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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의 기도의 유래를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왜 이렇게 단순한 기도가 교회안에 주어졌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여러 차례 발현하셔서 묵주의 기도를 권장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이 시대는 정신이 너무나 복잡한 시대이고, 이 시대를 그냥 시류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힘겨워 우리의 머리만 커져 가분수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공부도 하고 열심한 교우들은 교회안에서 소위 고상하고 차원높고 복잡한 기도를 할 수 있겠지만, 보통 일반 신자들은 그런 복잡한 기도를 하면 즉시 염증과 짜증을 느끼고, 오래 계속하지 못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묵주의 기도는 주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장 완전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영광송의 세가지 기도문으로 되어있다. 성모송은 그 전반부가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축하를 드리는 부분이고, 후반부는 교회가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영광송은 성부,성자,성령이신 천주 성삼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뜻으로 우리가 간절하게 외운다.
주로 이 세가지 기도문은 무지한 교우들도 어지간히 하면 다 외울 수가 있고, 아무리 외워도 싫증나지 않고, 항상 우리 마음에 기쁨과 위로를 준다. 이 기도문들은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의 진리에 기초한 기도문이기에,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내리시기 때문이다(사도10,44).
우리는 이기도를 바치면서 천주성삼께서 이루신 구원사업을 성모님과 함께 묵상하게 되고, 환희,빛,고통,영광의 신비에서 드러나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일생을 묵상하면서 우리들도 그 생활가운데 참여하여 구원의 은총을 얻어 입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성모님께 찬미를 드리는 것이다.
이 기도는 기도방식이 세 가지 방법 즉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정신적으로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입으로는 기도문을 바치며, 손으로는 묵주알을 넘긴다.
우리가 손으로 묵주알을 넘기지 않으면, 기도문을 바치다가 몇 번 바쳤는지 모르고, 하다 보면 지루해서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러나 묵주알을 하나 하나 넘기면서 경문을 바치면, 새로운 정신으로 바칠 수 있다. 또한 묵상을 하는 것도 좋지만, 경문을 외우지 않고 구슬을 넘기지 않으면서 묵상을 하다보면, 정신이 흩어지고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과 말과 행동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길로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 우리는 지루함이 없이 기쁘게 이 기도문을 바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우리도 그안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인성녀들의 생애를 안 살펴보더라도,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는 분들은 모두 하느님께 특별한 축복을 받아왔고,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지향을 가지고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는 사람은 심심한 것을 모른다. 그리고 여행할 때,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탈 때, 길을 걸을 때나 집안에서 묵주의 기도를 하면 좋다. 나는 수도자들이 주방에서 그리고 밭에서 일하면서 묵주없이 입으로 숫자를 헤아리면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피곤하면 쉬고, 여가중에도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을 때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 항상 주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다른 기도문을 바칠 때 책을 보아야 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한참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가 있다.
그러나 묵주의 기도를 할 때, 구원의 신비를 생각하고, 각 신비(현의)가 담긴 성화나 성상을 생각하며 관상에 잠길 때, 그 영성으로 주님을 쉽게 가까이 모실 수 있고, 그때 그때 필요한 은혜도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묵상할 때에도 묵상만 하면 정신이 흩어진다. 그때 방안이나 그 장소를 왔다갔다 하면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생각도 머리에 잘 떠오른다.
우리가 어떤 일에 있어서 어느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분별하기 퍽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런 때에도 조용히 성당에 앉아 혹은 밖을 다니면서 묵주의 기도를 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 주님의 조명을 구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목적하는 깨달음을 은혜로 주신다.
우리가 성체조배와 묵주의 기도를 엄연히 구분하지만, 성체안의 주님을 바라보며 묵주의 기도안의 신비를 묵상할 때, 성모님과 함께 성체안의 주님을 관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전에는 교회가 성체 대전에서 묵주의 기도 5단을 바치면 전대사를 얻어 입는다고 했다. 교회가 묵주의 기도만큼 전대사 뿐만 아니라 한대사를 많이 허락한 기도도 없다.
사제들이 묵주에다 방사(강복; 준성사)를 주는데, 방사라는 것은 은사를 베푸는 것이다. 거기에는 보통 세 가지 은사가 포함되어 있는데, 교회에서 하는 일반 사도 축복이 있고, 로사리오(매괴) 회원들에게 베푸는 은사인 매괴 축복, 그리고 십자군 축복이 있다.
매괴 축복은 교회에서 허락한 은사가 묵주알 하나에 백일씩, 십자군 축복은 묵주알 하나에 오백일 씩 은사를 베풀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묵주의 기도 한 꿰미를 함으로써, 교회에서 베푸시는 은사를 얼마나 많이 얻을 수 있겠는가? 은사를 베푸는 것은 그 베푸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베풂으로써 교우들이 그만큼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도록 장려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는 데 뜻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은사 하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은사보다도 묵주의 기도를 통하여 성모님께 찬미를 드리고, 성모님과 함께 한평생 천주 성삼을 공경하고 흠숭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과 생활에 깊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동정 마리아의 묵주의 기도>교서 36항에서 "기도의 진행을 표시하며 세는 도구인 묵주는 그리스도인 관상과 완덕의 끝없는 길을 가리킵니다. 바르톨로 롱고 복자는 묵주를 하느님과 우리를 묶어주는 '사슬'로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사슬, 참으로 아름다운 사슬입니다. 언제나 아버지 하느님과 우리를 묶어 주는 결합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종"이신(루카1,38) 성모님과, 또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종"(필2,7)이 되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하는 "효성"의 사슬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오상의 성 비오 사제와 스테판 곱비 신부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묵주는 사탄을 그 사슬로 묶어 지옥에 쳐넣는 강력한 영적 무기>이다.
이 로사리오 성월뿐만 아니라 평소에 끊임없이 묵주의 기도를 바쳐 성덕에 진보하고, 주님 현존과 보살핌과 따뜻한 사랑을 성모님을 통해 체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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