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여호와께서 모세를 애굽의 무거운 노역으로 인하여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자로 보내시게 됩니다.
모세는 자신이 애굽에서의 무거운 압제로 인하여 고통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이 보냄을 받았다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할 것이니 어떤 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종으로 믿게 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동할려고 하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타나 보여지지 않는 것은 믿을려고도 하지 않게 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나올 그 질문에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증표를 하나님께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러한 표적(증표)을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답변으로 표적으로 가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위의 하나님의 답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답변(증표=표적)이 되지를 못하였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하야)“라는 단어는 ”존재하다(있음)“라는 의미의 단어로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첫째날의 창조에서 빛이 있으라(하야) 하시니 빛이 있었고(하야)에서 볼 수 있듯이 ”스스로 있는 자(하야)“는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무이성을 의미하는 존재(있음)라는 단어입니다.
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하야)”
하나님 만이 유일무이한 “있음”이라는 것이고 그 외의 모든 것은 그 “있음”이라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없음)이라는 것입니다. 신(하나님) 만이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래서 나(I=있음) 이신 하나님 앞에 선 모세는 너(you)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너(모세=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불완전한 존재로서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18: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하나님께서는 조상의 하나님으로 애굽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백성들의 우고를 아시고 조상에게 약속한 가나안으로 올라가게 하려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을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심에 불구하고 모세는 줄곧 표적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 결과 모세는 뱀, 문둥이, 피라는 세가지 표적을 보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모세는 나중에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선포한 말씀을(십계명) 두 돌판에 기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후 모세는 하나님의 보여주신 식양을 따라 성막을 짓게 되었습니다.
표적을 좇아 행하는 모세는 세상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을 묘사하는 표적의 대명사였습니다(대표자). 이천년 전의 유대나라에서도 유대인들은 심심하면 예수님을 향하여 표적을 구하는 행태를 자행하였습니다.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유일한 표적은 바로 요나의 죽음과 부활(성도의 죽음과 부활)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으시다고 하였던 것을 통해서 시사하는 바는 유일한 표적(눈에 보여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적 행하심을 보고 예수님을 추종했던 다수의 무리들이 구한 표적은 예수님을 따라가면 떡이 생긴다는 신념,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는 예수님, 즉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였음을 보여주는 실체였습니다.
표적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실체가 아닌 가짜였다는 것입니다. 가짜를 보고 열광하는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환호하는 떡찾는 무리들의 신앙은 가짜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역시 이러한 표적을 구하는 세대들의 모습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을 위해서 적용시킬려고 하는 신앙생활이 바로 그러한 부류들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표적에 열광하고 표적을 보면 믿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표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믿으려 하는 것으로 성경은 이를 참이 아닌 것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성도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표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영원하신 하나님)임을 적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적(보이는 것)이 잠간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짜(허상)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받은 두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은 세월을 거쳐 오늘날 성경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돌판에 기록하여(오늘날은 종이에 기록)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더불어 종이에 기록된 성경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판에 기록된 성경도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고린도후서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이천년 전 유대나라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다수의 군중이 예수님을 좇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였던 무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생은 예수에게로 속하는 것까지 연결되어짐으로 성사되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이었는데 예수님을 배척한 무리들은 성경에까지만 머무르게 되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통과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요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성경을 인간이 연구하여 얻는 이해는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들의 행태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해 예수를 추종했던 무리들처럼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여 영생에 도달할려고 했던 생각이 바로 자신들은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천국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신념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 만을 위해 유익을 추구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떤 극한적인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누구나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모세는 가나안(약속의 땅)을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로 상징된 여호수아(예수)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후일에 등장할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약속하면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종이에 기록된 성경(표적=보이는 것=가짜)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것으로 세상에 증거되는 말씀입니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후에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은 삼가 아무에게도 병 나은 사실을 이르지 말하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표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성경은 예수님을 표적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모세의 글(율법, 종이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종이에 기록하여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오늘날 읽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종이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의중)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으로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성경을 읽어서 해석한 자신만의 의미로 그 뜻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의 교회의 현실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행태를 성경을 읽고 이해한 독자 자신을 죽이는 행위라고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책)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책)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기록된 성경이라고 해도 이것은 인간이 해석하여 밝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인 것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은 그 말을 하신 최초의 장본인이 나중에 밝히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주인은 모세에게 말씀을 하신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의 원조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의 뜻을 표현하시겠습니까? 바로 예수를 통하여 세상의 하나님 자신의 뜻을 공포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서 종이(돌판)에 기록된 말씀으로 감추인 것으로 주어졌지만 예수를 통하여 전달되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의 입과 삶을 사용하여 하나님 자신의 뜻을 세상에 선포한 것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을 하나님의 표적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표적은 참이 아닌 껍데기(그림자)로서 하나님의 손에 잡히 막대기로서의 사역으로 예수께서 쓰임받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그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세상교회들이 말씀을 자기 임의대로 해석하여 퍼넘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뱀이 토한 강물입니다.
요한계시록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말씀은 예수를 통하여 흘려지는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세상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나와 같은 선지자를 보낼 것이니 너희는(성경을 읽는 독자) 저(하나님의 보내신 자)의 말을 들으라고 한 것입니다.
신명기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눅9;35(변화산 사건에서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종이 성경에 봉인된 말씀은 인간의 생각으로 해석되는 것 아닌, 오로지 예수를 통하여 말씀하심으로 증거되고 있을 뿐입니다.
히2;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