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는 이른바 '본고사' 세대였다. 허나 부정이 난무하고 많은 문제점이 있자 1981학년도부터는 학력고사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다.
∼1993학년도 (1974년생까지 응시)
12년동안 치러지던 학력고사는 고등학교 과정의 많은 과목별로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모든 과목을 잘 해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교과서를 암기해야만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1994학년도 (1975년생이 응시)
최초의 수능 시험이 시행되었으며 1993년 8월 29일과 11월 16일, 두 번 시험이 시행되었다. 완연한 수능 문제 유형을 아직까지 갖추지는 못하였으나 기존에 시행되었던 학력고사의 문제 유형과는 차별되는 유형을 상당히 선보였다. 난이도 조절 실패로 여론의 비판을 받자 이듬해인 1995학년도부터는 연 1회 실시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있다. 허나 수능을 1년에 두번보는것은 난이도 조절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수험생들의 부담이 주는 장점도 있으니 이때 난이도 조절만 잘 했다면 지금처럼 수능 한방제도는 아마 없지 않았을까 한다.
1995학년도 (1976년생이 응시)
1994년 11월 23일에 시행되었다. 199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전년도에 실시된 시험과 달리 단 1회만 시행되었다. 언어 영역과 외국어(영어) 영역은 계열에 관계 없이 공통 출제하였고, 수리 · 탐구 영역에서는 약 25% 정도가 계열별로 구분 출제되었다. 계열별 출제로 인문계에 사회문화, 세계지리, 자연계에 수학 Ⅱ, 물리, 화학이 추가되었다. 또한, 문항당 배점을 다양화하여 언어 영역과 수리 · 탐구 영역Ⅱ는 0.8, 1, 1.2점, 수리 · 탐구 영역Ⅰ은 1, 1.5, 2점, 외국어(영어) 영역은 0.6, 0.8, 1점으로 하였다.
1996학년도 (1977년생이 응시)
1995년 11월 22일에 시행되었다. 언어영역 비문학에 다양한 지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진 대학별 고사(본고사)도 활용했지만 다음해부턴 정부가 본고사를 금지시켜 폐지된다.
1997학년도 (1978년생이 응시) 역대 최악의 불수능
1996년 11월 13일에 시행되었다.1994학년도부터 1996학년도까지 시행되었던 대학 본고사가 폐지되어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 수능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전년도(1996학년도)의 배점이 200점 만점에 언어 60, 수리탐구 I 40, 수리탐구 II 60, 외국어 40 이었던 데 반해 1997학년도에는 총점이 두 배로 늘어났고, 각 과목당 배점 역시 두배로 늘어났다. 1993년 수능이 시작된 이래 2009학년도 수능까지 17차례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시험으로 최고의 불수능이었다.
1998학년도 (1979년생이 응시)
1997년 11월 19일에 시행되었다. 이 날은 대한민국이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날이기도 하다. 전년도(1997학년도)와 마찬가지로 400점 만점으로 출제되었으나, 1997학년도는 물론 그 이전의 수능 시험보다 훨씬 쉬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만점자는 나오지 않았고, 한 문제를 틀린 학생이 최고 득점자로 기록되었다. 언어영역, 수리탐구I, 수리탐구II, 외국어영역(영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70년대생이 본 마지막 수능이었다.(1979년생이 응시.)
1999학년도 (1980년생이 응시) - 물수능 1기
1998년 11월 18일에 시행되었다. 6차 교육과정에 따른 최초의 수학능력시험으로 수리탐구II 영역에 선택과목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표준점수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해이기도 하다. 문제를 쉽게 내는 출제경향이 이어져 1998학년도보다 쉽게 출제되었으며, 수능 시험 최초로 만점(당시 400점)자가 1명 배출되었다. 만점자는 당시 한성과학고에 재학중이던 오승은이라는 여학생이었다. 1980년대생이 응시한 첫 수능이었다.
2000학년도 (1981년생이 응시) - 물수능 2기
1999년 11월 17일에 시행되었다. 수능 시험 사상 2번째 만점자가 배출되었는데 서울 대원외국어고 출신 박혜진양이 만점을 기록했다.
2001학년도 (1982년생이 응시) 역대 최악의 물수능
2000년 11월 15일에 시행되었다. 제2외국어 영역이 처음으로 도입되면서 수능 시험과목이 점차 늘어난다고 지적이 있었다. 역대 17차례 수능중 최고의 물수능 이였는데 만점자가 무려 66명이나 배출되었다. 380점(400점 만점) 이상의 고득점자는 전년도보다 5배 많은 3만5000여 명에 이르렀다. '최대의 물수능'으로 최상위권이 피해를 많이 봐 수능음모론이 확산됐다. 언론은 “쉬워도 너무 쉬웠다” “시험이 너무 쉬워 변별력이 떨어져 선발 기준으로 무의미하게 됐다”면서 교육당국이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거세게 질타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능을 쉽게 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 시절은 계속 물수능이 지속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 떨어지는 레젼드 오브 레젼드
2002학년도 (1983년생이 응시) - 악몽의 이해찬 1세대
학교에서 공부를 방해했던 세대로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갈 수 있다는 이해찬의 거짓웃음에 속아
많은 고3학생들이 난데없는 불수능에 뒤통수 처맞고 눈물 지어야 했던 피바다 수능
2001년 11월 7일에 시행되었다. 난이도 조절의 실패로 전년도와 달리 이번에는 난이도가 매우 높아져서 세간에서 불수능이라는 별칭을 붙인 수능시험이었다. 몇년간 물수능 난이도에 익숙해진 수험생들은 방심하다가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생소하고 까다로운 문제 때문에 시험을 치다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1,2교시가 너무 어렵게 출제되자 중도에 시험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전체 수험생의 평균점수가 66.5점,상위 50%가 66.8점이나 폭락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11월 12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난이도 논란에 대해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다가 충격 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고 사과했다.
2003학년도 (1984년생이 응시) - 불운의 이해찬 2세대
수능 난이도는 1세대보다 낮아졌으나 여전히 학교에서 공부를 방해함
2002년 11월 6일에 시행되었다.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는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3.6점 정도 떨어져 지난해와 같은 대폭락 사태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수능 성적이 66.8점이나 떨어진 데 이어 3.6점이 더 떨어진 것이어서 이번 시험에서 수험생들이 느끼는 하락폭은 더 컸다. 난이도는 지난해보다 많이 평이했으나 지난해 불수능에 데여서 지레 겁먹고 포기한 사람이 많았는지 이상하게 점수는 더 하락한 특이한 경향을 보였고 상위권 고득점자 수는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수능만점자는 2년연속 배출이 안됐다.
2004학년도 (1985년생이 응시) - 이해찬 라스트세대
과탐이 상대적으로 어려웠고 6차 마지막에다 83, 84 재수생까지 말려들어서 완전 초죽음이 되었음
재수생들의 초강세로 고교4년 시대 개막
2003년 11월 5일에 시행되었다. 수능시험 사상 복수정답이 인정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당시 원장 이종승)은 언어영역 17번 문제의 복수정답(기존의 정답은 3번이었으나 5번도 정답으로 인정)을 인정했으며, 또한 수능시험 출제자 명단이 사전에 유출되는 파문이 일어나 수능신뢰도와 수능관리체계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채점결과 전년보다 점수가 많이 상승했는데 특히 문과 점수가 많이 올랐다. 한편, 2004년 7월 28일 처음의 정답 3번을 선택했던 수험생 460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복수정답인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
2005학년도 (1986년생이 응시) - 센세이션의 86년도
사회탐구에서 1개 틀리면 3등급되는 일이 슬슬 벌어짐
2004년 11월 17일에 시행되었다. 2005학년도의 수능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일단 문과는 과학탐구를 보지 않아도 되고 이과는 사회탐구를 보지 않아도 되는걸로 바껴서 수험생들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또 큰 차이는 점수 배점으로, 기존의 영역별 120,80,120,80, 400점 만점의 제도에서 100,100,100,50(과목별), 500점 만점으로 바뀌었고, 표준 점수는 그 배로 하며(기존에는 440점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음), 표준 편차를 20으로 규정하였다.
어쨋든 전체적으로 너무나 많은 변화를 주었던 2005학년도 수능이였고 이로 인해 점수가 낮았던 수리와 외국어가 강해졌으며, 언어는 쉬워지는 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탐구 영역은 새로 도입하는 선택과목들이 첫해여서 그런지 선택과목간 난이도 조절을 완전 실패하면서 윤리, 한국지리, 생물Ⅰ은 너무 쉽게 나오는 바람에 한문제만 틀려도 3등급으로 떨어지는등 어느 한과목은 만점자가 속출하면서 어떤 과목은 너무 어려워서 만점자가 있지도 않는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2005학년도에는 휴대폰을 이용한 조직적인 입시 부정행위가 밝혀져,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수험생 226명은 수능부정으로 시험결과가 무효처리되었다. 탐구영역의 선택과목 난이도 조절실패와 대규모 입시부정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계속 공신력을 잃었던 수학능력시험이였다. 수능시험 만점자는 4년째 배출이 안됐다.
2006학년도 (1987년생이 응시) - 선택과목간 유불리가 더 심해짐. 로또수능
부산 APEC 정상회담 관계로 당초 계획인 11월 17일에서 일주일 정도 늦춰진 2005년 11월 23일에 시행되었다. 2006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은 난이도 조절의 실패로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았다. 언어영역의 경우 지나치게 쉬워진 난이도로, 100점 만점 중 95점대 이상이 12% 이상을 차지하는 등 변별력에 문제가 있었다. 한편 2교시 수리영역의 경우, '가'형과 '나'형의 난이도 차이로 인해 '가'형을 선택한 이과 학생들이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외국어 영역은 계속 난이도가 상승하는 추세에 따라 2005학년도 수능에 비하여 더 어렵게 출제되었으며, 탐구 영역은 이번에도 선택 과목 간의 지나친 난이도 차이로 인하여 '로또수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2007학년도 (1988년생이 응시)
2006년 11월 16일에 시행되었다. 언어영역과 수리 가형의 평균은 올랐으나, 외국어영역, 수리 나형의 평균은 떨어졌다. 한편 수능 성적이 한 교사에 의해 청솔학원에 유출되어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과학탐구는 생물1과 지구과학1을 제외하고는 매우 높은 난이도를 보였으며, 특히 물리2의 경우 만점자가 전국에 9명뿐이고(전원 남학생) 표준 점수가 80점을 넘어가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수능만점자는 6년째 배출이 되지 않았고 언어영역에서 1점짜리 단 한 문제를 놓쳐서 아깝게 원점수 500점 만점에 499점을 받은 서울 한가람고 조희진 양(18)이 전국수석의 영광을 차지했다.
2008학년도 (1989년생이 응시) - 저주받은 89년생으로 이때부터 자퇴하는 학생이 늘어남
등급제 도입했다가 다음해에 바로 폐지
2007년 11월 15일 시행되었다. 2008학년도에는 수능 성적표에 표시되는 항목이 대폭 줄어들었다. 표준점수를 비롯한 각종 상대평가의 점수를 배제하고, 9개의 등급만 표기되었다. 언어영역 전체 문항이 기존 60문항에서 50문항으로 바뀌었고 또한 언어영역의 시험 시간도 전년도보다 10분 단축되었다. 바뀐 수능 시험 시간과 문항수는 2007년 3월부터 각 교육청 주관 학력평가와 사설 학원의 모의고사, 평가원 주관의 예비평가에 반영되었다. 2008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채점결과 언어·수리나형·외국어영역은 예년보다 조금 어려웠으며, 수리 가형은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탐구 영역은 대체로 평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 이후 등급제도에 대한 수험생들의 불만이 잇따랐다. 단 1점 차이로 등급이 갈려 결국 점수 차이가 1점의 수 배에 이르게 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고 일부 영역에서는 한 문제만 틀렸음에도 1등급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올 1등급을 받아서 사실상 만점이라 할수있는 학생들의 절반정도가 서울대를 떨어지는 상황까지 나왔다. 일부에서는 행정 재판까지 준비하는 상황도 있었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는 계속 등급제를 유지할 것이라 밝혔으나 등급제는 불만이 너무 많아 결국 1년만에 폐지 하게되면서 89년생은 그야말로 실험도구 꼴이 되었다.
2009학년도 (1990년생이 응시)
2008학년도에 시행되었던 수능등급제가 폐지되어 수능성적표에는 2008학년도 이전 수능과 같이 원점수를 제외한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이 같이 표기되었다.그러므로 등급제보다는 변별력이 상당히 높았다. 한편 2009학년도 수능은 불수능까지는 아니였지만 (수리빼고) 변별력은 높게 평가되고있다.수리영역은 가형과 나형 모두 2008학년도에비해 난이도가 매우 높아져서 수리영역의 변별력이 많이 상승했으며 다른 영역 모두 변별력이 높은 편이였다. 2009학년도 수능은 전체적으로 최상위권과 상위권, 중위권을 걸러내는 변별력이 꽤 있었던 수능으로 평가받았으며 대학들도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수능 활용지표로 많이 활용하면서 수능의 비중이 컸던 해이기도 하다(특히 수리).
제2외국어의 경우 부동의 응시자수 1위였던 일본어를 제치고 가르치는 학교 하나 없는 아랍어가 공부 안해도 등급 딸수 있다는 블루오션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응시자수가 제일 많은 희안한 광경이 연출됐는데 역시나 응시자 수준이 형편없어 표준점수가 제일 높았던 과목이기도 했다. 그리고 7년만에 드디어 수능 만점자가 나온 해이기도 하다. 환일고에 재학 중인 박창희라는 남학생이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 원점수 기준으로 전과목 만점(500점)을 받았다.
2010학년도 (1991년생이 응시)
2009년 11월 12일 실시될 예정이다. 난이도는 2009학년도 수능과 비슷하다고 평가원이 보도. 07만큼은 아니지만 09 수능보다는 전체적인 난이도가 대폭 하락하여
언수외 1등급컷이 모두 90점대에 수렴했다. 특히 최근 몇년간 어렵게 출제되던
수리영역이 쉽게 출제되어, 수리영역의 변별력이 상실되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점수 인플레에 수능 응시자수의 증가까지 겹쳐
고득점자임에도 좋은 대학에 원서를 넣을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언수외 280점대가 연고대를 못쓰게될줄 누가 알았겠는가...ㄷㄷㄷㄷ)
사탐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도 컸던 해였는데,
한국근현대사,윤리,세계사,정치 등의 과목은 상위점수에 동점자가 몰려
원점수에 비해 백분위가 형편없게 나오기도 했다.
특히 한국근현대사의 경우 3점짜리 문제 하나만 틀려도
백분위가 92%까지 추락하는 기이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1학년도 (1992년생 응시) - 7차 마지막 수능 불수능/n수생들의 압박/하향지원
아직은 2011학년도 수능은 역대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EBS 70% 반영으로 난이도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체감 연계효과는 반영 확대 첫해라 그런지 거의 없었다. 1교시 언어영역부터 고난이도(특히 비문학. 채권, 그레고리력, 컴퓨터 등)문제가 출제되고 탐구를 제외한 모든 과목이 이러한 추세를 보였다. 난이도 뿐아니라 재수하는데 에도 92년생들이 사실 불쌍한데 2012학년도부턴 수능시험이 많이 바뀐다. 탐구는 3과목만 반영하고 문과는 수리영역에서 미적분과 통계기본을 공부해야하는 압박이 있다. 또 수시추가합격도 생겨서 정시의 문이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11년도 수능ㅠㅠ 수리가형이 70점대였나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