 어머니는 단박에 퇴짜를 놓았다. 죽어도 삼숙은 섬에 시집 안 보내려고 했다. 그때 사촌오빠가 삼숙의 결혼문제를 지긋이 들고 나왔다. 그리고 오늘 시집보낸다.
삼숙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대로 자초지종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가 밤새 도망쳐서 제자리로 돌아 온 것처럼 이것도 삼숙의 운명이라고 받아 들였다.
마을입구의 플래카드를 보고도 5분을 더 달렸다. 그때까지 한마디 않던 운전기사가 말했다.
“다 왔습니다.”
운전기사의 말에 모두 눈앞의 하얀 이층건물에 시선을 모았지만 삼숙은 눈을 감았다. 작은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이제 자신의 일생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눈앞에 보이는 저 낯선 곳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하자 돌연 불안해졌다.
마치, 십여 년 전. 정성들여 키우며 정들었던 소가 팔려갈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들었다. 섬 전체에 방목되어 삼숙과 함께 컸던 소는 한사코 배를 안타려고 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뒷걸음치는 소를 배안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섬이 멀어져도 소는 한사코 음메 음메 하고 섬을 향해 울었고 저녁노을에 멀어지는 소를 보며 삼숙도 목 놓아 펑펑 울었다.
지금 삼숙은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러나 그때처럼 울지 않았다.

첫댓글 드디어 삼숙이의 결혼식이 끝나가는 군요..
삼숙이의 결혼전 이야기 잘보았슴니다.
김일수님
새로운 한주일입니다
신나는 주일되십시오
삼숙이가 결혼을 하게 되었군요..
신랑감이 고아나 되는가 봅니다.
ㅎ
글쎄요...소설은 건너뛰면 읽는 분이 진짜 고아되는데....ㅋㅋㅋㅋ
행복한 주일시작하세요
삼숙이의 결혼식이 예상은 했지만 같은 여자로서
불길한생각이 드네요..
그 예감이 빗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삼숙인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암튼 신나는 주일 만드세요
기성회비 낼때 박성기 어머니 장롱속에서 돈가방 훔처 가출항때가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6.~~70년전 이야기로 소설의 소재가 시작 되었는데.
삼숙의 결혼식에 구식결혼 하는데 스마트 폰이 등장 하고 시대의 흐름을 말해주는 군요..
현 시대의 조류에 맞게 소설 자채에도 많은 변화를 주시는 모습 이해 하기가 쉽고 좋슴니다.
저 결혼식 할때도 가마타고 시집 가면서 새아씨들 울고가는 모습 많이 보았으니까요~
옛것과 오늘을 비교 하면서 많은 걸 생각해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정독하셔서 저보다 더 시대배경을 꿰뚫고 계십니다...ㅎ
저도 조금 혼돈스럽지만 일단 삼숙을 현 시대로 끌어 올렸어요
이제 소설의 중반을 넘어선거 같아 시도해 봅니다 그래서 시대계산을 좀 철저히 했는데 혹시 제 생각이 틀리면 의견 좀 주세요...저도 헷갈려서요..ㅎ
최초 스마트폰이 나온 것이 1990년대 말이죠?
기성회비 또는 육성회비로 바뀌어 완전히 사라질 때가 1970년대 초였죠?
그러면 2000년대에서 25년전 이야기가 됩니다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소설 1부가 끝나면 2000년대 이후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이구요
그런데 혹시 젠틀맨님의 기억에 새로운 사실이 있으면, 자료제공해 주세요.부탁^
삼숙이 벌써 결혼을 하게 되는군요.
어째서 신랑부모가 참석못하는것일까 자꾸만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무슨생각이 있겠지만 이것 또한 궁금 해지네요..내일쯤이면 알게 되겠지요
연속극 보는것처럼 알쏭달쏭 궁금해 집니다.
ㅎ
매일연재의 또 다른 맛이죠
오늘밤도 편한 밤되시고 내일 뵐께요
멋지고 좋은 꿈 꾸세요
퓨전 소설 잘읽었슴니다.감사합니다. 편안한밤 되세요..
서대문 님..진짜 서대문사세요?
이름이 특이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