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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장,
피로연은 신혼의 노부부가 떠났지만 계속 이어진다.
양가의 가까운 친지들과 자식들만이 모인 피로연이지만 화기애애하다.
그동안 김형우와 민희가 살아왔던 세월들을 알고 있는 친척들은 저마다 뒤늦게라도 좋은 배필을 만난것을 축하하며 그들의 남은 생애가 더없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모, 이제는 민희로 인해 마음이 놓이겠어요.
그동안 평생을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살고 있는지 늘 걱정을 하시더니 이제는 안심하시고 마음을 푹 놓으셔도 되겠습니다."
박효숙의 이질녀는 혼자사는 여인이다.
젊어서 혼자가 되어 자식들 뒷바라지에 조금도 쉴 틈이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너도 어서 저런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니?"
"나야 자식들이 있으니 꿈이나 꾸어 볼 일입니까?
그래도 민희는 자식이 없으니 뒤늦게라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저는 셋씩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으니 누가 쳐다보기라도 하나요?"
"이젠 모두 짝들을 찾아 떠났는데 찾으면 얼마든지 있겠지."
"민희가 전 재산을 몽땅 사기 당하고 고생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한 번도 찾아가 위로를 해 주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말 잘 된 일입니다."
유혜영은 귀를 쫑끗세우며 기울인다.
"그러게나 말이다.
친구 아들 재정보증을 서 주었다가 공금횡령인가 뭔가를 하고 잠적을 해 버렸지 뭐냐?
그나마 가지고 있던 집을 그대로 빼앗기고 단칸방에서 살다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일이 있구나!"
유혜영의 안색은 새파랗게 변해버린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냥 당하고 만 것이에요?"
"그럼 어쩌냐?
그 친구 역시 아들회사에 집을 빼앗기고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니 무슨 재간이 있겠니?
그저 가슴만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고생을 하며 살아갈 수 밖에 더 있냐?"
"누굴 믿어요?
그리고 보증은 아무나 서 주면 집안 거덜나는 것입니다."
유혜영은 숨을 쉴 수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 거렁뱅이 여자라는 것을 생각하니 숨이 막혀온다.
집으로 돌아온 유혜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완전히 기만당한 느낌이고 사기당한 기분이다.
유혜영은 막내동서인 조은숙에게 전화를 한다.
"형님이세요?"
"응, 동서!
우리가 그 불여우에게 속았어!"
"네?
누구에게 뭘 속았어요?"
"그 불여우, 아버님 여자말이야!"
"네?
무슨 말씀이세요?"
"글쎄 알고 보니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 거렁뱅이나 다름없어!"
"설마요?
형님께서 뭔가 잘못알고 계신 것이 아닌가요?"
"틀림없어!
살고 있던 아파트도 임대아파트 열서너평짜리라고 하더라고."
"그 말이 정말이세요?
정말 그렇게까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요?"
"그래, 우리 모두 그 불여우에게 속았어!"
유혜영은 조은숙이 자신의 말을 받아드리자 더욱 흥분을 하며 장황한 말을 한다.
그러나 조은숙은 그런 유혜영을 더욱 부추기며 고소해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조은숙은 유혜영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선뜻 두 분을 모시겠다고 나선 유혜영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꿰뚫어 보고 있는 조은숙으로서는 배가 아픈 일이었다.
자식도 없는 여자의 재산을 넘보고 하는 유혜영의 속셈을 잘 알고 있는 조은숙이다.
"큰형님!
정말 속상해서 어떻게 해요?
어떻게 그런 여자를 한 집에서 시어머니로 받들어 모실 수 있겠어요?"
"어휴!
내가 지금 생각만으로도 복장이 터지고 미칠 것 같다.
이것을 정말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난 정말 아버님께 그동안 잘못해드린 것을 사죄를 하는 마음으로 한 집에 모시고 살려고 했는데 그런 거렁뱅이일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형님!
그래도 마음이 넓으신 큰형님께서 모든 것을 감수하시고 효도를 하셔야지 어쩌겠어요?
저 같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형님께서 모시고 사신다고 말씀을 하셨으니 이제와서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안 그래요?"
조은숙은 유혜영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
"내가 미쳤지.
정말 내가 미쳤어!"
"큰형님!
큰형님은 누구보다 잘 모실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버님을 생각하셔서라도 잘 모셔야지요.
누가 압니까?
아버님이 기특하게 생각하셔서 전 재산을 모두 드린다고 하실지요?"
말을 하면서 조은숙은 비웃음을 흘린다.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일세!
아버님의 성품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해?
설사 전 재산을 모두 주신다고 해도 그런 거렁뱅이 여자를 내가 어떻게 시어머니라고 받들어 모실 수 있겠어?
난 죽어도 그 짓은 못한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큰형님은 잘 해내실 것입니다."
조은숙은 더 이상 상대하기 싫어서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는다.
"무슨 말이야?"
전화통화를 듣고 있던 성철이 묻는다.
조은숙은 시시콜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 나간다.
"정말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여자란 말이야?
자식도 없이 그 나이까지 뭐하고 살아왔기에 그렇게 빈손이래?"
"아마 사기를 당한 모양이더라요."
"사기?
흥!
사기 좋아하네!
아마 어떤 사내놈이 한 입에 털어먹고 달아난 모양이지?"
성철은 한 수 더 뜬다.
"얼굴이 반반하니 사내들이 한 둘이 꼬였겠어?
그러다 당한 것이 분명하지 뭐!"
"정말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
요즘 누가 그런 사기를 당해?
또 그런 사기를 당했으면 그 친구를 가만히 놔 두었겠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하더라도 가만히 놔 두지 않았겠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뭐가 씌우신 모양이다.
당신은 형수님과 함께 나서서 떠들지 말고 뒤에서 형수님 마음을 부채질이나 해!
내가 적당한 기회를 봐서 아버지를 만나서 그 여자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니까!"
"여보!
이 기회를 잘 잡아서 큰형님네를 아버지와 멀어지게 해야 되요.
그리고 어떻게 하든 재산 상속을 내리도록 당신이 아버지를 잘 설득을 해요.
그런 여자에게 많은 돈이 흘러들어가도록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알았어!
당신도 큰형수님이 아버지 눈에 미움을 받게 하도록 잘 하란 말이야!"
자식들이 그런 공작들을 하고 있을 때 김형우와 민희는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느긋한 마음으로 두 사람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호텔 룸에서 고급스러운 안주와 와인을 즐긴다.
"자, 우리들의 앞날을 위해서 축배를 듭시다."
김형우는 두개의 잔에 붉은 레드와인을 따라 한 잔을 민희에게 건넨다.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들의 사랑을 위해서!"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친다.
맑고 고운 와인잔이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다.
"내 남은 생애 모두를 걸고 당신만을 위해서 살아갈 것을 약속하리다."
"저 또한 최선을 다해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모든 것을 믿고 따르겠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민희는 행복으로 인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미국에 올 수 있다는 것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하며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지요."
"어떤 일이든 나하고 상관없는 일은 없어요.
이제 당신도 원하기만 하면 어디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이제 혼자도 아니고 당신 곁에는 늘 내가 있고 이제는 자식들도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오."
"모두가 당신이 주신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당신이 주었어요.
정말 행복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어요."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여행을 합시다.
미국은 내가 종종 와 보던 곳이니까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말해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디를 가 보고 싶다고 하겠어요?
당신이 데리고 가면 구경하면서 즐기는 것이지요."
두 사람은 더욱 진한 밀어를 나누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김형우는 민희를 위해서 미국의 명소들을 찾는다.
김형우는 시카코의 명소들을 둘러보기로 한다.
미시간 호의 남쪽 끝 근방에 있는 미국 제 3도시로 5대호는 물론 미국 중서부의 산업 교통 중심지이다.
19c 후반에 급격히 성장하여 한때는 알 카포네 등 폭력단으로도 유명해졌고 요즘에는 수 많은 회의가 열리는 도시가 되었다.
로스엔젤레스와 뉴욕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10만에 가까운 동포가 살고 있다.
현대 건축의 발상지로 뉴욕에 필적할 정도의 마천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가 하면 미시간 호반에는 모래사장 요트하버 공원등이 점재하여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과 드라마틱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 미시간 호에서 바람이 연중 불어 '바람의 도시'라는 애칭까지 붙어 있다.
20세기 초두의 금주법 시대에는 술의 밀수와 알카포네등이 암약하는 범죄도시로서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밝고 세련된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CTA' 라고 쓰인 버스가 시내와 교외를 연결하고 있고 비교적 안전하고 운행편수가 많아 이용가치가 높다.
택시 또한 비교적 요금이 싸고 택시를 잡기에도 수월하고 목적지를 모를때는 주소를 적힌 쪽지나 지도를 내 보이면 쉽게 데려다 주곤 한다.
김형우는 그런 교통편을 잘 알고 있기에 렌트카를 빌리기 보다는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다.
시워즈타워는 110층 443미터나 된다.
103층 전망대까지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55초만에 운행을 하고 있다.
시카코 미술관은 공간적으로는 지구상의 모든 지역 시간적으로는 기원전부터 현대, 분야는 화학과 조각 건축 사진에 이르기까지 라는 표어에 부끄럽지 않은 대 미술관이다.
자연사 박물관과 세드수족관 에들러 천문대를 둘러본다.
그 밖에도 많은 곳을 서둘지 않고 둘러보며 그곳의 음식들을 맛보며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다시 로스엔젤로스로 간다.
뉴욕에 다음가는 미국을 대표하는 대도시이며 주변의 패서디나·컬버시티·잉글우드·샌타모니카·롱비치 등의 위성도시를 포함한 인구는 700만을 넘어서 뉴욕 지역에 이어 미국 제2의 거대한 대도시권을 형성한다. 시가지는 북부의 샌게이브리얼산맥의 남쪽 사면에서 서부와 남부 해안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다. 가로(街路)는 대개 정연한 바둑판 모양을 이루나, 시가지의 급속한 확장에 따르는 자동차의 급증으로 오래된 시가지는 가로의 재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디언의 촌락이 산재하던 이곳에 백인이 정착하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 이후로, 1781년에 주민 44명으로 된 에스파냐 사람의 거리가 탄생하였으며, 에스파냐·멕시코의 지배에 있는 동안 거리는 서서히 동·서·남으로 확장되어 나가, 방목지역의 중심상업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1846년 미국 해군에 의해 점령되어 미국령이 된 당시의 인구는 1,00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농업의 발전을 발판으로 착실한 도시발전이 시작되고, 다시 1891년의 석유분출을 계기로 20세기에 들어서자 대규모의 유전개발, 1914년의 파나마운하의 개통과 샌피드로만(灣)의 축항에 의한 해운의 발달,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의 발전, 교통로의 확충에 의한 관광 ·휴양객의 증가, 감귤류의 재배와 그 가공업의 발달 및 기계·화학·항공기·자동차 산업 등으로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캘리포니아는 전지역에 걸쳐 일반적으로 농업이 경제의 주체가 되어왔고, 따라서 각종 곡물·축산물·채소류 및 오렌지·레몬을 중심으로 한 감귤류의 시장으로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해 왔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급속한 공업화의 추세로 농업의 쇠퇴가 현저하다. 석유를 중심으로 한 공업원료 획득이 쉽고 1936년 완성된 후버댐의 수자원을 이용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정밀기계·섬유·금속·석유관련산업·화학·식품가공·제강·인쇄 등 각종 공업에 더하여 컴퓨터·통신기·전자산업 및 우주항공산업이 중요한 경제적 지주(支柱)이다. 각종 공업제품과 석유·농산물 등은 샌피드로만(灣)의 로스앤젤레스항을 통해 선적되며, 특히 남아메리카 및 태평양 경제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수출입액에 있어서, 로스앤젤레스항과 롱비치항의 액수를 합치면, 태평양연안에서는 샌프란시스코를 능가하여 가장 많다.
로스앤젤레스항은 어항·군항으로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또 전국에서 철도·하이웨이·항공로가 집중하여, 육상·항공교통에 있어서도 태평양연안 남부지역의 중심지이다.
로스앤젤레스는 아름다운 해안풍경을 포함한 풍부한 자연의 경승지로서 관광지로도 중요한 몫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수많은 오락·행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을 비롯한 약 10개의 주요 대학 및 자연역사 박물관·미술박물관·경기장 등이 있고, 뮤직센터를 본거지로 하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관현악단이 있다.
태평양의 현관 구실을 하고 있는 만큼, 한국·중국·일본·필리핀 등 동양계 이민들이 많고, 과거 에스파냐·멕시코령이었기 때문에 멕시코인·흑인의 인구 비율도 높아, 인종문제에 기인하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 대책의 하나로, 시가지 재개발에 의한 거주환경의 개선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교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우정의 종(鐘)’을 기증한 바 있다. 북서부의 할리우드·비벌리힐스에는 광대한 영화 스튜디오가 있고, 영화배우와 유명인사들의 고급 주택가로도 유명하며, 영화산업이 쇠퇴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할리우드의 선셋 거리·할리우드 거리 등의 환락가는 여전히 몰락하지 않고있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