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우의 「나의 실패 –날개 달린 것들」 평설 / 육호수 나의 실패 -날개 달린 것들 최현우
여름과 매미 평범한 짝꿍 이제 짐짓 아는 체하는 일에 지쳤어 여름이고 다 자라버려서 매미가 울고 있을 뿐인데 거기서 비의와 교의를 찾는 일 따위 매미가 우는 일에 매미처럼 울지도 못할 거면서 통곡은 몸에서 멀고 늦은 오후, 흑색 도시는 매연으로 부풀어 사람의 마음에 기관지를 달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게 있다는 걸 틀어막아야 할 검은 입가가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어디를 가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대충 눈을 감고 팔짱을 낀다 길인지 굴인지 모를 갱도의 각도로 자신을 접는 방식으로 지하철과 버스에 앉아 퇴근을 하고 너는 높은 곳으로 갔다 나약하고 조악한 사람
우리가 조금 더 어렸더라면 손에 쥐여 줄 지폐와 동전을 가지고 다녔을 텐데 잡동사니 하나 없는 호주머니가 미래적인 것이라면 더 먼 미래에 갑자기 떠나가는 사람에게 황급히 무엇을 꺼내야 하나 주머니 대신 주머니가 되는 그런 게 미래의 아름다움이라면 아아, 이제 그만할래 골목에서 비스듬히 돌담에 기대 네게 하고 싶은 말, 문자메시지를 적고 있는데 하필이면 발밑으로 매미가 죽어 있다 새카맣게 날개를 접으면 양문으로 닫힌 관이 된다는 걸 여름의 모든 바닥, 네가 높이 갔으므로 이 말은 너에게 하지 않기로 한다 ㅡ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웹진》 (2022년 10월호) ........................................................................................................................................................
지난 계절 도착한, 상실과 기억의 시 / 육호수
이번 가을에는 이태원에서 말로 하기 힘든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날의 사건 이후 한동안, 무언가를 읽고 쓰는 게 두려웠습니다. 아마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함께 읽을 시는 최현우 시인의 「나의 실패 ―날개 달린 것들」입니다. 시월에 도착한 여름 시입니다.
여름과 매미 평범한 짝꿍 이제 짐짓 아는 체하는 일에 지쳤어 여름이고 다 자라버려서 매미가 울고 있을 뿐인데 거기서 비의와 교의를 찾는 일 따위 매미가 우는 일에 매미처럼 울지도 못할 거면서 통곡은 몸에서 멀고 늦은 오후, 흑색 도시는 매연으로 부풀어 사람의 마음에 기관지를 달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게 있다는 걸 틀어막아야 할 검은 입가가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어디를 가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대충 눈을 감고 팔짱을 낀다 길인지 굴인지 모를 갱도의 각도로 자신을 접는 방식으로 지하철과 버스에 앉아 퇴근을 하고 너는 높은 곳으로 갔다 나약하고 조악한 사람 우리가 조금 더 어렸더라면 손에 쥐여 줄 지폐와 동전을 가지고 다녔을 텐데 잡동사니 하나 없는 호주머니가 미래적인 것이라면 더 먼 미래에 갑자기 떠나가는 사람에게 황급히 무엇을 꺼내야 하나 주머니 대신 주머니가 되는 그런 게 미래의 아름다움이라면 아아, 이제 그만할래
매미의 울음에서 비의나 교의를 찾는 일에 화자는 지쳐 있다고 합니다. 비의와 교의의 세계는 일상보다 상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의미의 단계일 것입니다. 숨겨진 절대자의 뜻이 있다고 “아는 체하는 일에 지”친 화자는 매미의 울음에 자신의 슬픔을 대입한다거나, 매미의 울음을 시에서 의미화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시를 시작합니다. ‘너’의 상실 앞에서, 박목월의 시 「하관(下棺)」이 “주여/ 용납하소서”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 것과 대비됩니다. 화자는 매미가 우는 일에 매미처럼 울지 못하고, 도시의 일상을 살아야 하는 그에게 통곡은 몸에서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매미는 이 화자가 지금 매미처럼 울지 못하기 때문에, 통곡할 수 없기 때문에 시인의 눈에 포착된 것일 겁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게 있”지만, 그것을 “틀어막”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곡할 수 없음, 너의 상실을 승화할 수 없음’의 자리에 시인은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상실이 쓺을 통해 아름다움이 되고 마는 이 오래된 서정의 필연을 그만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주머니 대신 주머니가 되는/ 그런 게 미래의 아름다움이라면/ 아아, 이제 그만할래”) 그럼에도 그 상처의 자리를, 딱지를 들춰 안을 들여다보듯 응시해야 하는 시인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이 쓺의 자리는 상실 이후 애도의 시간이 지나고, 그것을 다시 떠올렸을 때, 그것으로부터 의미를 담는 주머니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째서 주머니를 담는 주머니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지젝은 멜랑콜리(우울)가 소유했던 대상(이 시에서는 ‘너’의 자리)의 상실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대상을 결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빈 주머니를 다른 주머니로 대체하는 미래의 자리는, 어쩌면(문학에서 오해해 온) 승화의 자리이고, 어쩌면 삶과 죽음과 상실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의미를 알게 되는 자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런 일을 그만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상실의 자리를 매만지며, 계절처럼 도래하는 상실과 이후의 상실을 미리 체화하며 통곡의 자리에서 입을 막고 있는 시인의 조용한 시선이, 미처 언어가 되지 못한 육체의 몸부림의 시간들과 함께 육박해옵니다. 이곳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일이 상실의 극복이나 승화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외면이라도 된다는 듯 시인은 바닥의 자리, 현실과 일상의 자리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시인은 마음의 도축업자나, 해부학자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마음을 파헤쳐야, 덜렁거리는 딱지를 단 채 “지하철과 버스에 앉아” 출퇴근을 하며 문장을 메모하고, 그래서 스스로의 마음을 파헤치는 데 무감하고 정확해져야, 시인이 되는 것일지도요.
시인이 울고 있는 매미 앞에서, “비의와 교의”를 찾는 일을 그만두었듯 그것을 시 안에 그럴듯하게 서정적 자아의 슬픔이 지닌 인력으로 주제화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 울음을 다만 울음으로 두었듯, 저는 이 자리에서 이제 무엇을 더 쓸 수 있는지,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번 계절에 도착한 시를 읽으며 한 계절을 난다는 게 바라마지 않던 행복이면서도, “매미”처럼 하염없이 울다 보면 더 붙일 말 없이 다만 이 시를 소리 내어 아끼는 누군가에게 천천히 읽어주고 싶은 마음만 듭니다. 지난가을 있었던 너무 많은 죽음 앞에서, 그럼에도 시를 읽고 써야 할 이유를 찾고자 여러 번 백지 앞에 앉았습니다. “통곡이 몸에서 멀”어질 때까지 침묵을 매만지면, 매만진 자리를 다시 매만지며 계절을 여러 번 지나면 상실도 멀어지고, 상실을 하염없이 지켜보던 나도 멀어지고, 상실의 쓰던 언어도 멀어지고, 그리하여 오래 기다리던 죽음과 시가 가까워질까요? "너는 높은 곳으로 갔다"고 말할 수 있게 될까요? “어디를 가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대충 눈을 감고 팔짱을 낀다/ 길인지 굴인지 모를 갱도의 각도로/ 자신을 접는 방식으로/ 지하철과 버스에 앉아 퇴근을 하고” 지난 시월 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는 시월에 도착한 여름 시고요. 이 도시의 시간을, 그날 이후, 몸을 욱여넣어야 하는 매일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먼저 읽은 시를 다만 전합니다.
골목에서 비스듬히 돌담에 기대 네게 하고 싶은 말, 문자메시지를 적고 있는데 하필이면 발밑으로 매미가 죽어 있다 새카맣게 날개를 접으면 양문으로 닫힌 관이 된다는 걸 여름의 모든 바닥, 네가 높이 갔으므로 이 말은 너에게 하지 않기로 한다
너는 높이 갔고, 나는 여름의 바닥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로 너에게 할 말을 적고, 그 시선의 끝에는 하필이면 여름 내내 울던 매미가 날개를 접은 채 죽어있습니다. 하늘을 날게 해주는, 높은 곳으로 향하게 만들어주던 날개를 접은 자리가 “양문으로 닫힌 관”의 자리, 죽음의 자리라는 걸, 너에게 하지 않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너는 “높이 갔”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자리, 관의 자리도 지상에서 바라본 자리이기 때문이겠죠. 이 사건의 지평선 직전의 자리, 양문으로 닫힌 죽음의 문을 마주한 자리가 지금 시인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여름의 바닥 자리엔 죽음으로 향하는 블랙홀처럼 죽은 매미가 여기저기 닫힌 관의 모습으로 누워 있습니다. 목월의 시 「하관(下棺)」과 이 시를 겹쳐 읽어 봅니다.
―계간 《청색종이》 육호수, ‘이 계절의 시’ 부분 ----------------------- 육호수 / 1991년 경남 양산 출생.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당선.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
첫댓글 나의 실패
-날개 달린 것들
최현우
여름과 매미
평범한 짝꿍
이제 짐짓 아는 체하는 일에 지쳤어
여름이고 다 자라버려서 매미가 울고 있을 뿐인데
거기서 비의와 교의를 찾는 일 따위
매미가 우는 일에
매미처럼 울지도 못할 거면서
통곡은 몸에서 멀고
늦은 오후, 흑색 도시는 매연으로 부풀어
사람의 마음에 기관지를 달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게 있다는 걸
틀어막아야 할 검은 입가가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어디를 가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대충 눈을 감고 팔짱을 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