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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TFzPSxQr6A?si=QmS0CnQ28T2YUMfE
레바논의 백향목 같은 바로
1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
3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5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크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뻗어 나갔고
6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7 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 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교만한 바로를 향한 심판
1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11 내가 여러 나라의 능한 자의 손에 넘겨 줄지라 그가 임의로 대우할 것은 내가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쫓아내었음이라
12 여러 나라의 포악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 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 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떠나매
13 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주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14 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는 키가 크다고 교만하지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가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가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음에 넘겨 주어 사람들 가운데에서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라
1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가 스올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 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이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를 그로 말미암아 쇠잔하게 하였느니라
16 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7 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스올에 내려 칼에 죽임을 당한 자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나라들 가운데에서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던 자니라
18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에스겔 31:1~18, 개역개정)
* 열한째 해 셋째 달(1절) 주전 587년 6월을 말한다.
* 모든 새(6절) 앗수르 치하에 예속되어 있던 열방을 말한다.
* 능한 자(11절) 느부갓네살을 가리킨다.
* 누우리라(18절) 내팽개쳐진 시체의 처참한 상태를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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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와 백성의 위엄을 키가 크고 아름다운 레바논 백향목 같은 앗수르에 비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앗수르의 교만 때문에 그들을 포악한 민족에게 넘겨 주셔서
다른 민족도 교만해지지 않게 하신 것처럼, 애굽의 바로와 백성도 멸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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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백향목 같은 바로 에스겔 31장 1~9절
1 11년째 되는 해 셋째 달 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해 말씀하셨다.
2 “사람아, 이집트 왕 바로와 그의 무리에게 말하여라. ‘네 장엄함을 누구에게 비교하겠느냐?
3 앗시리아는 레바논의 백향목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가지는 숲에 그늘을 드리웠고 그 키는 컸으며 그 꼭대기는 나뭇잎으로 빽빽했다.
4 물은 그것을 자라게 했고 깊은 샘은 그것을 높이 자라게 했으며 그의 강들은 그 심긴 곳 주위를 흘러가 그 물줄기가 들판의 모든 나무들에 흘러들었다.
5 그리하여 그 나무의 높이는 들판의 모든 나무들 위에 우뚝 솟았다. 물이 풍족했기에 굵은 가지들이 많아졌고 잔가지들도 길게 뻗어 자랐다.
6 공중의 모든 새들은 그의 굵은 가지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들판의 모든 짐승들은 그의 잔가지들 아래서 새끼를 낳았으며 모든 위대한 민족들은 그의 그늘 아래 살았다.
7 그의 뿌리는 풍족한 물에 닿아 있었기에 그 가지는 크기와 길이가 아름다웠다.
8 하나님의 정원에 있는 백향목들이라도 그것을 능가하지 못했다. 잣나무도 그의 굵은 가지에 견줄 수 없었고 단풍나무도 그의 잔가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정원에 있는 어떤 나무도 아름다움에 있어서 그것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9 그 풍성한 가지들로 내가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원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들은 그것을 부러워했다.
- 애굽은 당시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위엄을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표현하십니다. 그 나무는 높이 솟아 있었고, 수많은 새와 짐승들이 그 아래에서 쉼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 나무를 자라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풍성한 물을 공급하시고 아름답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결국 애굽의 강함도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할 때 축복은 더욱 아름답게 사용되지만, 은혜의 근원을 잊는 순간 축복은 교만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허락하신 은혜와 축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나는 성공과 열매의 이유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나요, 아니면 내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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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바로를 향한 심판 에스겔 31장 10~18절
10 그러므로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너는 키가 커서 네 꼭대기가 빽빽한 나뭇잎 위로 솟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키로 인해 교만해졌기 때문에
11 내가 그것을 민족들의 우두머리의 손에 넘겨줄 것이니 그가 그것을 잘 처리할 것이다. 그 악함으로 인해 그것을 쫓아낼 것이다.
12 가장 포악한 이방 민족이 그것을 잘라서 버려두었으므로 그 나무의 가지들은 산 위에, 또 모든 골짜기 위에 떨어졌다. 그 나무의 굵은 가지들은 그 땅의 모든 강가에 부러진 채 널려 있고 땅의 모든 백성은 그 나무의 그늘 아래서 떠나 그것을 버렸다.
13 공중의 모든 새들은 그 쓰러진 나무에 둥지를 틀고 들판의 모든 짐승들은 그 나무의 가지들로 올 것이다.
14 그러므로 물가에 있는 어떤 나무라도 다시는 그들의 큰 키로 자만하지 못할 것이고 그들의 꼭대기를 빽빽한 나뭇잎 위에 두지 못할 것이다. 또 물이 잘 공급되는 어떤 나무라도 그들의 높이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다 죽음에 넘겨져서 땅 아래 깊은 웅덩이로 내려가는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15 나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그 나무가 무덤으로 내려가던 그날에 내가 그 나무를 애곡하게 하고 그 위에 깊은 물을 덮었다. 내가 강물을 막으니 많은 강물이 멈추게 됐다. 내가 레바논으로 하여금 그 나무를 위해 애곡하게 했고 들판의 모든 나무들이 그로 인해 시들게 됐다.
16 내가 그 나무를 웅덩이로 내려갈 사람들과 함께 음부로 내려가게 했을 때 그 나무가 넘어지는 소리 때문에 민족들을 벌벌 떨게 했다. 그러자 에덴의 모든 나무들, 곧 물이 잘 공급된 레바논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좋은 나무들은 땅 아래서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
17 그들은 또한 그것과 함께 음부로, 칼에 맞아 학살당한 사람들에게로 내려갔다. 그것의 강한 팔이었던 사람들은 민족들 가운데서 그 나무의 그늘 밑에서 살았다.
18 에덴의 나무들 가운데 그 영광과 장엄함을 너와 비교할 만한 것은 어떤 것이 있느냐? 그러나 너는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땅 아래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너는 칼에 맞아 학살당한 사람들과 함께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드러눕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와 그의 모든 무리에 대한 것이다. 주 여호와의 말이다.”
- 높아진 백향목은 결국 찍혀 땅에 쓰러집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이 교만해졌다고 말씀하시며 그를 심판하십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기에 존재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모든 영광은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바로의 몰락은 주변 나라들에게도 큰 경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도의 참된 높아짐은 사람들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내 능력과 경험을 더 의지하고 있는 영역은 없나요?
오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겸손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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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그리스도인의 품격
다른 사람을 집요하게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실수한 사람, 잘못한 사람을 철저하게 몰아 붙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품격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서 드러납니다. 아무리 내 주장이 옳아도 그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내세우며 끝까지 관철하려 들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완벽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최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처하는 무서운 죄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도와주고 축복하는 일에 철저히 하고 자신의 의사 표시는 간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죄가 되고, 심판이 됩니다. 심판이 되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앉는 가장 무서운 교만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덮어 주시고 도와주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긍휼을 믿기에 오늘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풍성하신 긍휼을 믿기에 내일의 소망이 있습니다. 긍휼 없이 살면 아무리 바르게 산다고 할지라도 기쁨이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고백하는 허무한 결말이 오게 됩니다. 권세도 능력도 사라지는 날이 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집요하게 되는 것은 특히 타인의 잘못에 집요한 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요,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집요해질 때 '아! 나에게 축복의 문이 닫히고, 심판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구나'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덮어 주고 도와주며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의 문을 여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한 절 묵상
31장 14절 |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왕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위엄을 주었는지를 확인 시킵니다. 애굽의 바로왕에게 허락된 권세는 가히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독보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바로에게 앗수르의 예를 들어서 그러한 큰 권세도 무너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앗수르 역시 하나님께로 주어진 큰 권세를 받았지만 결국 그 권세로 인한 교만으로 인하여 그 권세는 꺽여지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꺽으시고 멸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하듯이 어떠한 힘을 가졌더라도 그 힘을 의지하고 교만하면 그 권세의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꺽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으로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꺽으시는 분이십니다.
♧ 오늘의 기도
국내
학령 인구 감소·교육 정책 변화로 기독교 학교의 정체성과 기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독교 학교가 건학 이념에 따라 성경적 가치관을 지켜 나가길 기도합시다.
국외
유럽에 있는 슬로베니아는 우수한 인프라와 노동력으로 1인당 GDP가 높지만, 세속화 등으로 영적 생명력을 잃고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에스겔 31장 1~18절은 애굽 왕 바로를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하며 그의 영화와 몰락을 보여 줍니다. 백향목은 크고 아름다워 많은 새와 짐승이 의지할 만큼 번성했지만, 그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고 자라게 하신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자신의 높아짐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했고, 결국 교만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시고 땅에 쓰러뜨리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분이시며 또한 낮추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성공과 능력, 삶의 모든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높아질수록 자신을 자랑하기보다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며 겸손히 살아가야 합니다
"그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았으며 그의 마음이 높아졌은즉" 에스겔 31장 10절
세상은 더 높아지고 더 인정받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높아진 자리에서 누구를 바라보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바로는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강점은 교만이 되었고, 축복은 심판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오늘도 내 삶의 모든 성공과 재능, 건강과 기회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드시고 더욱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에스겔 31:10)
애굽은 자신을 거대한 백향목처럼 여겼습니다. 높이 솟아 모든 나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고, 누구도 자신을 흔들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나무를 꺾으셨습니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높아진 마음이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애쓰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 어떻게 서 있는지를 먼저 보십니다. 많은 기업과 지도자, 유명인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소식을 가끔씩
접하게 됩니다. 그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흘린 땀도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하나님의 은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고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순간, 교만은 서서히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저의 사역과 직분, 경험과 열매를 제 능력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니다. 교만은 거창한 자랑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습관, 말씀보다 내 판단을 앞세우는 태도,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다는 마음속 확신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이 약함을 알고 하나님읗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 높아진 사람보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통해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참된 위대함은 높아지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데 있습니다.
오늘도 제 삶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원합니다. 손이 수고한 대로 살아가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7월 26일 오늘의 말씀 명언 에스겔 31장 1~18절
가문도, 외모도, 지위도, 심지어 은혜조차도 자랑하지 말라. - 찰스 스펄전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데 있다. - 존 칼빈
교만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마음이다. - C. S. 루이스
하나님은 무에서 창조하신다. 사람이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알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사용하시기 어렵다. - 마틴 루터
예수님을 위한 일조차 예수님보다 앞서면 위험하다. - 오스왈드 챔버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다는 사실이다. - J. I. 패커
하나님은 금그릇보다 자신을 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 - D. L. 무디
우리의 부르심은 성공이 아니라 신실함이다. - 프랜시시 쉐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애굽의 멸망을 선포하는 다섯 번째 예언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
애굽의 융성과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앗수르와 비교하면서
앗수르가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아름다웠다고 극찬하시면서
그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근동의 패권을 가질 수
있었으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생활이 세상적으로 순조롭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 앗수르나
애굽처럼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교만이 불러 온 패망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시고 애굽도 그것으로 인해 패망하게 되는데
주님이 주신 것을 자신이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셔야 할 인생과 가정과 일터에서
내가 주인노릇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움이 닥칠 때 주님께 맡기지 못한 채 스스로 끌어안고
근심, 걱정하며 힘들어하는 것 역시 교만의 한 모습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
겸손한 사람은 작은 일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교만한 사람은
역사적인 사건을 보면서도 교훈을 깨닫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그 길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애굽은 앗수르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지 못해서
앗수르의 전철을 밟고 맙니다.
모든 일과 사람에게는 진면교사와 반면교사가 있습니다.
키가 크고 잘생긴 것이나 재능이 있고 물질이 많은 것이 복이 될 수 있지만
그것에 빠지면 교만해지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사방에 꽃들이 경쟁하듯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오늘의 말씀해설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된 앗수르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번영했으며 주변 나라들도 앗수르의 그늘 아래서
함께 풍요를 누렸습니다.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앗수르는 아름다웠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신 일이지만, 앗수르는 그 위상이 하늘에 닿을 듯하자 교만해집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받아 완전히 꺾이고 황폐해집니다. 애굽도 앗수르처럼 영화를 누렸으나
교만 때문에 멸망당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가까이하십니다.
우리는 교만해지지 않도록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되새겨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애굽을 레바논의 백향목 같았던 앗수르와 비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와 추종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겔31:1~2) 그 큰 위엄이 레바논 백향목 같았던 앗수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겔31:3
어떻게 레바논 백향목 같이 큰 위엄 있는 나라가 되었는가? 물들이 길렀고, 깊은 물이 자라게 하였으므로 공중의 모든 새가 깃들일 만큼 되었다는 것입니다(겔31:4~6) 여호와께서 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게 하셨으므로 큰 위엄 있는 백향목이 되었고,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시기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모양이 아름다우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겔31:7~9)
그러나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니, 여호와께서 다 죽음에 넘겨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시니, 영원할 것 같던 앗수르가 패망했다는 것입니다(겔31:10~14)
마찬가지로 애굽 왕 바로와 추종자들도 그렇게 지하에 내려가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겔31:15~18) 그리고 이제는 진정 누가 큰 위엄 있는 자인지 보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시96:6~7)
그 위엄은 다 놀랄 위엄입니다"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눅9:43) 그 위엄은 화평을 베푸시는 위엄입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욥25:2) 여호와께서 그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줄 믿습니다 "여호와는 거기에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사33:21)
우리로 그 위엄을 의지하게 하심으로 우리도 위엄 있게 되어 창대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미5:4)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우리가 여호와를 의뢰함으로 우리의 뿌리가 큰 물 가에 있게 하셔서, 물들이 기르고 깊은 물이 자라게 하심으로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일만큼 큰 위엄 있는 레바논 백향목 같게 하사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할 만큼 아릅답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8
4
1.교만으로 인한 심판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왕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위엄을 주었는지를 확인 시킵니다. 애굽의 바로왕에게 허락된 권세는 가히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독보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바로에게 앗수르의 예를 들어서 그러한 큰 권세도 무너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앗수르 역시 하나님께로 주어진 큰 권세를 받았지만 결국 그 권세로 인한 교만으로 인하여 그 권세는 꺽여지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꺽으시고 멸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하듯이 어떠한 힘을 가졌더라도 그 힘을 의지하고 교만하면 그 권세의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꺽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으로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꺽으시는 분이십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으로 교만하게 행하고 있지 않은가?
2.바로에 대한 예언
어느 누구나 자신에게 힘이 생기고 권력이 생기면 그 권력으로 인하여 타락하는 길을 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앗수르의 길을 보면서도 애굽의 바로왕 역시 교만하여 그 결국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아둔함은 역사를 통해서나 또는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하여 어떻게 무너지고 실패하는 지를 알면서도 또 똑같이 그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지와 영적나약함을 이겨내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감사함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겸손한 믿음을 가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내가 지금 가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 임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5
본문: 겔 31:1-18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영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세상의 영화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영원의 세계에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입니다.
앗수르의 영화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3절) 백향목은 높이가 30-40m에 이르는 크고 우람한 나무입니다. 앗수르가 위세를 떨칠 때에 앗수르는 백향목처럼 주변 나라에 비해 크고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렇다면 앗수르가 그렇게 큰 영화를 누렸기에 좋은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우지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아무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의 에덴이 있는 모든 나무가 다 투기하였느니라"(9절) 앗수르의 위상이 참으로 커서 이스라엘이 부러워하였습니다. 앗수르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결코 이루어 본적이 없는 그런 영화를 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한번도 앗수르처럼 그렇게 큰 나라를 이룬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앗수르를 투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앗수르가 큰 나라였을 때 이스라엘 왕들은 그 나라를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앗수르를 부러워하라고 하실까요? 하나님은 왜 자신을 믿는 이스라엘을 그렇게 크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믿음이 문제라면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만이라도 이스라엘을 가장 큰 나라로 만드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그래야 하나님을 믿으면 이렇게 큰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광고하기에 좋지 않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큰 나라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광고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큰 나라를 이루는 것이 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일지라..."(10-11절) 앗수르는 아주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만으로 망하였습니다. 앗수르를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화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에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일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지옥의 앗수르
"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로 구름에 닾지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니라"(14절) 앗수르의 영화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앗수르는 이 땅에서 큰 영화를 누린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왕과 고위관료들은 이 땅에 있으면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큰 영화를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다.
지금 에스겔이 이 글을 쓰는 당시에 앗수르는 과거의 나라입니다. 지금은 앗수르의 영화를 바벨론이 이어받았습니다. 지금 바벨론의 시대에 앗수르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죽어서 무덤에 있습니다. 그들이 큰 영화를 누렸지만 죽음을 피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이 땅에서 누렸던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앗수르의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죽어서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지옥과 동일어로 쓰여진 여러 단어가 있습니다. 지하, 구덩이, 음부 등은 모두 지옥을 말하기 위해 쓰여진 단어들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는 영화를 누렸지만 그들의 죄로 인하여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화를 누렸지만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자신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매한가지로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라도 영화를 누렸으니 지옥에 가면 자랑스러워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눈깜짝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지옥에서는 이 세상의 영화는 눈깜짝하는 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영화를 위해 수고한 그들 자신을 한탄할 것입니다.
세상의 영화로운 사람들이 부럽습니까? 그것은 지옥에 있는 앗수르를 부러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의 영화는 지극히 짧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이 세상의 영화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길입니다. 이스라엘이 한 번도 세상의 절대강자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 것을 성경에서는 한탄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서는 결코 다른 절대 강자를 부러워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영화를 얻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의 죄가 문제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좇고 있지 않습니까? 가까이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서 죽음을 배우십시오. 지옥을 배우십시오.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옥의 권세로 떨어트리는 죄를 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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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모든 능력과 성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앗수르가 풍성한 물을 받아 성장했듯이 우리의 재능과 지위, 재물과 성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공할수록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높아진 지위보다 더 위험한 것은 높아진 마음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한 개인과 조직과 국가도 하나님을 떠나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람과 세상의 힘을 지나치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큰 나무가 쓰러질 때 그 그늘에 의존하던 자들도 함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지만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참된 안전은 힘과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습니다.
삶의 적용방법
하루를 시작하며 나의 건강, 재능, 재산, 지위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고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때 자신을 자랑하기보다 함께한 사람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나보다 약하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며 겸손하게 대하겠습니다.
돈, 직장, 권력, 사람을 절대적인 의지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은지 정기적으로 점검하겠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나의 경험만 믿지 않고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겠습니다.
실패와 어려움이 찾아올 때 낙심만 하지 않고,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2026년 7월 26일 기도문
하나님, 제 삶에 허락하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제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교만했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어떤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높아질수록 더욱 겸손히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제 삶을 통해 하나님만 높임 받으시고,
받은 은혜를 이웃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손을 붙들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를 붙드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제 안에 교만한 마음이 자리 잡지 않도록 늘 말씀으로 비추어 주시고, 제 능력과 경험보다 하나님을 먼저 의지하게 하옵소서.
주님, 높아지려는 마음보다 낮아지려는 마음을 주시고, 인정받기보다 섬기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워 순종하신 삶을 본받아, 맡겨주신 자리에서 겸손과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기도로 시작하고 말씀으로 걸으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이 되게 하시고, 저를 통해 하나님만 높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문
높은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제가 누리는 건강과 재능, 지위와 물질, 모든 성취가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합니다.
받은 은혜를 잊고 스스로 높아지거나 제 힘을 자랑했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힘과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지 않게 하시며,
성공할수록 더욱 겸손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제게 맡겨 주신 능력과 자원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공동체를 섬기는 데 사용하게 하옵소서.
매일 말씀 앞에서 제 마음을 살피게 하시고,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일시적인 영광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믿음과 겸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