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용바위에 새겨져 있는 황진이의 글씨)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疑視銀河落九天 (의시은하락구천)
-나는 듯 흘러내려 삼천척을 떨어지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내리는 듯하구나
지난 3월 30일 개성역사관광때 본 글씨다.
박연폭포 고모담 물 속에 솟아 있는 용바위에 황진이가 머리채에 먹을 휘둘러 썼다고 전해지는 이태백의 시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의 한 구절.
한자실력이 꽝인데다가 초서체이니 읽어볼 엄두도 낼 형편이 아니고, 글을 '읽는' 대신 내 나름대로 글을 '느낀' 바, 글씨체의 아름다움에 더불어 떠오른 낱말들은 호방함, 배짱, 기개, 자유로운 영혼...이런 단어들이었다.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감이 어떠하리...하고 양반을 놀려먹을 만하고, 죽고나서도 무덤 앞에 '잔들어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설워 하노라'는 시를 짓고 제를 올리게 만들어(?) 벼슬을 내놓게 만들만한...
(허난설헌 친필과 앙간비금도)
허난설헌의 친필과 그녀가 유년기에 그린 그림이다.
황진이가 중종 때 태어났다고 하니 1563(명종 18)∼1589(선조 22)에 살았던 허난설헌은 조금 뒤에 살았던 셈이다.
대학 다닐 때 쯤이었던가,좀 오래된 때의 일이라 자세한 것은 잊어버렸지만 어느 지인의 집에서 왼쪽의 허난설헌 글씨(돌에 새겨져 있는 것을 뜬 탁본을 넣은 액자)를 처음 봤을 때 한참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견고인서(閒 見古人書, 난설헌)으로 '한가롭게 옛님의 글을 본다'란 비교적 간단한 이 글을 보는 순간,머리 속이 가을 하늘처럼 싸아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 한 구석을 베인 것 같기도 하고...
비단 폭을 가위로 결결이 잘라
겨울 옷 짓노라면 손끝이 시리다
옥비녀 비껴들고 등잔가를 저음은
등잔불도 돋을 겸 빠진 나비 구함이라
허난설헌의 夜 座(야좌)라는 이 시는 섬세하면서도 어느 한 편 슬픔을 느끼게 되며 그녀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개성에서 황진이의 글씨를 보고 있으니 이 글씨가 생각났다.
이 두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그녀들의 뛰어난 감수성과 총명함과 더불어 시대의 사회적 모순과 여성에게 가해진 차별과 억압이 그녀들의 생에 고스란히 퍼부어졌다는 점 때문일것이다.
허난설헌은 친정의 멸문으로 사이좋게 지내던 오라비를 잃었고, 지아비의 외도와 고부간의 갈등을 겪으며 결혼 생활을 하다가 어린 남매를 앞서 보내고 스물 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황진이는 진사의 서녀로 태어나 봉건적 윤리의 질곡을 벗어나는 방편으로 기생이 되어 살다가 마흔 즈음에 세상을 떠났다.
허난설헌의 묘는 어린 남매의 묘 옆에 있고 황진이는 그녀의 유언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묻혔다.
첫댓글 황진이,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여자이지요 한때 그녀처럼 살고싶을때가 있었답니다 얼마나 멋진 여자였으면 소세양이 사람임을 포기할 정도였을까.
개인적으로 허난설헌의 글씨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용바위의 황진이 글씨를 보고난 비교 감상은, 스케일은 확실히 황진이가 크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들의 삶도 그러했지만요. 저는 언제 허난설헌 묘가 있는 곳에 한 번 가보고 싶다...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전해지지 않더라도 작은 위로의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기도 하고...
나 역시 그녀의 묘를 한번 찾아가 보고픈 마음이 있었지요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들을 만나면 그 인물에 대해서 깊이 알고싶어지는 마음은 같은가 봅니다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공감? 적절한 단어가 생각 안나는군요